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생활문화 기사란에서 본 글입니다. 


*출처는 사진 속에 있습니다.*



몇 달 전에 본 기사인데, 엊그제 동부산 아울렛에 갔다가 갑자기 이 기사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우선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감사인사를 하지 않은 아기 엄마에 대한 욕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요즘 아기 엄마들 전체에 대한 욕, 또 더 나아가서는 여자들에 대한 욕으로 번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 기사를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인사란 과연 무엇인가.' 였습니다. 분명 강제성은 없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적용되는 사회적인 약속 같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인사 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고마운 상황에선 '고맙습니다' 미안한 상황에선 '미안합니다.' 심지어 헤어질 땐 '안녕히가세요'인지 '안녕히계세요'인지 어려워하기도 했지요. 


어릴 적 혹독하게 인사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이제 길거리에서 낯선 어르신들에게 '안녕하십니까' 까지는 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인사를 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을 땐 인사를 제대로 하는 것 또한 사회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지요. 감사 인사와 사죄 인사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초면이라도 고마우면 '감사합니다' 미안하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그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욕을 먹기도 합니다. 


인사를 받아서 기분 나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특히 내가 베푼 호의에 대한 감사 한마디에 기쁨이 찾아오고, 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사죄 인사 한마디에 용서가 찾아옵니다. 인사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관계가 훨씬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인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인사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만났을 땐 반가워 죽겠다는 듯 인사하고, 고마울 땐 내 감사 인사가 상대의 기쁨이 되도록, 미안할 땐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헤어질 땐 아쉬워 죽겠다는 듯 인사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인사를 남에게 강제적으로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나를 만나도 본체만체 한다거나, 분명히 나는 좋은 마음으로 베푼 호의인데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듣지 못한다거나, 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를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기분 나쁘겠죠. 내가 반갑지 않은 사람과 깊이 길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내 호의를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과 누가 친하게 지내고 싶겠어요. 


그러면 그게 인사하지 않는 사람의 잘못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은 실제로 내가 반갑지 않을 수도 있고, 내 호의가 전혀 고맙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의 잘못이 미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반갑고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단지 인사성이 없어서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속마음이니 내가 알 방법은 없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상대의 잘못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반갑지 않은 것도 잘못이 아니고, 반가우면서도 인사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내게 고맙거나 미안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 아니고,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인사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상대방의 성격이고 성질일 뿐입니다. 


내가 반갑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해서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진 않고, 내가 인사를 잘 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꼭 그러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인사는 강제가 아니니까요. 그냥 나는 인사를 잘하는 성격일 뿐이고, 상대는 인사를 안하는 성격일 뿐이에요. 


위의 기사에서도 저는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은 아기 엄마보다, 그게 속상해서 온라인에 글을 올린 글쓴이가 더 안타까웠습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감사합니다'라는 다섯 글자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속이 상했을까요. 고작 남의 말 한 마디가 내 인생에 무슨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이죠. 


물론 아기 엄마들은 감사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딱 다섯글자면 충분했어요. 아니면 고개라도 까닥하고 표현했으면 본인들도 기분이 좋았을 거예요. 만약 속으로는 엘베를 잡아주는 것이 크게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른 감사 인사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속마음은 전혀 고맙지 않더라도 '감사합니다' 한 마디면 본인의 기분이 좋아졌을 거예요. 인사는 남이 아니라 내가 기분 좋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남의 기분이야 좋든지 말든지, 감사인사를 하고 나면 내 기분이 상쾌하고 시원하고 뿌듯해지거든요.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나만 잘하면 됩니다. 나만 인사 잘하고 내 기분만 좋아지면 됩니다. 남의 인사까지 간섭할 필요가 있을까요. 더군다나 남의 인사 한마디에 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위의 글쓴이는 아기 엄마들을 위해 엘베를 잡아주는 호의를 베풀었으면, 스스로 착한 일 했다며 뿌듯해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기분 상한 채 온라인에 아기 엄마 흉보는 글을 올릴 게 아니라, '캬.. 오늘의 나 칭찬해.' 하면서 기분 좋게 잠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 했던 일이 아니잖아요. 순수한 호의였잖아요. 그리고 사실 엘베를 탈 때 뒤에 사람 있으면 잡아주는 일이 그렇게 미치도록 감사한 일은 아니지 않나요.. 저는 평생 당연하게 해온 일이라 그게 반드시 감사 인사를 들어야 할 정도로 고마운 일인지는 몰랐어요.


저는 좀 이상한 데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 편입니다. 공용 샤워실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찬물 샤워를 하더라도 다음 사람을 위해서 온수 쪽으로 돌려놓고 나온다든지, 햇볕이 눈부신 날 옆차선에 선 버스 그늘 덕분에 잠시 눈이 편안할 때 뒷차주에게도 눈의 휴식을 위해 앞으로 좀 당겨준다든지,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한 아주 사소한 배려를 하고는 저 혼자 뿌듯해 미칩니다. 캬~ 이렇게 배려심 깊은 나 너무 멋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 그럴 때 감사 인사까지 받는다면 하늘을 날겠지만, 남이 해주는 내 칭찬보다는 내가 해주는 내 칭찬이 훨씬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나를 칭찬하면서 자존감이 쑥쑥 올라갑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제??) 엊그제 동부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바닥에 아기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짝만 덩그러니 떨어진 아기 신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주변에 아기가 있었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주워줬겠지만, 주변엔 어른들밖에 없는 걸로 보아 신발 주인은 이미 멀리 가버렸나 봐요.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어떤 아기가 아빠 품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울고 있었어요. 발버둥 치는 발을 보니 역시 신발을 한짝만 신고 있더군요. ㅋㅋㅋㅋㅋㅋ 아기 아빠는 아기 발버둥 때문에 신발이 떨어진 것도 모르는 것 같았고, 옆에 있던 아기 엄마도 아기 눈물 닦아주느라 신발은 모르고 있었어요. 신발이 떨어진 곳까지 거리로 치면 한 2,30미터 쯤 될까요. 신발을 주으러 가기엔 아기가 너무 심하게 발버둥치며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뒤로 달려가 신발을 주워서 들고 뛰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조카가 있어서 압니다. 아기 신발 겁나 비싸요. 


아기 신발을 들고 뛰어가면서 제가 무슨 생각했을지 짐작하셨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신발을 아기 엄마에게 건네줄 때, 제가 얼마나 활짝 웃고 있었을지 저도 짐작이 됩니다. 스스로 내 자신이 너무 멋지게 느껴지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몇 달 전 읽었던 저 기사가 생각났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신발을 받은 엄마는 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아기 아빠 역시 아기 엄마에게 다가온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슬쩍 보고는 눈을 돌렸습니다. 


분명 위의 기사를 읽었을 때는 인사는 나만 잘하면 되지, 왜 남에게 강요해서 스스로 기분 상하는 일을 만드는 건지 안타까웠는데, 제가 딱 똑같은 일을 당해보니 또 다르더군요. 뭐랄까. 김이 새는 느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 아기 신발을 들고 뛸 때는 생판 모르는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바란 게 아니었거든요. 아기가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고 따뜻하게 신고 가면 제 기분이 좋을 일이지, 감사 인사를 못 받는다고 해서 기분 나빠질 일이 절대 아니잖아요. 그리고 아기 부모 역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신발을 마침 버리려던 거라서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아기 신발을 만져서 불쾌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발버둥치는 아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인사를 못했을 수도 있고요. 뭐가 됐든 그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걸 분명히 알아요. 


그러나 순간적으로 느꼈던 김새는 기분은 지금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분명 그 신발을 건네주는 순간, 감사 인사를 기대했던 거예요. 그러니 김이 샜겠죠. 물론 아주 짧은 순간 김이 샜지만, 착한 일을 한 저 자신에게 뿌듯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일부러 버린 신발이라 할 지라도 상관 없어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읽었을 때와 제가 직접 겪은 일일 때는 이리 다르네요. 기사의 글쓴이에게는 '내 호의는 내것, 네 인사는 네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씨발 인사 쫌 해라' 가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또 한번 내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을 공부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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