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하늘령





선잠이 들었다. 요새 통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오이카와는, 평소처럼 멍한 정신에도 분명히 느껴지는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침대 머리 위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길었다. 등골이 서늘하면서도 눈빛이 형형한 사람이 남자라는 것, 꽤 체격이 다부지고 어쩐지 익숙한 모양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몽롱한 의식을 잡지못하는 오이카와가 상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어둠속에 있던 남자가 오이카와가 누운 침대쪽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덜그럭, 바닥에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오이카와의 인상이 구겨진다. 창 밖의 희미한 가로등 빛에 얼굴이 드러난다. 익숙하고 생소한 느낌이 드는, 이와쨩..? 잠긴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그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굳은 얼굴의 이와이즈미가 중세기사 복장을 한채 제 몸집만한 커다란 검을 바닥에 끌며 제 코앞에 서 있다.


" 뭐야.. 이와쨩 지금 코스프레 해? "


오이카와의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 커다란 검을 머리위로 치켜든 이와이즈미가 그대로 침대위로 검을 내리친다. 


" 죽어라 ! "


진심이다. 바짝,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선 오이카와는 그대로 몸을 반으로 접고, 튕기듯 침대 밖으로 굴렀다. 겨우 피한 검이 침대위를 비끼며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히익.., 숨을 채 내쉬지도 못했는데 저를 노려보며 몸을 돌리는 이와이즈미가 다시 검을 고쳐 잡는게 보인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누운 자세 그대로 발을 뻗어서 이와이즈미의 복부를 걷어차고 저만치 문 쪽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 왜 이래 진짜 미쳤어? 이와쨩!! "

" 크윽.. 이 자식..  네가 그렇게 변신술 한다고 내가.. 봐줄 것.."

" 오지마 오기만 해! 나 진짜 이번엔 제대로 때릴거야 "



중세 기사복장을 한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한참을 대치하다, 겨우 진정하고 방의 대각선 끝과 끝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저 이와이즈미는 이 세계가 아닌 차원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그는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공간이 마법을 부리거나 약을 통해 환상속에 함정으로 자신을 속인 거라고 여겼다. 그럴 것이 그쪽세계에서 오이카와와 얼굴이 똑같은, 이름마저 동일한 마왕에게 이런 식으로 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환상이나 꿈에서 깨어나려면, 마법을 건 당사자인 마왕을 죽였어야 한다고 했다. 


" 그러니까.. 네가 마왕이 아니라고? "

" 이와쨩..  이라기엔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 같은데. .. 평소에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치곤.. 아 뭐야 진짜 이게? 진심이야? "


서로 의심과 혼돈에 빠진 채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지 한참. 오이카와는 또렷해지는 정신으로 그제야 주말 내내, 오일 정도의 휴가를 얻어 진짜 자기 친구인 이와쨩이 부모님과 해외로 가족여행을 갔다는 걸 기억해냈다. 시차가.. 지금 전화 받을 수 있겠지? 잠옷 바지를 뒤적거려 바로 전화를 거는 오이카와는 여차하면 다시 검을 뽑아 달려들 기세인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며 수화음을 들었다.


- 뭐냐? 

익숙한 목소리다. 


" 이와쨩 거기 .. 어디야? "

- 사진 보냈잖아. 바닷가 식사중이라고. 

" 진짜.. 간거 맞아? 혹시 "


거기 아직 일본이라거나, 지금 중세 갑옷을 입고 내 방에 앉아서 날 노려보고 있는게 아니고..? 오이카와의 말에 전화 너머 이와이즈미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콧방귀를 끼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주접안떨어도 돌아갈때 선물 사간다고 멍청카와. 아니 이와쨩 그게 아니라..  해외요금 많이 나와. 끊어.


" 이와쨩..! "


그래, 맞네..



>>  아래서 부터는 썰체로 이어집니다. 



기사 이와쨩은 겨우 검을 검집에 넣긴 했지만, 형형한 눈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있다. 달려들땐 너무 놀라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흙먼지를 뒤집어썼는지 머리 카락도 꼬질꼬질. 감옷에서도 흙들이 툭툭 떨어진다.


" 저기 .. 일단 좀 씻는게 어때? "

" ! 날 무장해제 시켜서 어쩌려고? "

" 아니 방에 흙떨어지거든.. "



일단은 아직 이른 새벽시간이라 오이카와의 부모님은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은 한블럭 떨어진 채  비워진 이와쨩 집으로 기사복장을 한 이와쨩을 데려가기로 한 오이카와다(여행동안 집안 화분 물 대신 주라며 고딩이와쨩에게 건네받은 열쇠가 있었음) 


" 저기 들어가서 씻으면 되고.. 옷은 어 이거 입으면 되겠다. "


- .. 근 성...?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 방 서랍에서 뒤적이며 찾은 티셔츠 위의 글씨를 더듬 거리고 읽는 기사 이와쨩. 


- 저기 맘에 안들어도 어쩔 수 없거든. 이쪽 이와쨩 취향이 그 모양이니까.

- 맘에 드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듯 티쳐츠와 바지를 꼬옥 쥐고 욕실로 들어가는 기사 이와쨩 보면서 취향도 비슷한가 보네 하고 혀를 차는 고딩 오이카와, 욕실까지 제 키만한 검을 질질 끌고 들어가는 기사 이와쨩을 보며 자기 집은 아니지만 쇼파에 푹 주저 앉으며 한숨을 쉬는 오이카와. 젖은 머리 탈탈털며 나오는 근성론 티셔츠까지 입은 걸 보니 정말 생긴 건 이와쨩이랑 똑같네.. 싶은데, 반팔 셔츠 아래로 크고 작게 보이는 잔 상처들은 다르겠지. 다가가서 기사 이와쨩의 팔뚝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고딩 오이카와. 


- 이게 다 뭐야? 왜 상처가 이렇게 많아?

- 기사로서 경험과 영광의 흔적이다.

- 그런 느끼한 말투 좀 집어치우라고. 히익.. 뭐야 등에도 있어? 헉. 무슨 사지 절단 난 사람 같잖아.


이리저리 몸을 살피며 경악하는 오이카와와 심기불편해지는 기사 이와쨩. 바지까지 걷어가며 기사 이와쨩 몸을 들춰보던 오이카와가 불편한 자세로 엉덩이를 쭉 빼고있는 기사 이와쨩을 보고 의아해 하는 동안 계속 경계하는 기사 이와쨩은 저 순진하게 제 몸을 더듬더듬하는 고딩 오이카와가 진짜 마왕이 아니라고? 하는 의심을 다 지우지 못한 상태.


- 진짜 왜 날 그렇게 봐..?


철천지 원수처럼.., 저쪽에서 내가 진짜 나쁜 놈이었나보네. 투덜거리는 오이카와 반응에 끄덕거리는 기사 이와쨩,  이 몸에 상처 몇은 네가 낸거니까.  헉 나쁜놈 맞네.  네가 고쳐 준 것도 있고.


- 뭐야 이상한 놈이네. 


저 쪽의 마왕카와 욕에 맞장구치는 고딩카와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보는 이와쨩.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기사 이와쨩의 얼굴 보면서 응? 응? 응? 하는데 코앞까지 다가온 제 소꿉친구와 똑같은 얼굴. 와 눈썹 사이에 난 점도 똑같..


- 으아아아악!!!

- 진짜.. 아닌...

- 놔! 이거 놔! 뭐야!


아무리 둔갑술을 써도 마왕의 뿔은 감춰지지 않았던 걸 기억하는 기사 이와쨩이 고딩이와쨩의 머리채를 잡아 뜯은 거. 눈물까지 고여서, 쇼파 끝머리에 무릎 끌어안고 식식 거리는 고딩카와와 그제야 음 진짜 아니구나 납득한 얼굴의 기사 이와쨩. 


- 진짜 너무 한거 아니야? 난 그래도 초면에 이렇게 친절을..

- 아 빛이다

- 어디가 내 말 안듣고?!


기사 이와쨩의 검 무늬에서 푸른 빛이 나오고 씩씩거리는 고딩카와 뒤로 하고 얼른 검 잡아드는 기사 이와쨩, 푸른 빛이 이와쨩 집의 벽면에 닿고 [ 이와이즈미 상 괜찮... ]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어 나 괜찮아. [ 지금.. 켄 ... 법사가.. 짧게 본..]


- 잘 안들려천천히 이야기해.  카케야마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다 싶었더니, 엑 저쪽세계에도 토비오쨩이 있어? 어쩐지 불쾌하네.  눈을 흘기며 푸른 벽면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놀라는 것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고딩카와


[ 기억..  나시죠? 마지...막 마왕 심장 찌르...셨던 거 ]

- 그래, 맞아 그런데 왜 나만 여기 튕겨나온거야? 

[ 저희도 원인을 찾고 있.., 지금 이와이즈미 상 흔적이 있는 곳..에 삼일 후면]


고딩카와는 빛과 대화를 나누는 기사 이와쨔을 통해 대충의 이야기를 짐작하는거. 그러니까 이 세계에 오기전에 저 기사 이와쨩이 나와 얼굴이 똑같은 마왕의 심장을 찌르는데 성공했고. 그 순간 엄청난 빛과 함께 차원으로 튕겨졌다. 그리고 돌아오기 위해 저쪽 이와쨩의 팀들이 마지막 차원의 문을 찾는데 삼일정도 걸린다는거.


" 궁금한 게 있는데 "


역시 찜찜하단 말야 고딩카와의 말에 빛이 사라진 벽면을 쓰다듬던 기사 이와쨩의 고개가 돌아간다.


- 토비오쨩이랑 같은 팀이야?

- 카케야마는 뛰어난 궁수로 정확도는 물론 근접전 힘도.

- 그걸 묻는게 아니고.. 거기도 이와이즈미잖아.



저쪽세계라도 내 곁에 네가 없다는 게 이상해. 그런 고딩 오이카와의 말이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기사 이와쨩의 얼굴. 아 됐다. 뾰루퉁한 얼굴로 배고프다. 뭐 좀 먹자. 이와쨩의 집 냉장고를 벌컥 여는 오이카와. 당장에 먹을 거라곤 인스턴트 라면뿐. 해외여행에 가는 터라 거의 비워진 냉장고. 일상적으로 전지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컵라면을 뜯는데 세상 신기한 눈으로 보는 기사 이와쨩. 젓가락도 챙겨주고, 휘휘 인스턴트면도 휘저어주는 오이카와. 자 먹어. 젓가락질을.. 할 줄 알지? 묻는 오이카와 말에 설레는 표정으로 끄덕끄덕하는 기사 이와쨩. 얼굴 진짜 왜 이렇게 똑같아서... 사람 맘 이상하게..


- 귀엽고 난리야

- 우엉?(한가득 물었음)

- 어 그래 많이 먹어.. 일단 뭐라고 부르면 좋겠어?

- 뭘 말이야?(이미 다먹고 국물만 휘휘)

- 여기 이와쨩이랑 얼굴은 똑같아도, 엄연히.. 다른 사람이잖아. 내가 계속 이와쨩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까.(자기 라면 절반 덜어줌)

- 그래, 나도 너한테 그말 듣기 싫어. 그 녀석같아서(다시 젓가락 들고 히죽 웃음, 신났음) 

- 그 녀석?

- 그 녀석도 예전에 나한테 이와쨩이라고 했거든 

- 둘이. 마왕이라는 애랑, 기사님이랑 아는 사이야?


라면 다 먹고, 국물까지 비운 뒤에 입맛 쩝 다시는 기사 이와쨩.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데?

- 하지메

- 와 낯간지럽네

- 이상한 놈, 제멋대로인 마왕이니까


그래도 좀 부럽다, 난 아직 우리 이와쨩한테 하지.. 하지메라고 못부르는데. 중얼거리는 고딩 오이카와 보는 기사이와쨩.


- 난 기사님이라고 부를게, 그리고 어 기사님은 나한테.

- 신분으로 부르자는 거지

- 어, 그렇지, 신분. 내 신분은.. 일단 고등학생이긴 한데.

- 길다.

- 고딩이라고도 하니까

- 고딩이라고 하도록 하지.

- 에? 뭔가 억울한거 같은..데.

- 삼일인데 뭐. 깊게 생각하지 마라.


적응력 끝내주네.., 어느새 부른 배 툭툭 두드리더니, 꾸벅 졸기 시작하는 기사 이와쨩. 일단 이와쨩 방으로 안내해주고 잠든 얼굴 빤히 보다 저도 툭, 턱 괴고 잠드는 고딩 오이카와.


- 어이 고딩

- 으음?

- 저 네모난 거에서 아까부터 소리가 난다.



휴대폰을 가르키는 기사 이와쨩. 아.. 맞다 벌써 저녁이구나. 휴대폰을 받아 응응 엄마, 나 여기 이와쨩 집에서 자고 갈게. 응 괜찮아. .. 이야기하고 끊는 오이카와. 어쩐지 이 기사 이와쨩을 혼자 이 집에 두고 가는건 영 내키지가 않는 오이카와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자는 동안 이와쨩에게 문자랑 사진도 엄청 왔네. 와 나 없이 신났어 웃는거봐.. 쳇. 사진 보면서 투덜거리는 고딩카와 어깨 너머에서 말 거는 기사이와쨩.


- 그게 이 세계의 나인가?

- 응 이 사람이 내 이와쨩이야

- 고딩... 너의 이와쨩? 

- 아.. 그러니까


의구심을 가득 담은 눈으로 저를보는 기사 이와쨩의 얼굴을 보면서. 뭐 삼일후면 돌아갈 이와쨩인데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술술 생구라를 쳐보는데.


" 나랑 이와쨩... 사귀는 사이거든. 이와쨩이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

" 이 세계의 나는 ..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군 "

" 뭐얏! 기사님 말 그렇게 하지마! "



***



다음날 새벽. 항상 운동가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오이카와는 자기보다 먼저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 기사 이와쨩 발견하고 식겁하고 만다.  어디, 어디가? 묻는 오이카와의 말에 뭐가 문제내는 듯 눈썹을 치켜뜨는 기사 이와쨩.


- .. 운동?

- 아니 여기 지리도 모르면서 어딜 가겠다거야?

- 길눈 밝은편이다. 걱정마라 고딩.

- 안돼! 지금 기사님은 누가봐도 이와쨩이라구!


해외여행 가기로 한 애가 이 시간에 혼자 집에 나오소 돌아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렇게 얼굴 다 내놓고 미쳤어? 팔짝뛰는 오이카와때문에 뾰루퉁한 얼굴하는 기사 이와쨩. 배도 고픈데 그럼 3일동안 여기 갇혀 있으란 소리냐? 골이 나서 울컥하는 기사 이와쨩 얼굴보니까 또 마음이 뭉클뭉클해지는 오이카와(오이카와도 이와쨩의 얼굴에 매우 약하다)



- 아니 뭐.. 답답하긴 하겠지

- 그럼 나가도 되는거지?

- 아니 잠깐, 그러고 가는 건 안돼


결국, 절충합의해서 검은 마스크에 근성티 대신 그나마 오이카와가 골라준 무지티에 청재킷등으로 꾸며주고 같이 나가는 두 사람. 굳이 넌 안따라와도 되는데 하는 이와쨩 말에, 안되거든. 절대 혼자 외출하지마 엄포놓는 오이카와. 자기집으로 이동해서 자기 옷도 갈아입고 짐좀 챙기겠다고 기사 이와쨩 데리고 가는 오이카와.


- 엄청 챙기네 너

- 그나마 줄이고 있는 거거든

- 짐 말고.

- 응?

- 네 애인 말야, 엄청챙긴다고 고딩 너


똑같은 얼굴의 기사 이와쨩 입에서 나온 애인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화닥닥 달아오른 오이카와가 얼른 베낭쪽으로 푹 고개를 숙이고. 귀에 걸린 답답한 마스크 벗고 이리저리 오이카와 방을 구경하는 눈 굴리는 기사 이와쨩.  여기가 .. 고딩 네 방이야? 묻는 기사이와쨩과  어.. 어 응. 대충 대답하는 오이카와.


- 평범하네

- 뭘 기대했는데?


저쪽세계 마왕처럼 뭐 해골이나 이상한 수정구슬 같은 거라도 있을 줄 알았어? 쑥쓰러워 반퉁명스러운 고딩카와의 말에도, 뒷머리 긁적이며 구경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와쨩. 그냥 .. 뭐 신기해서. 이렇게 평범한 오이카와도 있구나.. 싶어서. 대답하는 기사 이와쨩의 대답에 따끔, 그말이 어쩐지 가슴을 찌르는 듯 한 오이카와



...


아침시간에 마땅히 연 가게도 없어서 둘은 동네 도로쪽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 오겠지. 이와쨩은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건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어쩐지 양심이 찔려서 점심땐 장봐서 제대로 밥해줄게 하는 오이카와. 고개 끄덕이며 쟁반위에 놓인 햄버거랑 감자튀김 콜라보는 기사 이와쨩. 이제 먹어도 돼? 묻는 강아지같은 초롱초롱한 눈이 귀여워서 읍, 큭.. 웃음 터지려는 입꼬리 꾹 누르는 오이카와. 

- 먹어봐, 괜찮을 거야

덥석 집어서 한입 와작...,, 자.. 잠깐 기사님!! 놀라서 얼른 이와쨩 입에 들어간, 종이 포장 그대로 햄버거 빼는 오이카와.

- ?? 

왜 다시 가져가 하는 억울한 기사 이와쨩눈보고 작게 한숨. 그래 내가 나빴다. 고개 끄덕끄덕이며 잇자욱대로 찢어진 종이 포장이 벗겨주는 고딩카와.  여기 내용물만 먹는거야. ... 그 시대엔 종이포장이란 게 없어?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야. 맛있다. 하나 더 가져와. 오이카와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손짓하는기사이와쨩, 투덜거리면서도 지갑들고 일어서는 고딩 오이카와. 내가 진짜 이와쨩이랑 조금만 덜 닮았어도, 어? 그렇게 귀엽게 위로 올려보면서 눈 초롱초롱 표정. 어휴.. 진짜. 


- 뭐 드릴까요 손님?

- 빅버거  하나 더 추가...

- 쭈르르륵(이와쨩 콜라 다 마시는 소리) 악. 고딩 이거 독물인가봐 코가 아파!

- 세트 추가요..


아침 챙겨먹고 동네 날백수처럼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어슬렁어슬렁거리다, 오이카와가 이끄는데로 오락실로 들어가는 기사이와쨩. 처음엔 시끄러운 기계소리에 처음 도로에서 차 봤던 것처럼 마구 인상을 찌푸리다가, 하나 둘 오이카와가 알려주고 시켜주는 거 호기심 가지는 거. 특히 총게임은 백전백승. 정확도라면 진짜 이와쨩에게 진적 없었던 오이카와였는데. 


- 우와... 진짜 대박.

- 훗

검을 다룬다더니, 거침없고 플라스틱 총이지만 작동에 익숙해지니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것, 숨은 적을 처리하는 것, 헤드샷, 원샷원킬.  뭐, 기사가 이니고 킬러였어? 놀라 묻는 오이카아의 말에.  킬... 러가 뭐냐. 순진무구한 기사 이와쨩의 대답. 최종보스까지 해치우고 나서 플라스틱 총을 쥔 손을 어깨에 걸친채 거만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보고 웃는 기사 이와쨩.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


- 내기 하자, 기사님

- 내기?

- 그래, 점수 더 높은 쪽이 이기는 거야. 

- 난 오늘 처음 해보는데 불리하잖냐

- 기사님은 현역이고, 난 그저 고딩인데 뭐.

- 것도 그렇군.


겨우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을 네 녀석보다야, 직접 전장을 뛰었던 내가 더 유리할 수 있겠다. 

진지하게 임하는 이와쨩은 몰랐을 것. 오이카와는 정말 지독하게 .. 우유빵 물고 그 게임만 해댔난 것을

- 크윽

- 에헤, 고딩한테 졌네. 기사님.

두손으로 부들거리면서 총을 쥐고 노려보는 기사이와쨩과 거침없이 쏴서 이와쨩 캐릭터를 마구 죽였다는 걸 기억하고 조금 머쓱해지는 오이카와. 좀 봐줄걸 그랬나싶은. 잠깐 분해하더니 쿨하게 인정하고 손터는 기사 이와쨩. 그래 네가 이겼다. 고딩. 입 삐죽하고 돌아서 나가는 기사 이와쨩의 뒤를 얼른 따라가는 고딩카와.


- 기사님 삐졌어?

- 아니

- 진짜?


볼이 막 빵빵한데, 미간에 주름 엄청난데? 아닌 척 하면서 지금 주먹에 꽉 힘들어간거 같은데? 하고 놀리다가 결국 명치 삼센티 벗어난 곳에 주먹질 당하는 고딩카와.


...


" 이러고 있으니까 데이트 같아 "


호수공원쪽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고 먹으며 이야기하는 오이카와. 오이카와가 사준(사과의 의미로) 소프트 아이스크림 아껴먹다가 녹아서 손에 줄줄 흐르는거 아까워 핥, 핥 하다가 눈 마주치는 기사 이와쨩.


- 네 애인이랑은 맨날 했을 걸 뭘 새삼스레 그러냐

- 아니 . 그.. 렇긴 하지.


기사이와쨩의 대답에 얼머부리며 대답하는 오이카와는. 사실 언젠가부턴가 진짜 이와쨩은 저와 단둘이 있는 걸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던거. 아마도 그때부터. 저는 매번 팬이라는 이름으로 선물, 사물함 가득 하트그려진 편지며 받던 오이카와가, 처음 이와이즈미 신발장에 그려진 연애편지를 보고 눈이 돌아갔던 날. 아 진짜 왜 이래- 하며 귀찮아 하는 이와쨩에게 어떻게든 매달려 그 편지 뺏어보려고 하다 진심으로 이와쨩이 화냈으니까


' 이와쨩이 연애편지라니 용납할 수 없어 '

' 네가 뭔데 용납이고 나발이고 저리 꺼지라고 '

' 빨리 이리 내놓으라구 이와쨔아앙!! '

'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

' 진짜 이럴거야? 어떻게 이와쨩이 나한테 이래? '

' 내가 뭘? '

' 이와쨩은 내 이와쨩이잖아!! '


화가나서 버럭 외친 그말에, 이와쨩이 평소보다 세배쯤은 커진 눈으로, 저를 빤하게 쳐다보다 휙 뒤로돌아가버렸었지. 오이카와는 그저 제가 뱉은 말에 놀라, 그런 이와쨩 등 보면서 딸꾹질만 해댔고. 들켰겠지, 들켰을거야. 평소엔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소유욕으로 포장해왔지만 그때만큼은 질투에 눈이 멀어 날것의 마음이 튀어나왔으니. 그 뒤로는 가끔씩이나 빤히 보다보면, 마주치던 이와쨩고의 눈마주침도 거의 없어졌고. 끈질기게 제가 뒤에 있다는 걸 알면서 먼저 아는척 하지 않던 이와쨩이었으니까.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라 가슴 앓이 하던게 석달정도. 최근에야 다시 친구인 것처럼 제 마음을 꾹 누르고 나서야 이와쨩이 상대해주기 시작했으니까. .. 제 아이스크림이 녹아 반정도 바닥에 툭 떨어진 것도 모르고 멍한 오이카와와, 곁에서 떨어진 오이카와의 아이스크림 보고 아까워서 마구 입술 툭 튀어나오는 기사 이와쨩.


- 아, 알겠어 더 먹고싶으면 말을 하지. 기사님. 자. 저기 아까 매점 알지? 더 사와 그럼

- 사양치않으마


발걸음도 가볍게, 동네 산책하는 강아지들과 눈 마주치며 새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굴리고 웃는 기사 이와쨩을 보며 눈가가 시큰 거려 더듬거리는 고딩 오이카와. 아.. 이와쨩이랑 똑같이 생긴 기사님을 보는데 왜..

" 이와쨩 보고싶다.. "


- 왜그래? 아이스크림 한번에 먹어서 그래? 머리가 띵해?


벤치로 올때가 지났는데 오지 않는 기사님 찾으러 고개 돌리던 오이카와가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기사 이와쨩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묻고. 아니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눈에 뭐가 들어갔나. 뚝, 뚝 빨개진 눈에 눈물이 떨어지는 기사 이와쨩. 빨갛게 충혈된 눈이 아파보여서, 고개숙이며 가깝게 쳐다보는 고딩카와. 그래? 눈에 모래라도 들어갔나 많이 따가워? 기사님? 턱을 쥐고 바짝 다가와 입술을 쭉 내밀고 후우- 불어주는 고딩오이카와와. 그런 오이카와를 휙 밀쳐버린 기사 이와쨩. 아야, 진짜 배은망덕하네!! 엉덩방아 찧고 화 내는 고딩카와의 얼굴에 보이는 저 기사이와쨩의 표정이.


- ... 진짜 왜그래 기사님?


저를 두고 놀라서 세 배쯤 커다랗게 뜨였던, 그 이와쨩의 표정과 똑같아서 순간 말문을 잃은 고딩카와. 조금 가라앉은 기사 이와쨩이 진정될때까지 가만히 옆에 앉아 기다리는 오이카와. 무릎을 끌어안고 흘긋흘긋, 저를 바라보는 고딩카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자세로 주먹을 무릎위에 두고 가만히 앉아있던 기사 이와쨩이 심호흡을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하겠지.


- 미안, 순간 그 녀석 생각이 나서

- 뭐 사과할 일까진 아닌데... 궁금하긴 하네. 기사님과 그 마왕이란 녀석은.. 대체 어떻게 된 사이야?


턱을 괴고 묻는 오이카와의 옆얼굴을 차마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망설이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기사 이와쨩. 아까 총 게임 내기 내가 이건거 알지? 그거 대신으로 이야기해주면 좋은데. 너무 긴 이야기라, 중얼거리는 기사 이와쨩의 말에 쭈욱 스트레칭 하듯 다리를 펴며 몸을 늘리는 오이카와가 웃는거. 마침 나한테 있는데. 그 시간? 기사님. 오이카와의 말에, 작게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하는 기사 이와쨩이 말하는 그 녀석, 마왕의 이야기. 


" 녀석과 나는 같은 마을 출신이야 "


우리세계에는 몇백년마다 예언이 내려와. 그리고 하필이면 이번에는

우리 마을, 우리 세대

... 우리에 관한 거였지.



***



[ 가장 푸른 마을에서 틔운 마의 싹이 세상을 덮으리라, 

오직 그 싹을 틔운 곳에서 난 검 만이 그를 벨 것이라 ]



난해한 말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마왕이 난다

그리고 그 마왕을 죽일수 있는 영웅도. 


예언이 생기고, 우리 마을은 거의 배척받으며 고립되었어. 물자도 교역도 없었고, 우리 마을 전부를 몰살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흉흉해진 곳에서 녀석과 나처럼 부모를 알 수 없는 고아들은 더 외면받는 존재였지.


- 또 훔쳤어? 

- 응 아까 우리가 배고프다고 말할땐 쌀한톨도 없다던 그 방앗간 주인집에서

- .. 너무 많이 훔쳤잖아. 그집사람들 먹을건 남겨두지. 

- 이와쨩은 쓸데없이 상냥해


똑같이 비쩍 곯은 주제에 오이카와는 저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며, 항상 더 많은 음식쪽을 나에게 양보하는 아이였다. 염치없게도 항상 허기가 져서, 나는 녀석이 내민 감자나, 마른 빵을 허겁지겁 삼켰다. 너무 곯은 배에서는 고통도 없이 텅 빈 느낌이라. 뭔가를 채워넣으면 오히려 더 탈이나곤한다. 급하게 먹느라 탈이나면 오이카와는 항상 제 무릎에 나를 뉘이고 천천히 배를 쓸어주곤 했다.  배만 볼록 나왔네. 키득키득 거리고 웃는 녀석이 빤히 나의 얼굴을 내려 보는 시선이 좋았다. 


- 정말 우리 또래중에 마왕이 있을까?

- 흐응, 글쎄.

- 기왕 예언이 사실이라면. 난.. 영웅이 되고싶어

- 영웅? 어째서? 이와쨩은 저런 인간들에게 대접이라도 받고싶은거야?

- 아니..,


영웅이 되면, 마왕을 무찌르면 이 마을의 고립도 풀릴 거 아냐, 물자도 더 많아지고, 더 넓은 곳에 나가볼 수도 있고. 그럼 너와 나 같은.. 고아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새로운 집으로 갈 수 있을 거아냐.. 제 말에 오이카와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마을을 빠져나갈거야

- 너무 위험해 

- 여기 있다간 다 죽을거야 이와쨩


또 한번 음식을 훔치러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은건지. 오이카와는 굳은 표정이었다. 그 즈음에 이와이즈미는 더 쇠약해져 있었다. 두 발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와이즈미였지만 오이카와가 고집을 부리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 알겠어,  그럼 너 혼자 가

- 그럴순 없어! 같이 가야해


제가 업고라도 함께 가야한다는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아주 늦은 밤, 마을을 빠져나가는 산 중턱을 녀석의 등에 업혀 지나갈 쯤에, 어두운 숲에서 바라본 마을이 태양을 삼킨 것처럼 환해져 있는 것이 보였다.

 

- 불이야.. 오이카와


고아들이 모여사는 빈집마다, 터마다 불길이 치솟았다. 오이카와 너 알고 있었어? 응? 저기 우리 친구들도 있잖아. 왜 그 얘들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함께 도망칠 수 있었잖아.울먹이는  묻는 제 말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 움직였다면 다 발각되었을 거야.  전부를 구할 순 없어. 너라도 구해야했으니까. 


- 넌 내 사람이니까, 너만 구하면 돼. 


중얼거리는 오이카와가 그 순간 마을 사람들만큼 무서웠다



***


- 깨어났을땐 마을 밖의 민가였어. 아이가 없던 평민 집안의 마당에서 발견된건 나혼자였지. 그 집의 양자로 들어가서 운좋게 기사학교에 들어갈때까지..  오이카와는 원래 없던 사람 같았는데...


거기 까지 이야기한 기사님의 얼굴이 너무 쓸쓸해보였던 고딩카와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있었겠지.

- 재촉하고 싶진 않지만, 기사님.. 나 더 이해가 안가는데 말야. 두 사람 같은 마을 출신에, 나름 사이도 좋고. 어쩌면 .. 그 마왕이 기사님의 생명의 은인인건데. 대체 ... 

여기 오기 직전에, 기사님은 그 마왕의 심장을 찔렀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나와 똑같은 얼굴인 그 녀석의 심장을 말야.


- 처음이 아냐

- 뭐라고?

- 내가 마왕의 심장을 찌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구.



***



- 네가 왜 거기에...


마왕성으로 가 처음 의자에 앉아있는 마왕의 얼굴을 본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겠지. 안녕, 이와쨩 꿈을 이뤘구나 축하해. 싱글거리며 저에게 말을 거는. 피로 얼룩진 황금의자에 앉아있는, 마왕이 왜.


- 오이카와... ?


너 여야하는 건지. 그동안 어디서 뭘, 아니 그보다 네 머리위에 있는 그건.. 마치 이 순간을 짐작하고 있었단 듯 오이카와는 여유만만한 얼굴이었다. 나도 뜻하지 않게, 음 예언을 이뤘다고 해야할까? 대답하며 긴 손톱으로 툭 제 얼굴을 치며 웃는 모습은 누가봐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대체 ... , 쥔 검을 스르륵 힘을 놔버리는 이와이즈미에게 오이카와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자 여기. 이와쨩. 툭, 제 심장을 가르키는 마왕이 소꿉친구의 얼굴을 한 채 웃고있었다. 여길 찔러야 예언이 완성되는거야.


- 네 꿈의 일부가 바로 나야.




***



- 내가 찌르기를 거부할 때마 마왕은 마을을 하나씩 몰살 시켰어. 

- 미쳤네

- 내가 심장을 찌를때마다 마왕은 마을 하나씩을 또 몰살 시켰고

- ... 정말 돌았네


끝없이, 녀석을 찌르고, 녀석을 쫓아야했어. 그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이제는 그 녀석을 왜 해치워야하는지 이유도 잘 기억나지 않아. 둘 중 누구하나가 완전히 죽어야만 끝나는 예언일까. 나는 예언대로 정말 그 녀석을 베어낼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은 모르겠다. 슥슥 볼을 문지르는 기사이와쨩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꼭 손을 잡는 고딩카와. 안가면 어때?  그 쪽 세계에 삼일 뒤에 꼭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아? 고딩카와의 말에 당황한 듯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기사 이와쨩. 너는 내 이와쨩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너도 이와이즈미니까. 이와이즈미 하지메니까. 그런 네가 그렇게 지친 얼굴로, 눈물도 말라버린 표정을 하는 걸 보는 건 너무 .. 괴로운 일이니까. 차라리 이 세상에 네가 머문다면.


- 고딩 넌 그 녀석보다 더 상냥하네 

- 진심이야. 난.. 

- 안다. 그리고 안돼.


고딩카와에게 잡힌 손을 빼내며 희미하게 웃는 기사 이와쨩. 


- 이 세계에 고딩 너의 이와쨩이 있는 것처럼.. 녀석은 나의 마왕, 아니 .. 토오루거든. 녀석을 끝내야한다면 그것은 나여야만 해. 


...


샤워를 마치고 어제처럼 머리를 털고 나온 기사이와쨩의 상처가 오늘따라 더 붉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속상한 마음에 묵묵한 고딩카와. 마트에서 가득 본 장에, 본가 집에 들러 냉장고까지 털어 소고기부터 온갖 야채까지 전골냄비에 보굴보글끓이고. 두부까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서 올려줬지. 많이, 많이 먹어 기사님. 


- 와.. 상다리 부러지겠다.


가득 꾹꾹 채운 하얀쌀밥까지, 앞에 두고 씩씩하게 웃는 기사 이와쨩. 와구와구 잘 먹는 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콧가가 더 시큰한 고딩카와. 이거 이거 맛있어. 와 고기보다 이게 더 맛있는데. 젓가락으로 두부튀김 콕콕 찌르며 웃는 기사이와쨩보고 씨익 웃는 오이카와. 


- 우오우웅(넌 안먹어?)

- 응 난 기사님 먹는것만 봐도 배부르다

- 으으 으? (미쳤나)

- 큭큭

- 너 그 네모난거에서 번쩍번쩍거린다

- 아..



그러고보니 휴대폰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네. 먼저 먹고 있어 기사님. 베란다로 나와 전화를 받는 오이카와. 


[ 어이 살아있냐 ] - 응 이와쨩 거기 재밌어? [ 뭐.. 그렇지 ] 어쩐지 바람피우다 걸린 거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인 오이카와가 조용하자 건너편 이와쨩이 말을 걸어오는거. [ 답메일도 없고, 따로 연락도 없고] 무슨 일있는거 나야. 너 우리 집 화분에 물은 제대로 주고 있는거냐. 잔소리 하는 듯한 일상적인 이와쨩 목소리가 어쩐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거 같아서. 


- 그럼 나 지금도 이와쨩 집인데. 걱정마 별일 없어. 이와쨩은 ..이제 삼일 후면 오겠네. [ 뭐 .. 그렇지 ] - 사진보니까 엄청 좋아보이더라. [ 엄청까진 아니고.. ] - 에이 내숭은 거기서 귀찮게하는 나도 없고, 더 좋은 거 아냐 응? [ 아니거든 ] - 그럼 내가 보고싶기라도 한가? 하하. [ ... ]


아차 싶어지는 오이카와. 


- 미안.. [ 사과하지마 ] - 아냐 미안해  [ 오이카와.. ] - 잠깐인데.., 난 네가 보고싶어 이와쨩. 그래서 미안해.


난 역시 네가 너무 좋아, 베란다 난간에 미라룰 쿡 박고 중얼거리는 오이카와의 말에 휴대폰 너머 이와쨩은 대답이 없고. 


- 끊을 게..

[ 오이.. ]

이와쨩 뒷말은 드지 않고 뚝 끊은 뒤, 슥슥 눈가를 비비고 다시 거실로 들어오는 고딩카와. 빨개진 고딩카와의 눈을 보며 밥통에서 더 밥을 푸던 기사이와쨩



- 뭐야 싸웠냐?

- 아니거든

- 네가 잘못했겠지 뭐. 사과해라 얼른

- 아 진짜 기사님 아니라구!


먹먹한 가슴에 꾸역꾸역 밥 떠먹으면서 툴툴거리고 웃어보이는 고딩카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오늘따라 쉽게 잠이 오질 않는 고딩오이카와는, 휴대 전화까지 꺼버린 상태. 도롱 도로롱 코를 골고 잠든 기사 이와쨩 얼굴 보면서 또 싱숭생숭한 기분. 저쪽 세계에서는 서로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 이쪽 세계에서는 닿지 못하는 짝사랑. 가까운 듯, 중요한 듯 하면서도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


- 잠이 안오냐?


툭, 제머리에 닿는 느낌에 멍하니 또 앉아있던 머리를 들어, 침대 위쪽을 바라보는 오이카와. 기사님은 안잤어? 자다 깼지. 그래..  싸웠으면 화해를 하면 되는 걸. 뭘 그렇게 고민이냐. 싸운 거 아니라니깐.. 귀엽게도 노네. 진짜 우씨. 아웅다웅 다시 투닥거리다, 피식 저를 웃으며 보는 기사이와쨩 얼굴 빤히 보는 오이카와. 


- 뭘 그렇게 느끼한 눈으로 보는데

- 내.. 내가 뭘?

- 나 네 애인 아니다 허튼 짓 마라

- 어이없네 진짜! 아무리 닮았다고 내가 그렇게 안하무인일까

- 충분히 가능하지

- 짜증나 진짜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비틀며 토라져 눕는 오이카와. 


- 너무 걱정마라 고딩. 네가 사과하면..  꼭 용서해줄거야. 그 이와이즈미도.

- 기사님이 어떻게 알아?

- 걔도 나니까.


그 이와이즈미도 이와이즈미니까. 자신의 오이카와에게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걸. 툭 다시 잠들며 한 말인데. 심장이 쿵쾅쿵쾅 거려서 반대로 잠이 들 수 없는 고딩오이카와


...


푸른 빛..?

선잠이 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때 본적이 이던 푸른 빛이 벽에 쏟아져서 오이카와가 멍하니 고개를 들겠지. 그리고, 보게 되는거. 기사 이와쨩의 위에 엎드려서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 시퍼런 새벽 빛을 받아 서늘한 얼굴에, 눈이 마주치자 쉿, 하며 검붉은 입술에 손을 대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 마왕?


정말 나랑 똑같이.. , 하지만 저 그림자에서 선명하게 비치는 거대한 뿔은 현실감없이. 위화감이 들고, 길게 자란 손톱은 붉어서 마치 피가 묻은 거 같아. 저도 모르게 턱을 덜덜 떨게 되는 고딩카와. 


[ 곧 데려갈거야 ]

- 너..!

[ 내 하지메니까. ]

도롱 코를 골고 있는 기사 이와쨩의 뺨을 쓰다듬으며 이마를 맞대는 마왕. 괴롭히지마.. , 으득 거리며 이를 무는 고딩오이카와의 말에 시선을 돌리는 마왕카와. 

[ 먹여주고, 재워주고..  잠시 돌봐줬다고 착각마라. ]

- ..!

[ 네가 끼어들 틈은 없으니까. ]


으응., 인상을 찌푸리며 허우적 거리는 기사 이와쨩의 손을 잡고 쪽 입맞추고 제 심장에 두는 마왕카와. 눈썹을 꿈틀거리며 뭔가를 알아챈듯한 얼굴을 하는 고딩오이카와. 혹... 시..

[ 보기보다 영특하구나 ]


지독한 새끼. 고딩카와의 말에 쿡, 웃더니 점점 옅어져 푸른 빛으로 , 벽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마왕카와. 



***



- 생각보다 빨리 돌아갈 수 있을거 같아

- 그래?

- 뭐냐 그 표정은 서운하냐

마왕이 다녀간 뒤로 연결의 통로가 더 커진 듯, 그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기사 이와쨩의 팀원들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빨리 이동해서 반나절 정도 빨리. 차원의 문으로 도달 할 수 있을거같다고. 

- 이번에 돌아가면 기사님은

- ?

- 또 마왕을 죽일거야?

- 당연하잖냐. 나만 할수있는일이니까


새삼스레 왜 그런걸 묻는냐는 기사 이와쨩의 말에 턱턱 고딩카와가 다가와서, 자기 옷인것처럼 편하게 입고 있는 기사 이와쨩의 근성티를 들춰내겠지.  야.. 야!! 당황해서 마구 허리를 뒤트는 기사 이와쨩의 몸에 난 칼자국, 꿰맨 자국, 그리고 ..


- 이거 안놔?


새빨개진 얼굴만큼 붉고 크게 난 기사 이와쨩의 가슴 사이를 가로 지르고 있는 커다란 짐승의 발톱같은 자국.


- 이 상처는 누가 낸 거야?

- 나도 몰라

- 이렇게 큰 상처인데 기억에 없다고?

- 놓으라고 고딩! 왜 이래 갑자기!

- ..  누가 고쳐준 건지도 기억 못해?


움찔, 고딩카와의 말에 뒤틀던 몸을 멈추는 기사 이와쨩.


- 짐작은 하지?



***



눈물을 흘리다 지쳐 탈진한 이와이즈미를 등에 업고, 땀인지 이와이즈미의 눈물인지에 모를 것에 흠뻑 젖었던 오이카와는, 마을의 산을 거의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휙- 멀리서 날아오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기 전에 툭툭. 제 앞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붉은 피들을 보았다. 자신의 피는 아니었다. 


- ... 하지메?


제 등 뒤에서 축 쳐진 이와이즈미는 대답이 없었다. 두 아이를 따라붙은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 두고 온 수많은 아이들의 심장을 꿰뚫었을 그 마지막 화살이, 제 등에 업혔던 이와이즈미의 몸에 박혔다. 아.. , 아.. 거의 다 왔었는데. 겨우 한 걸음이었는데. 축 늘어진 이와이즈미를 끌어안고 오이카와가 고개를 떨궜다. 크으..큭... 무기가 없는 남자가 마을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아이인 오이카와의 작은 목을 손에 움켰다.


- 네가 마지막이다. 너만 죽으면 다 끝나.


시뻘겋게 충혈된 남자의 눈은 인간이 아닌 거 같았다. 숨이 꼴깍 넘어가는 와중에 발버둥치며 오이카와가 흙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댄다. 득, 득, 모래알갱이가 손톱아래박힌다. 제대로 먹지못하고, ㅇ정을 받지 못한 버석한 아이의 얼굴에서 생기가 꺼져간다. 하얗게 뒤로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넘어가던 순간. 퍽--! 바닥을 긁던 작은 오이카와의 손에 든 돌이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작은 손이 피에 젖었다. 마을안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이카와는 살인을 했다.

남자의 심장을 꺼냈다. 

몸 밖에서 꽤 여러번 뛰는 것이 신기했다. 왜 이 남자의 심장은 여전히 뛰는데 나의 하지메의 가슴을 싸늘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메를 안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새카맣게 탄 어린 아이들의 시체를 한켠에 쌓아두는 사람들이 보였다. 


- 네들 심장은 .. 진작 굳었으니까


필요없을 거야? 그렇지? 하나, 둘, 마을어른들은 겁에 질려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셋 넷, 손에 묻은 피가 늘어날 수록, 움켜쥐고 뜯어내 집어던진 심장에서 흐르는 피 웅덩이가 고일수록.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이 밝기 전 마을에서 뛰는 심장은 사라져, 단 하나도 없었다.



***



- 나도 알아..


기사 이와쨩은 제 가슴위를 덮는 고딩 오이카와 손을 치워낸다. 내 안에 뛰는 심장의 절반은.., 

그 녀석의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난 매번 마왕의 심장을 찌르지만. 


- 항상 빈 자리만 노린다는 걸..

- 기사님..

- 내게 반을 넘겨주고 난 녀석의 심장 빈자리를 찌를때마다, 아파.


아프다고 말하며 제 가슴을 쿡 찌르는 기사 이와쨩이 웃고 있어서. 고딩카와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는거. 순간 쏟아진 푸른 빛, 이제 그만 이 세계로 넘어 오라는 뜻 같아서. 어느새 갑옷을 갈아입고, 검을 챙겨든 기사 이와쨩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 고딩카와.


- 고마웠다 고딩

- ..

- 덕분에 기억났어


마왕이 되기전, 그 녀석이 어떤 표정으로 날 봤었는지. 아껴줬었는지. 예언에 묶이지 않고 어쩌면 우리가 평범하게 자랐나면, ...


- 녀석이 어떤 얼굴이었을지. .. 널 보니까 알 수 있었어. 


걘 마왕이지만 내 친구였어. 평범하게 자랐다면 너처럼, 그 처럼. 

우리도 어쩌면 조금 달라졌을지도.



...



기사 이와쨩이 사라지고 난 뒤는 한 낮. 푹 고개를 숙인 뒤 오이카와는 깊게 한숨을 쉬다 제가 꺼뒀던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다시 들고. 켜보겠지.  쏟아지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 전화 받아라, 야 휴대폰 끈거야? 오이카와 임마 이 똥같은 놈아 야 야... 토오루.. 라고 부르는 이와쨩의 연락들 하나 하나 읽으면서 울컥, 하는 기분에 입술 쭉 깨무는 오이카와. 그리고


[ 어이 고딩 네모난 것에서 난리가 났다 ]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아. 전화를 받으면.

- .... 

[ 오이카와..? ]

- 응.. 

[ ... 하아 다행이다 ]

긴장했는지, 저를 부르는 이와쨩의 목소리가 좀 굳은 거 같아서 대답을 못하는데


[ 보고싶어 ... ]

- ...!

[ 오이카와 ...  너무 보고싶어 ]


걱정으로 잠긴 듯한 이와쨩의 떨리는 목소리가 저처럼 울컥한 것이 느껴져서.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오이카와. 


- 빨리와 이와쨩 ..

[ 응. 그럴게 ]

- 나 여기서 ... 기다리고 있을 게




***


- 기다렸어, 하지메.


차원의 문을 넘자마자 사원에 보이는 건,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제 동료들. 후우..., 검을 꽉 쥐고 턱을 괸채 저를 보는 마왕을 똑바로 바라보는 하지메.


- 언제까지 이럴래?

- 글쎄. 세상 끝까지?

- 토오루


하지메의 부름에 마왕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렇게 불러준 건 오랜만이야.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웃는 마왕의 얼굴, 하지메가 한발 다가서는거. 


- 이제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는거.

- 무슨 소리야 하지메?

- 검의 방향이 잘못됐어.

- ...

- 찔러야 할 건 그쪽이 아니었어. 그렇지? 


검을 크게 회전시켜 자신의 심장쪽으로 검끝을 겨누는 하지메.  더이상의 떨림은 없겠지.


- 그만 둬.  

- 더이상은 안되겠어. 

- 날 화나게 하지마.

- 네가 아니라,.. 우리때문에 더 죽는 사람은 없어야해. 토오루. 

- 하지메!

- 그게 내 꿈이야.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고 굳은 마왕의 얼굴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묵직한 쇳덩이가 공기를 가르며 내는 서늘한 소리가 공중에 퍼지고. 휙. 휘둘러진 검자루가 텡그랑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죽음을 불러오는 마왕은 영웅의 희생으로 사라졌다. 

세상은 어느때보다 다시 밝고 푸르다.  




***




" 이게 아니라고 멍청아! "

" 아뜨.. !  "

" 넌 뭐 잘하는 게 없어.  요리도  못하네 진짜 "

" 콩을 갈아서 만든 걸 또 기름에 튀기다니 대체 이게 무슨 요리야??? "

"고기보다 더 맛있는거다 멍충아 "



쳇. 볼을 빵빵하게 채워 눈을 흘기는 녀석의 머리를 쓸어준다. 이제는 뭉툭하게 끝이 갈린 머리에 남은 짐승의자국을 위아래로 천천히 매만지자 나른하게 눈을 감는다. 가르릉, 소리가 날 것처럼 느리게 눈을 뜬 녀석의 볼과 입술에 격려의 의미로 짧게 입을 맞춰준다. 불만스럽던 얼굴이 사르르, 녹으며 제 뒷통수를 감싸고 깊게 입을 맞춘다. 


" 세상의 절반도 줄 수 있었는데 "


제 볼과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는 녀석의 무릎에 겹쳐 안긴채 얼굴을 바라본다. 익숙하고, 새로운 얼굴을.


"  남은건 겨우 이 허름한 집 하나야 "

" 아니야. 토오루. "

" 아니라니.. "

" 남은건 전부야. "

" 하지메.. "


- 네가 남았으니까. 


어릴 적 바랐던 것은, 이 세상에 우리의 집을 갖는 것.

전부인 너와 함께 하는 것. 


해피 할로윈.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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