*욕설, 술, 담배 주의


***


바보 같은 하나마키 타카히로.

언제까지 외면할래.


거짓말 하지마.

들키지 않을 영원한 거짓말이란 없어.


바보 같은 마츠카와 잇세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래.


착한 척 하지마.

서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어.


알잖아?


*** 


하나마키가 바이섹슈얼이란 것을 마츠카와는 알고 있었다. 예쁘장하지만 적적히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다부진 듯 가녀린 몸매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도 알았다. 연애를 쉬는 법이 없고 연애 중에도 고백을 수 없이 받는 다는 것도 그리고 끊임없는 고백의 행진에 연애의 끝은 차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까지


그리고 오늘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더 알았다.

연인의 외도를 알면서도 하나마키는 모른척하고 바보 같이 기다리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


잘 나가는 프리랜서 주얼리 디자이너인 하나마키는 마감이 끝났는데 무려 애인님께서 바빠 자기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 심심하다고 마츠카와를 불러냈다. 마츠카와는 애인님은 무슨 애인님이며 백수가 바빠 봤자 얼마나 바쁘겠냐고 속으로 비꼬아 대면서도 하나마키의 부름에 얌전히 응했다. 그래도 잘나신 애인님 다음으로 가장 찾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점심시간의 번화가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평일인 탓인지 한산한 느낌이 더 했다. 보고 싶은 장면이 보기 싫어도 잘 보일 정도로. 사진으로 몇 번 접했던 하나마키의 애인 옆에는 웬 여자가 있었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 제 옆의 하나마키를 돌아보았다. 하나마키는 그 모습을 못 보았는지 마츠카와 만을 보며 점심메뉴에 대하여 조잘조잘 늘어놓고 있었지만 기민한 마츠카와는 하얗게 질려있는 하나마키의 표정을 금세 잡아내었다.


마츠카와는 필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하나마키의 외면에 일단 모른척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마츠카와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 했다. 자신에게 집중을 못하는 것은 물론 노래를 부르던 파스타도, 그리 애정해 마지않는 슈크림까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보자니 마츠카와는 심기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조금 건들여볼까 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희게 질린 안색이 돌아올 생각도 없고, 눈물이 아직 고이진 않았지만 건들이면 분명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니 괜히 건들였다가는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아 일찍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타카히로-, 너 어디 아픈 거 같은데, 그냥 들어가라.”

“응? 나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한 건데….”

“툭 치면 그대로 넘어갈 안색이거든?”

“…그, 그렇게 심해?”

“응. 여기 슈크림은 얼려도 맛있으니까 몇 개 포장 해 달라 할 테니까. 얌전히 집 가는 거다?”

“오- 잘나가는 잇세이 씨가 사는 가요-?”

“그래. 잘나가는 내가 살 테니까, 잘 나가는 타카히로 씨는 다음에 치즈햄버거 사는 걸로.”


엑? 그게 뭐야. 사주는 게 아니잖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마츠카와의 뒤로 하나마키가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긴장으로 굳어있던 표정이 한결 풀어진 모습이다. 여태껏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기색을 살피던 마츠카와의 시선이 계속하여 하나마키에게 긴장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러한 떨어져나가자 한결 편안해진 하나마키는 다시 표정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겨우 표정을 갈무리 했다고 생각되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가 기다리는 곳으로 서둘렀다.


카운터 쪽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마츠카와가 보이지 않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찾으려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아 당황했으나, 이내 자신을 툭툭 치며 말을 거는 점원이 포장된 슈크림을 건네며 마츠카와의 행방을 일러주어 진정할 수 있었다.


카페 내부를 둘러보아도 없고, 테라스를 내다보아도 없던 마츠카와는 카페 옆 골목에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무엇을 하나 싶던 하나마키는 골목 벽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있는 마츠카와를 보자 그제야 마츠카와가 흡연자인 것을 기억해냈다.


“아, 맞다 너도 담배 피지. 왜 여기서 담배를 피워? 테라스도 있잖아.”

“그냥? 겸사겸사 너도 좀 놀려보고?”

“그래, 오랜만에 놀리니 좋지?”

“응. 거기다 얼굴이 희게 질리기까지 했으니 완전 대성공인데.”

“엑? 나 얼굴 하얘?”

“응. 완전.”


사실은 마츠카와의 장난 때문인 것은 아니었지만 마츠카와는 자신의 장난으로 인한 것 마냥 그렇게 놀렸다. 어떻게든 하나마키의 주의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면 안됐다. 그 빌어먹을 놈에게서 생각만이라도 떼어놓겠다고 생각한 마츠카와였다. 그 남자 때문에 자신 앞에서 울어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마츠카와가 예상하는 한계점은 거기까지였다.

더 참아줄 생각도, 인내심도 바닥난 지 오래니까.


복잡한 심경을 털어내듯 빠르게 한 대를 피워낸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양해를 구하곤 다시 한 대를 물고는 불을 붙이려 했다. 하나마키의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나도, 한 대만.”

“너. 안 피웠잖아.”

“음- 그 사람이 권하길래…?”


감히 제 꽃에서 쓰레기 같은 공기를 마시게 하다니, 저도 타카히로의 앞에서 피운 적이 없었는데. 좋은 물만 마시고 좋은 공기만 마셔야 할 제 꽃이었다. 역시 타카히로와 헤어지면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츠카와였다.


“나도 안 필 테니까, 너도 피지 말고 집에나 가자.”


들고 있던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하나마키의 집 쪽으로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버리는 마츠카와였다. 화가 난 마츠카와는 엉망이 되어버린 머릿속과 심정을 숨기듯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그 주위의 분위기까지 가라 앉혔다. 그 덕에 하나마키까지 마츠카와의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활기찬 거리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주위는 적막과 냉랭함이 감돌았다.


시가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나마키의 집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얼마 걷지 않아 하나마키의 집에 도착했고 마츠카와는 전과는 달리 하나마키에게 한마디만을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하나마키는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마츠카와의 뒷모습에 서운해 하다가도 이내 마츠카와가 남긴 한 마디에 다시 사색이 되었다.


‘잘 생각해보고, 얼른 해결해. 힘들면 연락하고.’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문장이었지만 그 대상은 분명했다.


떨리는 몸을 추슬러 겨우 집으로 들어온 하나마키는 어떻게 마츠카와가 아는 건지 고심했다. 같이 만난 적도 없는데. 당장이라도 어떻게 알았는지 따져 묻고 싶은 하나마키였지만 물어보는 순간 마츠카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 겁나 물어보지 못했다.


결국 그 날 하나마키는 자신의 연인에게도, 마츠카와에게도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그 날 이후, 마츠카와는 벼르고 있던 사람을 계속 보게 되었다. 무슨 질 나쁜 장난 같이 자신의 일터에서도, 출 퇴근 길에도, 잠시 산책이나, 운동을 할 겸 밖을 돌아다닐 때에도 마주치는 저 치를 여지껏 관심이 없어서 못 보았는지 고민할 정도였다. 물론 영업과 손님 접대가 직업인 마츠카와에게 그런 일이란 있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 달여를 그 보기 싫은 존재를 보게 된 결과,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보는 눈을 한탄했고, 저렇게 더러운 이의 손에게 키워지게 될 바에야 자신이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치는, 마츠카와가 볼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바뀌었다. 남자였을 때도 있고 여자일 때도 있었으며, 나이대도 다양했다. 그나마 공통점이라고 할 만 한 점은 돈이 많아 보였다는 것.

그리고 두 번 이상 같이 있었던 사람이 있긴 있었고, 그 사람이 여자. 무척 어린 여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마츠카와는 단 번에 그 어린 여자애가 진짜 연인이란 것을 알아챘다.


언젠가 하나마키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커플링이라고 디자인 한 반지가 어찌 된 영문인지 저 여자아이와 저 썩을 놈의 손에 나란히 끼워져 있었고, 여동생의 생일선물을 부탁받았다며 더 정성스럽게 디자인했던 주얼리 세트를 저 여자애가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했을 때, 마츠카와는 당장이라도 뛰어가 저 손가락들을 뜯어내고 싶었고 목걸이와 팔찌 들을 다 빼앗고 싶었다. 하나마키만 아니었으면 실행으로 옮겼을 테지만 자신과 그들의 접점은 하나마키 뿐이었고, 하나마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혼자 뒤집어쓰려 해도 남은 가족이 없는 마츠카와가 경찰서에 가게 된다면 연락을 받게 되는 사람이 하나마키였으므로 결과는 같았다. 분노가 이성을 잠식해버리기 직전, 겨우 남은 이성이 도출해낸 결과로 겨우 마츠카와는 참았다.


물론 그 둘에게만 참았다.


그 날, 마츠카와의 일이 끝난 새벽.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마감이 있는지, 없는지 물었고 하나마키는 최근 일을 쉬고 있었기에 없다고 답했다. 그 답을 듣자마자 마츠카와는 그대로 하나마키의 집으로 찾아가 하나마키에게 따지듯 물었다.


전에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냐고.

그 말을 들은 하나마키는 회피했다. 헤어질 이유가 없는데 왜 헤어져. 하나마키는 가뜩이나 어지러운 심사를 더 어지럽히는 마츠카와에 화가 났다. 자신의 연애사에 왜 그리 신경 쓰는지 자기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마츠카와의 일말의 이성을 날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 봤잖아. 너도 보고 나도 봤는데!”

“뭘 봐, 뭘 봤는데! 너 그 사람 얼굴도 모르잖아.”

“왜 몰라.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자랑했잖아. 내가 그 사진 잠깐 봤다고 기억 못 할리 없잖아?”

“그래, 그 날 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쳐. 그 옆에 있던 여자 아마 그 사람 동생이겠지. 동생 준다던 주얼리까지 끼고 있었으니까.”

“너는 여동생이라고 하는 사람이랑 키스하고 하냐?”

“…무슨 소리야?”

“몇 번을 봤어, 그 여자애랑 같이 있는 거. 그리고 그 여자애랑 스킨십 하는 것도, 나 일하는 술집에서 진하게 노는 거까지. 더 말해줄까?”

“…어두워서 착각했겠지.”

“그 여자애 말고도 더 있더라?”

“뭐…가…?”

“애인을 가장한 물주들?”


그 말을 들은 하나마키는 무너졌다.

주저앉아 주위에 난잡하게 널려있던 것들을 마츠카와에게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꺼져라, 듣기 싫다, 왜 이렇게 괴롭히냐. 한 달간 하나마키가 고민하고 아파했던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마츠카와는 자신의 종아리와 발에 떨어져 내리는 온갖 잡동사니보다 하나마키가 쏟아내는 감정들이 더 아팠다. 그렇지만 여기서 물러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마츠카와는 알았다.


다친 상처가 아프다고 소독을 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썩는다. 썩은 상처를 두면 더 아프기만 하고 낫지 않는다. 새살이 돋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져 주위의 살을 좀 먹어갈 뿐이다.


“계속해서 바뀌는 파트너들. 공통점은 돈 많아 보이는 사람들뿐이고. 네가 디자인한 커플링은 그 새끼랑 그 새끼 여자친구로 보이는 어린 여자애 손가락에 있고 그 마저도 다른 사람들 만날 땐 없더라. 그러면서도 할 건 다 하더라. 모텔에서도 나오고.”

“그만 하랬잖아!!”

“현실을 직시해! 언제까지 외면하고 등신같이! 호구같이! 살 건데!”

“네가 무슨 상관인데!”


질러버리자.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마츠카와는 막나가기로 했다.

자신의 상처도 자기를 살펴달라고 치료해 달라고 울고 있었다.

상처는 이미 곪고 터지고 썩어 들어가 온 몸이 문드러졌다.


“내가 널 좋아하니까!! 십 수 년을 참았어! 견뎠어! 그만 모른척하란 말이야!! 언제까지 이러고 놀래? 나도 이제 못 참겠어. 나도 아파. 웃는 거도 힘들고. 모르는 척 소꿉놀이하는 거 질렸어. 이제 그만 하자.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이 관계.”

“….”

“간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멍하니 주저만 앉아 있는 하나마키가 잡을 생각도 없어보이자 마츠카와는 정말로 뒤를 돌아 하나마키의 집을 나갔다. 홀로 남겨진 하나마키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는지 모를 관계에 속이 답답했다.



***


하나마키가 눈을 뜬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였다. 새벽의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실의 맨 바닥에서 하나마키는 잠들어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는지 눈만을 깜빡거리며 한참을 누워있던 하나마키는 희미하게 울리는 라인알림에 겨우 눈을 떴다. 밤새 추위에 떨며 맨 바닥에 눕혀져 있던 몸뚱아리는 어찌나 무거운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지만 하나마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거실 구석에 있는 휴대폰을 들어올리자, 어제 던진 물건 중에 하나였는지 엉망으로 액정이 망가져 있었지만 라인 메시지를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 > 오늘도 일 때문에 시간이 안 나네. 다음에 보자.]


발신인은 애인님♡

사과 한 마디도, 이모티콘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메시지. 라인을 끄고 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살펴도 전화 한통 없다. 저 메시지가 무려 3일 만에 메시지이고, 약속이 한 달 만에 하는 데이트였는데. 누구든 화날 만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마키는 무덤덤했다.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어제의 일 때문에 만나도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다시 무심히 휴대폰을 던져 놓고 그 자리에서 다시 드러누웠다. 아직 잠이 덜 깬 듯이 멍했다. 겨우겨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 덕에 잠에는 들지 않았지만 사고는 이어지지 않고 뜨문뜨문 이어졌다.


언제 치우지. 다음 마감은 언제더라. 목마른데. 움직이기 싫다.


죽은 듯이 누워,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막을 생각도 없는 하나마키를 깨운 것은 알람이었다. 생활패턴이 자신과 다른 마츠카와를 위한 알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츠카와를 깨우기 위해 전화를 걸어야 할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하나마키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급히 휴대폰을 들었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어제 그렇게 싸웠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걸기에 하나마키는 뻔뻔하지 못했고 뻔뻔하다 해도 모르는 척 걸었다간 마츠카와와 영영 멀어질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새벽, 마츠카와는 하나마키가 외면하여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모른척 그만 하라는 마지막 발악이었고, 그렇게 뒤 돌아 간 것은 이 아슬아슬한 관계의 끝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다시 연락하는 것은 결정을 내린 뒤여야 한다.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나마키는 무릎을 끌어안아 거기에 고개를 묻었다. 마지막으로 오늘까지만 딱 울고, 생각해보자.


그날의 다짐대로 하나마키는 더 이상 울며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지 않았다. 청소를 하고, 운동을 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생각할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직 하나마키는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외면했던 사실들을 마주할 자신조차 없었다.


***


충동적으로 모든 것을 내뱉었던 새벽.

마츠카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서워 도망갈 법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가로등 마저 꺼질 시간이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무렵의 마츠카와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으니까. 미친 듯이 화가 나고 슬펐지만 그것을 물건을 던지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것으로 풀어내기에 마츠카와는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과 끊임없는 흡연만이 마츠카와의 심경을 대변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담배만 피우던 마츠카와는 결국 한 갑을 다 피워내었다. 마지막 한 대를 피우고 다시 한 대를 피우려 담배갑을 털어보았지만 나오는 것이 없자 빈 담배갑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진정했다. 아니, 진정했다기 보다는 잠시 묻어 두었다고 해야한다.


매캐한 연기로 가득찬 방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자, 시린 겨울바람이 들이닥쳐 마츠카와의 전신을 때렸다. 그제야 눈물이 멎었고 마츠카와는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씻고 창을 닫고, 침대에 누우며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미뤘던 일을 시작 해야겠네….’


늦은 오후 마츠카와는 시끄러운 알람에 눈을 떴다. 하나마키에게서 전화가 오기 10분 전에 울리는 알람이다. 더 자도 되는 시간인데도, 원래 잘 일어나는 마츠카와인데도 하나마키에게 부탁한 이유는 매일 목소리를 듣고 일상을 나누고 싶어 부린 수작이었다. 아마 하나마키는 모르고 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게으르게 있자니 전화가 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고 마츠카와는 아쉬웠지만 참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하나마키가 자신의 의도를 잘 깨닫고 연락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안할 것을 알면서도 기다렸던 이유는 마츠카와 본인의 욕심이었다. 하루 빨리 결말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이왕이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10분을 더 기다려 봤지만 울리지 않는 휴대폰에 마츠카와는 더 기다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부터 마츠카와는 바빠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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