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향이 바뀌었고, 그에 맞춘 새로운 설계를 도입하고, 제작하고, 작동여부를 테스트해봤다.


결과는 썩 괜찮았다. 순식간에 우리가 원하던 수치(무려 100기압!)까지 무리없이 올라갔고, 제어를 할 수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어보였다. 물론, 제작기간이 늦춰진 것과 교수님이 원하시는 퀄리티에 못미친 것은 죄스러울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다.


1. 먼저 용기의 재질은 스테인레스였는데, 유일하게 약한게 Cl-, 염소이온이었다. 이거.... 바꿔말하면 '수돗물'을 쓰지말라는 소리다. 근데 간단하게 작동여부를 테스트한답시고 수돗물로 실험을 했더니 녹이 슬었다. 미쳤지 내가.


 2. 압력계가 고장났다. 아,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체중을 실어서 밟고 눌러도 1기압도 꿈쩍않던 녀석이, 100기압을 한번 맛보고 났더니 살짝 누르기만 해도 50기압이 넘게 올라갔다. 그러니까 내 손의 힘이 수심 500m의 힘을 가지고있다는 것이다. 나 짱세졌네....


3. 2번에 따라, 후속실험을 모조리 취소해야할 상황이 됐다. 최악이지?


4. 그래서 랩미팅에서 비굴한 변명만 늘어놓을 생각만 하자니, 아득하다. 내가 뭐하고있는건가 싶고 참.... 그렇다.



내가 1학년부터 연구원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너무 이르다는 주변사람들의 만류가 있었다. 좀 더 놀라는 취지였다. 사실, 이렇게 일이 잘 안풀리면 차라리 던져버리고 놀고싶다. 살짝 후회도 되고.... 


그런데 제일 후회되는건 내가 이 나이에 무리해서 들어와서 일을 망치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이 무슨 민폐란 말인가.... 진짜, 아득하고 깝깝하다. 나는 뭘하고있는걸까

물리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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