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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비 오듯이 줄줄 흐르는 카게야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 상태로 용케 연습을 잘하고 있다며 히나타가 몰래 혀를 찼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하지만 저럴수록 집중력은 바닥을 친다는 것을 알았다. 공 하나를 던져도 온 신경을 쏟는 카게야마였다. 정신력은 강하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제대로 해보려고 해도 안 될 것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카게야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히나타가 생각했다. 언제까지 계속 카게야마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다. 물론 항상 옆에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 할 히나타지만 시야에게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 기온은 무더워졌고, 카게야마는 힘들어 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대학생이 되었을 때의 카게야마를 생각하면 선택지가 이것뿐이다.

카게야마의 미래를 봤다. 찰나의 순간에 스쳐지나간 카게야마의 미래에 답지 않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두 가지의 미래가 있었다. 하나는 여름마다 재발하는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프로에 발탁되지 못한 카게야마였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대표가 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배구를 하며 빛나는 인생을 사는 카게야마였다.

이런 미래를 봤다면 전자가 되길 바라는 이는 없을 터였다. 제 아무리 카게야마를 싫어한다고 해도,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히나타는 카게야마의 수호를 맡고 있었기에 전적으로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카게야마!”



딱히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공을 던지며 갸웃거리는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 군?”



네 번째 부름이 이어진 뒤에야 들은 것인지, 험상궂은 표정으로 히나타를 돌아봤다.



“거기서 그렇게 앉아있을 거면 와서 연습 좀 도와.”

“알았으니까 일단은 이리와 봐.”



무척 떨떠름한 얼굴로 히나타를 쳐다보던 카게야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배구부와는 상관없는 히나타가 자신을 도와주려면 본인도 뭔가 해야 했으니까. 군말 없이 다가가자 이젠 바닥에 앉으라며 체육관 바닥을 툭툭 두드린다. 연습을 하다말고 앉으면 몸이 금세 굳어버려서 싫다고 말했지만, 히나타의 고집은 상당했다. 투덜거리면서도 엉덩이를 대고 앉자마자, 고개를 뒤로 뺐다. 히나타의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이었다.



“……뭐하냐?”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던 히나타가 기운을 불어넣는 것처럼 눈을 꼭 감았다. 한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지 않고, 그 상태로 머무르던 히나타가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말했다.



“카게야마를 위해 기도하는 중.”

“뭐?”



무슨 시답잖은 소리냐고 물으려 했지만 히나타의 표정이 여간 진지한 게 아니었다. 장난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기까지 했다. 그에 입을 꾹 다문 채 카게야마가 조금 전보다 편한 자세로 앉으며 생각했다.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던 제 상태를 알아주는 게 기껏 해봐야 얼굴을 알게 된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라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워서 하마터면 그대로 졸 뻔 했다.



“카게야마, 그렇다고 졸면 큰 일 나.”

“…안 졸았거든.”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느냐고 고개를 뒤로 빼자, 알았다며 이젠 카게야마의 손을 맞잡았다. 아까부터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물을 힘조차 없었던 카게야마가 그저 히나타를 못 마땅하게 쳐다볼 뿐이다.

다이치가 줬던 연습 시간이 어느 덧 30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졌을 뿐 불만스럽지도 않았다.



“이제 됐다―”



잡고 있던 카게야마의 손을 놓은 히나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가 다 됐다는 거지. 히나타와 함께 하면서 생기는 것은 의문뿐이라 딱히 물을 생각도 없다. 그냥 때가 되면 언젠가는 말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제 됐으면 일어나도 되지?”



그렇다는 대답에 일어나며 히나타까지 일으켜 세웠다. 본인 스스로 일어나면 좋을 것을 팔을 뻗어 일으켜 세워달라는 말을 했다. 어린 애도 아니고 투정이냐고 가볍게 정수리를 꾹 누르면서 타박했다. 혈을 피해서 눌렀건만 뭐가 그토록 아픈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히나타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많이 아픈 가.’

처음에는 엄살인 줄 알았건만,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에 카게야마가 침을 꼴깍 삼켰다. 괜찮냐고 한 번 물어봐야 하는 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잠시 우물쭈물 거렸다.



“농담이지. 놀랐어?”



연기를 잘해서 연기자라도 되어야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카게야마가 주먹을 꼭 쥐었다. 누구는 혹시나 많이 아픈 것일 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히나타가 괜찮다고 하니 안심은 된다.



“이제 연습하자. 30분도 안 남았네!”



자신 때문에 시간이 다 빼앗겨서 어떡하느냐고 묻는 것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별 수 없지 오늘만 날도 아니고, 연습은 매일매일 있었으니 하루 정도 제대로 못한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오늘은 연습 시합이 있었던 날이라, 원래대로 라면 연습 자체를 못하는 날이었다. 체육관 정리만 하고 집에 가야했지만, 다이치가 베푼 넓은 아량으로 인해 한 시간이나마 할 수 있었던 거였다.



“확실히 얼마 남진 않았네.”

“으으, 그치? 내가 가서 너희 선배한테 좀 말해볼까?”



자신이 신신당부하면 좀 들어줄지 모른다는 말에 카게야마가 코웃음을 쳤다. 다이치가 그런 걸로 넘어갈 사람도 아닐 뿐 더러 히나타는 이미 전적이 있지 않은 가.



“너 전에 여기 있다가 사라졌었잖아. 기억 안 나?”

“…….”

“내가 그 때 얼마나 당황했었는데. 지금에야 말 나와서 물어보는데….”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이 재차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겠지. 히나타의 손목을 붙든 카게야마가 입을 뗐다.



“너 그 때 어디 갔었던 건데? 그것도 갑자기.”

“……어, 음. 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잠시!”

“그래?”



믿기지는 않지만 일단 그렇게 말을 하니까, 넘어가 줘야겠지. 묻는 것을 썩 반기는 눈치도 아니었다. 캐물을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맞춰보고 싶었다. 히나타 같은 타입의 미들블로커는 처음이었고, 공을 던지는 손맛이 좋았다. 속공을 맞춰봤을 때, 짜릿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됐어. 이제 그만 맞춰보자.”

“오, 그 때 그거 하는 거야?”

“응. 너 진짜 아까운데, 우리 배구부로 올 생각 없냐?”



말이라도 고맙다고 얼버무리던 히나타가 연신 아쉽다는 말을 내뱉는 카게야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렇게 안달내지 않아도 언젠가는 만날 텐데 말이지. 차마 미래를 예견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히나타가 카게야마를 불렀다.



“또 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는 말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조금 일러.”

“뭐가?”

“하여튼 그런 게 있어! 아직은 조금 일러. 이르다니까?”



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 맞장구라도 쳐주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카게야마가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히나타의 머리를 꾹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연습이나 하자?”



몇 마디를 더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그만뒀다. 그래, 지금 말을 해도 어차피 잊을 카게야마였다. 그냥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었지.’하고 잠시 회상에 빠지지 않을까.

 

* * *

 

“뭐 주인이라도 기다리는 개처럼 왜 그러고 있어?”



비키지 않고.

체육관으로 들어서려던 츠키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비켜달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지, 멍하니 바깥만 바라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며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혹시 저곳에 뭐라고 있는 것이냐고, 고개를 돌려서 시선이 닿는 곳을 쳐다봐도 있기는커녕 벌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 넋을 놓고 있는 횟수가 잦아졌다.



“카게야마, 왜 그래?”

“아, 아뇨. 연습 시작하나요?”

“이제 해야지. 요즘 몸은 좀 어때?”



여름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진 않았지만, 따가운 뙤약볕은 여전했지만 카게야마의 컨디션은 전 보다 많이 괜찮아졌다. 더위 때문에 사족을 못 썼던 전과는 달랐다. 방과 후 연습이 시작되기 전부터 파김치가 되어 있어야 할 카게야마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는 다이치의 물음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컨디션이 좋아서요. 덥지도 않고.”

“……그래?”



갑자기 체질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다이치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훑었다. 자신도 더워서 부채질을 할 지경인 이 날씨에 카게야마는 멀쩡했다. 분을 바르고 나온 아기처럼 보송보송할 정도였다. 며칠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의아한 다이치였다.

혹시 더위를 막는 좋은 음식이라도 먹은 거냐고 물은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뿐 더러 챙겨먹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덥지도 않던데요?”

“그거 다행이네.”

“네. 그래서 토스 실수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평소보다 생기 넘치는 모습에 아무렴 좋았다. 더워서 컨디션 난조인 것 보다 더위를 타지 않는 체질로 바뀐 게 다행이었다. 특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는 카게야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일 터였다.

이제 그만 연습을 시작하자는 코치의 부름에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드리던 다이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하고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아뇨. 아니에요, 아무 것도.”



히나타에 대한 것을 물어볼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걸 물어서 다이치까지 곤란하게 할 수는 없었다.

 

* * *

 

저녁 연습까지 마친 카게야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요 근래에 일어난 일들이 이해되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했다. 제 머리로는 도통 해답을 내릴 수 없어서 물어보려고 해도, 가볍게 넘겨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싶었던 마음에 1학년 1반부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혹시 히나타와 같은 애가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1학년 층부터 시작해서 3학년 층까지 다 돌아도 히나타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 타교 학생인 건가.

혹시 아는 녀석이냐고 물으려 해도 사진 한 장 없었다. 하긴 사진이란 걸 들고 있을 리가 없다. 히나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수록 그 때 함께 했던 연습이 잊혀지지 않았고, 수소문 하고 싶었다. 그 때 그 손맛을 잊지 못해 찾아왔다고 하면 히나타가 받아줄 거라고. 하지만 학교에 없으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카게야마,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냐?”



타나카였다.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을 걸어오는 것을 받아주면서 생각했다. 타나카라면 진지하진 않아도 가볍게 들어주지 않을까. 의외로 믿음이 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저기 선배, 히나타라고 알아요?”



결국 저질러 버렸다. 침을 꼴깍 삼키며 이어질 대답을 기다리던 그 때, 타나카가 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어, 선배. 누군지 알아요?”

“히나타……말이지?”

“네.”



히나타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별안간 낯빛이 어두워진 타나카가 카게야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왜 물어보느냐고. 그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했지만, 타나카는 쉽게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이유라도 있어야 말해줄 것 같음에 우물쭈물 거리다 말했다.



“제가 도움을 좀 받았어요. 혹시 아시는 거 있으면…….”

“걔 우리 학교에 떠돈다는 영혼이랑 이름이 같은데?”

“에.”

“카게야마, 너는 들어본 적 없어?”



입학하고 나서 본 녀석들도 여럿 있었다고 겁을 주기 시작했다. 자주 나타나는 곳은 열심히 운동하기 바쁜 학생들이 있는 체육관이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자신이 본 건 영혼이었던 가. 그것도 체육관을 떠돌고 있는. 그래서 다이치가 보지 못했고, 히나타는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를 반복했던 걸까. 초조한 마음에 카게야마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타나카를 쳐다봤다.



“진, 진짜예요?”


겁에 질렸다고 해야 하나. 창백해진 카게야마의 안색을 살피던 타나카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진짜겠냐?”

“네?”

“이런 말을 진심으로 듣는 것도 너뿐일 거야.”



진즉에 츠키시마와 야마구치에게 괴담이랍시고 말해줬지만 믿지 않았다고 한다. 겁이 많은 야마구치 마저 믿지 않은 말을 네가 믿는 거냐고 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보면 너도 겁이 참 많은 것 같다고, 계속되는 웃음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지금 진지했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시선이 갈 곳을 잃었다. 그 때 앞장서서 걷고 있던 스가와라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나카! 1학년 괴롭히지 마―”

“아, 안 괴롭혔어요!”



그냥 장난 좀 친 것이라고, 이렇게 놀라운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며 어물쩍 넘긴다. 무슨 단서라도 찾을 줄 알았건만, 결국엔 처음과 다름없어진 상황에 한숨이 쉬어진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야. 근데 그 날이 지금은 아니야.

 

히나타가 사라지기 전날. 그러니까 히나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한 그 전날에 남긴 말이었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연습이나 도와달라고 그를 재촉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숙제 검사라도 해달라는 말을 했을 텐데. 카게야마에게 남은 것은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는 미련과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였다.

그리고 다시 연습을 시작한 뒤부터 카게야마에게 꽂히던 이유 모를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소뇨 / 히나른 연성&썰 / 트위터 @sogno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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