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도 많이 복잡해졌네요.”

라고 미안한 듯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이의 한걸음 뒤에서 준코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오늘의 약속, 번화가에 가자는 말은 쥰코가 먼저 꺼냈었다. 다만 언제까지나 아이에게 부탁할 수만은 없다고, 사후 두 번째로 바뀔 연호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약속장소까지는 스스로 가겠다고 그렇게 얘기해 놓았었다.

하지만 35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에 가 보니 매표소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다들 바쁘게 지갑을 개찰구에 대고 훌쩍 들어가 버렸다. 따라서 해보려고 했지만 삑삑대는 경보음에 역무원이 달려왔고 어떻게 안내를 받아 겨우 표를 사서 여기까지 오느라 이미 약속시간을 훌쩍 넘겼다.

“전화를 하지 그랬어.”

“하지만 근처에 공중전화도 없었고, 미즈노씨도 밖이라서 전화를 못 받잖아요.”

가볍게 꺼낸 말에 돌아온 세월의 무게를, 아이는 아, 그랬지 참. 하고 흘려보냈다.

“나중에 코타로한테 케이타이 달라고 해볼까?”

“케이타이요? 뭘 가지고 다닌다는 건가요?”

“아 그러니까...”

아이는 열심히 설명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람들이 전화를 들고 다녔다는 걸, 그리고 언제나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메일, 그러니까 말 대신 글을 주고받았다는 걸. 그러나 처음에는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을 듣던 쥰코는 마지막쯤에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하지만 우리 죽었잖아요? 죽은 사람도 만들 수 있는건가요? 라고 하는 바람에 흐지부지하게 말을 끝냈다.

“여러가지로 익숙해지지 않네요.”

“그렇네.”

잔뜩 어깨를 움츠린 쥰코 옆에서 아이는 손부채를 부치며 답했다.

“죄송해요.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아냐, 괜찮아. 근처에 재밌는 게 있어서 그거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그게 뭔가요?”

“쇼와시대 아이돌 물건을 파는 가게 같은데, 진열대에 녹화본을 틀어놓고 있더라고.”

“그럼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바로 근처에 있어.”

하고 걸음을 틀어 다시 약속장소 근처, 시장가의 초입으로 돌아왔다. 곁눈질로 돌아보니 쥰코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아온 거 같아 아이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와, 모리씨가 대상을 탔네요.”

“그래?”

“탈 만 하긴 했어요. 데뷔때부터 가창력이나 카리스마가 있었거든요. 저 의상은 좀 파격적이긴 하지만, 임팩트가 있네요.”

자신의 후배가수가 수상소감을 말하는 영상에 쥰코는 순수히 신기해하고 있었다. 간간히 내뱉는 감탄사에 아이는 촌스럽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입을 벌린 채 놀라워하는 쥰코 때문에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상소감이 끝날 때쯤 CM이 흘러나왔다. 쇼와 전설의 아이돌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나오는 익숙한 얼굴에 쥰코는 등을 돌려 아이를 재촉하듯이 몇 걸음 앞서 나갔다.

“재밌었어요. 이제 다른 곳을...”

발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돌아 본 쥰코의 시선에, 머리 전체가 꽃으로 뒤덮힌 채 입을 벌린 채 가게에 걸린 TV를 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무엇에 그렇게 정신이 팔려 있는지 살짝 옆에 서서 보니, 생전의 자신이 있었다.

스쿨룩이 아닌 정통 세라복, 전자악기가 아닌 정통 오케스트라 반주, 바닥에 깔린 드라이아이스 안개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연출, 관객이라고는 패널이 전부인 무대. 그 가운데 선 콘노 쥰코는 그 무대를 넘어 지금의 아이마저 사로잡았다.

메이크업도 촌스럽다, 의상도 촌스럽다, 안무도 율동조차 되지 않고 멜로디도 가사도 딱 쇼와시대 풍의 촌스러움이었다. 그런데도 콘노 쥰코의 표정이, 목소리가, 기교가 아이의 발을 붙잡아두고 있었다. 언젠가 쥰코가 말한 경계. 손이 닿지 않는 유리벽의 저편, 실력의 저편, 꿈의 저편, 세월의 저편에 쥰코가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도-”

그 목소리를 쫓아 아이는 고개를 돌렸더니, 경계 너머의 쥰코가 눈 앞에 있었다. 저너머의 목소리와 바로 옆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섞인다.

“-변하지 않을거지?”

그 하모니의 마지막, 고개를 돌려 아이와 눈을 맞춘 쥰코의 미소에 아이는 다시 한 번 넋을 잃고서는 입만 뻥긋대고 있었다.

“처음 저 곡을 받았을 때는 무슨 이런 가사가 있나 싶어서 이입하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기분 알 것 같네요.”

어느새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보는 쥰코가 갑자기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아이는 넘어지듯이 쥰코와 가까워진다. 순식간에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에, 좀비였을 아이의 얼굴에 열이 오른다.

“사실 어린 애를 좋아하는 건 청자가 아니라 노래하는 나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홱 돌아서는 쥰코. 하지만 맞잡은 손은 놓지 않았기에 어느새 쥰코가 아이를 이끄는 모양이 된다.

“미즈노씨도 익숙해져야 할 것 같네요.”

저한테, 라고 덧붙인 쥰코는 즐겁게 쿡쿡 웃으며 익숙해져야 할 거리 안으로 아이를 이끌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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