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연성은 2차 창작이며 카도와나루카=사가 (연희 시리즈) 의 저작권을 침해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 DFB 소설 4화까지의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날들을 내일로써 갚을 수 있는가


w. 펌블



【도망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때가 늦거나 이를 뿐, 반드시 주판을 맞추어야 하는 때는 온다.】


홍옥가의 층계참은 오가는 이들의 걸음거리로 분주하다. 야트막한 높이에 걸려있는 등롱(燈籠)들은 척완척안의 사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에 부딪히며 위로 튀어올랐다. 주홍빛으로 명멸하는 바구니의 춤사위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달변을 이어가는 펑크비트ー 그 옆에서 의족을 비틀대는 소년의 두 팔에 가득히 들려있는 것은 왕진의 대가로 받은 '삼십일 번가 아이스크림' 상자가 틀림없다.

"하늘이 대역무도한 인간들을 불로써 벌하려 하자 인간들은 집집마다 홍등을 걸었다고들 하지. 상제(上帝)는 그 모습을 불길이 이는 것으로 착각해 더는 벌을 내리지 않았다... 뭐, 그런 얘기다."

"오늘도, 헥, 거들 생각은 없는 거지? 알겠어, 응."

"옛이야기에도 간단한 진리는 숨어있다. 요는 한 가지 [화]를 허용함으로써 훨씬 무서운 [화]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 허나 오지 않는 [화]를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곤란해. 마음은 언제고 황야로 남게 되겠지. 사람이라면 온 힘을 다해 눈앞의 [복]을 떠받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ー 알겠나, 키이?"

턱 끄트머리까지 치밀고 올라온 불만을 간신히 참고 있던 키이, 그 물음에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인다. 새파란 하늘에 부딪힌 목소리가 쨍하니 반향을 일으킨다. 

"지금 당신의 [복]은 내가 떠받치고 있잖아!"

그리고 손에 든 오동나무 상자를 흔들흔들. 펑크비트, '앗' 하고 소리를 낸다.

"그만둬!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다. 그렇게 다루어선 균형이 깨져서 곤란해!"

"아이스크림이 엎어질 거라는 말을 댁말고 누가 그렇게 해!"

아웅다웅하는 어른과 소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소동에, 이제는 익숙해진 주민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스쳐지나간다. 평화롭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롭다ー 곧잘 불길한 예감을 입에 담는 행의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나. 삼십일 번가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두 사람은 인파를 헤치고 이쪽으로 직진해 오는 공안요원들을 눈치채지 못했다.

펑크비트가 알아채고 얼굴을 무섭도록 굳힌 것은 남색 공안복을 입은 한 건장한 사내가 팔뚝을 붙잡았을 때로,

"같이 가줘야겠다."

"뭐냐! 일전의 방류 사고 때문인가? 정수 기구를 새로이 탈바꿈하며 도시 중추부와 협상도 완료된 건이 아닌가. 인명 피해도 제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손을 놓아라. 그렇지 않다면 나의 아크요르무식 쿵후로 산산조각을ー"

성난 안색으로 뿌리치려 들던 그의 항변은 무의미하게 허공으로 흩어지고, 건장한 사내 몇이 거리를 좁혀와 그를 둘러싼다. 심상찮은 분위기가 흐르자 주민들도 수런대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렇게 한껏 고조된 텐션에 방점을 찍듯 내밀어지는 것은,

"재판이다, 펑크비트. 정미약(精微藥) 사용으로 가족을 죽음에 몰아넣은 건부터 18부대에서 저지른 해악에 관한 건. 네놈은 도합 열다섯 가지의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이 도시에 위험이 되는 너를 구속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노란 공문서. 그 위에 찍혀진 도장은 도시총장 홍의 권위마저도 뛰어넘는 상부의 소유로, 기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여러 명이 옥죄어 끌고가기 시작한 펑크비트를 따라 뛰려는 키이를 상공회원들이 다급하게 저지했다. 얽히고 섥힌 팔뚝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데 성공한 소년은, 멀어져 가는 백의(白衣)의 등을 향해 목청껏 소리질렀다.

"이봐! 선생님, 선생님-...!"


回回回回回回回回回回回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다가는 더 많은 것을 잃는다. 잃어야 하는 것을 붙들어두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받아들일 수 없어!"

진홍색 하의에 흑색 겉옷을 걸친 한푸(漢服) 차림의 여성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쿵, 하고 소리가 울렸다. 진료소의 미닫이문이 공명하듯 바르르 떨렸다. 들불처럼 번지는 펑크비트의 체포 소식에 호기심을 품은 이웃들이 때로 기웃거리곤 했으나 급히 휘갈긴 '휴업' 표지판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진 못했다.

"받아들일 수 없어," 유쉔이 반복해서 말한다. 그 어조에 묻어나오는 것은 분명한 분노였다.

"그 모든 죄를 한꺼번에 묻겠다고? 이제 와서? 의도가 너무 명백하잖아. 여태껏 두고 보아 왔으면서, 그가 벌이는 소동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아까운 모양이지!"

들을 귀 없는 일갈은 허무한 잔향이 되어 메아리칠 따름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놋쇠 풍향계를 괜스레 만지작대던 키이가 몸을 돌렸다.

"정말 그 이유예요? 그러면, 선생님이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은?"

상황을 가감 없이 직시하는 것은 유쉔의 장기였다. 불처럼 일어나던 감정을 빠르게 잠재우고, 셈을 하듯 한동안 칠흑 같은 눈동자로 허공을 노려보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제로. 전혀 없어. 틀림없이 중형이야. 결말이 정해진 공방을 하기보다는 그가 이 도시에 유익이 된다는 걸 증명해야 해. 복역(服役)이라면 이곳 진료소에서 해도 좋다고."

"그럴 수가..."

털썩. 키이가 주저앉자 작은 다람쥐 인형인 지냐스가 Funkbeat!ー 자리에 없는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빈 진료소를 빙글빙글 돈다. 별 모양의 눈이 오늘따라 처량했다. 그러나 유쉔은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이어갔다.

"행동의 반경은 제한되겠지만, 그 방법밖에 없어. 샤오롱이라는 나무는 금전에 의해 뿌리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진료소가 필요해... 그러나 진료소의 존속이란 펑크비트 없이 불가능."

지키고 싶은 마음은 누구든지 필사적이기 마련. 유쉔의 경우엔 그것이 이 누각도시 샤오롱이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창문을 열어 초승달을 올려다본다. 고요히 흐르는 밤의 공기 속에서 조금의 감상을 찾아낸 것인지. 작은 어깨가 서서히 긴장을 풀어내더니,

"그래도 몰라, 아직까지는."

희망적이기까지 한 어투로 덧붙인다.

"황은 언제나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가져오는 편이었으니. 이번 역시 무언가를 증명해낼지도."

"Bad idea!"

지냐스가 종알거린다. 키이는 눈을 흘겼다.

그리고 밤이 지나 동이 트면서, 샤오롱 역사상 최악의 재판이 개정(開廷)하게 된다.

자캐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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