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김비언즈@kymbianz의 웹진 <언어와 삶>에 올린 저의 글을 백업했습니다. 


@Pepper Kym


여는 말

하나둘 벗어내고서야 무거운 줄 알게 된 허물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강렬한 사건들과 변화들인데, 제대로 하나의 글로 엮어 돌이켜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제 이야기를 먼저 남깁니다. 물론 저를 위해서도요. 



“허물 이야기” 

🌊김파도 (@justwomyn_xx1) 

안녕하신가요? 벌써 새벽이네요,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푹 덮어 쓴 채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단순한 인삿말로 들리지 않길 바라요. 당신이 안녕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첫 문단을 써봅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할 말이 너무 많으면 괜히 버벅거리게 되기도 하고, 대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르느라 주저하게 되잖아요. 김비언즈분들과 다음 소재를 정하며 "탈바꿈"이라는 키워드를 마주하자마자 떠오른 건 역시 탈코르셋이었습니다. 주제는 함께 정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지는 오롯이 각자의 재량에 달려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글은 어떤 부분에서는 겹치고 어떤 부분에 이르면 서로 이어지는 글처럼 보이기도 했지요. 내용에 대해서는 상의한 적이 없는데도요. 하지만 유독 저는 제 글에 탈코르셋에 관한 서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1,2회차 웹진 글을 쓸 때엔 3회차 주제가 탈바꿈이 될 줄도 몰랐으면서 그랬네요.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글로 옮기지 못한 걸지도 모릅니다. 열정으로 가득해 도리어 메마른 얼굴로 살아야 했던 여자들처럼요.

탈코르셋은 뜨겁게 화두에 오르기 시작한 지 몇 년이나 지난 활동인데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봐요. 예전에 비하면 한결 낫지만 여전히 괴상한 방식으로 폄훼를 당하는 건 예사고, 탈코르셋을 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역시나 탈코를 한 사람들에게 주로 닿습니다. 오독되지 않길 바라며 신중하게 써내려간 글은 좀처럼 퍼지지 않는데 아주 조금 삐끗하거나 거친 구석이 있는 발화는 금세 끌려나가 가위질당하곤 했지요.

그래서 억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실제로 공격당하는 동료들을 보면 화가 나요. 아마 저도 몇 번쯤은 돌을 맞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트위터에서 탈코르셋에 대한 이야기를 십수 번은 했을 텐데, 설마 아무런 비판•비난을 안 받았을까요. 하지만 비팔로워 알림은 꺼놓은지 오래고(다 켜두기엔 배터리 소모가 심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디서 욕을 먹어도 정말 모르기는 해요. 음, 빙빙 돌려 말하려던 건 아닌데 자꾸 다른 얘기를 하게 되네요.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아쉬운 건 많은 분들께 닿길 바라는 이야기들은 좀처럼 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탈코르셋을 하고 있는, 또는 이미 한 사람에게도 다른 디폴트인(탈코르셋을 한 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성혐오적인 규범을 벗고 스스로 인간됨의 기본값을 회복한 분들을 일컬어요. 여러 오해가 동반되어온 표현이지만 표현 자체의 문제는 아니겠지요.)의 경험담과 구체적인 생각들은 중요하게 와닿습니다. 탈코르셋을 모르거나 못하고 있거나 하지 않거나 탈코르셋에 분노하는 분들께는 더더욱 필요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탈코르셋 이전과 탈코르셋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그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더 많이 듣고 싶고, 더 많이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탈코르셋 운동이 워낙 시각적인 변화가 큰 운동이다 보니 만화나 그림, 사진은 무척 공유가 잘 되곤 했지만 탈코에 관한 개인의 경험담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어요. 사실은 저부터, 한 번도 제대로 기록해본 적이 없었네요. 트위터에 여러 번 단독 트윗으로 지나가듯, 또는 적은 타래로 몇 번인가 회고해봤을 뿐이군요.

툭 툭 건드리면 얼마든지 튀어나올 얘기들이 많을 텐데, 트윗처럼 흘러 사라지지 않을 방식으로 제 경험을 기록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을 위해, 그 전에 저를 위해서 '나의 탈코르셋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탈코르셋을 하기 이전의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돌이켜보면 접근이 수월하겠군요. 전 "옷 잘 입는다"라는 평가가 좋아 옷을 잘 입고 싶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이렇게 입어야지, 생각해왔던 차림들을 대학생이 된 이후로 조금씩 실현하길 즐겼어요.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만 해도 긴 단발 정도였던 머리카락은 계속 길렀습니다. 반곱슬인 사람이 머리카락을 어중간하게 단발로 자르면 옆으로 풍성해진다는 걸 아세요? 머리카락의 부피는 늘어나고, 긴 머리를 관리할 자신이 없어 단발로 유지해온 제 머리모양은 장난 어린 놀림의 대상이 되어왔었습니다. 친구의 놀림이었지만, 그 놀림이 달갑진 않았지요. 전 제 반곱슬머리를 싫어했거든요. 그 당시에는 눈치도 채지 못했지만, 네. 전 제 머리카락이 싫었습니다. 적당히 기르기만 해도 대충 '괜찮아 보이는' 직모도 아니고 좋은 머릿결을 타고나지도 못한 채, '예뻐 보이려면' 돈을 들여야만 하는 성가신 머리카락이 싫었습니다. 지금은 알아요. 제가 제 머리털을 싫어했기에 그 놀림이 상처로 다가왔었다는 걸. 그래서였을까요. 제 머리카락은 대학 시절 내내 들볶여졌습니다. 매직세팅을 하거나, 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며 한껏 상한 머리털을 자르고 또 기르고. 더위를 그렇게나 많이 타는 제가 한여름에도 머리를 묶지 않고 늘어트릴 때가 많았어요.

머리카락만 고생을 했을까요? 새내기를 지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동기들의 꾸밈이 더해졌고, 저도 자연스레 안경을 벗고 입어보고 싶었던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전 캐주얼한 옷들을 '간지나는' 핏과 적절한 색감으로 골라 입길 좋아하는 동시에 '러블리한' 옷을 입길 즐겼습니다. 전자가 주로 핏 좋은 오버사이즈 상의에 스키니/일자바지를 매치하는 패션이었다면 후자는 원피스로 대표됩니다. 옷을 '잘 입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어차피 입어야 하는 옷이라면 예쁘게 멋있게 입고 싶었어요. 종종 듣게 되는 옷 잘 입는다는 말, 점점 달라진다는 말이 기분 좋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귀차니즘이 심한 편이어서, 코르셋을 차던 시절에도 귀찮으면 대충 내팽개친다든지 화장을 대충만 한다든지... 하는 편이기도 했죠. 그맘때쯤에 탈코르셋 담론을 접했다면 당시의 제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옷을 차려입고 머리털을 기르는 건 자기만족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남자에게는 그때에도 관심이 없었고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 다니는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니, 정말 모든 게 자기만족이라고 주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족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무서운지.

귀찮아서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화장을 하지 않은 날, 그날의 저는 탈코를 했던 걸까요? 차려입지 않은 자신에게도 자기만족을 했을까요? 저도 저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알아요. 단 한 순간이라도 남의 시선에 괜히 졸아드는 기분을 느꼈을 겁니다. 외적 요소로 은연중에 무시받아본 상흔은 오래 남지요. 몇 년 전의 곱슬머리로 돌아가기란 끔찍한 일이었어요. 편히 다닐 때에도 일말의 불안을 품으며 주변을 종종 의식하곤 했습니다. 화장을 가볍게라도 하고, 또 그걸 지우고, 긴 머리털을 오래도록 감고-말리고, 내일 입을 옷을 미리 생각해두고 자면서 '시간을 절약했다'며 만족하고. 사실은 모든 과정을 지겨워 했으면서도 "난 귀차니즘이 심해서 가끔 후리하게 다닌다"라고 생각했어요. 귀차니즘이 진짜 심했으면 그 모든 일상적인 과정을 던져버렸을 텐데, 꼭 변명처럼 "원래는 이렇게 막 하고 다니지 않는" 나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건 누구를 위한 변명이었을까요.


Photo by. 세 번째 x, 2016

제가 가장 좋아했었던 제 머리카락 사진입니다. "부스스하게 붕붕 뜨기만 하는" "머리가 커보이는" "안 예쁜" 반곱슬이 너무 싫어 또 어느날 매직세팅을 하고 몇 개월쯤 지난 여름에 찍은 사진이에요. 제가 원하던 '자연스럽게 예쁜' 웨이브 머리가 나오던 날, 여행지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지요. 챠르르 물결치듯 어깨를 타고 등으로 흐르는 머리카락, 햇빛을 받아 빛나는 머릿결. 네, 예전에는 이 사진 속 머리카락 표현을 가장 좋아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머리털이 이런 모양일까요? 원래 곱슬인 머리카락을 지지고 볶아 위쪽은 펴고 아래쪽엔 웨이브를 주고, 염색을 하고, 또 시간이 흘러 머리털 끄트머리 쪽으로 가야 웨이브의 흔적이 나타나는 머리카락을 만들기 위해서는 십 만원이 넘는 돈과 최소 반 년이 넘었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데에 쓸 돈을 아껴 머리카락에 쓰느라고 아까워 죽겠다 불평하면서도 '자연스러워진' 머리가 너무 맘에 들어 휘발된 돈에는 생각이 미칠 겨를도 없었어요. 사실은, 저 사진이 찍힐 당시의 제 실제 머리카락은 사진 속 모습과도 달랐습니다. 컬이 거의 다 풀린 채 긴 생머리나 다름 없는 머리털을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저 사진만은 제 맘에 쏙 들도록 '예쁜' 모습으로 찍혔었죠. 실제 머리털 형태와도 달랐기에 더더욱 좋아지곤 했었던 저 사진은 제가 얼마나 제 머리털을 미워했는지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언제나요.

그나마 귀찮고 싫은 일은 안 하는 성미 덕에 졸업반이 되었을 즈음에는 머리카락과 입술 화장을 못 놓은 대신 다른 외적 요소는 지금과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다니곤 했습니다. 그때쯤엔 "와이드팬츠가 유행해서 다행이다. 사람들이 더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이 늘어서" 정도의 생각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당시에 유행했던 복식이 뭐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와이드팬츠, 슬랙스같은 옷이었다는 건 기억이 나요. 글쎄요. 탈코르셋 담론을 접한 건 언제쯤이었을까요? 처음 접했을 때, 별다른 반감 없이 담론을 받아들였었습니다. 매일 보는 미디어 속 여성의 모습이 너무 이상했거든요. 아니,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남성의 모습과 여성의 모습이 너무 달랐거든요. 수많은 미러링 이미지는 현실을 자각하고 담론을 수용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데도 실천하지는 못했어요. 드디어 안경을 되찾았지만 긴 머리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동그란 안경에 캡모자, 거기에 늘어뜨린 긴 머리털이 '귀여워' 보여 좋아했습니다. 입술 화장도 버리지 못했네요. 대학시절 내내 '자연스러운' 워터틴트를(자연스러운 화장품化粧品이라니!) 못 잃기까지 했습니다. 탈코르셋을 이해하고 받아는 들였지만, 온전히 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옷 탈코는 쉬웠어요. 이전에 입던 옷 스타일과 별 다를 것도 없었고, 별다른 위화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요, 길어야 제 얼굴을 가려주잖아요. 시선이 분산되는 긴 머리털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머리털에 손을 대기가 두려웠습니다. 이상할 것 같고, 후회하면 어쩌나 싶었어요. 이상하면 뭐 어때, 애초에 그런 모습이 뭐가 이상해-라고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냥 겁이 났어요.

제가 머리털을 잘라낸 날은요, 아주 더운 날이었습니다. 많이 더웠어요. 한국의 여름이야 별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 날씨잖아요. 밖에서 한참 돌아다니다가 더운데 이거나 자를까, 하면서 미용실에 갔습니다. 잘못 쓴 게 아니예요. 더운데 머리카락이나 자를까-같은 말을 일행에게도 했었거든요. 탈코로 자르는 게 아니라고 일부러 둘러댈 필요가 없는 상대였음에도 전 더위를 이유로 삼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탈코한다! 하고 머리털을 털어낸 뒤에 혹시 후회하면 섣불리 탈코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될까봐, 내 생각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또 겁을 냈던 걸까요. 아무튼 제 머리털이 처음으로 가벼워진 날은 참 충동적으로 왔습니다.


Photo by. 김파도, 2018

근데요, 참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커트를 했는데요, 손질이 끝나고 거울을 보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 고개가 너무 가벼운 거예요. 미용실 바닥을 보니 이렇게 무거운 줄도 몰랐던 머리카락들이 가득했습니다. 사진만 봐도 느껴지시겠죠. 잘라내기 전에는 무거운 줄도 몰랐던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가벼워진 머리, 아무 것도 얹혀 있지 않은 어깨. 그러고보면 그날은 여름 맞이로 사둔 쿨론 티셔츠에 여름용 슬랙스를 입은 날이었습니다. 탈유브라 상태였어요. 글을 쓰기 전까지 굳이 떠올려본 적이 없는 사실들이 떠오릅니다. 묘하게 벅차오르는 가벼운 감각이 좋아 트위터에는 #탈코르셋_인증 해시태그를 달고 전후 사진을 업로드했던 것 같습니다. 한 명에게라도 더 전시하고 싶었어요. 이래도 된다고, 또는 당신의 동료가 이렇게 늘어났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요. 탈코르셋 성공기를 보시는 것 같나요? 음, 네. 그게 그렇지가 않네요. 저는 그렇게 인증을 한 이후에도 입술화장을 못 놓았거든요. 제가 마지막까지 못 놓았던 코르셋이 뭐였는지 좀처럼 분명치가 않아, 떠올릴 때마다 다르게 회상하곤 했지만, 제 짧아진 머리털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안경과 입술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돌아다닐 때에는 안경을 안 꼈어요. 어차피 그냥 걸어다닐 때에는 눈여겨봐야 할 게 없지 않냐며 자기합리화는 기본이었죠. 필요할 때에만 안경을 꺼내들었습니다. 어디로 놀러갈 때에는 종종 입술 화장을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만 내 얼굴로 다니면서, 누군가를-친구를 만날 때엔 괜히 틴트를 챙겨다니곤 했지요. 제 '맨얼굴', 얼굴이 민망했습니다. 사실 전 조금 희한한 경우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나름의 탈코 후에도 저를 민망해 하면서 코르셋을 일부 주워입곤 했으니 여러모로 어설프다 싶은데, 탈코르셋을 내재화한 데에는 또 별다른 계기가 없었습니다. 제 입술을 부끄러워하는 제가 너무 웃겨서 틴트를 아예 들고다니지도 않으며 디폴트 모습으로 몇 개월 지내보니 제 모습에 익숙해지더군요. 남을 볼 때의 시선을 바꾸기란 훨씬 쉬웠는데도 저를 보는 시선을 정말로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도 어느순간, 제 눈이 그냥 눈으로 보였습니다. 몸의 상처 재생력은 안 좋은 편인데 얼굴 피부 재생력만 좋아서 약간 마음에 들지 않고, 팔 근육이 좀처럼 잘 붙지 않는 대신 하체는 조금만 운동해도 근육이 유지되는 체질이며, 후천적 사고로 특정 신체 부위가 조금 약한 편이지만 운동으로 보완이 가능하고, 자세가 영 안 좋아 시정이 꼭 필요한 몸. 위생을 체크하기 위해서, 외에는 거울을 잘 보지 않지만 어쩌다 봐도 별 생각이 안 들게 된 데에는-아마 이 날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역시나 여름이었어요. 머리털을 처음 자른 그 해의 여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날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가게에 갈 일이 있었거든요. 늘 입던 쿨론 티셔츠에 시원한 축구바지를 입고 나온 날이었습니다. 비가 올 줄 몰랐기에 우산도 없이 나왔다가 갑자기 비를 만났어요. 볼일은 이미 봤고, 집으로 가고자 우산을 사거나 어디에서 빌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몸을 흠뻑 적시는 비가 따뜻했습니다. 늦여름이라 그랬을까요? 비가 미지근했어요. 머리에 얼굴에, 몸에 흐르는 비가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면 습도 때문에 영 불쾌해지곤 했는데, 그 비를 직접 맞으면서도 훈기가 도는 거예요. 예전엔 비가 조금만-아주 조금만 내려도 우산을 썼거든요. 렌즈를 낀 날에는 더더욱 그랬고 보통은 화장때문에-젖으면 말리느라 고생할 게 뻔한 머리털때문에라도 우산을 썼을 텐데. 저에겐 우산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원했어요. 비는 미지근했고 바람은 상냥하게 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뒷목에 닿던 바람이 잊히지 않아요. 비가 몸을 타고 흐르는데, 비가 흘러내리는 바로 그 자리에 제 팔이, 제 무릎이, 제 발목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에너지가 더 커져 그냥 우산 없이 그대로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돌아온 집에서- 전 감기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정도 비가 아니어도 여름에 비를 그냥 맞으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인데 그 많은 비를 맞고도 몸이 멀쩡했어요. 꼭 반기는 것처럼요. 어쩌면 제가 제 몸을 감각한 첫 번째 순간이 그 날이었을까요. 제 몸은 항상 저와 함께 있었는데, 바로 그 날이 되어서야 제 몸을 알아준 거예요. 아마도 그 날부터 천천히 새로운 눈, 보는 '사람'으로서의 눈,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사람은 여성입니다) 눈이 커져나갔던 것 같습니다.

바로 작년에 외모(디폴트인 분의 눈빛)로 인해 다른 여자에게 끌렸던 전적이 있기에 타인에게도 전과는 전혀 다른 눈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기에 약간 민망하긴 합니다. 전 지금도 잘 모르겠거든요. 코르셋과 무관하다 해도, 외형으로 인해 타인에게 매력을 느껴도 될까? 그런 일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가? 타인의 자유로운 표정과 눈에 담긴 의지, 애정에 끌리는 것과 남의 얼굴에 꽂히는 건 구분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을 내려줄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 판단의 자격은 어떻게 보장되나? 쓸데없는 고민인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답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답을 모른다 해서 더 망설이지는 않으려고요. 답을 알 만큼은 허우적대봐야지 싶어요. 뭐 답이 "다 안 괜찮고 넌 쓰레기임"이라고 나오진 않겠죠? 아님 말고요.

아, 요즘은 5~6주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 가요. 여남 커트비가 동일한 곳을 찾았지요. 셀프 커트를 하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사정상 차라리 몇 주에 한 번 미용실에 앉아 있는 편이 더 싸게 먹히는 상태거든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방문을 자제해서, 머리털이 약간 길어지는 바람에 병지컷 직전이 되기도 했네요. 탈코 후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을 보는 시선과 내 신체에 대한 인식 측면일 겁니다. 아, 머리 감고 말리는 속도가 허버허버 빨라져서 아주 만족스러워요! 본질에 관한 얘기는 아니지만 굉장한 장점이긴 해서 덧붙여봅니다.

음, 네. 제 껍데기는 참 많이 달라졌어요. 시선도 달라졌지요. 그러면 제 내면은 어떨까요. 탈코르셋은 외적 코르셋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잖아요, 제 속은 탈코르셋을 마쳤을까요?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해온 내적 규범을 배제하고, 절 책망하고 부정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는 제가 되고 싶은 존재에게 마음을 주곤 했습니다. 음, 설명이 필요한 말이죠. 대학 때엔 뭐만 하면 춤을 시키니 혹시 제가 걸릴까봐 무서워했어요. 전 춤을 못 췄거든요. 재밌게 못 추는 것도 아니라서 혹시나 제가 아무렇게나 움직이면 그 순간의 분위기가 망가지고 사람들이 저를 재미없는 애로 생각할까 걱정했어요. 사실 걱정이 되면 방지를 위해 뭐라도 해봤어야 하는데, 춤 출 일 자체를 없앨 생각도 춤을 연습해볼 생각도 못한 채로 그저 불안만 품었었습니다. 춤을 연습하지 못한 건 '춤을 못 추는' 스스로를 실시간으로,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어설픈 동작을 거울로, 내 눈으로 직접 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실은, 지금도 생각합니다. 춤을 좀 많이 못 출 수도 있는 건데, 힘없는 풍선인형처럼 보이는 절 생각하면 지금도 눈 앞이 아득해져요... 아직 남아 있는 자기혐오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이전에도 지금도 춤을 추기를 기피하고 있으며 전이나 지금이나 춤 잘 추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일까요? 춤 잘 추는 사람들의 자신감과 에너지를 사랑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실은, 3년 전쯤부터 춤 한 곡은 마스터해야지 결심했어요. 근데 아직도 춤 추는 사람을 멋있다며 좋아할 뿐 연습할 춤조차 고르지 않았습니다. 제 춤동작.. 춤이라고 해도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휘적임을 언젠가는 직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유체이탈 화법인가요? 아직은 제가 제 몸을 오롯이 감당할 준비가 안 됐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해둬요. 2020년 중반이 되어도 춤을 추지 못하던 김파도는 실제 춤을, 또 사람들과 비유적으로 춤을 출 수 있게 될 거라는 뜻으로. 그렇지 못했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해두겠습니다.

아, 그래요. 저는 또 어떤 사람을 좋아하냐면요,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요. 전 이미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다면 정말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거든요. 오히려 면대면 관계에서는 괜찮은데(그러나 면대면일 경우 상대를 제가 많이 좋아할수록 뚝딱거립니다^^), sns 상에서-또는 메신저를 통해서는 정말. 정말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에요. 말을 걸었을 때 민망한 반응이 돌아올까봐. 답하고 싶게끔, 재밌고 매력적으로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호의적인 반응이 오지 않는다면 혹시나 괜히 혼자 상처나 받고 쭈굴거릴까봐요. 제가 별다른 호감을 갖지 않는 상대에게는 말 걸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굳이 제 자원을 쓰기 귀찮아서 말을 안 걸지만 제가 어느정도 친밀감과 호의를 느끼는 상대에게는 수많은 불안으로 다가가지를 못하곤 합니다. 모든 연은 이어가려는 사람이 있고 그걸 받는 사람이 있기에 이어지는 거잖아요, 근데 벽을 치고 살면 제가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에 받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았기에 내가 주는 이 마음이 상대에게 달가울까 가늠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을 어떤 형태로 주고받을지, 이걸로 충분할지, 오히려 부담스러워만 하지는 않을지, 이걸로 충분할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게 맞을지, 혼자 급발진해서 앞서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쓸 것들은 너무 많았어요. 아는 것도 참 많은데 말이죠. 내가 무언가를 상대에게 주었을 때 상대가 제 의도를 곡해하지 않고 이해해주며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과 감정을 돌려줄 거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습니다. 기대와 다른 결과를 감수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며, 당장 무언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실패에 천착할 필요 없이 그냥. 조금 더 가볍게, 시도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다시 한 번 주고받기도 해보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보면 되는 거죠. 알기는 참 잘 아는데, 그 아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전 용인되어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용인되고 환대받아본 경험, 실수나 잘못을 하고 용서받아본 경험, 만회할 기회를 부여받은 경험, 어설픈 농담에 호의를 가득 담은 얼떨떨한 반응이 돌아와본 경험,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았던 경험. 그런 경험을 할 만한 환경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을 갖기 전에 일단 "잘못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환대를 받는 것보다는 잘못을 하지 않는 게 더 쉬운 줄 알았어요. 잘못이 아닌 것을 잘못이라 여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요. 도덕이나 집단의 내재율에 대한 강박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전 저를 참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미움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군요. 저는 참 많이도 저를 탓했습니다. 제가 가진 공포를 직시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제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도 했어요. 너는, 말도 먼저 안 거는데 당연히 친구가 더 안 생기지. 친구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외로워하는 건 이상한 거지. 제 욕망을 위해 행동하기보다는 자책하는 게 쉬웠으니까요. 제 욕망 앞에서 한발자국 뒤로, 고개를 숙이는 짓도 너무 쉬웠고요. 맞아요. 전 제 공포를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 욕망을 외면해왔습니다. 제 욕망을 직면하고, 욕망의 좌절을 겪는 게 가장 두려웠어요.

여자들은 타협이라는 이름의 포기부터 익히곤 합니다. 날 누르는 방식으로,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면서요.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타협하기도 지겨워졌어요. 굳이 뭔가를 한다면 조율 내지는 협상을 할 때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몸글(2020년 7월 5-6일, 이민경 작가님이 진행하신 강연을 말합니다) 후기와 몸글비언들의 말씀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발이, 다리가 땅에 단단히 붙어 있게 됐다면 이제는 떼어서 새로운 곳에 갈 시간이구나-란 생각도 했네요. 네, 생각만 하기도 질려서 이젠 진짜로 뭐든 해보고 있습니다.

자존하되 고립되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했었지만 되고 싶은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내는 게 나았겠지요. 언제까지나 우회만 할 수는 없고, 음, 2020년은 나아가기에 좋은 해잖아요. 이정도 의미 부여는 괜찮죠? 괜찮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모든 여자는 환대의 경험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마치 모두가 여성인, 분명 혈연밖에 못 들어온다면서 아무 연도 안 닿은 두 사람(시청자참여자분들)을 일원으로 받아들인 우정리처럼, 선을 넘어도 다음 선을 내어주던 그 여자들처럼, 줄곧 다음 기회를 허락하던 그 여자들, 깎여나가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존재하는 그 여자들이 사는 곳처럼. 여자들이 환대받길 바라서,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에요. 코시사를 만나고, 우정리를 만나고, 김비언즈를 결성하고, 여자들과 조금씩 마주한 지도 한 달쯤 지났을 때부터 아주 조금씩, 아주아주 조금씩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받고 싶은 걸 일단 남에게 주려는 게 보통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여자를 환대하고 아주 약하게나마 밀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먼저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니면, 말까요? 에이, 아니어도 말기는 싫어요. 여자가 하나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사람이 둘이면 이렇게 세상을 나눌 수 있잖아요. 지금처럼요.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고 떨리지만, 아주 많이 달라진 지금도 참 불안한 것들이 많지만, 제가 저와 관계맺는 방식을 달리 했듯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새로운 길을 열심히 걷다보면 긴장이 설렘이 되는 날도 올까요. 제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지금도 사실 좀 설레게 다가옵니다. 용기는 두렵지 않은 마음이 아니라 두려워도 일단 해보는 데에서 발한다던데, 두려움에 자책을 느끼기보다 두려워도 해보려고요. 네, 지금 당장이요.


👣 후기 

원래 생각해둔 것과는 좀 다른 글이 되었네요. 예상을 벗어나는 작업은 늘 즐겁습니다. 맘처럼 되지 않았는데, 또 마음에 드는 글이 되었다니 좀 이상하긴 하네요. 전 '이상한' 여자들이 참 좋아요. 제 이상한 결과물도 여러분께 즐거운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애정을 담아, 7월 11일 토요일 저녁 7시 반 자빱tv에서 <토깽뎐> 방송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보통은 토크 후 8시 반 정도부터 시작될 거예요. 갑작스러운 홍보인가요?



https://www.notion.so/7-93a2c1fa9b0c4b8e927bf95e4e2fa247

언어와 삶 03호 페이지에도,

https://twitter.com/Kymbianz/status/1271381741517672449?s=19

김비언즈의 트위터에도 놀러 오십시오.

7월 29일 기준 다섯 가지 주제로 웹진이 발행된 상태이며, 팟캐스트 <일단 말하자 여자들아!>도 벌써 세 편이나 올라와 있으니 즐겁게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글로 세상을, 또 당신들을 만나는 여성주의자이자 레즈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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