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_죽음이었다로_시작하는_글쓰기

그것은 죽음이었다. 추위도 더위도 없는, 끝없는 암흑의 공간. 두려움도 기쁨도 없는 그곳에서 호크는 드디어 편안히 쉴 수 있었다. 호크는 그 곳에서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호크는 눈을 떴다. 온 몸이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팔을 움직이려 하다가 온몸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증이 그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겨우 돌려 자신의 팔을 바라보니 오른쪽 팔에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호크는 드디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일단 앤더스랑 배릭이랑 아벨린이랑 같이 딥로드에 가긴 했는데...'

그녀는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딥로드를 떠올린 이후부터 기억은 앞으로 진전하지 못하고 계속 입구를 헤매고 있었다. 딥로드에 갔으니 들어가긴 했겠지? 근데 이후엔 어땠더라.... 아니 내가 딥로드에 들어가긴 했나? 도대체 며칠 전인데 이런 것도 기억 못하고 있는 거지?

호크는 꼼짝 않고 눈을 꿈뻑대고 있었다. 코끝에 박하 냄새가 섞인 구릿한 향기가 느껴졌다. 호크에게 아주 익숙한 향기였다. 매번 맡을 때 마다 적응하지 못하는 이 쾌쾌하고 상쾌한 냄새.... 앤더스의 치료소에서 나는 냄새였다. 앤더스는 향긋한 허브향이라고 우겼지만 호크는 고양이의 토사물에 박하와 로즈마리를 섞은 냄새라고 느꼈다.

앤더스의 치료소에는 이 미묘한 냄새가 인이 박힌 듯 어디를 가도 났지만 지금은 그 냄새가 코를 찌를 듯이 났다. 그러고 보니 미라라도 된 냥 붕대가 칭칭 감겨진 손에서 이상하게 축축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앤더스가 연고를 치덕치덕 바른 모양이군.'

아마 다친 부분이 팔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호크는 고양이의 토사물에 풍덩 빠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치료에 도움이 된다지만 앤더스가 오면 붕대를 갈아달라고 해야겠어. 물론 연고는 바르지 말고.‘

호크는 몸을 뒤적거리는 것을 중단하고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에 채운 짚은 갈은 지 얼마 안됐는지 붕대 밑으로 사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이라처럼 붕대에 칭칭 감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꼼짝 없이 잡혀 있어야 하는 신세지만, 이 쾌쾌한 상쾌함이 그녀의 기분을 살짝 즐겁게 했다. 그녀는 최대한 몸을 둥글게 말며 잠을 청하려 애썼다. 칭칭 감겨진 붕대로 손가락 한 끝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이미 오랫동안 잔 듯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애쓰는 것도 잠시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에 호크는 바로 눈을 떴다. 베릭이었다.

"베릭“

호크는 최대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치 선술집에서 친구라도 만난 양,최대한 평범하게 베릭의 이름을 불렀다. 서로의 마음이 통했는지 베릭도 길가다 매일 보는 친구를 만난 냥 호크를 불렀다.

“여어 호크. 그렇게 다쳐 놓고도 주둥이는 멀쩡한 걸 보니 내가 아는 호크가 맞구만.”


베릭이 씨익 웃으며 호크 곁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곧 죽어도 입을 놀리지 않으면 마리안 호크가 아니지.”

“그래 오우거를 앞에 두고도 예쁜 언니~라고 하지 않으면 호크가 아니고 오만의 악마 발 밑에 깔려서도 발냄새가 구리다고 투덜대지 않으면 호크가 아니지.”

배릭의 얼굴도 목소리도 푸근했지만, 그의 어투는 약간 힐난조였다.

“그래서...이번에 난 뭐라고 했어?”
하지만 호크는 배릭의 불편한 기색을 사뿐히 무시했다.

“호오 정말로 기억 못하는 거야?”

마리안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느껴지는 격통에 으악하고 소리만 질렀다.

“저런 쯧쯧 착한 어린이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어야지. 앤더스가 괜히 그 특제 연고를 들이 부은게 아니야.”

“들이 부은 거야?”
호크가 과장된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앤더스는 연고가 아까운지 적당히 바르려고 했지만 메릴과 내가 이런 건 아끼면 안된다고 그랬지."

호크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네 편안한 표정을 보건데 연고를 들이붓자는 내 의견은 아주 적절했던 것 같군.”

“정말 고맙군 배릭. 다음 번에 니가...”

니가 다치면 코 밑까지 연고를 들이부어버릴거야라는 말을 하려다 호크는 말을 삼켰다. 장난이라지만 이런 재수 없는 가정을 해야하는 장난은 필요 없다.

“내가 나으면 앤더스에게 이 특제 연고를 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환상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게 양동이채 부어주겠어.”

“하하 일단 그 말은 미이라에서 벗어나고 할 말 아닌가? 놀랐다구 내가 알던 마리안 호크인가 싶어서. 앤더스 선생의 딥로드 컬렉션이 하나 더 는 줄 알았지.”

“....여튼 그래서 그 때 다들 무사히 나간거야?”

“아무 것도 기억 안난다더니, 여기 새로운 소설가가 탄생하셨군. 무릇 픽션이란 거짓말에서 시작하는 거고, 작가를 하려면 거짓말에 능통해야 하지.”

“뭐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잘한다 해도 커크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배릭 선생을 따를 수 있나.”

“글쎄... 네가 말하는 것 보니 베스트셀러 작가는 바뀔 것 같군.”

배릭은 며칠 전 딥로드에서의 위험천만한 순간을 떠올렸다. 동료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오만의 악마의 채찍, 비명소리, 그리고 절체 절명의 순간 동료들 앞에 나선 호크의 모습까지. 그녀는 오만의 악마가 그녀를 후려치기 전까지 동료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때 널 다시 못보는 줄 알았지.”

“....”

“다들 엄두를 못냈는데 블론디가 우와와와 소리를 지르더니 오만의 악마 앞으로 뛰어들더라고. 호크 안돼!!!하면 말이지."

모두들 호크의 안위가 걱정됐지만 오만의 악마의 기세 때문에 다들 망설이고 있었다. 호크가 나가 떨어진 곳은 동료들이 서 있는 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고, 그곳을 가려면 악마가 서 있는 정면을 지나야만 했다. 그 때 오만의 악마에게 뛰어든 사람은 펜리스였다. 그 때 배릭은 앤더스의 눈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봤다. 그리고 순식간에 호크를 업고 온 앤더스를 봤을 때 배릭은 안도감보다는 두려운 감정이 먼저 들었지만 호크에게 그걸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블론디가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호크 죽으면 안돼~!!를 외치더군. 네 다리 한짝을 질질 끌면서 말이지.”

배릭은 평소의 시니컬한 말투를 유지했지만 앤더스가 말하는 대목에선 유별나게 목소리를 가늘게 내서 앤더스를 흉내냈다. 호크는 배릭이 늘상하는 과장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다. 과연 커크월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 다리가 이렇게 아픈거군.”

“질질 끌어서 아프기도 했겠지만 그보단 네 무모한 행동 때문에 아픈 부위가 더 많을 거야.”

배릭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이번 기회에 네 소설의 주인공이 되보고 싶었거든. 뭔가 정의의 주인공 같은 이미지로 말이지.”

“네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거야. 그렇게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니 진작 한 권 써줄걸 그랬군.”

“글쎄... 하드인 하이타운을 보니 내 빛나는 영웅적 업적이 행드맨에서 고갤 쳐박고 정어리 죽을 먹는 장면이나 아리쇽 앞에서 방귀를 뀌는 모습으로 바뀔 것 같아서 말이지. 너도 알잖아. 내가 좀 고상한 거.”

붕대를 칭칭 감은 호크가 배릭의 말투를 따라하며 윙크했다. 미이라 꼴을 한 여자에게 추파를 받으니 배릭은 가슴이 선덕선덕해서 마시던 차를 뿜을 정도였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호크는 자는지 눈을 감고 있었고, 배릭은 홀짝거리며 남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은 박하를 무척 사랑하는지 심지어 차에서도 박하 냄새가 난다고 배릭은 생각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풀이 개박하랬나.... 그는 앤더스를 떠올렸다. 고양이와 박하를 사랑하는 뻐기기 좋아하는 금발머리 예쁜이가 아닌, 하얀 눈을 한 남자를.

앤더스가 호크를 업고 돌아왔을 때 동료들은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앤더스의 굳은 표정과 하얗게 빛나는 눈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펜리스가 있었다면 그 와중에도 멱살을 잡았을까? 배릭은 궁금했다. 하지만 자신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호크가 쓰러지고 우왕좌왕하는 일행을 이끈 사람은 의외로 앤더스였다. 하얗게 빛나는 눈을 한 그는 호크를 안은 채, 냅다 어느 방향을 향해 뛰었다. 그의 박력에 동료들은 그 방향이 맞는 거냔 질문조차 하지 못한 채, 앤더스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 출구가 가까웠는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밝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을 챙기느라 마지막으로 나온 배릭은 출구 근처에서 정신 없이 호크에게 붕대를 감는 앤더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릭은 이런 상황에서 블론디가 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앤더스는 의외로 눈물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하얀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무감각해 보였지만, 붕대를 감는 앤더스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보다못한 배릭이 앤더스를 도우려 나섰지만, 앤더스는 배릭이 돕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이미 배릭이 붕대를 감은 곳에 자꾸 붕대를 감고 있었다. 배릭이 앤더스의 몸을 흔들고 소리쳐봐도 그는 텅빈 눈으로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배릭은 앤더스의 눈이 하얗게 빛나는 걸 이번에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눈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르세이유 타로 리더, 점성술사, 사이킥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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