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퀘글입니다.

*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첫사랑을 시작한 아오네의 이야기

* 햇살같은 아이 히나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오네

* 공미포 3400자

 

 






제법 차가워진 공기가 아오네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추위에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플 정도로 차가워지는 손발 때문에 고생을 했다. 사계절 내내 운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냉기가 도는 손발이 겨울에는 정신을 못 차리나 보다. 날짜는 12월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오네의 주머니에는 따끈따끈한 손난로가 손을 녹여주는 중이었다.

 

후우― 숨을 뱉을 때마다 주변으로 흩어지는 하얀 입김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를 들은 아오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무표정한 얼굴이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뛰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매번 말을 했지만, 뛰어오고 있는 아이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오네상!”

 

어디서부터 뛰어왔는지 몰라도 가쁜 숨을 내뱉는 아이의 두 볼과 코끝이 붉었다. 흡사 루돌프 사슴을 연상케 하는 모습에 입술을 달싹이던 아오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주머니에 감춰뒀던 손을 제 앞에 선 작은 아이에게 뻗었다. 볼에 닿는 따뜻한 온도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다 말고 입을 뗐다.

 

“많이 추우셨죠? 더 빨리 나오고 싶었는데, 카게야마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리는 아이는 히나타 쇼요였다. 이렇게 카게야마의 흉을 보면서도 이내 말간 표정으로 웃을 게 분명하다. 진심을 담아서 하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속에 담고 있던 불만을 전부 털어놓은 히나타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비장의 무기라도 꺼내듯 개구 진 표정과 함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흠?”

“카라스노 근처 상첨에서 파는 만두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만두만 잔뜩 사왔어요.”

 

뭐, 그래봤자 4개지만요.

 

좀 더 다양하게 사오고 싶어도 만두가 동이 난 탓에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천천히 걸으며 먹는 만두는 평범한 고기만두 맛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을 상기시켜준다. 히나타가 사온 만두는 수족냉증이 심한 아오네의 손을 녹여줄 정도로 따끈따끈 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덕분에 추위가 한결 가신 기분이었다.

 

먹을 때는 어찌나 조용한지,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해야할 정도였다. 우물우물 씹으면서도 아오네의 반응을 살피기 바쁘다. 저렇게 먹으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먹는 것이 살로 갈 리가 없다. 제 한 손으로 히나타의 두 손목이 잡힐 것 같았다.

 

“아, 맞아!”

 

갑자기 큰 목소리를 내뱉으며 멈춰서는 히나타로 인해 아오네도 걸음을 멈췄다. 뭐가 그토록 분주한 것인지, 만두를 입에 문 히나타가 한 손에는 휴대폰을, 한 손에는 만두 봉지를 들고 있었다. 다 먹고 해도 좋을 텐데 말이지.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오네가 만두 봉지를 대신 들어주자, 고맙다며 눈인사를 해온다. 무슨 행동을 하든 예의바른 히나타의 행동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한동안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히나타가 아오네를 향해 보여주는 것이 있었다. 히나타의 입에 물려 있던 고기만두는 뱃속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코가네가와한테서 메일이 왔어요. ‘아오네 선배, 옆에 있어?’라고.”

 

히나타가 말해주지 않아도 메일을 읽은 아오네였다. 자신에게 직접 물을 수도 있건만 왜 굳이 히나타에게 연락을 했을까. 잠시 생각하던 아오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보나마나 후타쿠치가 연락해보라고 협박을 했을 게 분명했다. 오늘 별 다른 일이 없을 텐데 왜 찾는 거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아오네의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차, 트리…….’

 

아침 연습 때부터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다니던 1학년들이 생각났다.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기 전, 추억을 남기자는 취지의 파티 준비가 며칠 뒤에 있었다. 그에 오늘 모임의 목적은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였다. 항상 저녁 연습까지 끝내면 히나타를 만난다는 생각 밖에 없었던 아오네가 그 약속을 잊은 거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히나타에게 이유를 말해주자, 동그란 눈이 크기를 더해간다.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 거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던 아오네가 제 팔을 붙드는 히나타로 인해 정신을 차렸다.

 

“그럼 지금 가야죠!”

“……이미 끝났을 텐데, 준비.”

“에, 분명 지금 안 가면 후타쿠치상이 엄청 뭐라고 할 것 같아요!”

 

덤으로 자신까지 시달릴 것 같다며 몸을 부르르 떤다. 저녁 연습 후 만나는 사람이 히나타라는 것을 모르면 상관없지만, 다테공고 배구부원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딱 한 번 고민이 많아서 우울해 보이는 히나타를 발견한 이후로 멘토가 되어 매일 같이 만난다는 것도 안다. 처음에는 황당한 얼굴로 믿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는 말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히나타에게 직접 물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카라스노와 연습 시합을 했을 때, 후타쿠치가 여과 없이 물었다. 멘토를 삼으려면 다른 사람이 더 낫지 않겠냐고. 그 말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히나타는 이렇게 답을 했다.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큼 더 위로되는 것도 없어요!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후타쿠치상은 모르시나 봐요?”

 

그 말로 인해 약이 오른 것인지, 히나타의 스파이크를 막느라고 혈안이 됐던 후타쿠치였다. 시합 후에도 종종 아오네에게 물었다. 건방진 꼬마를 만나러 가는 거냐고. 뭐가 예쁘다고 멘토까지 자처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아오네는 멋쩍은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배우는 것은 히나타가 아니라 자신이라 생각을 했으니까.

 

“안 가실 거예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히나타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아오네가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다들 좋아할 거야.”

“엑, 저, 저는…….”

“후타쿠치 때문에 무서운 거라면 내가 얼씬도 못하게 해줄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좋아요!”

 

방과 후 연습 때문에 제법 피곤할 텐데, 히나타는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주변이 따뜻한 햇살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간에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히나타였다. 앞장 서는 히나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때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위풍당당하게 걸을 때는 언제고, 지금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딘 가 불편한 것 같기도 해서 황급히 묻자, 아오네의 눈을 피한 히나타가 볼을 매만졌다.

 

“그……제가 길을 몰라서…….”

 

연습 시합 때마다 항상 차를 탔고, 멀미 때문에 잠들어 있었던 히나타였다. 두 볼을 붉히며 변명거리를 줄줄 늘어놓는 히나타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한 눈에 봐도 열이 많을 것 같은 히나타를 안아보면 따뜻할까. 저도 모르게 뻗던 팔을 거뒀다. 아오네가 왜 놀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히나타는 팔을 잡고 흔들며 재촉할 뿐이었다.

 

“알려줄게. 천천히.”

 

힘차게 대답하는 히나타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꾹꾹 눌러도 자꾸만 고개를 드는 낯선 감정 때문에 손이 떨릴 정도다. 낯선 이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서 두려웠지만, 나쁘지는 않다. 달음박질을 한 것 마냥 숨이 차오르는 것도 같고, 몸이 붕 뜨는 것도 같다.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는 히나타를 보며 생각했다. 함께 하는 이 길에 끝이 없었으면 한다고.


소뇨 / 히나른 연성&썰 / 트위터 @sogno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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