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린도 전서 16:14





“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알아.”

그의 대답에 스티브가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뒤돌아보았다. 버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턱을 들었다. 

‘운전 중에 뒤돌아 본다고? 죽으려고 하는 거라면 더 좋은 방법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는데.’ 꼬마 조에게 운전을 가르치며 했던 자신의 말이 문득 귓가에 울렸다. 그는 열차에서 떨어져 MIA가 된 버키 반즈였고, 윈터 솔져였으며, 또한 구십 세까지 살아남았던 버키 반즈였다. 

완전히 뚜렷하지는 않지만 버키는 그 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이드라의 무기로 워싱턴을 누볐던 스티브 로저스를 발견한 날. 악마가 두 번째로 찾아온 날의 밤. 그 날 밤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스티브 로저스였을 지도 모른다. 지은 죄에 더해 하지도 않은 죄까지 어깨에 이고 히어로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쫓아오는 순간에. 

윈터 솔져로 주조되며 그는 완전히 인간 이하로 우그러졌다. 최악인 점은 자신 혼자만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가 그 뒤에 피로 만든 길처럼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악몽이며 사신이 되고 아무런 정의도 없이 명령대로 손에 피를 묻힌 죄가. 그 죄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단지 스티브와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을 뿐인데. 

그게 불공평한가? 물론이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이토록 끔찍한 인생이 두 번씩이나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버키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구십 세로 늙으며 괴롭다고 생각해왔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은 내내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때야말로 악마가 찾아왔다면 제발 죽을 수 있기를 빌었을 게 틀림없었다. 악마는 단지 이렇게 말하겠지만.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버키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현실을 후회하지 않고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똑바로 받아들이기 위해 응시했다. 악마에게 비는 소원은 무조건 손해다. 악마는 생명을 살려내고 시간을 비트는 거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섬세하지는 않다. 개미의 세세한 사정까지 절대로 헤아리지 않고 자잘함 속에서 단지 가장 빛나는 것만을 헤아려 가져가는 것이다.

스티브 로저스가 이 자리에 있었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면, 버키 반즈는 그대로 신이니 악마니 운명이니 하는 것에 항의하는 것조차 포기하게 됐다. 힘도 능력도 없는 구십 세가 넘은 노인이 아무리 윈터 솔져를 옹호하려 해도 무엇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통하고 분한 눈물만을 쏟았겠지, 그날 밤처럼. 스티브 로저스가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도 도와줄 수조차 없이. 

시간을 되돌아가 무엇을 바꾼다 해도 하이드라는 포기하지 않고 거머리처럼 나타나 결국 누군가가 윈터 솔져가 되고 누군가가 피로 이어진 길을 걸어야 한다면 그나마 자신이 나았다. 보라, 스티브 로저스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버키 반즈를 믿어주었으니까. 자신이 과거에 윈터 솔져인 스티브 로저스를 의심했던 것과는 다르게. 차라리 그가 영웅으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과 다르게. 자신이 겪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을 되새기면서도 버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티브 로저스가 자신처럼 망가지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열 개의 단어에 묶여 꼭두각시가 되어 죽는 게 더 나은 삶을 살기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견디는 편이 좀 더 낫다. 스티브 로저스는 저렇게 커졌어도 여전히 자아는 섬세하고 예민했고 자신이 그보다는 터프했다. 이렇게 망가지더라도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을 만큼. 스티브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러니 버키 반즈는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했어.”

그리고 미소지었다.







냉동은 별로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버키의 입장에서는 아주 손쉬운 선택이었다.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이다. 그것도 하이드라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격리하는 일이라면 더욱 더. 

다시 깨어났을 때, 버키는 몸에 아직 차가운 피가 돌고 있는 것을 느끼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과 눈꺼풀 사이에 얇은 막처럼 얼어붙었던 얼음이 부서지며 녹아 흘러내렸다. 

“버키!”

스티브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크라이오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의식을 차린 것을 알아챈 스티브가 굳은 표정에서 단박에 사르르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 얼굴에 어린 안도와 기쁨이 버키를 무엇보다도 더 안심시켰다. 

서로의 시간대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저번 생과 반대로 스티브가 구십이 되고 자신이 여전히 젊은 그대로 만날 수도 있다고 각오했었는데 그는 거의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았다. 급박한 상황에 강제로 해동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연구실의 분위기는 마지막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프로페셔널한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냉동될 때와 정확히 반대로 안온한 공기와 함께 크라이오의 문이 열렸다. 안절부절못하던 스티브가 달려와 아직 몸이 고정되어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부축하며 손을 잡았다.

“버키, 괜찮아? 날 알아보겠어?”

“어……” 

문득 장난기가 불쑥 솟아올랐다. 버키가 누구야? 버키는 그런 스스로에게 놀라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스티브가 그 미소를 보고 놀란 듯이 잠시 멈칫했다가 곧 자신도 환하게 웃었다.

“괜찮은가본데.”

스티브의 뒤에서 불쑥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슈리 공주였다. 머리를 둥글게 틀어올린 슈리는 다른 연구원들과 마찬가지로 흰 가운을 위에 걸치고 있었다.

“몸 기능 확인하고 매핑으로 뇌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고 확인될 때 데리러 올게. 아넬 선임이 재활 담당해줘.”

“예.”

아넬에게 인계된 후에 버키는 얼떨떨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신체 기능을 회복해나갔다. 비교할 대상은 아니더라도 하이드라에서 냉해동에 그저 냉동 상품에 불과한 취급을 받아왔던 그에게는 이런 것이 과분하고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스티브는 아넬과 함께 하는 재활 훈련 동안 내내 버키의 곁에 있다가 마침내 일정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끌려나갔다. 

스티브가 떠난 사흘째에, 버키도 연구병동을 떠나 호숫가의 작은 마을로 옮겨졌다. 리버 부족의 생활권역이자 또한 요양 환자들을 위한 마을이었다. 와칸다에서 거의 직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플로리다의 햇빛과 닮았고, 물론 더 강렬하고 화살이나 번개처럼 느껴졌다. 텍사스며 플로리다의 햇살도 온몸을 작신작신 두들겨 어두운 부분을 벌려 비추는 것 같았으니 더욱 더 적도에 가까운 와칸다의 햇살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햇살이 번개와 같이 가차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긴 낮과 함께 시간이 녹아내린 듯 느긋하게 흘렀다. 

정오 무렵엔 그 해가 너무 뜨거워지므로 잠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맡에서 높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소곤소곤하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악몽? 가위?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살그머니 눈을 뜨자, 세 명의 아이들이 덩달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을 터트리며 뛰쳐나갔다. 

어리둥절한 채로 버키는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눈을 뜬 장소가 틀렸다. 그는 분명히 나무 그늘 아래의 해먹에 누웠었는데 깨보니 해먹이 아닌 높은 천정과 벽 안이었다. 익히 아는 두려움이 그를 잠시 사로잡았다.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또 누군가 의지에 반해 움직였다는 두려움. 

그러나 곧 움막 바깥에서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버키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움막 바깥으로 나왔다. 어느새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낯익은 푸른 호수가 눈앞에서 저녁햇빛을 받아 금으로 덮인 듯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두려움은 눈앞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과 아이들의 웃음소리(“하얀 늑대다!”)에 밀려 녹아 사라졌다. 슈리 공주가 호수의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 가운이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물었다.

“잘 잤어요, 반즈 병장?”

버키는 잠시 몇십년을 잊고 살아온 호칭에 굳었다가 대꾸했다. 

“버키라고 불러주세요.”

“좀 어때요?”

“좋습니다.” 버키는 호수 저편으로 가는 시선을 다시 슈리에게 돌렸다. “고마워요.”

슈리가 순간 장난스럽고 따뜻하게 웃었다. 슈리는 툭 버키를 치며 먼저 호수를 떠났다.

“따라와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요.”

버키는 잠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호수를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이 금빛 호수에 꼭 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눈을 뗴기 힘들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문득 그는 플로리다의 고요한 밤바다를 떠올렸다. 파도 한 점 없이 거울처럼 고요한 수면. 슈리를 따라 가면서 그는 잠시, 자신의 기억이 어디까지 돌아왔는지 더듬었다.

슈리는 격의 없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스피드한 사람이었고 버키는 금세 그녀에게 적응했다. 본격적으로 버키가 냉동된 동안 스캔한 뇌의 지도를 따라 세뇌 코드의 자물쇠를 풀고 사슬을 끊어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버키는 대개 그녀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고 또 대답하고 때때로 주사를 맞았다. 고통은 없었지만 버키는 다만 자신의 기억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내장을 뒤집듯 모두 까발려야 하는 게 힘들었다. 이율배반적이고 내밀해 입밖으로 내서 말하기 고통스러운 기억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먼저 솟는 끔찍한 기억들. 그리고 또한 어디까지 기억을 밝혀야 하는지 - 악마를 만나 스티브의 사랑을 빼앗겼다거나 시간을 되돌렸다거나 하는 자신의 기억이면서도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기억들…….

다른 것들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지만 버키는 악마와의 거래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달리는 열차로 되돌아가기 전의 시간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토록 악마와 만난 일이 생생하고 플로리다에서 그가 지내온 시간도 뚜렷했지만, 반대로 지금 살고 있는 삶 역시도 완전한 실재로 존재했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 

때때로 ‘그 시간’ 때문에 버키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내리깔고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면 슈리는 또렷하고 거울 같은 눈으로 버키를 꿰뚫듯이 보았다. 슈리에게는 자물쇠의 열쇠가 엉뚱하게 꽂히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슈리의 눈에서는 질책도 짜증도 없었다. 그저 버키가 대답하는 대로 이해하겠다는 곧은 눈이었다. 

그러한 문답이 반복되고 버키는 마침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다. 원하지 않는 거짓말이 그의 속을 벅벅 긁어댔고, 그 따끔한 양심의 가책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세뇌 코드 해제에도 슬금슬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기억은 모두가 맞물려 있으니까. 

슈리는 별 말 하지 않고 계속 매핑을 새로 짜보고 있었고 코드 해제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대강 눈치챈 버키는 헛발질을 할 수밖에 없는 슈리에 대한 미안함과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해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불안함에 속이 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대범해져 버린 것이다. 왜 말 못해? 안그래도 세뇌와 브레인워싱을 반복하며 뇌가 곤죽이 된 반쯤 미친 사람인데 악마를 만났다고 말해도 그 미친 사람의 범위 내 아닐까? 

결심을 하고서도 버키는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공주님.”

“왜.”

“악마를 믿어요? 아니, 저, 악마라는 존재가 있을까요?”

자신이 질문을 하면서도 버키는 내심 슈리에게는 기막히다는 말을 들으리라 생각했다. 바로 어제도 담배가 기관지와 폐에 좋은 줄 알았다는 30년대 TMI에 슈리가 어이없어 하며 무엇이든 의심 좀 하고 믿으라는 타박을 들었던 것이다. 버키의 생각으로는, 담배가 기관지에 좋다는 말보다 악마를 믿는다는 것이 오히려 오컬트적이고 과학에서 아주 아주 먼 일이었다.

그렇게 바짝 걱정하던 것과 반대로 슈리는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규명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존재는 있을 수 있지. 악마든 신이든 같은 존재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악마라는 건 의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기상학이나 특정한 부분을 누르면 반응하는 현상 쪽일 수도 있지 않겠어? 기우제 같은 경우도 생각해 봐.”

버키는 감명깊게 입을 다물었다. 슈리가 이토록 단정적이지 않은 태도로 말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그녀는 언제나 딱 잘라 말했고, 아직 채 성인도 되지 않았다지만 진리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나 개인적으론 인간에게 집적대는 악마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마법사도 있는데 뭐. 당신네 나라에도 생텀 있잖아.”

“샘텅이요?”

“전혀 모르는 걸 보면 기밀이겠네. 비밀 지켜.” 슈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뉴욕과 몇 군데 더 생텀이 있어. 마법사들이 지키는 장소.”

“마법사가 정말 있다고요?”

버키는 자신도 악마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소리는 또 처음이라 눈만 깜빡거렸다. 슈리가 한 쪽 눈을 윙크하듯이 찡긋했다. 

“어떤 ‘마법사’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통칭 마법사라는 건 우리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 - 그쪽에서 보면 여기야말로 다른 공간이겠지만, 아무튼 거기에서 힘을 가져다 쓰는 존재들을 말하는 거야. 그 쪽 마법사들의 힘은 특정 우주와 연동되어 있고 그 우주가 우리의 우주와 아주 가까워. 그래서 특정한 방법의 공간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거고. 난 바스트 여신님의 축복으로 구성된 사후세계도 그 마법사들의 우주와는 별도의 다른 차원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세계와 일정한 부분을 공유하고 출입구가 우리에게 밝혀졌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해. 와칸단이 특정한 의식을 치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마법사들도 그러겠지. 반대로 말하면 그쪽 공간에 생명체가 있다면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 우주에 개입할 수 있다는 거 아냐? 그런 우주에서 온 생명체가 악마라고 자칭하고 다녔을 가능성도 있어.”

버키가 입을 다문 채 마법사가 존재한다느니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느니 하는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슈리, 버키 반즈가 살아온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과학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곱씹고 있는데, 슈리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뜸 어퍼컷을 날렸다. 

“그런데 악마는 왜 물어보는 거야? 미신이라는 것에 대해 놀라운 천재 과학자의 식견에 기대고 싶어진 거?”

그녀는 키보드를 누르거나 혹은 모니터에 뜬 모식도를 만져 수치를 변경했다. 버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슈리의 골몰한 옆얼굴을 바라보면서, 버키는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비밀로 해주신다면, 공주님. ……저는 악마를 만난 것 같아요.”

“흠?”

버키는 단정적으로 다시 말했다.

“만났어요. 악마가 소원을 들어줬습니다.”

슈리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의자를 휙 돌려 버키 쪽을 향했다. 버키의 말을 농담이나 거짓말로 치부하지 않고 슈리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또렷하게 빛났다. 

“좋아. 비밀 엄수. 녹음한 건 나만 들을게. 다 털어놔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에게만 곪아있던 말이었고, 또한 자신의 안에서도 뚜렷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시간을 따라 말하다 보니 짧고 요령 있게 전달할 수 없었지만, 버키는 어쨌거나 기억나는 부분을 줄여서 털어놓았다. 스티브 로저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던 그 날의 밤에 어떤 소원을 빌고 어떤 대가를 치뤘는지, 얼마나 깔끔할 만큼 대가를 받아갔는지. 또 쉴드의 지하에서 얼어붙은 스티브 로저스의 얼굴을 마주한 구십 살의 버키 반즈가 어떤 소원을 빌었고 그 결과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지까지. 

슈리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완전히 넋이 나가서 쉴 새 없이 메모했다.

“당신 기억이 지금까지도 엉망진창인 이유가 있었네. 노인네 같이 굴었던 것도 이제 이해가 되고. 난 또 당신이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인 줄 알았지. 아오, 정말 대단해. 당신이 만났다는 존재가.”

“그렇지만……. 공주님, 시간을 정말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누군가를 낫게 한다거나 기억을 없앤다거나……. 아니면 그냥 이게 다 꿈일 수도 있을까요?”

“아마 시간 그 자체는 아닐 거야. 우주가 먼지보다 못한 한 존재를 위해 멈추거나 뒤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만이지. 하지만 이건 양자역학의 평행세계와도 달라. 모든 기억을 가진 채 특정 순간으로 육체뿐만이 아닌 오직 정신만이 이동한 거잖아? 시간이 맞지 않아. 아마 시간이 순방향으로만 인식될 수 있는 3차원적인 이동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4차원적인 이동이 당신에게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지. 그럼으로서 달라지는 약간의 대체는 자동으로 됐을 거고. 어쨌든 ‘윈터 솔져’가 대놓고 쓰이는 무기가 아니라 암살자였다면 스티브였다가 당신이 되어서도 하이드라에게는 큰 차이가 없었을 테니까.”

버키는 1/3 정도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다만 슈리가 믿어주는 것만이 안도가 됐다. 말을 꺼낸 순간부터 정말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고 수백번은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슈리는 한참 메모를 살피고 또 메모를 더하며 생각하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 마르틴과 꼬마 조. 조 뭐라고 했지?”

“조나단 플래스턴이요.”

그녀가 의자를 뒤로 쭉 당기면서 키보드에 조나단 플래스턴을 검색했고 곧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검색 결과가 쭉 올라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슈리는 곧 마르틴까지 검색결과에 포함시켰다. 

“이 사람?”

모니터에 띄운 사진을 본 순간 어깨와 등에서부터 팔까지 소름이 쭉 돋았다. 버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꼬마 조의 얼굴이었다. 또한 사진 자체도 알고 있었다. 마르틴의 집에 놀러갔을 때 현관을 장식하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플로리다 주립 대학의 학사모를 쓴 꼬마 조 옆에는 마르틴이 서 있고 두 가족이 활짝 웃는 사진. 

“꼬마 조…….”

“맞나보네.”

“플로리다 주립 대학 졸업사진이에요. 그 날 꽃다발을 전해줬으니까.”

슈리가 물감이 번지듯 천천하게, 뚜렷하게 미소지었다.

“이 사람들하고 친했다고 했지? 조나단이든 마르틴이든 그들이 예를 들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 나?”

버키는 입을 다무는 것도 잊고 한참을 생각해보고 기억을 쥐어짜서 슈리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슈리는 버키의 기억과 실제 현실과 대조하는 과정을 거쳤다.

“흠. 환상이나 꾸며낸 이야기로 보기엔 상세하네. 그리고 똑같기도 하고.”

“아깐 믿으시는 것 같더니…….”

“교차검증 몰라? 음, 그럼 역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윈터 솔져가 누구냐는 것뿐이네. 아니지. 어벤져스에 캡틴의 합류도 그렇지. 당신은 그냥 늙었지만 캡틴은 얼어붙었잖아. 그리고 ‘윈터 솔져’도 핼리캐리어를 파괴하곤 로마노프한테 잡혔다며? 흠……. 그 부분의 오차는 왜 생긴 걸까.”

슈리의 단어 선택은 가차 없었다. 그러나 그 가차 없는 단어를 들으면서 버키는 안심했다. 슈리가 이건 맞다고 할 정도라면 미쳐버린 뇌가 자기위안으로 만들어낸 끔찍한 꿈이나 환상 따위가 아닌 것이다. 악마는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래서 버키 반즈는 21세기에 이렇게 턱없이 어린 모습으로 앉아있으며 스티브 로저스 역시 ‘그의 기나긴 병력, 천식이며 부정맥, 류머티스 열, 심장질환, 신경쇠약과 색맹까지도 모조리 없어’지고 살아난 것이다. 대가는 자신의 인생과 스티브의 사랑. 

버키는 그 순간 맥이 탁 풀린 듯이 허탈하게 깨달았다. 악마가 대가로 받아간 그대로, 자신은 예전처럼 늙을 때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그 내내 스티브의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주세요.”

“알아, 비밀 엄수.” 슈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그냥 말하는 게 낫지 않아?”

“왜요?”

“음, 비밀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솔직히 이 고백이 상당히 많은 궁금증을 해소시키거든. 그리고 스티브한테 생색낼 수 있는 기회잖아.”

버키는 거의 말을 끊다시피 끼어들어 딱 잘랐다.

“아뇨. 저를 위해서였어요.”

“그게 너를 위한 소원이었다고?” 

결과를 봐, 라고 말하듯이 슈리가 되물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버키가 빈 소원은 겉으로 보기엔 마치 버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스티브를 위해 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버키는 멕시코 만의 잔잔한 바다에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이 사랑은 날 위한 거야.’

버키는 한 번도 스티브를 위한 소원을 빈 적이 없었다. 모두 자신을 위한 소원이었다. 스티브의 죽음으로 망가질 자신을 위해서. 캡틴 아메리카의 명예와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긴 세월동안 자기위안만 하고 살아온 자기 자신을 돌이키기 위해서.

“정말로 저를 위한 소원이에요. 악마는 끔찍한 사람에게만 찾아와요, 공주님. 두 번이나 만나서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아시잖아요. 누굴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일상적인 일이에요. 그렇지만 왜 악마를 아무나 만날 수 없었겠어요? 왜 공주님과 폐하가 말도 안 되는 일로 아버님을 잃고도 악마를 만나지 않았겠어요? 슬프지 않다는 게 아녜요. 무너진다 해도 지탱해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고, 만약 없어 슬픔에 끝없이 잠겨있다 해도 끔찍할 만큼 자기중심적이고 비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뭣도 모르는 채로 ‘다른 사람은, 심지어 소원의 대상마저도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내가 슬프지 않게 해줘’라고 할까요? 무슨 대가를 치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면서도? 그게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소원이죠.”

슈리는 말없이 버키의 신랄한 자기비판을 듣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나이 들면 다 그렇게 독설가가 되는구나. 엄마랑 하는 말이 비슷한데.”

버키가 마침내 굳은 표정을 풀고 약하게 웃었다. 

“저런, 왕비님하고 비교되다니 출세했네요.”

슈리가 팔목의 비즈를 만지작거리며 녹음 기능을 껐다. 

“독설을 그만 두란 소리야. 그리고 그렇게 자학할 필요 없어. 우연히 그 악마하고 파장이 맞았을 수도 있잖아. 라디오처럼. 만약 또 악마가 찾아오면 잠깐 멈춰달라고 하고 날 불러 보라고.”

“가능하면요. 하지만 두 번이면 충분한데요.”

“삼세번 몰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문화권에서 세 번이 되어야 의도를 알 수 있단 말야. 네가 정말로 네가 말한 것처럼 끔찍한 사람이라 찾아오는지 아니면 파장이 맞는 것뿐인지 첫 번째는 첫 번째라서 모르고 두 번째는 아직 통계를 낼 수 없다구! 세 번째가 되면 파악이 되지. 하지만 대가가 너무 가혹하니 일단 악마가 오면 변호사로 똑똑한 날 불러, 알았지?”

슈리의 눈은 지식의 탐욕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났고 웃음으로 볼에 보조개가 깊이 패였다. 버키는 꼬마 조와 만났을 때와 똑같은 기분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공주님, 저도 좀 똑똑해졌다니까요! 이제 줄 것도 없어요!”






버키의 고백으로 세뇌 코드가 미치는 범위를 재조정하면서 세뇌 코드 해제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버키는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전극은 벌거벗은 윗몸의 심장 부근에 붙어 있었고, 또 링거의 바늘이 그의 손등에 꽂혀있었다. 보이는 것은 하이드라에 있을 때와 비슷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혀 달랐다. 하이드라에서는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기억을 억눌러 세뇌 코드를 강화하기 위해 했었지만 슈리는 몇몇 기억을 이어주는 시냅스를 물리적으로 제거해 버키가 아무 구속 없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스티브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물었을 때 슈리는 ‘뭐지 이 멍청이는’하는 듯한 얼굴로 스티브 로저스를 삼 초간 본 다음에 대답했다. “그럼 버키가 짠! 나는 세뇌에서 풀려났다! 하고 맘만 먹으면 풀려날 줄 알아? 몇십 년을 세뇌시키면서 그 기억을 강화시켜 놨는데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40년대의 인간들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트찰라가 엷은 웃음을 지었다.

“슈리는 종종 저런 식으로 자신만이 똑똑한 것처럼 말하니 신경 쓰지 마시오.”

“천재 맞으니까 그렇지!” 슈리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의식 레벨 10. 혈관 상태 양호. 특정 기억 결합 시냅스 회로를 태우는 시술을 시작합니다.”

전기의 파직 하는 소리도 없었다. 버키는 가파르게 올라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눈을 뜨려 애썼다. 두려움으로 한껏 좁아진 시야에서 슈리가 진지한 얼굴로, 그러나 마치 레이싱 게임을 하듯이 뇌에서 특정해둔 시냅스를 찾아 복잡한 뇌혈관을 헤쳐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픔도 고통도 없었다. 

“아…….”

눈물이 눈동자 위로 천천히 솟아올라 부풀었다. 아래 속눈썹과 눈꼬리가 젖어들고 곧 예민하게 달아오른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버키 반즈를 윈터 솔져로 주조하기 위해 묶어두었던 쇠사슬이 풀려나가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감각이었다. 그는 묶여있는 줄조차 몰랐으나 풀려나면서 알았다. 

“끝났습니다.”

숨죽이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끝까지 내뱉어지기도 전에 스티브는 버키에게 달려갔다. 

버키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고통의 눈물은 아니었다. 후련한 얼굴, 아주 오래도록 자기 자신을 잊고 있다 간신히 완전히 되찾은 얼굴이었다. 누군가의 족쇄가 될 일도 없고 자신의 의지를 배반할 일도 없이 자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 보통 사람의 얼굴. 

스티브가 그를 껴안았다. 스티브의 고개가 버키의 어깨에 파묻히고, 버키 역시 고개를 비스듬하게 스티브의 넓은 어깨에 기댔다.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이 스티브의 셔츠에 젖어들었다. ‘이제 날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어.’ 누군가가 자신을 다시 세뇌하고 쇠를 녹이듯이 자아가 녹아내려 의지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뿌리뽑혔다. 남은 자리가 엉망이며 지워지지 않는 흉터라 해도 버키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스티브도 버키 반즈를 되찾았다고 느꼈음이 틀림없었다. 스티브의 손이 물 속에 빠진 사람처럼 절박하게 버키의 등에 매달렸다. 자제를 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매달린 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바닥으로 버키의 날개뼈 어림을 문질렀다가 주먹을 꽉 쥐고 더 끌어당겼다. 틈 없이 바짝 밀착된 몸은 뜨거웠고 바짝 긴장한 땀 냄새가 났다. 버키는 언뜻 얼음처럼 차가웠던 스티브 로저스의 얼굴을 만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무딘 손가죽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지금도 생생했다. 아무도 모르지만, 오로지 버키에게만 있는 기억이지만, 버키는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스티브가 자신을 정신없이 꽉 껴안고 있는 뜨거운 체온과 땀냄새도 그의 뇌리에 아로새겨진다. 스티브가 윈터 솔져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있다. 헐떡거리는 숨을 쉬는 스티브의 가슴이 자신의 몸에 붙어 오르락내리락했다. 신문이나 TV에서 보는 오린 듯한 모습이 아닌 진정으로 살아있는 스티브 로저스. 자신 역시 살아 있다. 그것으로 버키는 충족감을 가득하게 느꼈다. 젊고, 살아있다. 

천천히 포옹을 풀고 버키는 스티브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속삭였다.

“사랑해.”

입을 떼자 입 안에서 살얼음이 부서지는 느낌이 났다. 버키는 미소지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사랑해, 스티브 로저스.”

기쁘고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던 스티브의 얼굴에서 차츰 기쁨이 걷혀간다. 푸른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고 난처와 당혹스러움을 넘어서 죄책감까지 번지기 전에 버키가 빙긋 웃었다.

“곤란해하지 마. 이건 날 위해 말하는 거고, 말할 기회 놓치기 전에 말하는 거니까. 뭐 해, 빨리 거절해. ‘친구로 지내자’라고 하면, 그럼 우리 친구 되는 거야.”

악마에게 빈 소원이 스티브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뿌리뽑았다는 사실을 버키는 잘 알고 있었다. 스티브 로저스의 생명을 사신의 손에서 가로채 온 그 엄청난 힘. 정말로 Re-birth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순식간에 모든 질병을 씻어내듯이 스티브 로저스에게 지워낸 힘. 어떤 멍청한 짓을 해도 아슬아슬하게 사선을 넘기는 운. 빙하에 비행기채 처박아 비행기의 앞코는 완전히 으스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스티브 로저스를 죽일 수 없다는 듯 운전석은 튕겨나가 얼린 그 강력한 악마의 힘. 그런 힘이라면 사랑 정도는 아예 가능성을 뿌리 뽑아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하지 충분하지 않은가? 

“난, 한 번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스티브 로저스는 자신을 친구라고만 생각하지만, 그 친구를 위해 이토록 헌신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다. 누구보다 먼저 상대의 세뇌를 감지하고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버키는 스티브를 미친 듯이 사랑해서 했던 일을 스티브는 친구로서도 해냈다. 그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버키는 잘 알았다. 그러니 그쯤에서 버키는 만족했다. 스티브가 지금까지 버키를 위해 애써왔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보다 더한 고귀한 마음은 받을 수조차 없었다.

난 괜찮아. 기억을 모두 찾았어. 너의 입술의 온도. 너의 정수리 냄새. 네가 기분좋을 때 내는 숨소리도. 

버키는 스티브의 어깨를 잡고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야, 그걸로 끝이야? ‘친구로 지내자’ 몰라? 그것도 안할 거야?”

“지금부터 열심히 생각할게.”

“아니, 그것까진 됐는데.”






MCU:CA S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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