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구지?"

최고위 천족임을 뜻하는 3익의, 다른 천사와는 다른 검은색의 아름다운 날개. 그와 어울리는 칠흑의 머리, 금빛 눈동자. 모든 게 사랑스러운 당신. 그런 당신을 보고 나는 그저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


"검은 날개 천사님!"

다짜고짜 말을 거는 인간의 아이를 보며 칠흑의 머리의 천족은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는 그 만큼 자신에게 다가왔다.

"... 넌 누구지?"

"이 산 아랫마을에 사는 길버트라고 해요, 천사님! 친구들이나 부모님은 길이라고 불러요!"

이 산 아랫마을이 얼마나 많은데 이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건지...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금빛 머리의 순진무구한 아이는 태양과도 같아 보여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천사보단 천족이다만... 안 무섭나?"

"왜요?"

"다른 자들은 하얗다만."

천족 중 검은 날개의 천족은 신성력이 아닌 마력을 사용하는 유일한 자들. 그러기에 같은 천족 사이에서도 꺼리며 멀리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멋있는데요! 하얀 천사님들도 멋있지만 까만 천사님도 멋있어요!"

순수한 아이의 말은 그에게 있어 햇빛처럼 따스하게 느껴져, 언제 인상을 지었냐는 듯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고맙구나. 길버트라고 했던가?"

"네!"

"그래, 길버트. 친애의 의미로 날 카일이라고 불러주렴."

검은 날개의 천족들의 장, 카일은 길버트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길버트는 기쁘게 그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


"그랬던 어린 녀석이."

카일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는 길버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도 둘은 자주 만났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카일의 힘으로 은폐해둔 동굴을 아지트 삼아 침대 같은 걸 뒀고 그 위에서 사랑을 나누며 뒹굴었다.

독점욕으로 몰래 키스 마크를 남기면 다음에 만났을 때 들킬 뻔 했다며 투정 부리는 게 어찌나 귀여운지. 그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카일은 알고 있었다. 이 생활도 곧 끝이라는 걸.

이래봐도 한 종족의 위정자의 위치에 있는 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길버트는 곧 세상을 구할 여행을 떠나야 할 운명이었다. 세상은 지금 마족에게 위협받고 있으니까. 그러기에, 헤어져야만 했다.

"내 첫 동료는 당연히 카일이지!"

용사로 결정되고 여행을 떠나기 전 날, 길버트는 당당히 카일을 섭외했다. 이래 봬도 위정자인 자신을 당당히 스카우트하는 연인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나는 오래 자리를 못 비워. 그러니 동료는 될 수가 없어."

"가끔 갔다 오면 되잖아? 난 카일 없는 여행은 생각도 못 해! 게다가 이런 몸으로 만들어두고는! 같이 안 가면 밤마다 다른 녀석들로 내 몸을 위로할거다?"

"귀엽지만 목숨을 건 협박이군 그래?"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독점욕이 강한 카일이 질 수 밖에 없는 협박이었다. 길버트를 침대 위로 쓰러트린 카일이 위로 올라타자 길버트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 정도는 돼야지 움직일 거잖아?"

"정답이야, 나의 귀여운 길."


*


그렇게 둘은 여행을 떠났다. 엘프 동료도 생겼고, 다른 마법사 동료도 생겼다. 도둑인 동료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길버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일이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

다양한 사람들을 돕고 동료로 합류하고 도움을 받으며 마왕성까지 도달한 용사일행은 마왕을 쓰러트렸다.

그렇게 세계를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길버트는 웃음을 잃었다.


마왕은 강했다. 그리고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서는 무리였다. 육체를 죽여봤자 마왕은 부활을 하니, 본질적으로 죽이기 위해서는 공간과 공간의 사이, 시간과 시간의 사이. 혼돈의 틈을 가야 했지만 아무리 용사라 해도, 엘프라 해도, 드워프라 해도 그 곳은 무리였다.

오직 단 한 명, 천족의 장을 맡은 카일을 제외하고는.

천족과 마족은 서로의 대척점. 그 둘만이 유일하게 혼돈의 틈을 갈 수 있었다. 물론 그 둘도 멀쩡 할 리가 없다. 그 곳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일조차도.

그래도 카일은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육체를 잃은 마왕을 데리고 혼돈의 틈으로 들어갔다.

남은 건 그의 애검이자 그의 반신이나 다름 없는 검 한 자루 뿐.

그래서 길버트는 다짐했다. 그를 되찾아오기로. 그러기 위해 그의 검을 휘두르겠다고.

"미쳤어?"

엘프 동료가 그를 말렸다.

"천족의 검은 말 그대로 반신이야. 주인 외의 자가 만지면 죽는다고. 천족의 생명력은 강하니까 인간의 생명력따위 한 번에 먹어 치워버려. 그래서 죽어. 그런데도 휘두르겠다는거야?"

"검이 있는 한, 그는 죽지 않았으니까."

"미치겠네. 그걸 그가 바랄 거라 생각해?"

"상관 없어."

길버트의 눈을 본 엘프 동료는 흠칫했다. 여행 내내, 그 어떤 곤경에 처해도 좌절하지 않고 빛나던 그의 눈동자엔 빛이 사라져 있었다.

"내 걸, 되찾아 올거야."

그 말을 남기고 길버트는 검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


검을 휘두를 수록 자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게 느껴졌다. 그나마 그와 몸을 섞은 덕분일까? 그래도 버틸만 한 것 같았다. 마족령을 휘저어 가며 혼돈의 틈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자신이 버틸 수 있을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그러기위해 자신을 방해하는 마족들을 전부 죽였다.

그들의 피를 이용했다.

되찾는 건 단 하나. 사랑하는 연인.

"넌 누구지?"

최고위 천족임을 뜻하는 3익의, 다른 천사와는 다른 검은색의 아름다운 날개. 그와 어울리는 칠흑의 머리, 금빛 눈동자.

아아, 되찾았다. 비록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 눈동자는 어릴 적, 자신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눈빛이었지만, 상관 없었다.

"어서...와..."

몇 년 만일까.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는 건. 그 말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길버트는 쓰러졌다.


그런 그를 본 카일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피었다. 어서와라니. 같은 천족조차 배척하는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할 관계의 존재가 있었던가?

"...당초에 왜 내 검을 가지고 있지?"

천족의 검은 자신의 반신. 그리고 일종의 기억 저장장치였다. 그러기에 품에서 떨어트리지도 않고 떨어트린적도 없는데 그 검을 처음 보는, 하지만 왠지 그리운 느낌의 인간이 가지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와 쓰러진 인간의 생사를 확인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두려워 하고 있다고?"

어째서?

이 인간의 생사를 확인하는게 왜 두려운 것인가. 살아있으면 운이 좋은 것이었고, 죽었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천족의 검이니까.

떨리는 손으로 코 밑에 갔다 댔다.

숨은, 쉬지 않았다.

"아..."

그걸 인지한 순간 가슴이 아팠다.

시야가 흐려지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부짖고 싶어졌다.

어째서지. 그걸 알기 위해 카일은 검을 잡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를 끝까지 기억해주지 못했다. 사랑했다면서, 잊어버렸다.

혼돈의 틈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가 버렸고, 동시에 소중한 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마족령 중 유일하게 마족 외의 자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곳 에는 한 사람의 묘가 있고,  그곳을 지키는 검은 날개의 대 상위 천족이 있다.

묘를 건들지 않는 이상, 천족은 적대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친애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마족령을 탐험하는 자들이여, 그 곳을 소중히 여겨라.

당신의 목숨이 중요하다면.

공밀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