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x고1/고2x고1

*마유즈미가 윈터컵 전에 아카시의 이중인격을 알고 있음.

*홍오레 먹보쿠 교제 중.

*오레시가 윈터컵 전에 나오고 있음.


"그러니까 너는 그게 잘 못이 아니라는 거냐?"

"아. 나는 모든 것에 승리하는 나는 언제나 옳기 때문에."

"승리라던가, 옳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

나로써는 보기 드물게 소리를 크게 질러버린다. 나름대로 평균이 넘는 키에 덩치도 있는 편인데 상대는 전혀 기 죽지 않고 나를 쳐다봐 온다. 아니, 기가 죽는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젠장, 속으로 읊조리며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초조한 내 몸짓에도 상대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잠깐 대치 상태가 되었다. 무거운 침묵을 깨트린 건 상대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벨소리와는 다르다.

그 소리를 들은 상대가 움찔하더니 이내 눈동자를 곱게 휘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형쪽인가. 내 짐작대로 상대는 아까와는 목소리 톤부터가 달라졌다.

"실례합니다."

의리있게 말한 상대가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니지무라씨."

어딘가 기쁘기까지 한 목소리. 나는 절대 들어 받을 수 없는 목소리.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라쿠잔 부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여기는 라쿠잔 고등학교의 옥상이다.

"네, 네, …아니요, 그건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주르륵 벽에 기대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상대는 전화를 계속하고 있다. 

"아! 정말입니까? 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뇨, 기뻐요. 니지무라씨."

애절하게 전화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표정은 몹시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기특할 것이다. 나로써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볼 표정이다. 아니, 실수로라면 볼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보고 싶은 게 아니고.

"실례했습니다, 마유즈미씨."

전화를 끊은 상대가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남동생이 이번에도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남동생이랄까, 또 하나의 너지만. 겉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 참으며 상대를 바라본다.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세요. 쉬는 걸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제 탓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눈에 힘이 빡 들어간 익숙한 상대였다.

"너 말이야."

"뭐가."

"네 형은 연인이랑 그렇게 알콩달콩 하는데 우리는 왜 매번 싸우기만 하는 걸까."

"갑자기 뭐야, 치히로. "

비웃는 상대의 말에도 한숨을 쉰 채 다리를 옥상 바닥에 내던진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상대가 살그머니 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고양이 같이 새초롬한 눈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걱정해주는 건 똑같은데, 받아들이는 건 왜 그렇게 달라?"

희미하게 들리던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호오, 그 말 뜻은 내(俺)가 취향이라는건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냐."

"그렇지만,"

상대가 말을 잇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지쳐있었기 때문에 말을 이으려는 노력도, 계속을 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나를 선택한 건 너야, 치히로."

상대가 내 몸 위를 타왔다. 다리에 갑자기 무게가 더해져 윽, 하는 내 신음 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입을 맞춰온다. 이 자식. 

들킬까봐 걱정하는 건 언제나 나다. 솔직히 내 존재감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들켜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상대의 경우는 다르다. 언제나 온 학교가 주목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 하는 건지. 물론 자각하고 있겠지만. 

쵹, 하고 입술이 천천히 떨어져 나간다. 오드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말이야, 가끔씩은 나도 기특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기껏 후배랑 사귀는데."

"호오,"

눈이 샐쭉 가늘어진다.

"저쪽이랑 우리랑 온도차가 너무 나는 것 같지 않냐? 똑같이 선배 후배 커플인데."

"그래서, 내가 불만이다?"

"언제 그랬냐."

한숨을 쉬며 다리 위에 올라타 앉은 상대의 허리에 팔을 감는다. 반대쪽 팔로 뒷통수를 감싸 내 가슴에 꽉 누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보다는 작은 체구라, (근육량으로 따지면 다르겠지만.) 내 품에 폭 안긴다.

"…치히로가 라노베에 나오는 러브코메디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지만."

천에 눌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남의 취향을 멋대로 만들지마. 그런 의미를 담아 불렀지만,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조롱하듯 불렀다.

"치히로 선배."

움찔, 하고 놀랐다. 상대가 작게 키득키득 웃었다. 

"선배, 좋아해요."

내 가슴에서 얼굴을 뗀 상대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장난기가 서린 웃음을 베어 물고 있다. 젠장. 작게 뇌까렸다. 주체 못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건 어울리지 않아. 그렇지?"

"…아."

"나(僕)는 나(俺)와 다르니까, 우리들과 저쪽의 관계도 다를 수 밖에 없어. 알잖아?"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쉬고 다시 상대를 꽉 끌어안았다. 상대가 내 가슴에 손을 올려 교복을 쥐고 그러모았다.

"그래도 온도차가 너무 많이 나."

"질투해?"

"조금."

"가끔씩은 서비스 해줄게, 치히로 선배."

"…기왕 서비스할 거면 어제처럼 눈 앞에서 쓰러지지도 마라."

상대가 킥킥 웃고 뺨을 어리광 부리듯 내 몸에 칠했다. 편한 자세를 찾아 꼼지락 꼼지락 거린다. 결국 나는 이 녀석에 휘둘리는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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