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과의 거리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금액! 아주 저렴했다. 처음에도 저렴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꺼내본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하면서도 계약 안한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긴 하지만 덕분에 더 저렴해졌다.

“생각한 건 이 정도인데...”

이미 제시한 금액부터가 저렴했지만 리사는 이사비용과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지 하는 마음으로 금액 조정을 요청했다. 처음 양심이란 것이 ‘너 미쳤니?’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지만 리사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주인은 무덤덤하게 가격을 조정해주었다. 설마 주변 물가를 모르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라서 리사는 대놓고 물어봤었다.

“그.. 제가 요청한 주제에 좀 웃기지만... 주변 물가는 아시고 제시하는 거죠...?”

“이 주변이 비싸죠. 당신이 월세를 제때 내고 제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고 법적인 문제가 있는 일만 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이것만큼은 꼭 지켜주세요. 술 먹고 들어오지 마세요. 아니면 술 먹기 전에 미리 연락해주세요. 최소 1시간 전. 그것만 지켜준다면 지금 제시한 가격으로 할 테지만...”

지켜지지 않는 순간 당신은 이 집에서 나가는 거예요.

그 정도야 문제없지. 라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는 정말로 그랬다.

리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계약서에 따로 조항을 추가하여 도장을 꽉 찍었단 소리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은 리사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뭐 그렇게 음주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기도 하고.

그렇게 한 달 동안 지내본 결과 리사는 자신의 선택이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공용으로 쓰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는 쓰고 싶으면 써도 괜찮다고 했고 언제나 재료는 신선했다. 근데 집주인은 딱히 요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런 재료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애초에 나가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리사가 출근할 시간에는 자고 있는 것인지 문이 닫혀 있었고 퇴근할 때도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니까 리사는 집주인을 계약 때를 제외하고 본 적이 없었다. 주말에는 마주치긴 했지만 아주 잠깐 부엌에서 마주치는 것을 제외하면 본 적이 없었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도 분명 신형이었는데 왜 사둔 걸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생각하는 게 다였다. 그야 자신은 지금 세를 들어 사는 사람이었고 계약 조건에도 사생활 존중이었기 때문에 그런 개인적인 것은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딱히 그것이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었으니 리사는 그냥 있기로 했었다.

그래, 리사가 입사한 후 처음 가진 회식 때까진 말이다.

술이란 게 사람을 참 한 없이 가볍게 만들 수 있고 진실하게 만들 수 있고 재미있는 액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리사는 술을 마신다고 미리 문자까지 보내두었다. 약속한대로 알렸다는 소리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집주인 히카와 사요가 왜 그런 조건을 내걸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술 냄새가 싫은가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야 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조금 다른 문제임을 알았다.

문, 그러니까 집 문이 잠겨 있었다.

“이건.. 이건 아니지....”

정말 이건 아니지.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청승맞게 울고 싶었다.

“어라? 음.. 그 쪽이 새 룸메이트? 세입자?”

올려다보니 집주인을 닮은 사람이 서 있었다.

“어... 히카와 씨?”

“히카와가 맞지만 집주인은 아니야. 술 얼마나 마셨어? 이거 몇 개?”

그 사람은 리사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휙휙 흔들며 물었다. 아니 나 그렇게 안 취했다고요.... 하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대답하는 리사였다.

“세 개, 두 개, 아아니 다섯... 아니 왜 자꾸 바꿔요?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아하하하, 다행이다. 틀렸으면 오늘 밖에서 자라고 침낭 던져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아주 개구쟁이같이 웃으면서 집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집 열쇠를 받지 못했었다. 그 동안 집주인이 계속 열어주었기 때문에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 달라고 해야지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열쇠를 건넸다.

“그거 당신거야. 어떻게 여태 달라고 말을 안 했어? 언니는 술 마신 사람 마주하는 거 싫어해.”

“언니? 동생이었어요?”

“음.. 쌍둥이. 언니는 오늘 안 들어올 거라 했으니까 이마이 씨 잘 자.”

“왜 안 들어와요? 나 오늘 멀쩡한 거 확인했잖아요.”

“아! 술 마신 사람 보는 거 싫어하는 것도 있는데 그거랑은 별 게로 사실 오늘 외출하는 날이었거든. 그러니까 오늘 이마이 씨가 술 마신 것과는 관계가 없어. 문 앞에서는 그냥 내가 확인한 거.”

당했다. 그냥 확인 해본 거라니!

“하지만 침낭만 주려고 한 건 진짜야.”

씩 하고 웃는데 저게 진심인 거 같아서 더 무서웠다. 앞으로 술은 적당히 마시겠습니다. 원래도 적당히 마셨지만. 이마이 리사는 혼자 그렇게 다짐했다.

“아 동생 분은 이름이?”

“내 이름? 굳이 궁금할 필요가 있나... 아니지, 혹시 모르니까 전화기 좀 줘볼래?”

이마이 리사의 전화전호부에는 ‘히카와 히나’라는 이름이 새로 추가되었다.

“뭐.. 최대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언니한테 일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연락해줘. 꼭이야? 언니가 그래도 당신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거든. 괜찮은 룸메이트인 거 같다고.”

“오... 기분이 묘하네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는데.... 식사도 다 따로 하고.”

나는 나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지.

“정말 별로였으면 언니가 계약도 안 했겠지? 그럼 난 이만 갈게. 토끼 같은 애인이 집에서 기다려서.”

“아 네. 잘 가요.”

“말 놓아도 되는데! 우리 동갑이잖아?”

“어어.. 그래, 히나... 잘 가! 오늘은 어쨌든 고마워. 나 이대로 밖에서 자야 하나 고민했었거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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