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 밖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니지무라는 후즐근하고 목이 늘어난 흰티를 입고 아침 설거지를 하며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풍경이라고 하기에도 묘했다. 누군가는 그런 광경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낼지도 몰랐지만, 솔직히 니지무라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니지무라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그릇을 정리하고 자신의 좁은 집을 바라보았다. 이내 한숨이 나왔다. 비가 오는 일요일. 약속은, 없다.

*

그동안 주말마다 집을 비우느라 영 하지 못 했던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겨울 옷과 이불을 꺼내놓고 여름 옷과 이불을 바깥에 내어놓았다. 겨울철 침구류는 날이 맑을 때 세탁해서 말린 뒤 집어넣어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장마라고 해도 한달 내내 비가 내리는 건 아니니까. 좁은 공간에 짐이 늘어난 건, 뭐, 잊어버리는 것 보다는 낫겠지. 니지무라는 언젠가 땀에 젖은 겨울옷을 그대로 보관한 뒤 다음해 피어난 곰팡이에 난리친 날을 기억했다.

오랜만에 집 정리를 하니 버릴 것도 많이 나왔다. 주말에야 약속 때문에 줄창 나가 있었지만 평일에는 자러 돌아오니 당연한 이야기다. 니지무라는 날짜를 확인하고 쓰레기봉투에 꽉꽉 눌러담은 쓰레기들을 버리러 나갔다. 

"좋은 아침, 니지무라상."

"야마다상. 좋은 아침입니다."

쓰레기장에서 이웃에 살고 있는 똑같은 처지─독신 30대 샐러리맨─의 남자가 니지무라를 보고 먼저 인사해왔다. 반곱슬 머리가 특징인 남자로, 니지무라는 그의 어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담배 선택만은 같았기 때문에 얇은 벽 너머로 흘러 들어오는 담배 연기에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싶더니 여기서 우산을 쓰고 피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어쩐 일로 부자 연인이랑 데이트 안 하고 집에 있네."

"연인 아니에요. 후배입니다."

니지무라가 쓴 웃음을 지으며 걸어갔다.

"후배가 선배 만나면서 2인승 스포츠카를 타고 오나. "

남자 야마다가 낄낄 웃었다. 니지무라는 가타부타 말을 더 얹지 않고 웃으며 쓰레기장을 정리했다. 요 몇달 동안 금연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였던 모양이다. 하기사, 니지무라 자신도 금연은 하지 못 했지 않은가. 후배에게 그렇게 지적을 받으면서도. 니지무라는 담배를 피고 싶다고 생각했다. 

*

비가 온다. 비가 왔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오늘도 내리고 있었다. 니지무라는 자신의 침대 위에서 어젯밤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짙은색의 머스탱, 차분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붉은 눈동자, 머리 끝까지 올라왔던 분노,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장마 소식을 알리는 캐스터의 목소리.

"쯧,"

니지무라는 혀를 찼다. 열쇠를 내던진 건 자신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일을 진행시켜 나간 건 그쪽이다. 아니다, 정확히는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였나. 

니지무라의 중학교 후배 겸 직장 상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초연했었다. 그게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에게 무거운 짐을 건네주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니지무라보다 상사였다. 둘 만 있을 때는 학생 때처럼 편히 대해달라는 상대의 여린 모습에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이미 한번 실패한 니지무라의 속죄였다. 니지무라는, 니지무라 슈조는, 아카시 세이쥬로의 선배는, 절대로 아카시에게 짐을 지울 수 없었다.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걸 아카시는 알고 있었다. 아카시가 알고 있다는 걸 니지무라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카시는,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니지무라에게 내보였다.

"젠장…."

니지무라는 팔로 눈을 가렸다. 눈이 부셨다. 장맛비와 함께 들려온 10여년이 넘은 사랑 고백은 보답 받는 일 없이 빗방울과 함께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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