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십 몇 년을 살아 오면서도 잘 몰랐습니다. 제가 날씨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걸요. 최근 들어서는 약간 자각은 있었는데, 결국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고 그게 날씨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역시나 뒤늦게 찾아 옵니다.

 오랜만에 그랬어요. 지난 주에 여러가지 일이 겹쳐, 주말에도 잠을 푹 못 잔 것도 있었지만, 자도 영 잔 것 같지 않게 찌뿌둥 하고, 일어나 있어도 하루 종일 멍 하고, 몸 전체가 무겁고, 심장께가 누군가 아래에서 잡아 당기고 있는 것처럼 묵직하고, 머리가 어질어질, 두통이 오는 지 마는 지, 그런 상태가 며칠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제랑 어제는 좀 심했어요. 뭐, 이것저것 좋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 오니 꼭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 하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어제 아침에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듯한 시간에 잠에서 깼길래 비몽사몽 간에 요즘 챙겨 먹고 있는 비타민 B 컴플렉스와 비타민 D를 먹고, 조금 더 잤어요. 그리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다시 일어났죠. 일어나서는, 고양이 용으로 사 둔 오메가3와 철분제를 한 알씩 먹었어요. 마그네슘도 먹고 싶었는데, 고양이 식단에 추가로 필요하지 않아서 사 두질 않았네요. 고양이 용 타우린도 있어서 이것도 한 알 먹을까? 하다가 에이, 아냐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하고 말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 했답니다. 전체를 다 버리고 새 모래를 채워 넣는 건 사실 꽤나 에너지를 소모 하고 귀찮기도 한 일이라, 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인데요... 아무튼 그런 사소한 것들을 하나 하나 해 나갔습니다. 널어진 채로 방치 되어 있던 빨래를 개어 넣고, 청소기를 가볍게 돌려 바닥에 굴러 다니던 고양이 털도 좀 치우고, 돌돌이에 새 심을 끼워 이불에 붙은 고양이 털을 좀 뽑아(?) 내고. 그제 먹고 방치한 설거지도 했어요.

 여전히 MBTI는, 어떤 지점에서 설명력을 갖기는 하니까 애용하고는 있는데요. 저는 언젠가 말했듯이 뼈 INTP인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좀 불이 붙듯이 의욕이 화르륵 하는 성격이라, 그럴 때는 이것 저것 주변에 보이는 것 없이 P적 성향으로 와르르르 쏟아 내거든요. 순간의 열정과 영감에 몸을 맡기는 그런 시기가 있죠. 최근에는 좀 그런 부분이 도드라졌던 거 같아요. 또 반대로, 무기력증이 도질 때도 P적 성향이 드러나요. 주변은 아무 것도 정리가 안 되고, 식사고 생활 루틴이고 에라 모르겠다, 안 보이는 척 눈 돌려 버리고. 요 며칠 간, 전자에서 급격히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후자가 될 뻔 한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멘탈을 챙기는 방법을 저는 몇십 몇 년을 살아 오며 드디어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약간 남아 있는 J적 성향을 끄집어 내는 방법을요.

 물론 완전한 무기력증으로 빠지기 전에 멈출 만큼 멘탈의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아무튼 그 지점을 의식하고 있다면 가능성은 좀 있지요. 그래서 저는 어제 아침에 일어 나서, 노션 템플릿을 조금씩 만들었습니다. 주별 플래너를 만들었죠. 그리고 메인 페이지를 어떻게 만들까 구상하고, 이번 주의 주요 일정을 추가 하고. 그러면서, 빈 칸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목표를 세우게 되는 거예요. 뭔지 아세요? 왠만하면 내용이 차 있는게 예쁘게 보이니까 그럼 할까 말까 고민 하던 것들도 일단은 채워 넣고 보는거죠. 템플릿은 만드는 그 순간도 물론 짜릿하지만, 사실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까 떠올리는 게 더 즐겁지 않나요? 이게 정말로, 효과적으로 움직여 주는 그런 순간들을 상상하는 게요.

 그러고, 템플릿을 만든 후에는 청소도 하고, 밥도 챙겨 먹고, 도시락도 챙기고, 고양이도 챙기고. 물론 그걸 위해서는 전날 잘 씻고 푹 자고 최대한 괜찮은 상태로 일어나야 하는 게 전제가 되지만요.


 아무튼 그래서, 효과는 꽤 있었습니다. 아, 나는 이제 이렇게 하면 그래도 무기력증으로 빠지지 않고 나를 건져낼 수 있구나! 하고요. 드디어요. 아니, 그래도 이 정도 살고 깨달은 게 어디예요. 그리고 그 순간 또 깨달았죠. 아, 이건 단순히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곤함은 아니었구나. 밖에서는 윙윙 하고 바람이 미친듯이 불고 있었고, 다른 지역 어디에선가는 엄청난 폭우로 강이 범람했다는 소식도 연일 들려 오고 있었죠. 그러니까, 엄청나게 기압이 낮아서 거기에 영향 받았던 거예요. 원래 좀 혈압이 낮은 편이거든요. 사실, 그 원인을 알게 되면 비교적 쉽지 않나요? 몸이 무거운 건 별 수 없지만, 내 잘못이 아니니까 그럼 좀 더 움직이자! 더 나를 챙기자! 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잖아요. 원인을 모르면 그야, 이유 없이 쳐지는 게 내가 잘못한 줄 알고, 나한테 뭔가 이유가 있는 줄 알고 또 그대로 감정적으로도 같이 가라 앉아 버리지 않나요. 그러니까, 다행입니다. 드디어 깨달을 수 있어서요! 좀 더 늦어지지 않아서요.


 여기는 아직 당분간 장마가 이어질 듯 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여러분께도 여러모로 힘든 나날들일텐데, 다른 무엇 보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챙기셨으면 해요!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만큼 챙겨주겠습니까! 그렇죠?


PS. 제 몸 상태에 좋은 날씨는 썩 아니지만, 다채로운 구름의 형태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PS2. 사실 이렇게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오늘은 비교적 날씨가 괜찮아졌기 때문일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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