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는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묵색 가죽 위로 은회색의 금속 테두리가 날카롭게 빛을 쪼갰다.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초침. 시계는 막 21시 37분을 가리켰다. 오이카와는 인이어를 고쳐 끼웠다.


곧, 사신이 찾아온다.


지지직, 기계음 뒤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이카와 씨.

“네네, 오이카와 씨입니다.”

-대답은 한 번이면 됩니다. 타겟이 10번 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진행 속도 및 이동 패턴으로 봤을 때 약 5분 20초 후 도착합니다.


뻣뻣하긴. 오이카와가 작게 웃음을 흘린다.


“걱정하지 마. 오이카와 씨를 긴장시키는 건 토비오밖에 없으니까.”


언뜻 듣기에 밀어에 가까운 말은 한 점 과장도 없는 진심이었다. 그가 일 년째 짝사랑 중인 그의 전속 오퍼레이터, 카게야마 토비오는 걸어다니는 (사망) 플래그 마스터다.




능력자들은 능력이 발현되기 전엔 눈에 띄게 불안정해진다. 어떤 사람은 몸을 크게 앓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통제되지 않은 능력이 폭주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빈번히 있었다. 이러한 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미발현 능력자들을 찾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그들을 철저한 보안 하에 관리해왔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 기밀 단체의 엘리트 요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후배인 카게야마 토비오로 말하자면.


“오늘 총은?”

-랩의 신작입니다.

“그립감은 괜찮은데 말야.”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 그 총을 뛰어넘는 무기는 지구상에 없으니까요. 조정도 완벽합니다.

“토비오 쨩, 지금 또 한 건 한 거 알아?”


오이카와가 총에서 탄창을 빼냈다. 아니나 다를까, 탄창이 비어있다. 랩의 체크는 늘 완벽한데, 토비오 쨩,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평소엔 말수도 적으면서 녀석은 임무 때만 되면 이렇게 쓸데없는 말로 플래그를 마구 꽂아댔다. 지부의 연구원은 이 카게야마의 능력을 두고 발현 전의 반동이라고 설명했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사망 플래그를 뿌려대는 동료와 함께 임무에 나서는 요원의 마음을 생각해 보자. 카게야마는 이론의 여지 없이 특출난 인재였으나 이대로 현장에 투입시킬 순 없었다. 당장 범죄자를 잡기도 전에 요원들이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으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게야마의 반동은 유독 길게 이어졌다. 이 대목에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등판하게 된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최정예 엘리트 요원, 통칭 럭키 가이, 실수로 폭탄을 떨어뜨려도 유전을 발굴해내는 남자. 행운의 여신의 총애를 받는 이 근사한 미남은 카게야마 토비오를 감당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부탁이네. 카게야마 군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건 자네뿐이야.’


오이카와로 말하자면, 두말 없이 승낙했다. 더럽게 귀여운 후배 골려주기엔 이만한 기회도 없다 싶었다. 근데 그게 사랑이었구나, 하하. 훈련소 동기인 이와이즈미를 상대로 주정이란 주정은 다 부리며 테이블에 이마를 찧었던 게 딱 9개월 전의 일이다.


둘은 사적으론 자석의 동극 같은 사이였으나 일적으로는 합이 매우 잘 맞았다. 원체 개인 스펙이 출중했던 것까지 더해 현재에 이르러선 명실상부한 지부의 골든 콤비다. 오이카와를 설명하는 화려한 수식어 뒤로 플래그 분쇄기라는 별칭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덤이었다.


“우리 천재 후배님 실력 다 녹슬겠네.”

-금방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어련하시겠어.”


오이카와는 정장 재킷의 안주머니를 뒤졌다. 자고로 요원의 정장이란 도X에몽의 주머니 같은 거다.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역시 오이카와 씨는 운이 좋다니까.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탄창을 총신에 끼운다. 오늘의 임무는 단순히 타겟에게서 물건을 되찾는 것뿐이지만 그의 오퍼레이터는 한때 사신이라는 이명을 달았던 카게야마 토비오다. 아무리 만전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 오이카와 씨, 27번 도로에서 타겟 접근 중입니다. 5시 방향, 100m, 95, 90…….

“네네, 갑니다.”


열 걸음쯤 물러선 오이카와가 발목을 풀었다. 카게야마가 50을 말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도움닫기에 들어갔다.


-30, 25,


그는 타이밍에 맞춰 난간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통쾌한 발차기가 타겟의 등을 가감없이 가격했다. 끄헉,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사내가 인적 없는 골목에 나뒹군다. 백 점 만 점에 이백 점짜리 낙법을 선보인 오이카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한 마디 말은 그의 묵직한 일격보다도 효과적이었다.


-해치웠나?

“토비오, 그거 플래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타겟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 오이카와 씨 혹시 살 빠지셨습니까?

“상대가 완충 조끼 같은 거라도 입고 있었나 보지!”


카게야마라면 없던 완충 조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페어의 기적 같은 능력을 이렇게 확인하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오이카와는 달아나는 타겟을 향해 허리춤에 꽂혀있던 여분의 총을 냅다 던진다. 손잡이가 뒤통수에 깨끗하게 명중했다. 그러나 후배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연타를 날렸다.


-이번에야말로……!

“토비오 쨩, 조용히 좀 할래?!”


남자는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났다. 쟨 무덤에 누운 빌런도 부활시킬 애야.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고 타겟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팔을 꺾고 등을 누르는데 인이어에서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마지막,

“그만!”




오이카와는 팔짱을 낀 채 카게야마에게 턱짓을 했다.


“할 말은.”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또.”

“…….”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었다. 카게야마가 벌 서는 아이처럼 그 앞에 서있었다. 주변에 앉은 오퍼레이터들은 이 쪽으론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오이카와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늘상 되풀이되는 광경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오이카와가 성대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토비오 쨩은 나아진 게 없네. 자, 따라해 봐! ‘꺄~ 오이카와 씨, 오늘도 최고로 멋있었습니다! 역시 토비오 쨩의 구세주에요!’”

“으윽…….”


카게야마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한다. 오이카와가 키득거리며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길쭉한 검지가 카게야마의 입술을 가리킨다.


“아까 전까진 잘만 말하더니 요 입이 왜 딱 붙었을까?”

“그건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정말 오이카와 씨는 피곤해 죽겠어요. 토비오 쨩이 보통 무거운 짐이 아니라서.”

“으……. 으이카아 씨, 으늘드…….”

“어금니 안 떼?”

“……젠장.”

“어쭈? 지금 뭐라고 한 걸까, 이 더럽게 귀여운 토비오 쨩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목에 팔을 감곤 있는 힘껏 뺨을 잡아당겼다. 아흡이하! 반사적으로 반격하려는 팔을 붙잡으며 오이카와가 혀를 빼쪽 내밀었다.


“대련실 밖에서 대련하면 징계거든요, 바보 같은 토비오 쨩!”


얄미운 말이었으나 어조엔 웃음기가 짙었다. 카게야마는 볼 수 없었지만 한껏 휘어진 다갈색 눈 또한 비슷한 온도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동료들이 오이카와의 괴롭힘 아닌 괴롭힘에 굳이 말을 얹지 않는 또다른 이유였다.




오이카와는 노골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상관 앞에서 동요를 내비치다니, 그로선 매우 드문 일이다.


“아니, 합동임무요? 저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토비……, 카게야마랑 같이 일하기 힘들 텐데요.”


말이 힘들다지 불가능이다. 동료들의 탄환을 죄다 불발탄으로 만들고 폭탄의 안전핀을 죄 사라지게 했던 마술사 같은 솜씨를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없을 텐데. 아니, 어쩌면 이건 그들을 세상에서 말소시키기 위한 상부의 음모가 아닐까? 상사는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합동작전이지만 카게야마 군과 연락을 취하는 건 자네뿐이네.”


알잖나. 요즘 인력난이 심한 거. 게다가 이렇게라도 임무의 폭을 넓히는 건 자네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네.


미끈한 얼굴로 준비해둔 대사를 읊는 상사를 보며 오이카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켜야했다. 커리어라니. 이직할 곳도 없는데 쌓아서 퍽이나 득이 되겠네요.


토비오는, 분명 좋아할 것이다. 단조로운 임무에 질려하는 것 같았으니까. 어차피 상부의 제안은 곧 결정사항이다. 오이카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 듣고 있습니다.”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카게야마에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쉬었다. 소풍 갈 날짜를 받아놓은 애가 따로 없었다.


“너 너무 흥분하면 반동 능력이 폭주할 수도 있다고. 알아 들어?!”

“압니다! 흥분 안 했습니다!”

“콧김이나 넣어두지 그래?”


오이카와는 눈썹을 밀어 올리면서도 속으로는 ‘진짜 귀여워 죽겠네!’를 연호하며 탭댄스를 추는 제 심장을 다잡았다. 단언컨대 엘리트 요원의 귀감이라 할 만했다.




디데이는 생각보다도 빨리 다가왔다. 전 날까지도 몇 번이나 동선을 확인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얄밉게 말했다.


‘그래봤자 또 토비오 쨩이 돌발상황 만들 거잖아?’

‘……그러니까 더 제대로 봐두고 싶습니다.’


험상궂지만 확실히 풀이 죽은 얼굴에 오이카와의 가슴이 따끔거린다. 진짜 얜 손 많이 가고, 눈에 밟히고, ……좀 예쁘고. 그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토비오 쨩한텐 슈퍼맨 오이카와 씨가 있으니까 조금 못해도 괜찮지 않아?’

‘저도 반동만 아니면 잘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거기가 아니거든?! 왜 이런 플래그만 꺾는 거야? 애초에 ‘때린다면 꺾일 때까지’는 오이카와 씨 좌우명이거든?!’


……결국 한참 으르렁대다 밥 먹으러 갔다. 그래도 어제 에비동 먹는 토비오는 귀여웠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인이어에서 어느새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카와 씨.

“네네, 토비오 쨩의 슈퍼맨 오이카와 씨에요.”

-……작전 개시까지 30분 남았습니다.

“토비오는 여전히 분위기를 못 맞추네.”

-……걱정하지 마세요. 다같이 힘을 모으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겁,

“거기까지!”


옆에 있던 동료들이 그를 힐끔거린다.


“지금 카게야마 요원이 뭐라고 했습니까?”

“평소처럼 사망 플래그 꽂는 중이지.”

“오이카와 씨도 대단하시네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얼굴에 오이카와는 욱하고 치밀어 오른다.


“뭐, 오이카와 씨는 초 럭키 이케멘이니까! 토비오 정도의 패널티는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네? 뭐…….”

“게다가 내 오퍼레이터는 더럽게 귀엽긴 하지만 또 짜증날 정도로 유능하거든.”


동료가 당혹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그를 쳐다본다. 아, 저질렀다. 내 완벽한 이미지. 그러니까 누가 내 후배더러 뭐라고 하래?


-……오이카와 씨.

“어라, 토비오 쨩. 들렸지? 혹시 감동해서 울고 있어?”

-아니요.


여느 때처럼 무뚝뚝한 단답. 오이카와의 이마에 슬그머니 핏대가 선다. 플래그 분쇄기는 내가 아니라 쟤야, 쟤.


“뭐. 동선? 장비? 아니면 긴급 공지?”

-아뇨. 저 사실 할 말이 있습니다.

“응?”

-오이카와 씨. 이번에 돌아오시면, 저랑…….


오이카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아니 잠깐, 조금 갑작스럽지 않아? 물론 오이카와 씨는 진즉부터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정신이 혼미해서 말을 막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사망 플래그만은 뽑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제발 꽂아줘, 토비오!!


그때였다.


‘쿠쿵!’

-약 5분 거리 22번 도로 초입 폭발 발생했습니다. 고의적 테러 가능성 농후.

“아악! 진짜!”

-본부의 인원으론 대처가 지연됩니다.

“내 땜빵은?”

-방금 두 팀 출발했습니다.


오이카와가 이를 악물고 장갑을 고쳐 꼈다. 쟨 진짜 내가 슈퍼맨인 줄 알지. 이 맹랑한 후배는 유능하고 잘생긴 오이키와 씨가 기대에 부응해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모를 거야.


“너 돌아가서 두고 봐.”

-……네. 저희 꼭 살아서 만나요, 오이카와 씨.

“야!”




오이카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모르긴 몰라도 퍼스널 레코드를 갱신했을 게 분명하다. 마침내 익숙한 오퍼레이션 룸의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이카와는 숨을 몰아쉬며 그것을 힘껏 밀어젖혔다.


“토비오!”


평소보다 한층 대단한 박력에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그러나 그는 곧장 토비오를 향해 다가갔다. 타이를 끄르며 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 씨?”

“너 뭐야.”

“예?”

“아까 그거! 한다던 말!”


그제야 카게야마가 아, 하며 입을 뗀다. 진짜 별 거 아니기만 해 봐, 토비오. 오이카와 씨가 설마 설마 하면서도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그런데 카게야마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눈에 띠게 시뻘건 게, 쟤 설마 열 있나? 오이카와는 황급히 장갑을 벗곤 카게야마의 이마를 짚었다.


“토비오, 너 혹시 열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뭐야. 너 엄청 뜨거운데.”


오이카와는 앞머리를 넘기고 그 자리에 제 이마를 갖다대려 했다. 카게야마가 그를 황급히 밀어냈다.


“그, 그만 해주세요!”

“뭐?”


오이카와의 손이 허공에 우뚝 멎는다. 고개를 돌린 카게야마는 바닥만 쳐다보고 있다. 명백하게 난처해하는 눈이 새까만 앞머리 아래서 흔들리고 있었다.


심장이 발치까지 떨어진다. 설마 제 마음을 알고? 언제부터? 그럼, 하려던 말이란 게…….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거절은 그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야 하는데.


“……토비오. 너,”

“저 발현했습니다.”

“뭐?”


예상치 못한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크게 떴다. 카게야마가 그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현장에 나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말씀드리려고…….”

“아, 그래. 그런 거구나.”


오이카와는 무심코 가슴께를 짚으려던 손을 다잡았다. 안도했다. 표정에 다 드러난 건 아니겠지. 그리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겼을 때 카게야마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 리고 진짜 그만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눈앞이 깜깜해지고 발밑이 무너졌다. 변명할 여지도 없이 명백한 실연이었다.


그때였다. 카게야마가 말했다.


“아닙니다.”

“……뭐?”


카게야마는 여전히 시뻘건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오이카와 씨가 생각하는, 그, 거 아니라고요.”

“잠깐만. 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카게야마는 귀까지 빨개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쳤다.


“너, 너,”


오이카와는 입을 턱 막고 비명을 내질렀다.


“너 설마 마인드 리더야?!”


카게야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두 손을 뻗어 귀를 막았다. 귀로 듣는 게 아니란 걸 알고는 있지만 불가항력이다.


“야, 야, 야! 너 듣지 마!”

“들리는 걸 어떡합니까! 저도 발현한 지 얼마 안 돼서 조절이 안 됩니다!”

“너, 너 뭐 들었어!”

“아까부터, 조, 좋아한다고 계속, 계속,”

“아아악!”


오이카와는 이번엔 귀 대신 후배의 입을 막아버렸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시간을 돌리고 싶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행운의 여신님은 오이카와 씨의 편이잖아?! 한참을 바둥대던 카게야마는 마침내 손을 뿌리치는 데에 성공한다. 그가 씩씩거리며 외친다.


“숨막힙니다!”

“나도 숨막혀!”


둘은 선뜻 말을 못 꺼내고 서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툭,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오퍼레이터가 보였다. 그제야 오이카와는 좌중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쏠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일이나 해!”

“오, 오이카와 씨 심박수 평상시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입니다. 70, 71, 73,”

“누가 너더러 일하래?!”


오이카와는 머리를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망했어, 전부 망했어……. 평생치 행운을 다 써버린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쟤랑 밥이나 좀 더 많이 먹어놓을 걸. 좌절한 오이카와의 앞에 카게야마가 쭈그리고 앉는다.


“오이카와 씨.”

“왜…….”

“그, 저, 저는,”


오이카와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렸다.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저만큼이나 상기된 카게야마가 얼굴로 입술을 꿈지럭거린다.


“오늘 저녁에 오이카와 씨랑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요.”


그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휘등그레 뜨고 카게야마를 쳐다본다. 슬그머니 이쪽을 바라보는 눈과 눈이 마주친다. 마인드 리더는 아니지만 그도 이쯤은 알 수 있었다.


와. 여전히 내 편이야. 행운의 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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