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by 쀼

공백제외 2406字

후타쿠치 켄지 X 테루시마 유우지



“꿈이야.”

“정말?”




[ Dream Dream Dream ]


이제 심장을 부여잡을 만큼의 놀라움은 없다. 단지 ‘오늘은 펠라만 하기로 했나 보다.’ 정도. 아. 머리가 길어졌다. 어제는 분명 짧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로 단정히 묶었다. 저렇게 묶은 걸 뭐라고 하던데. 포니테일? 그래. 그거였던 것 같다. 어쨌든.

‘미친. 중학생 때도 이렇게까지 꿈꾸진 않았는데. 몽정 한 번 제대로 겪네.’

언제부터 이 꿈을 꾸게 된 건지 기억도 안 난다. 처음 이 꿈을 꿀 때 시야가 엄청 흐려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내 성기를 감싸는 뜨거운 내부의 무언가도, 그리고 점점 오르는 열기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해방감을 느꼈고 잠에서 깼을 땐 속옷이 젖어있어 그제야 몽정인 줄 알았다. 알게 모르게 욕구가 쌓여 꿈에서라도 이렇게 푸는가 보다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신체 건강한 남아인데.

그러다 이 꿈이 며칠 간격으로 반복되었을 때 뿌연 물체가 점점 형체를 갖춰가더니 얼핏 형상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사람이구나. 머리카락이 노랑색이구나. 내가 이 꿈을 계속 꿀 정도로 많이 쌓여있었구나, 이 정도까지. 뇌를 자극하는 이질감이 온몸을 꾸물꾸물 기는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이 꿈을 꾸고 나면 다음 날이 가벼웠기에 오히려 환영할 정도였다. 이 꿈의 심각성을 느낀 것은 형체를 갖춘 물체가 누구인지 분명해졌을 때였다. 기어 다니도록 내버려둔 대가가 이거라니. 테루시마 유우지…. 내 위에서 허릴 흔들고 있는 몽정의 상대가 너였다는 사실이 불쾌하고 역겨웠으며 당장에라도 이 꿈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깨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단순한 몽정인 줄 알았던 꿈에 가위눌림까지 곁들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파정을 한 후였다. 

그날 후론 꾼 적이 없어 마음이 놓였다. 오늘 이 꿈을 다시 꾸기전 까지는. 엿 먹어 보란 건지 오늘은 저렇게 머릴 묶은 채로 샐샐 웃어가며 혀를 굴린다. 이번엔 정도가 심하다. 평소 같았으면 한 번 사정하고 나면 까무룩 잠이 들어 끝났을 테다. 오늘은 무슨 날인지 입이며 손이며 가슴이며 안 쓰는 신체가 없다. 발기한 것에 애를 쓸수록 착실히 결과를 보이는 내 신체 일부가 우습다. 너무나 닮았다. 닮은 정도가 지나쳐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 못 한 채 목마른 욕구만 채우는 내 자신이 더럽다. 친구인 그가 욕정의 대상이 된 것도, 주인을 배신한 저 발기한 것이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또 한 번, 저 얼굴에 사정 한 것도. 드디어 오늘 치 꿈이 끝났나 보다. 난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을 진데, 그저 누워있기만 했는데도 이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딸리나 보다. 눈꺼풀이 무겁다. 꿈뻑이는 시야에 그를 닮은 형체의 입술이 보인다. 열렸다 다무는 입 모양을 유심히 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넌……. 



[ Not ]


눈치가 빠르다는 건 상황에 따라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나에게 눈치가 빠르다는 건 불쾌하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오니 말이다. 처음은 우연이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시선을 인지한 후로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더위가 아님에도 눈빛에 열기를 한껏 안아 쏟아 내는지 궁금해서 시선의 주인을 찾아내느라 눈에 불을 켰다. 그 결과가 후타쿠치 너 일줄 상상도 못 했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본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에게 눈빛으로,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으로 말하는 게 무엇인지.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한순간이었다. 평행선이라 여겼던 감정이 서로를 바라볼 때까지의 시간은 정말 찰나였다. 그 찰나 후로 귓가에 작은 악마가 둥지를 틀었다.

‘서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일단 우선 해 버려.’

‘어떻게?’

‘알잖아. 저 아이네 집 비밀번호.’

살랑이는 속삭임은 사고를 감각시킬 만큼 아릿했다. 2132. 딱 한 번 후타쿠치 집으로 놀러 갔을 적 우연히 본 집 비밀번호가 선명해지는 순간 행동으로 옮기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맛본 달콤함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후타쿠치가 깰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들키게 되었을 때를 대비한 변명거리로 머릿속에 가득 차 처음에 어떻게 켄지를 건드렸는지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건 처음만 어려웠지 두 번, 세 번, 그게 쌓이고 쌓일수록 더 대담해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정도. 가장 최근에 찾아갔을 땐 이제 거의 나를 알아보는 듯해 조용히 웃으며 안녕을 고했다. ‘니로, 이건 꿈이 아니야.’ 졸린 지 느리게 꿈뻑이는 눈꺼풀이 완전히 닫히는 걸 보고 나서 발걸음을 끊었더니 먼저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해성사라니.

웬일로 우리 학교까지 찾아온 후타쿠치를 반갑게 맞이한 것도 잠시. 그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을 일관하다 운을 떼기 시작했다. 네가 꿈에서 자꾸 나와. 단순한 꿈이 아니야. 네가 내 성욕 풀이의 대상이 돼. 이게 점점 심해져서 너랑 같이 다니기 힘들어. 죄수처럼 고개를 숙이고 읊조리는 말은 네게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다. 물론, 제일 마지막 부분은 제외하고.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 결론은 그거야? 같이 다닐 수 없다고? 안 돼. 절대 있을 수 없어. 니로,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야.  

“켄지~. 오늘도 같이 안 갈 거야? 응?”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선 너를 잡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낸 후엔 그 잘난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아 내가 먼저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어 애 닳은 사람이 먼저 찾아가야지 어쩌겠어. 물론, 지금 이렇게 대놓고 무시를 당하고 있지만.

이젠 아예 듣지 않겠다는 건지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야. 음악 안 듣는 거 다 알아. 핸드폰에 노래 하나 없으면서 이어폰은 왜 꽂아. 켄지 뒤로만 따라가다 몇 걸음 더 빠르게 걸어 옆에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내가 바로 옆에 있는 데도 무시하는 거야? 아, 너무한데. 완~전. 

저 표정은…. 음. 그래. ‘어디서 개가 짖나.’ 같다. 뭘 해도 붙어 다니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꿰뚫어 볼 정도다. 지금은 무시와 함께 짜증도 같이 난 정도? 본인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했으니 꺼지라고 했는데도 효과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그 정도의 솔직함 가지고 네 곁에서 떨어질 나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니로~.

“해도 돼.”

걸음이 뚝 하고 멈춘다. 역시 노래 안 듣고 있네. 작게 말했는데도 들었어, 넌. 그렇지? 꿋꿋하게 앞을 보던 고개를 돌린다. 마주한 시선에 의문이 담겼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다 말해줄게. 

“그거 꿈 아냐.”

너와 내가 바라는 현실인 거지. 우린 좀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 그렇지, 니로? 너희 집이 더 가까우니 그쪽으로 가자. 그리고 간 김에 비밀번호도 바꾸는 게 좋겠어. 너와 내가 정한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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