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니미의 독백 형식.

- 오이카와를 보면서 생각하는 쿠니미.

- 시구절을 차용함.


*


어쨌든 나는 너를 사랑해. 너는 내 몸 전체에 박혔어. 그리고 이건 너와 상관없는 일일거야, 아마.

김혜순, 겨울나무.


*


1.

 체육관 바닥과 운동화가 마찰하는 소리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원치 않는 것들끼리 억지로 붙여 놓아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내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 결코 호의 범주에 들 수 없는 날카롭게 긁어내리는 소리. 그렇지만 매일 듣고는 하는.

 쿠니미는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도약하는 이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꼿꼿하게 서있던 몸이 둥근 모양으로 젖혀지고, 이내 반대쪽으로 강하게 휘어지며 공을 내리쳤다. 팡, 혹은 퍽. 파음이 섞인 소리와 함께 체육관 바닥으로 내려꽂히는 인공가죽.



2.

 후끈한 온도가 곁에 붙었다. 더워요, 하는 말이 나오기도 전 끼친 익숙한 향에 입이 다물렸다. 다가오는 피부가 다른 이들에 비해 유독 희어 그랬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배구가 실내스포츠라고 하지만 열아홉의 남자아이가 가지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흰 피부가 시야에 어룽거렸다.

 쿠니미쨩, 하고 말을 거는 목소리에 목에서 맥박이 뛰었다. 체력이 많이 늘었네. 웃으며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도 저도 말을 할 때면 시선을 마주치는 버릇이 있는 탓에 눈앞에 색이 들어찼다. 트레이닝을 늘렸나, 하는 말 뒤로 웃음이 따라 붙었다. 끝이 거칠고, 마디가 시원하고, 피부가 흰 손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맥박이 따라 옮아갔다.

 어깨 위에서 심장이 뛰었다.



3.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연습이 끝난 탓에 락커룸이 시끌시끌했다. 라멘 먹으러 갈까, 야키소바도 좋아.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말을 흘리며 셔츠 단추를 잠갔다. 우리도 라멘이나 먹으러 갈까? 어깨를 가볍게 부딪치며 물어오는 말에 대답대신 으음, 짧은 음성을 내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에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가면서 고민해볼래, 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키와 강한 인상과는 다르게 상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유한 웃음.

 넥타이 매듭을 짓는 위로 왈칵이는 목소리가 떨어졌다. 쿠소카와. 익숙한 호칭이었다. 밤에 잠 제대로 안 자면 내일 가만 안 둔다. 걱정이라기에는 험하고, 험한 말이라기에는 걱정이 담뿍 담긴 말에 웃음소리가 매달렸다. 걱정 하지 마. 웃는 얼굴로 흔드는 손 사이에서 하얀 씨디가 빛을 받아 이지러졌다. 일순 웃는 얼굴이 반짝거린다고 생각했다. 창피하게도.



4.

 팔랑거리는 손짓이 가벼웠다. 경박해 보인다고도 생각했다.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얼굴 부근에서 두 어 번 흔들리는 손짓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내일 봐, 하고 웃는 얼굴도 경박했다.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도 경박하고, 팔랑이는 손짓도 경박하고, 내일 봐, 하는 목소리도 경박하고. 어째 죄다 경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신은 경박해요. 입 안에 들어찬 목소리는 마주친 시선에 사그라들었다.



5.

 대로에서 킨다이치와 헤어지고 나서, 골목을 두 번 꺾으면 집이었다. 꺾이는 부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고 이상스러울 만큼 고요해지는 거리. 터벅거리는 발소리만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을 테니 별로 문제도 없지. 누군가가 자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하던 멜로디를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가사가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허밍으로 채우며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 노래를 찾아보니 베니랜드의 cm 송이었다. 베니랜드. 약간의 자기혐오가 몰려와서 웃었다.



6.

 불이 꺼진 방은 생각하기에 좋은 공간이 아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역시 생각하기 좋은 행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똑바로 누웠던 몸을 틀었다. 생각하기 싫은데 자꾸 생각이 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에 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회전목마 위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베니랜드 cm 송은 자장가에 적합한 노래는 아닌데.



7.

 어쨌거나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몇 번인지 모를 회전을 거듭하고 나서야 입술을 뗄 수 있었다. 차마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속살거리자 희미하게 쇳소리가 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불안한 음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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