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터뷰하러 왔습니다.


[ 현재 ]


상해는 위위(瑜魏)가 생각한 것보다는 번성한 도시였다. 사실 공항까지는 별생각이 없다가 이내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자 위위의 눈에 곳곳에 들어선 빌딩이 시야를 꽉 사로잡았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을 뚫을 기세인 높고 큰 몸집을 자랑하는 고층빌딩들이 대부분이었다. 번성한 도시를 보자니 자신이 거주하는 곳과 너무나 달라 위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나마 먼저 사진을 보면서 상해는 이런 곳이구나, 라며 미리 알아놨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원래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위위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써놓은 것이기도 했다.


[ 후앙타워(huang_tower) / 황징위 / 나이는 동갑 ]


위위는 자신이 끄적거린 단어들을 읽고 또 읽었다. 우선은 있을 곳을 먼저 찾는 게 나았다. 위위는 휴대폰으로 일자와 시간을 확인했다. 이 정도라면 위주가 자신을 찾아내는 데 걸릴 시간을 가늠했다. 3일? 4일? 최대한 빠르게 비행기를 잡아서 온다면 5일 정도는 있어야 그가 자신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사실 제일 좋은 건 그가 자신이 없어진 사실을 모르는 것이겠지만, 부질없는 희망임을 알기에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그나마 상해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메모를 남겨놓긴 했으나 위주가 불안할 게 빤히 보였다.


“미안해요. 엄마. 그래도 궁금한 걸요.”


수첩을 쓸어내리며 위위가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자 빈 택시가 가는 것을 보곤 손을 흔들었다.


“택시!”


도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피곤함에 절은 참이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현재 위치와 메모에 적힌 '후앙타워'의 거리를 비교했다. 500미터 남짓 거리라 택시를 타도 많은 요금은 들지 않을 거란 생각에 위위가 손을 더 강하게 흔들었다. 그의 앞에 빈 택시가 뚝 멈췄다. 까진 머리를 최대한 감추려 남은 숱으로 정수리를 고정한 게 훤히 보이는 택시 기사가 내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위위는 그동안 위주와의 대화와 독학으로 익힌 중국어를 어렵사리 내뱉었다. 후앙(huang)타워를 가려고 하는데요. 그 말을 이해한 택시 기사가 눈짓으로 뒷자석을 가리켰다.


“타요.”


위위는 짊어진 배낭을 반쯤 벗곤 택시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스윽 가방을 밀어 넣으며 제 몸도 같이 택시에 실었다. 문을 닫자 택시 기사가 기어를 바꾸며 출발을 알렸다. 위위는 처음 온 상해가 어지간히도 신기한지 연신 택시 바깥으로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어느 나라?”

“네?”


대뜸 영어로 묻는 기사의 말에 위위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물음이 튀어나왔지만 그게 곧 승객을 향한 단순한 호기심이란 걸 깨닫고는 위위가 멋쩍게 웃었다.


“중국, 아니다. 일본?”

“한국이요. 그리고, 중국어 가능하니까 편히 말씀하셔도 돼요.”


생각보다 회화가 잘 흘러나와 위위는 자신이 말하고도 놀랐다. 이래서 어릴 때부터 외국어를 가까이하는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단 것을 느꼈다. 자신을 키워준 위주는 중국인이었다. 한국으로 귀화한 사례로 그가 제주도로 자리를 잡은 덕에 그의 손에서 자란 위위도 자연스레 제주도에서 자랐다. 지금이야 한국어든 중국어든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었지만, 어릴 때 위주가 쓰는 중국어를 그대로 듣고 자라다 보니 유치원에 가고 나서야 위주는 위위가 한국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 인지가 조금씩 위주를 바꾸었다.


더는 위위 앞에서 중국어를 많이 쓰지 않게 되었다. 무심코 툭 튀어나오는 본능적인 문장이 아니라면, 위주는 배운 한국어를 최대한 활용해 위위가 한국어를 잘 습득하도록 옆에서 도왔다. 그의 노력은 빛을 발했고, 지금은 한국어든 중국어든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중국어는 현지에서 쓰는 구어체를 일부 모르는 것 외엔 퍽이나 잘하는 편이었다. 그건 위위를 태운 택시기사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타지 사람인 건 알겠지만, 생김새에선 이국적인 티가 나지 않았다. 화교인가. 기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룸미러로 위위의 모습과 전방을 번갈아 흘끗거렸다.


“여행하러 왔어요?”

“아니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가족? 지인?”


기사의 질문에 여태껏 잘만 대답하던 위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닌데도 위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잠시 오가자 위위가 겨우 ‘지인’인 것 같단 대답을 내놓았다.


기사는 더는 그에 관한 건 더는 묻지 않고 묵묵히 핸들을 잡았다. 물어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제는 딱히 질문할 게 없어 그는 택시 안을 채운 어색함을 빼내기라도 하듯 운전석 창문을 시원스레 열었다. 냉기가 겨우 택시 내부를 달군 열기를 잡아먹었지만, 위위는 별말이 없었다.


“곧 춘절인데 날씨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네요. 어제까지만 해도 꽤 눈이 많이 내렸거든요. 학생은 모르죠? 아, 학생 맞나?”

“학생 맞아요.”


기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교통체증 때문에 후앙 타워에 도착하는 시간은 좀 더 긴 편이었다. 어느덧 기사가 기어를 서서히 줄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 왔어요. 학생.”

“얼만가요?”

“26위안이요.”


위위는 지갑에서 26위안을 꺼내 기사에게 건네곤 문을 닫았다. 뒤에서 조용히 택시가 떠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위위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건물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수첩을 꺼내 자신이 기재한 메모를 읽고 또 읽었다. 철자, 발음 모두 자신이 적어놓은 건물 이름과 일치했다.


상해행 비행기 항공권을 끊을 때도 이리 긴장한 적은 없었다. 위주 몰래 중국 단수 여권을 발급해놓을 때도 이리 긴장한 적 없건만, 위위는 후앙타워에서 만날 사람을 생각하니 조금은 가슴이 뛰었다. 그래도 은근 보고 싶었던 걸까. 위위는 단 한 번도 징위에 대한 그리움을 위주에게 표출한 적이 없었다.


단, 딱 한 번 호기심을 보인 적은 있었다. 어렸을 적 일이었다. 남들에게는 보호자가 두 명이 보통이란 소리를 유치원 친구에게 듣고 나서 위주에게 물었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집에 돌아온 위위를 위해 빵 반죽을 만지던 위주의 곁으로 자그마한 아이가 총총총 다가왔다. 기분 좋은 아이의 발소리를 들으며 위주는 살포시 아이였던 위위를 향해 웃었다.


- 어서 와. 우리 아가. 유치원은 재밌었니?


항상 위위가 제게 다가올 때마다 안아주곤 했는데, 위주가 마침 반죽을 만지고 있어 함부로 아이를 안을 수 없는 상태였다. 대신 최대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어여쁜 미소로 아이를 맞이했다. 눈을 맞춘 채 그리 웃으면, 위위도 따라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위위가 환히 웃을 수 있는 이유도 위주가 위위에게 보이는 모습이 항상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어여삐 여기는 위주를 향해 위위가 물었다.


- 엄마,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둘인데 왜 나는 엄마만 있어?


위위는 지금도 또렷하게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잠시 한기가 올라오는 몸을 겨우 추슬렀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도 푹 찌른 셈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지독하게 들릴지 상상하지 못하던, 그 당시 위위의 나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한순간 굳어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위주가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지만, 이미 위위의 시선에 그의 모습이 정확히 잡힌 이후였다. 위위의 눈동자가 몇 번이나 깜빡였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을 마주한 위위의 불안감이 조금씩 조그마한 머리를 덮쳤다. 그런 위위를 향해 위주는 빵 반죽이 묻은 손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 무릎을 꿇어 위위와 서서히 눈높이를 맞추었다.


- 위위는 엄마만 있는 게 싫어?

- 으응? 아니…. 엄마 좋아해. 엄마, 화났어?

- 내가 왜 위위에게 화를 내겠어? 그냥 우리 위위가 그런 걸 궁금해할 나이가 됐다는 게 신기해서 그래. 음…. 어디서부터 말해줘야 할까. 아가야. 세상엔 말이지.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어. 부모가 모두 있는 아이도 있고, 엄마만 있는 아이도 있고, 아빠만 있는 아이도 있어. 위위는 단지 엄마만 있는 형태의 가족을 가진 아이일 뿐이야. 다를 건 없어. 다르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 너무 어려워….


위위는 양손에 있는 검지를 콕콕거리며 작게 내뱉었다. 그런 위위를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차마 반죽이 묻어 있는 손으로 아이를 어루만질 수 없어 위주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조금씩 무릎으로 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정쩡하게 팔을 들어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자연스레 위주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등을 토닥여주지 못하니 위주가 대신 어깨에 기댄 아이의 측면을 뺨을 비비었다.


- 내 새끼. 괜찮아. 지금은 그런 거 몰라도 돼.


뺨이 칼날에 베인 듯 따가운 느낌에 위위가 결국 눈을 떴다. 그러자 거리 한복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던 자신을 보게 되자 혼자만 느끼는 민망함에 애써 발개진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조금이나마 찬바람을 막아 얼얼함이 덜했지만, 따가운 느낌은 여전했다. 최대한 손의 온기로 볼을 녹였다고 생각하자 위위가 다시 손을 내렸다. 잠시 팔에 걸쳤던 가방을 등에 멨다. 겨드랑이 부근에 있는 양쪽 가방끈을 꽉 쥐며 안으로 들어섰다.


*


도심에 있는 '후앙타워(huang tower)'는 상해에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건물이었다. 고객 혹은 사원이 아니면 엄격히 출입을 금지해 내부는 구경할 순 없지만, 바깥은 상해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은근 북적였다. 위위도 그중 하나였다. 바글거리지만 인파 사이를 가르며 걸음을 옮겼다. 딱히 지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회전문 안으로 가볍게 쑥 몸을 밀어 들어갔다. 우와. 탄성이 그대로 나오려던 것을 위위가 황급히 손으로 막았다. 괜히 이런 곳에서 눈에 띄는 반응을 하는 게 좋진 않으리라. 위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안내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데스크 직원 한 명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흘끔 시선을 주다 이내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상에나, 말도 안 돼….”


놀란 직원이 옆에 있는 직원을 두드렸다. 어지간히도 세게 쳤는지 맞은 직원이 업무 도중인데도 표정 관리할 새 얼굴을 과감히 찡그렸다. 때린 직원을 향해 짜증을 내려던 찰나 그녀의 시선이 앞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곤 맞은 직원도 자연스레 앞으로 고개를 향했다. 그러곤 그 직원도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표님? 아니지. 대표님은 이것보다 훨씬 키가 크신데…. 근데 그럴 리가 없는데….”

“형제분이신가?”


그 질문에 맞은 직원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완강히 부인했다.


“그럴 리가. 우리 회사 대표님 외동으로 유명하잖아.”

“하지만 미혼이라 자녀도 없잖아.”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우성 알파잖아. 대표님도 우성 알파인데, 적어도 황가(黃家)의 일원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어.”


저들끼리 무어라 속닥거렸지만, 위위가 그것을 알 리 없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 사이, 그녀들의 행동이 눈에 띄었는지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이 점점 위위에게 꽂혔다. 위위도 그것을 느끼곤 정수를 긁적였다. 주변의 시선을 끄는 행동조차도 하지 않았는데, 몸을 뚫어지라 보는 시선에 난감할 뿐이었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늘어뜨린 자신의 말과 달리 후딱 대답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오히려 위위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반응에 급히 직원이 사과를 건넸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저희가 먼저 알아보고 모셨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비서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직원 중 한 명이 위위를 안내했다. 위위는 눈만 껌뻑이며 얼떨결에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민망한 시간도 잠시, 30층에서 멈췄다. 직원이 먼저 내린 다음 위위에게 내릴 것을 권했다.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어 위위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직원의 뒤를 따랐다. 하얀 페인트칠과 함께 일정한 간격마다 화분이 보였다. 분명 화초엔 문외한이지만, 생김새부터 고급용일 것이라며 위위가 짐작했다. 잠시 구경에 눈이 팔린 사이 어느덧 큰 문 옆쪽에 자리한 데스크가 눈에 보였다. 직원이 무어라 설명하더니 30층의 데스크 직원과 함께 위위를 흘끗거렸다. 그 시선을 느끼자 위위는 얼굴을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흘끗거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행동에 속하는데 이곳엔 그런 것도 없는지 대놓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위위는 당황만 계속 커졌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인기척이 느껴져 위위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30층의 데스크 직원이었다.


“대표님을 뵈러 오셨죠?”

“네? 네….”


어찌 되었든 자신의 목적이 직원이 건넨 말이 맞아 얼떨결에 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이 웃으며 공손히 팔을 들어 올려 방향을 제시했다.


“이쪽입니다. 대표님은 곧 오찬 끝내시고 돌아오실 예정이라, 그 이전까지는 내부에서 기다려 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오히려 저희가 오히려 빨리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중요한 분이 오실 줄 알았다면, 1층에서부터 모셨을 텐데, 아쉽습니다.”


직원은 상냥했다. 사실 모두가 그랬다. 흘끗거린다든지, 대놓고 얼굴부터 몸까지 쫙 살피는 행동만 제외한다면 대체로 그들의 태도는 정중한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위위는 어느덧 자신의 이상한 생각에 다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따지고 보자면 앞의 행동으로 인하여 이미 그들의 태도는 정중하지 않은 게 되지 않았는가. 쯧.


“이쪽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마실 걸 내올까 하는데 커피,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안 주셔도 됩니다.”

“그럼 편히 계세요.”


위위가 접객용 소파에 앉자 직원이 가볍게 목례를 하곤 조용히 문을 닫으며 나섰다. 또각또각 들리던 구두 소리마저도 사라지자 넓은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위위의 숨소리뿐이었다. 위위는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의 말대로라면 이 방의 주인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터였다. 그 사이에 방 안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다. 주인에겐 예의가 아닐 수 있겠지만, 적어도 물건만 손대지 않는다면 눈으로 보는 것만큼은 괜찮을 거라며 위위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켰다.


천천히 시계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면적과 달리 내부는 꽤 단조로운 편이었다.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화려함보다는 깔끔함이 주를 이루는 디자인의 가구들이 최소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코트를 걸어놓을 수 있는 오크색 행거, 각종 명패가 전시된 유리 책장, 직장인의 보통 것보다 훨씬 넓은 책상까지도. 특히나 책상은 직장인들이 가장 오래 있는 자리이기도 해 위위는 저도 모르게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살피며 구경하기 바빴다.


특히나 위위의 시선을 잡은 것은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검은 크리스탈 명패였다. 명패는 일말의 무늬도 없이 단순하게 '황징위 대표이사'라 쓰여 있었다. 위위는 어째 그 명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거의 막무가내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막힘없이 진행된 상황에 오히려 당황했다.


함부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만남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위위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자신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다시금 생각했다. 일단 이 건물에 들어와 경비에게 제지를 받지 않은 것 자체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엄격하게 사원 혹은 사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고객 외에는 출입을 금하는 곳에서 자신의 차림은 꽤 어울리지 않았다. 나름 신경을 썼지만, 그들로선 위위의 의상이 정적인 회사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혀를 찰 수 있는 노릇이었다.


위위는 자신의 차림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단순하게 입은 하얀 와이셔츠, 그 위에 덧입은 베이지색 니트에 검은 면바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옷 몇 가지와 양치 도구, 그리고 현금과 여권을 넣은 검은 가방이 전부였다.


“너무 막 입고 왔나. 갈아입어야 하나….”


위위는 다시금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쳐도 어차피 그들의 눈엔 똑같아 보일 것 같아 갈아입는 것을 관두었다. 의상이 밥 먹여주나. 어차피 잠깐의 대화만 나눈다면 보지 않을 사이였다.


위위는 다시 명패에 눈을 돌렸다. 정갈하게 쓰인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황징위. 위위는 그 이름을 발음하며 새삼 상해로 오기 전 그에 관해 잠시 수집했던 정보를 떠올려 보았다.


'처음'은 수첩에 적힌 '후앙타워'였다.


후앙 타워는 황가(黃家)에서 운영하는 계열사가 대부분 사무실을 두고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그 각 계열사의 최대 주주는 '메이 컴퍼니'인데, 모회사의 대표이사였던 황징위의 부친, 황정인이 최근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모두가 아는 그의 외동아들인 황징위였다.


35살의, 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정인의 막강한 지지, 그리고 하버드 경영학과를 수석으로 졸업을 한 것도 모자라 회사의 수익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수치상으로 증명해 명실상부 다른 주주들의 지지도 등에 업은 채 황징위란 남자는 수월하게 자리에 올랐다.


그야말로 엘리트의 삶을 산 자였다. 그런 자를 무턱대고 만나러 상해에 온 자신이 새삼 웃겼다. 뭘 믿고 이런 행동을 강행했는지. 원. 팔짱을 끼며 피식피식 웃던 찰나였다. 밖이 은근 소란스러웠다. 그 소리를 인지할 새도 없이 문이 열렸다. 발자국 소리가 위위의 귀를 강타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입찰 따내도록 해. 몇 년을 공들인 건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거 못 따내면 사직서 제출해야 할 거야.”


신경적인 손길로 휴대폰 종료버튼을 눌렀다. 어지간히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내렸다.


“젠장, 이참에 싹 다 물갈이해버려야지…. 뭐야, 너? 누군데 남의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와 있어?”

“대표님, 대표님 지인이신 것 같아서 모셨습니다.”

“지인? 오늘 약속 잡힌 거 없는데 허락도 없이 누굴 함부로 들여? 당장 나가라고 해. 어이 당신 당장 나-”


성큼성큼 초대받지 못한 손님 쪽으로 다가가던 징위가 뚝 걸음을 멈추었다. 멀리서 있을 때는 얼굴을 구분하기 어려웠던 터라 그도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징위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위위는 가만히 징위를 응시했다. 놀라움이 가득한 징위의 시선은 마치 이 건물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들과 성질이 같았다.


무엇이 그리 신기하길래 당신마저도 날 그리 보나요. 그리 묻고 싶었던 위위는 그들이 왜 그렇게 놀랐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했다. 징위를 사진으로만 접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훤칠한 기업가라고만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자신과 겹치는 게 없어 먼 사람이라고만 여긴 마음이 외관에 관한 감상조차도 바꿔놓은 듯했다.


그가 좀 더 어렸다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리라 확신했다.


입을 움직이면 잠시 보이는 그 덧니는 위치마저도 똑같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키야 아직까지는 차이가 나는 터였지만, 나이 차이를 고려한다면, 아직 키는 자랄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징위와 비슷해지거나 넘어서리라.


위위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리 간단한 사실을 여태껏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새삼 자신의 둔함에 위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허무함을 추스른 것도 잠시,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걸음을 멈춘 징위를 향해 이번에는 위위가 움직였다.


마침내 징위 앞에 딱 마주 섰다. 징위는 눈앞에 있는 소년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17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17세.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기억이 담겼던 시절의 모습과 함께 위위의 눈매를 본 순간, '누군가'의 모습과 겹쳤다. 징위는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비고 또 비비었다.


눈을 비비자 겹쳐 보이던 이의 모습은 곧 사라졌지만, 위위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그'가 보이는 착각이 드는 기분에 징위는 망부석이 되어 멍하니 위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먼저 행동을 개시한 건 위위였다. 더는 서 있기만 한 게 지겨운 지 위위가 소파를 가리켰다.


“안녕하세요. 황징위 대표님. 

당신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P.S : 주의사항이라 함은 지극히, 상커리라는 작자의 상상의 나래로 만들어진 오메가버스 세계관에서, 동갑내기 그들과,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나온 빅베이비(?) 위위의 단란한 휴먼스토리(?)입니다.^^

아직도 올려야 할 분량이 많군요..후우...먼산)

1/7,8 디페와 로망스 나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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