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은 전부 끝났습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부하의 간략한 보고에 히카르도는 습관적으로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예상범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끝난 일처리에 드물게 만족스런 웃음이 입가에 퍼졌다. 이것으로 상대 조직들을 온전히 뿌리 뽑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일어나기에는 제법 큰 타격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최근 들어 잦아지는 항쟁 때문에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던 일상이 슬슬 막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했다.


라이터의 불이 옮겨가 마지막 남은 한개비가 조용한 향을 피우며 타들어가는 것을 보던 히카르도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전화로 인해 잠시 좁아졌던 시야 너머로 거슬리는 무언가를 본 덕이었다. 한순간 잘못 보았나 싶었지만 저 골목 한가운데에서 온통 붉은색 액체로 덧칠된 남자의 모습은 또렷하기 그지 없었다.



"...곧  그쪽으로 간다. 그때까지 잔당은 전부 치워내."



전화 너머 상대의 답은 미처 기다리지도 않은 채, 히카르도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마피아 행동 대장이라 불리는 제게 이 정도의 일로 무어라 할 간 큰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 바닥에 엉망인  모양새로 쓰러진 남자에게로 다가섰다. 먼 발치에서 보았을 때는 영락없이 식어가는 시체인 줄 알았건만, 미약하게 들썩이는 몸이나 옅고 고르게 비치는 호흡소리는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만 머리에서 적지 않게 흘러내리는 피와 몸을 들쑤신 크고 작은 상처로 보아하니 이대로 계속 방치된다면 곧 숨이 넘어갈 것이 뻔했다.



"......."



그러나 그것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소식이 끊어진 제 친우라면 몰라도 자신은 누군가를 살리는데에 있어 미숙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자신에게 더 걸맞을 것이라 생각하던 히카르도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여기서 더 지체하다 누군가가 보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것이다. 평소에도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니 그렇게까지 신경쓰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주변에 누구도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내리자,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호흡을 늦추는 남자의 상태가 보였다. 이대로 그 남자의 곁을 스쳐지나가려는 자신의 다리를, 누군가가 콱 붙잡았다. 




"돌, 아가야 한......."

 


짧은 문장은 맺음도 없이 그렇게 끝났다.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을 모두 쏟아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은 것인지. 쓰러져 있던 남자는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자신의 다리를 움켜쥔 그 남자의 손에서는 한없이 절박한 매달림이 느껴져 히카르도는 매몰차게 제 다리를 빼내지 못했다. 그리 강하게 힘을 주고 잡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미미하게 실린 그 힘이 지나치게 낯익었던 까닭이다. 남자의 하얀 머리카락이 어느덧 붉게 젖어 처연하게 늘어지는 것을 보며, 히카르도는 결국 한손으로 느슨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상태는?"


"후두부를 무언가에 강하게 얻어맞으신데다, 자상이 심합니다. 흘린 피도 상당해서 자칫 수 분만 지체하셨다면 이분의 목숨이 위험하셨을 겁니다. 제때 와주셔서 그나마 이렇다 저렇다 할 휴우증 없이 퇴원 수속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보름 정도는 지켜보시고......."


"알아서 처치해둬."



결국 근처에 있던 제 차에 남자를 태우고 마피아 전속병원으로 내달려온 히카르도는 흘러오는 의사의 말에 대충 고개만 까딱였다. 어쩄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셈이었다. 혹시나 오는 도중 숨이 넘어갈까 죽자살자 밟은 탓에 아직도 손에 핸들이 감겨있는 것 같았다. 자신답지 않은 짓을 했다, 라며 조금 짜증어린 얼굴을 하던 히카르도는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저기, 지금 환자분이......!"



다급히 달려온 간호사가 거칠어진 숨과 함께 촉박한 문장을 만들었다. 그것에 곧장 환자에게 향하는 의사와 그를 뒤쫓는 간호사를 보던 히카르도는 다시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데려온 그 남자에게 또 무슨일이 생긴 것 같았다. 괜히 성가신 일 하나를 벌려놓은 것 같아 기분이 불편했지만 일단 그것은 뒤로 미뤄둔 채 히카르도는 그의 병실로 향했다. 어쨌거나, 데려온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기에.



 





"......기억상실이라고?"



히카르도는 드물게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의사를 바라보았다. 본디 서늘한 무표정이나 격정적인 표정으로만 사람을 상대하는 자신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몇 없는 일이었다. 드라마 세팅장도 아니고, 영화 촬영장도 아닌데 정말이지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길거리에 피투성이로 쓰러진 남자를 마피아 행동대장이 구했다, 라는 상황보다도 더한 이질감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단번에 사나워진 마피아 행동대장의 눈길을 난처한 얼굴로 받아내던 의사는 결국 제 본분을 다하겠다는 듯이 마저 말을 토한다.



"후두부를 부딪치시면서 그 충격으로 그렇게 되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머리뼈에 손상이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맞은 직후 뇌진탕이 잠깐 일어났던 흔적이 보이셨는데 아무래도 그게 원인같군요. 자세한 것은 보다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이제는 기가 차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지간히 귀찮은 상황에 휘말려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동시에 불쑥 치솟은 짜증에 히카르도는 왈칵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아직도 조잘조잘 말을 늘어놓는 의사를 거칠게 밀치고 병실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돈을 뜯어내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싸그리 족치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적당히 화를 풀 곳은 필요했다.



"─이봐, 저 의사 말이 사실......."


"......."



거세게 열린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눈에 들어온 남자의 모습에 히카르도는 일순 발걸음을 멈췄다. 병원의 특성상, 새하얗고 깨끗하게 정리된 그 백색 공간에서 왜인지 기이하게 도드라지는 은색의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남자가 눈에 보인탓이다. 결코 순하게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친 이목구비에 눈밑으로 뻗어진 교차 흉터는 선명하기만 했다. 여자들이 선망할만한 그 잘생긴 얼굴 한가득 표표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는 회색 시선에 의아함이 실리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자신은 잠깐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넌, 누구지?"



지독하게 울리는 저음. 낮고 절도 있게 끊어지는 그 목소리에 히카르도는 입술을 비틀었다.



"널 여기 병원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아는 사이였던건가. 그렇다면 내 이름을 알려줄 수 있나?"



고개를 비틀며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히카르도는 대답 대신 표정없는 얼굴로 걸음을 내딛어, 병실 안 옷걸이 근처로 향했다. 아직 피에 담뿍 젖어있는 남자의 코트를 마구 헤집던 그는 곧 옷의 안쪽 주머니 안에서 두툼한 지갑하나를 꺼내 뒤지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신의 옷에서 지갑을 꺼내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던 히카르도는 마침내 제가 찾던 작은 종이 하나를 팔랑이며 뒤늦은 답을 던졌다.



"다이무스 홀든... 이라는군. 네 이름은."



작은 신분증 위로 수수하게 새겨진 먹빛 글씨체는 선명하게 남자의 사진과 함께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것을 난폭하게 다시 주머니에 우겨넣는 저를 잠깐 바라보던 남자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익숙하게 주름이 잡히며 성난 얼굴을 내비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잠깐 감상하고 있자니, 조금 경계심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름을 묻고 싶은데."


"──히카르도 바레타."



어차피 들어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남몰래 중얼거리며 남자, 다이무스를 바라보던 히카르도는 내심 착잡한 기색을 숨겨야 했다. 역시 여러모로 귀찮게 되어 버린 듯 했다.




+




「홀든가의 차기 가주, 실종 6개월. 아직 소식이 없어.......」



그렇게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는 기사를 보며 히카르도는 느긋하게 마시던 커피를 탁자위로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직업상 신문이란 것 자체를 그리 볼일이 없던 그에게 활자 너머로 익숙한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 탓이었다. '다이무스 홀든(29)' 라고 새겨진 실종자의 정보 하나는 자신에게 있어 평소처럼 그저 휙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설마, 그 홀든?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문을 고쳐잡는 히카르도의 얼굴이 진중하게 굳었다.


검의 명문가. 내로라 하는 귀족의 가문. 그 가문의 차기 가주의 이름이 다이무스 홀든 이라니. 입고 있던 옷이나 지갑에 있던 두툼한 돈, 어지간한 귀족들은 갖지도 못한다는 모 왕실 전용 카드를 봤을 때 부터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하필 홀든가의 차기 가주였다니. 어쩐지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지만 그저 동명이인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넘긴 자신의 판단에 늦은 후회를 하며 히카르도는 곧장 옆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신문에 기록된 홀든가 전용 회선의 번호를 꾹꾹 누르던 히카르도는 일순, 그 손가락을 멈췄다.



"바레타?"



서재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거기서 나오는─ 이제는 익숙한 남자의 모습에 히카르도는 천천히 신문을 접어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손에 들었던 전화기는 이미 아무렇게나 던져진지 오래였다. 처음부터 자잘한 쓰레기 였다는 듯 가차없이 구겨져 통 안에 박혀버린 그 신문에게 시선을 떼고, 대신 히카르도는 다이무스에게 손을 뻗었다.



"깼나, 홀든."



단정하게 옷을 여미며 나오는 다이무스의 얼굴에 일순 서린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 알기 쉬운 반응에 히카르도는 작은 웃음을 뒤로 매달며 자신에게 다가온 다이무스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조금의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한 그의 몸이 일순 긴장으로 굳어버린 것을 여실히 느끼며 히카르도는 제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홀든."


".......무슨 일이지?"


"날, 혼자 두지 마."



밑도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제 목소리에 잠깐 당황한 것도 잠시, 곧 제 어깨위로 손을 올리고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다이무스의 행동에 히카르도는 비로소 느슨하게 표정을 풀었다.



"그런 일은 없을거다, 바레타."



나는 이미 묶여 있으니──.

그렇게 덧붙이는 다이무스의 목 언저리는 새빨간 자욱이 선명하다. 그것은 비단 목 뿐이 아닌, 양 손목과 발목에도 새겨져 있다는 것을 히카르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이무스를 꽁꽁 묶어 잡아둔 그 진득한 흔적은 이미 자신이 그를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히카르도는 차오르는 충족감에 가느다란 웃음을 흘렸다.


데려가게 두지 않는다. 그것이 원래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해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이곳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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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뭔가 더 풀고 싶었는데 시간+역량 안되서 포기. 

대충 기억 잃은 다무가 백지화 되어 있고 그걸 히카르도가 자기 색으로 물들이는 걸 보고 싶었답...

개처럼 사육하고 기르면서 자기 없으면 못살게끔 그렇게.


+ ←이 부분에다 나중에 더써서 채워야지.

감금생활 언제쓰지 히카가 기억날아간 다무 사육하는 과정 언제써....

사퍼 / 다무른 애정합니다♥ / 마이너틱 왼쪽도 다무가 오른쪽이라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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