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됐어. 그만하자.”

 

커크는 핸드폰을 놓고 일어서며 혼잣말했어.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있었더니 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 분명히 충전기에 꼽아두고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의 앞자리가 바뀌어있었지. 커크는 멀찍이 떨어진 침대에 누웠어. 일부러 충전기도 침대 옆이 아니라 방문 쪽에도 꼽아뒀지. 커크는 계속 영상들을 돌려보고 있었어. 뭘 놓친 게 있나 싶어서. 아니, 정말 다시 사귈 마음이 없었다고? 마지막으로 본즈가 했던 말이 확 박혀서 사라지질 않았어. 이런 말은 상투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그걸 떠올릴 때마다 심장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어.

 

커크는 몸을 다시 일으켰어. 본즈 번호를 아예 차단해두기 위해서였어. 생각해보면 이게 처음부터 맞았을 지도 몰라. 전애인이랑 친구는 무슨 친구야. 본즈에게서는 어제 전화가 두 번이 왔어. 그게 다였지. 사실 처음 핸드폰 화면에 본즈 이름이 뜨는 걸 보고, 커크는 신나서 통화 버튼을 누를 뻔도 했어. ‘그건 2년 전 일이잖아’ 그러던 차에 새벽에 본즈에게 들었던 말이 다시 생생하게 재생됐어. 전화는 한 번 더 걸려오긴 했어. 커크는 홧김에 답장을 썼어. 이럴 거면 왜 잘해줬어? 그 이후로 연락은 없었지. 뭐, 본즈가 그 이상 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어.

 

그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도 길었어. 바람이 불어 코트가 휘날렸지만 추운 줄도 몰랐지. 그래도 매일 걷던 길이라고, 다리는 알아서 집까지 길을 잘 찾아갔어. 집 현관문 앞에 다다른 커크는 열쇠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어. 주머니는 거짓말처럼 텅 비어있었어. 바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던 모양이야. 이제 와서 다시 찾으러 갈 의지도 없었지. 커크는 그냥 현관문 앞에 주저앉았어. 돌로 된 바닥은 차가웠어. 그게 짜증이 나서 눈물이 조금 나왔어.

 

거기에 가만히 앉아서 커크는 날이 밝아오는 걸 봤어. 해가 꽤 길어져서 대여섯 시부터 거리는 밝아지기 시작했지. 7시가 넘으니 사람들이 슬슬 길거리를 지나가기 시작했어. 아직 철물점이 문을 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침이라도 먹으러 가야지 싶었어. 다행히 주머니에는 맥모닝을 사먹을 정도의 현금은 들어있었지. 속이 온통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어. 커크는 본즈를 떠올렸어. 지금 마음이 아픈 건 어쩌면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어쩌면, 이제 와서야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 걸지도 모르고.

 

커크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어. 내일은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 날이야. 공항에 적어도 한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했던 데다가, 짐을 아직 다 싸지 않아서 내일 일정이 바빴지. 또, 집의 새로운 주인에게는 오전까지 짐을 빼주기로 약속했어. 그러니까, 얼른 잠이나 자야했지. 커크는 억지로 눈을 감아봤어.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눈을 뜨고 싶어서 눈꺼풀이 떨렸어. 커크는 다시 눈을 떴어. 밋밋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지. 이대로는 한두 시간은커녕 이 밤을 다 새워도 잠이 올 것 같질 않았어.

 

미시시피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커크는 막 성인이 된 참이었어. 이 집은 대학에 입학한 기념으로 아버지의 친구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어. 네 아버지가 내게 해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넌 네 아버지보다도 잘해낼 거야. 그 말 때문에라도,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커크는 내내 들떠있었어. 드디어 외삼촌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첫 날이었지. 확실히 이곳은 아이오와와는 사뭇 다른 곳이었고, 이곳에서 커크는 어른이 되어갔어. 그 5년간의 삶을 본즈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겠지.

 

오늘은 또 다른 삶으로 출발하는 전날 밤이었어. 뉴욕은 큰 도시라고 들었어. 커크가 계획해왔던 꿈들을 이뤄나가기에도 딱 알맞은 곳이겠지. 커크는 늘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가서 자신을 증명해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도전이었어. 뉴욕에 도착하고 나면 여기서의 삶도 추억으로 빠르게 잊히겠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테고 말이야. 커크는 몸을 뒤척여 옆으로 돌아누웠어. 그런데도 왜 이렇게 설레는 기분이 들질 않는지 몰라. 짐을 챙기기가 귀찮아서 그런가 봐. 공항까지 가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커크는 다시 조심스럽게 본즈를 생각했어. 본즈는 둘이 연애를 시작한 직후에 레지던트 과정을 시작하게 됐어. 그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어. 본즈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둘은 하루 종일 붙어 다니곤 했거든. 하지만 본즈가 졸업한 후, 둘의 하루 일과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본즈는 여기저기에 있는 병원들에 있는 레지던트 과정들을 알아보고 있었지. 커크는 본즈가 이대로 떠나버릴 것만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어. 가족들 만나러. 어디 가냐는 커크의 질문에 돌아온 그 대답은 결정타였어. 어느 가족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은 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지. 그 달만 해도 벌써 세 번째였어. 그날 밤이었어. 분명히 이럴 거면 그냥 가버리라고 심술을 버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키스를 하고 있었지. 그렇게 본즈는 미시시피에 발이 메였어. 정확히는, 커크에게 발이 메였지.

 

“괜히 그랬어.”

 

메어둔 것이 무색하게 본즈는 빠르게 바빠졌어. 시간이 지날수록 커크는 옛날이 그리워졌어. 친구였던 옛날이. 그냥, 학교 잔디밭에 같이 앉아있으면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얼굴만 뚫어져라 봐주던 본즈가 그리웠지. 하루 종일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었어. 본즈 얼굴을 보고 나면 또 괜찮아지곤 했거든. 품에 안겨서 그 눈빛을 받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하지만 다음 날 낮이 되면 또 그 기분은 신기루처럼 날아갔어. 그냥 꿈을 꿨던 것처럼 말이야. 어떨 때는 본즈가 원망스러웠어. 다른 때에는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웠지. 본즈는 누가 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특히 자기 같은 사람은, 평생 어디를 가도 본즈 같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거야. 그런데도 본즈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때마다 커크는 다시 본즈가 미워졌어.

 

“사랑한다고 말하면 닳아?”

 

어쩌면 그냥 사랑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지.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커크가 느끼기에 본즈는 날이 갈수록 표현이 박해졌어. 미안, 내가 그 때는 착각했었나봐. 사실 널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 커크는 언제라도 그런 말을 들을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았지. 본즈와 함께 있을 때면 커크는 문득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불안해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기만 할 수 있을 테니까.

 

본즈가 없을 때면 기분은 항상 변덕스러웠어. 본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지 일주일이 된 날이었어. 가만히 침대에 누워 본즈를 기다리고 있던 커크는 이불을 박차고 나왔지. 이게 원나잇이랑은 다른 거라고? 뭐가 다른데? 커크는 화가 난 채로 바로 들어갔어. 커크는 바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술을 사겠다고 했어. 짐 커크에요. 몇 년 전에 하던 습관대로 이름을 말하며 눈짓했지. 그거면 백이면 백이었어.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여자는 헤어진 애인 이야기를 했어. 역시나 바에 혼자 앉아있는 이유가 있었지.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커크는 본즈가 보고 싶어졌어. 본즈가 떠오른 다음부터는 그녀에게서 어떤 자극도 느껴지질 않았지. 커크는 그렇게 영업 종료 시간까지 술을 마셨어. 그 이후로는 동이 틀 때까지 동네를 빙빙 돌았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출근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는 본즈와 마주쳤어. 외박하자마자 애인에게 들키는 꼴이라니. 본즈가 따지고 들면 대답을 하려고 커크는 얼른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했어.

 

왔어? 본즈의 반응은 그게 다였어. 커크는 해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어. 하지만 본즈는 한 마디도 하기 전에 말을 끊었지. 난 괜찮아. 커크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방으로 올라갔어. 괜찮다니, 뭐가 괜찮은 거지. 커크는 처음으로 본즈가 화내는 모습을 볼 각오도 하고 있었어. 이번만큼은 먼저 잘못했다고 할 생각도 있었지. 사실 본즈가 자기만큼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해가 뜰 때까지 시간을 끈 것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뭐? 괜찮아?

 

“질투하는 척이라도 하지.”

 

커크는 다시 몸을 반대로 돌려서 벽을 보고 누웠어. 이삿짐을 꾸리면서 이참에 같이 썼던 물건들도 대부분 정리했지. 생각해보면 2년을 질질 끌어오던 건 그냥 자기뿐이었나 봐. 헤어지자고 말하던 날에도 본즈의 대답은 깔끔했으니까. 그래, 알았어. 그 대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커크는 눈을 꾹 감고 베개로 머리를 감쌌어. 본즈에게 매몰차게 거절을 당한 게 고작 어제인데도 머릿속에서는 두 목소리가 싸워댔어. 본즈를 미워하는 목소리와 그런 자기를 미워하는 목소리가.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만하자.”

 

커크는 일부러 소리 내어 세 번을 반복했어. 그러고 나니 머릿속에서 본즈를 조금 몰아낸 것 같았지. 2년 전의 이별을 지금 한 번에 몰아서 겪고 있는 기분이었어. 그 시간 동안 사실은 한 번도 본즈랑 진짜로 헤어진 게 아니었나 봐. 누군가는 사랑을 하게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어. 커크는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지. 제가 본즈를 사랑한 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사랑한 게 아닐 거에요. 그건 커크가 한 말 중에 가장 정확한 말이었어.

본즈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커크는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또박또박 읊었어. 그렇게라도 깨달아야할 것 같았거든. 한편으로는 반항적인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냥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건 다 내가 해도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스스로가 다시 밑바닥 같았지. 커크는 다시 억지로 눈을 감았어. 정말 이러다가는 밤을 새고 공항에 가게 생겼어.

 

 

 

 

 

 

D-Day

 

 

‘전원이 꺼져있어 - ’

 

본즈는 핸드폰을 꽂아놓고 차에 시동을 걸었어. 메시지를 보내도 전송됨 표시가 뜨질 않는 걸 보면 차단이 된 상태인 것 같았어. 차단된 걸 알게 되는 방식은 스마트폰이나 폴더폰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싶었어. 어차피 오늘은 커크를 공항에 데려다주려고 휴가를 신청해놨던 날이야. 결국 우물쭈물하다보니 휴가를 취소하겠다는 말도 못했지. 오전은 집에서 늦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며 보냈어. 그러고 나니 달리 할 일도 없었어. 막상 어떻게 해보겠다는 계획도 없으면서 차에 올라탔어. 몸은 자연스럽게 익숙한 대로 길을 찾아갔어.

 

본즈는 커크의 집 쪽으로 향하는 사거리에서 차를 세웠어. 이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대로 커크를 그냥 보내고 나면, 커크는 분명 거기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 살아갈 거야. 그냥 조금만 참기만 하면 말이야. 본즈는 좌회전 표시를 했던 등을 끄고 그냥 직진했어. 조금 더 앞에 가면 유턴이 가능한 길이 나올 거야. 그냥 집에나 가자. 못 잤던 잠이나 자고. 읽다 말았던 책도 읽고. 본즈는 핸들을 완전히 돌렸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왔지.

 

본즈는 차를 세워두고 집으로 들어왔어. 거실 소파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들이켰지. 그래, 잘 생각했어. 본즈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티비를 틀었어. 틀자마자 채널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 본즈는 등을 기대고 앉아서 머릿속을 비우려고 했어. 정치, 사회, 경제 등등, 세상에는 매일매일 일들이 많기도 했지. 본즈는 마지막으로 기상 뉴스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어. 미국 동부에 또 눈이 오나봐. 이제 3월이 다 되었는데 말이야. 봄이 와야 할 때에 날씨가 이렇게도 변덕이었지. 기자는 영향력에 드는 지역을 열거했어. 뉴욕 등 – 거기에서 다시 묻어뒀던 생각이 되살아났지.

 

본즈는 티비를 끄고 일어섰어.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러 시간부터 확인했어. 예전에 들어서 커크가 타는 비행기 시간은 정확히 알고 있었어. 오후 5시였던가. 아마 공항에 가려면 벌써 출발했을 테니까, 집으로 가기는 늦었겠지만 공항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본즈는 황급히 외투를 걸치고 차키를 챙겼어. 그리고 아까보다는 급하게 차를 출발시켰어.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부딪히고 있었어. 미쳤어? 그냥 집에나 있어. 뭐하는 거야. 본즈는 그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엑셀을 밟았어.

 

 

 

“미쳤어.”

 

본즈는 신호등의 빨간 불 앞에 차를 세우면서 중얼거렸어. 이제 와서 무르자니 벌써 이정표에는 공항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어. 막상 여기까지 오고 나니 다시 차를 돌려 돌아갈 엄두도 안 났지. 아직 시간은 4시였으니까, 그래도 비행기 출발 시간 전까지만 가면 되겠지. 본즈는 노란색으로 바뀌는 신호등을 보면서 차를 출발시킬 준비를 했어.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친구로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 5년 간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이렇게 그냥 인연을 떠나보내는 것도 아닌 거니까.

 

본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내렸어. 평일이었는데도 주차장에는 차들이 꽤 많이 서있었어. 평생 공항과는 인연이 없었다보니 주차장을 찾는 데도 한참을 헤맸지. 본즈는 차에 기대어 시간을 확인했어. 아직 비행기가 출발했을 시간은 아니었어. 일단 공항까지 오기는 했는데, 정작 커크를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어. 차라리 이대로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어떻게 보면 그 때 끝내질 못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니까. 마지막 촬영을 하는 날, 커크는 확실히 했어. 전애인이랑은 다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이야. 선택은 고통스럽더라도, 본즈의 몫이었지.

 

본즈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봤어. 역시나 전원이 꺼져있다는 메시지만 들렸지. 적어도 무작정 공항에 헤집어 얼굴을 마주하기 보다는 연락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어. 본즈는 다시 차 안에 앉았어. 커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어. 공중전화라도 찾아야하나. 이대로 연락이 닿질 않으면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해두고 있었지. 본즈는 공중전화 위치를 찾아보려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켰어. 인터넷 앱에는 마지막으로 켜두었던, SNS 페이지가 나왔지. 본즈는 얼른 메신저에서 커크의 이름을 찾았어.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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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떼자마자 무언가가 왔다 갔다 하더니 전송이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지. 본즈는 놀라서 일단 손을 뗐어. 읽음 표시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커크에게도 알림이 갔다는 이야기야. 본즈는 뉴스피드에 떠 있는 사진부터 확인했어. 어제 커크가 올렸던 게시물이 떠 있었지. 뉴욕에 간다는 말에 밑으로는 친구들의 댓글이 주르륵 달려있었어. 본즈는 다시 녹음 버튼을 눌렀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이대로 보내면 후회할 것 같았거든.

 

 

 

어, 안녕, 짐. 공항에는 잘 도착했어?

얼굴 보고 작별 인사는 못해서, 인사라도 하려고. 상자는 열어봤어.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대부분은 그냥 버려도 상관없는 거였어. 그러니까, 어, 네 물건도 좀 있더라. 따로 보관해뒀어. 혹시 미시시피 다시 올 일 있으면 챙겨 가.

좋은 기회 생긴 거 축하해. 거기에서 인터뷰 할 일 있으면 좀 조심해야할 걸. 넌 항상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니까. 아무한테나 웃어주는 것도 말이야. 파파라치도 붙고 그럴지도 모르잖아. 아무튼, 잘 됐으면 좋겠어. 걱정은 좀 되지만. 빠르면 내년에 티비에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 아니, 내 말은, 기대하고 있을게.

 

거기선 몸은 좀 알아서도 잘 챙겨. 넌 아직도 네가 무슨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일단 견과류나 갑각류 같은 건 무조건 조심하고. 또, 라즈베리도 올라왔던 적 있어. 생선이나 콩도 종류에 따라서는 증상이 있기도 하고. 보통 마트에서 팔면 흔한 알레르기는 주의 표시가 뒷면에 쓰여 있으니까 대강 살 생각 하지 말고 좀 살펴. 넌 항상 그냥 알레르기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의사는 나라고, 짐. 잘못하면 고작 두드러기뿐이 아니라, 호흡 곤란이나 저혈압 같은 것도 겪을 수 있다고. 그리고 알레르기 약은 챙겨 갔지? 그건 주변 병원에 가져가면 같은 약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그거 5년 먹으면서 맞는 걸로 찾은 거라, 약국에서 아무거나 사도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걸.

그리고 이건 잊어버릴까봐 말해두는 건데, 식습관은 꼭 바꿔. 넌 내가 없을 때 먹고 지내는 걸 보면 당장 위에 구멍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니까. 아 참, 가장 중요한 건데 가기 싫어도 아프면 병원은 꼭 가 봐. 그 의사들이 나처럼 널 오래 보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의사가 보는 게 너 혼자 앓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 혹시, 음, 그러니까 정말 혹시. 약 처방 받았는데 못 미더우면 물어봐도 되고. 내 말은, 의사로서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니까. 또, 음, 친구로서도 그렇고.

 

잘 가, 짐. 거기서도 잘 지내고. 좋은 사람은 세상에 많으니까. 거기는 엄청나게 큰 도시라니까 더 많겠지, 뭐. 그리고 비행기 앉으면 비상구부터 확인해. 중요한 건 확률이 아니라 파괴력이라고 말했잖아. 넌 늘 무사했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절대 네가 이번에도 무사할 거란 증거는 될 수 없어. 바다를 지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구명조끼도 있나 봐. 비행기에도 그런 건 다 실어두겠지?

음, 뉴욕에는 눈이 많이 온대. 우산은 챙겼으려나. 눈이래도 계속 맞으면 그것도 좋을 거 없어. 괜히 성질 급해 보이는 택시는 타지 말고. 빨리 가고 싶은 건 알겠지만, 그러다가 네가 늙은 나보다도 먼저 골로 가서야 되겠어? 넌 항상 이런 것들에 너무 무관심해. 말했잖아. 실용적인 것들은 못한다고. 내가 마음이 놓여야 이런 소리를 안 하지. 그러니까, 음, 여기서는 내가 네 가장 친한, 음, 친구였잖아. 친구,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음, 그러니까. 잘 가라고 인사는 하려고. 그리고 혹시나, 그냥 혹시나 해서. 음, 듣지 않아도 괜찮은데. 음, 내 말은. 사실은, 음, 그러니까 사실이 아닐 지도 모르는데, 음. 아니 그냥 오늘 날씨도 안 좋네. 이제 비행기 곧 타려나? 거기서는 핸드폰은 못 쓴다던데. 음. 시간이, 시간이 거의 다 됐겠네. 그냥 이건 정말, 정말 별 말은 아닌데. 그냥.

 

사실은,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 어떻게 말해야 하지. 이건 그냥 내 마음이야.

지금 공항 주차장이야. 음, 지미. 내가 무슨 망할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이야. 여기 엘리베이터 옆인 것 같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네가 보고 싶어.



본즈는 손가락을 뗐어. 이번에는 로딩이 한참 걸렸지. 본즈는 뒤늦게 취소 버튼을 찾아봤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어. 고민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썼나봐. 벌써 시계는 4시 58분을 가리기고 있었어. 2분만 있으면 비행기가 출발한다는 뜻이야. 어차피 이미 비행기에 탄 거라면 별 소용이 없겠구나 싶었어. 전송이 완료되었을 때는 이미 1분이 지나 있었지. 본즈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어. 대화창에는 곧바로 읽음 버튼이 떴어. 1분. 1분이 지나자마자 본즈는 머릿속으로 초를 세고 있었어. 60, 59, 58. 시간이 더 이상 가지 않았으면 싶었어. 비행기는 보통 초속 220미터로 간다던데, 1분만 있으면 그만큼의 속도로 커크가 멀어진다는 거니까. 15초, 14초, 13초, 12초, 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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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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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가 왔습니다.

Jim 010-xxxx-xxxx

거절 🔴 수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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