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대로, 울려라 유포니엄을 봤다. 꾸준히 추천을 받았지만 돌덕질 시작하면서 애니를 거의 안 보게 되서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1기 1화 틀자마자 마지막화까지 다 보고 잤고, 다음날 자정에 또 2기 1화 틀자마자 끝까지 다 보고 잤다. 그렇게 내 낮밤은.. 원래도 그렇지만 더 확고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깨어있고, 출근할 때쯤 잠드는 삶이 되어버렸다.


보는 내내 쿄애니가 작정을 하고 만든 거 같다고 감탄하면서 봤다. 작화야 워낙에 잘 만들어오는 회사였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설정에서 표방하고 있는 노멀/백합 밸런스가 너무 절묘해서 진짜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백합이라고 추천받아서 보기는 했는데, 이걸 추천해준 사람이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감상 남기면서 멘붕하던 거를 조금 기억하고 있어서 반쯤은 사기당하는 기분으로 봤다. 다행히 나는 bl은 못 보는 대신에 노멀이든 백합이든 크게 상관은 안 하는 타입이라.. 엮이는 남자애가 대놓고 병신만 아니면 되는 정도?


일단 배경부터 여고가 아니고, 등장인물 중에 초반부터 러브라인 엮이는 남자 캐릭터 있는 거 보고 '???' 했다. '이거 어떻게 하려고 이 때부터 나오지? 뒤통수 수준이 아니라 앞통수겠는데?' 라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8화였나, 레이나랑 쿠미코랑 같이 산 오를 때부터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 화에서 소꿉친구랑 쿠미코랑 썸 타는 걸 봤던 거 같은데 갑자기 튀어나온 레이나가 대놓고 플러팅을 시작한다. 1기도 자정 즈음부터 보기 시작해서 좀 졸린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잠이 확 달아났다. 이게 뭐야.....? 쿄애니 돌았어...?


이 때부터 쿄애니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 미쳤다고 한 100번 생각한 거 같다. 스토리의 표면적인 부분을 보면 유포니엄은 백합이라고 보기 힘들거 같다. 아무리 각색했다고 하더라도...? 대놓고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그러고 있는 걸. 그러나 미쳤다고 생각한 부분이, 그 노멀 감정선을 놓은 건 아닌데도 백합을 밀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응, 솔직히 좀 그래... 특히 1기 8화 얼굴 쓰다듬는 거 아직도 안 잊혀진다. 사랑과 우정의 틈을 영리하게 잘 이용했다고 해야 할까. 


노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노멀 먹으라고 떠 먹여주고, 백합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백합 먹으라고 떠 먹여준다는 게 내 총평이다. 미쳤다, 쿄애니 새끼들. 머리가 몇 개가 모여서 이렇게 설정을 미묘하게 짜놨는지 모를 일이다. 이 새끼들 천재야.... 새벽의 연화 이후로 한 큐에 다본 애니메이션 엄청 오랜만이다. 궁금해서 원작이 어떤가 찾아봤지만, 원작은 어찌되었던 결론이 노멀로 나는 거 같아서 그냥 넘겼다. 애니만 뜯어먹더라도 나 솔직히 팬픽 100개 쓸 수 있을 거 같아. 레이쿠미레이 만세다.


와, 어떻게 이렇게 영리하게 연출을 할 생각을 했지? 여자애들 꽁냥거리는 거 좋은 것도 좋은 건데, 모두를 떠먹이기 위해 머리 굴린 게 너무 느껴져서 엄청 많이 감탄하면서 봤다. '와, 미친새끼들, 와, 이걸 이렇게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있으니 2기가 끝났다. 


그리고 초반 쿠미코가 관찰자 시선인 것도 좀 좋았다. 개인적으로 거리감 있는 캐릭터를 좋아해서 주인공부터 합격이었던 것. 사실 1화는 케이온에 나오는 유이 동생이랑 너무 똑같이 생겼다고 잡생각하면서 봤는데 2화때부터 그런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야기 하나하나 다 너무 좋았던 거 같았다. 쿠미코 좀 무성애자처럼 구는 것도 좋았고, 레이나가 작정하고 꼬셔야 될 곳은 안 꼬시고 쿠미코 꼬시고 있는 것도 좋고, 카오리가 천사인 것도 좋았다. 그렇다. 카오리는 천사야. 그리고 3학년은 삼각관계가 좋겠어. 껄껄! 유코가 1기에서는 천하의 민폐녀였다가 2기에서는 성장하는 모습 보이는 것도 너무 좋고, 와 정말 버릴 캐릭터 하나도 없었다. 


다 보고 나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거의 모든 캐릭터가 성장을 하는데 쿠미코는 어쩐지 1화보다 조금 더 어린애스러운? 면모만 늘어난 것이다. 1기 초반에 모든 사람에게 거리감을 두고 있어서 그랬던 건지,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중2스러움이긴 하지만.) 마지막에 언니와의 이야기가 부각되어서 그랬던 건지 최종적으로 쿠미코는 여고딩스럽게 표현되었다. 보통은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조연도 같이 성장하는 루트를 타지 않나? 조연 모두 다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서 정작 주인공은 걸치고 있던 어른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그 나이대의 또래로 돌아간다니, 특이했다. 


이런 느낌에는 모든 사건에 쿠미코가 얽혀 들어가면서도 정작 쿠미코 자신의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덕도 있었다. 2기 보면서 신기했던 게, 쿠미코는 모두를 돕는데 어느 누구도 쿠미코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이걸 참.. '혼자서도 잘해요,' 라고 해야 할지? 자기 이야기는 바깥에서 하지 않는 뚝심이랄지. 이런 거리감은 끝까지 지켜내는 거 같긴 하다. 물론 쿠미코의 이야기를 깊게 다뤘다면 조연 2명의 이야기는 날아갔을 것 같다. 사실 레이나가 언니와의 일에 얽혀 들어가길래 '올, 좀 다루나?' 싶었는데 갑자기 뚝 끊기고 부부장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아니, 레이나 너무 관심없는거 아니야?' 싶으면서도 어쨌든 표면적으로 레이나는 쿠미코에게 깊은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어서 다시금 쿄애니 새끼들 미쳤다고 생각했다. 밸런스 잡아놓은 거 뭐냐고 정말.. 그 결과, 쿠미코는 호구가 되었다. 무심하지만 상냥하게 이것저것 다 끼어들어서 중간에서 난처해하며 해결해주는 주인공이라니, 귀여워.. 이런 호구는 욕심많은 레이나가 주워가렴.


하여튼 재밌었기에 26화를 이틀만에 다 봤다. 굉장히 오랜만에 2차 덕질을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었다. 근데 요즘 나태함의 정점을 찍고 있어서 실제로 쓸 지는 잘 모르겠고. 일부러 덕심 좀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리뷰 쓴 건데, 다시 생각해도 레이나 쿠미코 조합 너무 좋고 카오리 천사야.... 카오리 너무 좋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가 된다. 예쁜 게 최고야. 다만 카오리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생김새인데 어디의 누구였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본 게 많지도 않을 텐데.. 음, 언젠간 기억이 나겠지.


다음은 '너의 이름은'을 이제야 볼 생각이다. 8월의 남은 포인트 탈탈 털어서 샀다. 이상하게 한참 유행인거는 굳이 찾아 보기 싫더라. 좀 식으니까 이제 볼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좀 게임도 질리고, 영상 보는 것도 질리고, 웹소설 보는 것도 좀 질린 느낌이라 언제 볼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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