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매년 10월 31일 찾아오는 날
겨울의 시작이며 '모든 성인의 축일'
켈트 인들에게는 한 해의 시작인 새해 첫날.
이들 전통에서 내려오는 것이 있다.
새해 첫 밤에, 저승의 문이 열린다.
그 문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승으로 영혼은 물론 온갖 이상한 것들이 들어온다.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콧방귀를 뀌었지.
그래, 그 일을 겪기 전까지만…

"그럼, 다녀올게."
"응. 조심해서 다녀와."
알폰스와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에드워드는 밖으로 나섰다.
바깥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오늘은 10월 31일, 할로윈 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한 에드워드는 자신의 지식을 알아본 한 대학교수의 추천으로 그 교수가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이 맞지 않았다. 가르치는 건 처음 해볼 뿐 아니라 자신을 처음 본 학생들은 저를 무시하고 깔보고 놀리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나아졌고 이제는 한 명의 훌륭한 교수로서 성장했다. 그즈음이 되자 에드워드도 일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대학 강의실로 가 수업을 했다.
수십 명이 되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에 집중하여 듣고 저마다의 책에 필기했다.
강의실 안은 에드워드의 목소리와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조금씩 나오는 학생들의 질문 말고는 없었다.
"그럼 잠깐 휴식할까?"
설명을 끝내고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이 들리자 학생들은 저들끼리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깐 쉬려고 할 때였다.
"교수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고 짧은 머리를 한 여학생이었다.
"뭐지?"
"교수님은 보고 싶은 사람 있으세요?"
"보고 싶은 사람이라… 많지.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와아. 저희랑 나이가 비슷한데도 많이 있으세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냣!"
에드워드가 버럭 화를 냈다. 여러 학생이 에드워드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사실이잖아요!"
학생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그렇다, 에드워드는 아직 20대 중반도 넘기지 못했다. 즉 자기 앞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가 교수가 된 때는 갓 20살이 되었을 무렵, 그때는 많은 찬사 속의 조롱을 들었다. 최연소 교수 속에 숨어있는 온갖 욕들, 물론 지금은 전부 사라진 상태이다.
첫 수업 때도 그런 반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겐 자신들의 또래가 교수로 수업에 들어왔으니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수업 후 그들은 그를 엄청나게 과소평가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식 그것이 증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졌다. 지금처럼 서로 대화를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존칭만 있을 뿐이지 거의 친구와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 다른 교수들은 이 점을 지적하곤 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싫진 않았던 에드워드는 그냥 가만히 두었다.
"그럼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라… 에드워드는 턱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생각에 빠졌다.
'보고 싶은 사람', 이 한 마디에 참 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의 어머니와 시끄러웠던 소꿉친구, 짜증 났던 자신의 상사와 귀찮았지만 친절했던 그의 친구와 부하들.
이들은 이제 볼 수 없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전원 떠나보낸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그들이 있는 곳을 떠난 게 되는 건가?
그러나 그들이 아닌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알폰스…"
알폰스 하이드리히, 자신이 이곳에 와서 만난, 자신의 동생과 닮은 사람.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
그의 이름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갔다. 그걸 들은 학생은 질문을 던졌다.
"알폰스면 동생 아닌가요? 동생과는 같이 살고 있다 하지 않으셨어요?"
"어? 아아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녀석이 있었지…"
에드워드는 대충 대답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름에 의문을 가졌다.
이쪽에서 먼저 거리를 뒀던 상대였다. 자신의 동생과 닮아, 동생이 생각나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상대였다.
그렇기에 그렇게 좋은 인연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이젠 볼 수 없지만…"
에드워드는 시선을 돌렸다. 본의 아니게 강의실 분위기가 울적해졌다. 괜히 아픈 걸 찌른 거 아니야? 교수님 저런 표정 처음 봐 엄청 소중한 사람이었나 봐 학생들이 수군댔다.
그때 분위기를 수급하고자 했는지 한 학생이 말을 꺼냈다.
"교수님 오늘 할로윈인데 혹시 할로윈에 대해 아는 거 있으신가요?"
"응? 어? 음… 잘 모르겠는데…?"
"앗, 교수님이 모르시는 것도 있으시다니 처음 알았네요!"
"뭐, 기념일 같은 건 지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내가 있던 곳은 그런 게 없었거든- 이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저들이라면 분명 이것저것 물어볼 테니까
에드워드의 말에 학생들은 또 수군댔다. 역시 교수님 똑똑하신 데엔 이유가 있나 봐, 와아 난 그렇게 못해 정말 대단하시다, 저마다 감탄이 묻어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굽히지 않고 방금 질문을 한 학생이 계속 말했다.
"할로윈 날 밤에 저승의 문이 열린다고 해요. 그래서 저승에 있는 사람들이 이승으로 온다 하더라고요."
그래?- 에드워드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는 그런 걸 믿는 타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과학자니까, 절대적인 걸 탐구해내는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니까,
"어쩌면 그 분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다- 뭐 난 그런 거 안 믿으니까 말야."
에드워드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교탁에 섰다.
"자 그럼 휴식 끝! 다시 수업 들어가자!"
에드워드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의 탄식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쉬어요, 오늘 여기서 끝내면 안 돼요? 이번 한 번만 봐줘요! 그러나 학생들의 탄식에도 에드워드는 굳건했다. 저번에도 그 소리 했잖아 이번엔 안 돼! 냉정한 그의 말에 학생들은 절규하며 수업을 들었다.

"아- 피곤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따라 말이 많았단 말이야-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은 에드워드에게 대화와 질문을 던져 왔다. 질문과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은 달랐지만, 질문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사귀는 사이였나요?
일일이 질문에 답하던 에드워드는 결국 지쳐 다음 번에 말하겠다고 하고 도망쳐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에드워드는 조금 전 학생이 말한 '할로윈'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밤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뭐, 그럴 리가 있겠냐만은…"
에드워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믿을 수 없다. 그게 그의 생각이었다.
복도를 걸어가던 그는 왼쪽에 찬 손목시계를 보고 아차 하고 뛰어갔다.

평소처럼 고된 하루를 끝낸 에드워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형. 어서 와!"
동생인 알폰스가 그를 맞이해줬다. 때를 맞춰 온 것인지 식탁 위에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마침 저녁 준비 다 됐어. 씻고 와서 같이 먹자."
에드워드는 알았다는 의사와 함께 화장실로 가 손과 얼굴을 씻고 나와 식탁 앉았다.
알폰스도 자신의 형과 맞은편 식탁에 앉았다.
"형 오늘 대학에서 뭔 일 있었어?"
"어 왜?"
"왠지 오늘따라 많이 힘들어 보여서…"
"아아…"
에드워드는 한숨을 쉬며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단 '알폰스 하이드리히'에 관한 사실만을 빼고,
동생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째선지 꺼려졌다.
"그랬구나. 그래서 계속 질문에 시달린 거야?"
"그렇다니까. 다음 수업이 끝났는 데도 찾아와서 계속 물어보는데…"
에드워드는 거의 한탄하듯 털어냈다. 알폰스는 그의 얘길 들으며 웃거나 놀라거나 하는 둥 여러 반응을 보였다.
그 날 저녁은 형제의 대화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방에 들어갈려던 에드워드는 자신의 방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강도인가? 하지만 강도가 들어왔다는 낌새는 못 느꼈는데… 하며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자신의 방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라기엔 분위기가 이상했다.
대체 누구인 거지? 하던 에드워드는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놀라 주춤했다.
그 사람은 레몬 빛깔의 짧은 머리와 맑은 하늘 같은 푸른 눈빛을 가진 사내,
바로 알폰스 하이드리히였다.
에드워드는 문을 확 열어젖히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놀라며 에드워드를 바라봤다.
"대체 뭐예요 에드워드 씨 깜짝 놀랐잖아요!"
"알폰스…? 정말 알폰스야?!"
에드워드는 믿지 못했다. 그가 여기 있을 리 없다. 애초에 그가 살아 있을 리 없다. 자신의 눈앞에서 그가 죽어 있는 걸 보았으니까,
그 날 보았던 그의 모습은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다.
"네, 맞아요. 저 말고 달리 누가 있겠나요?"
알폰스가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에드워드는 알폰스에게로 달려가 그를 안았다.
그의 몸에서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를 다시 만났단 사실이 중요했을 뿐이다.
"하하. 에드워드 씨는 여전히 작으시네요."
"누우가 초 마이크로 땅꼬마라는 거야!!"
알폰스가 자신에게 안긴 에드워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가 화를 버럭 내며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오늘이 가기 전에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오늘…? 아 그렇구나…"
에드워드는 낮에 대학에서 들은 학생의 말을 기억해냈다.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았는데…"
"네? 뭐가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에드워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알폰스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그를 마주하니 무엇부터 말해야 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폰스…"
"에드워드 씨?"
"보고 싶었어… 정말로…"
자신이 이 말을 할 처지가 되던가
에드워드는 알폰스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알폰스는 변함없는 웃음을 드러내며 에드워드를 안으며 말했다.
"저도예요. 에드워드 씨. 저도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고 에드워드는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의 무심함에 대한 울분인가 아니면 무심했던 자신을 생각해준 그에 대한 감사인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제 진정되셨나요?"
"으… 응…"
그의 품에 안겨 거의 30분간 울었던 그는 후에 밀려온 쪽팔림에 못 이겨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에드워드 씨가 이렇게 우시는 건 처음 봤어요."
"… 제발 그 얘기는 그만해 줘."
에드워드는 울상인 표정으로 말했다.
"… 이 얘기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앗"
"그건 절대 불가능할 거예요. 전 죽었으니까요."
"그래… 그랬지… 잊고 있었어…"
에드워드는 어이없단 듯 풋 하고 웃었다.
"저, 에드워드 씨.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응?"
"에드워드 씨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아 그렇구나… 어느 걸 먼저 말할까…"
에드워드는 머릿속에서 기억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 약 이주 후에 이곳 런던에 정착했어. 그리고 그때 우연히 한 대학교수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혹시 뭔가 실수하신 건 아니지요…?"
"아니거든! 아무튼, 얘길 나누더니 나더러 교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 본인이 직접 추천해주겠다면서 말야."
"헤에 그래요?"
"뭔가 못 믿는 눈치인데 정말이거든?"
"아니에요. 조금 놀랐거든요. 에드워드 씨가 교수라니…"
알폰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드워드는 알폰스를 보며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 그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응, 처음엔 조금 귀찮은 일도 있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
"다행이네요."
"뭐가?"
"많이 걱정했어요. 에드워드 씨 잘 지내실까, 밥은 먹고 지내실까 하고요.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네요."
"으… 응…"
에드워드는 무어라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알폰스가 이젠 자신은 없어도 되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네?"
"많이 그립더라고…"
에드워드는 살짝 웃었다. 알폰스는 그런가요? 라고 웃었다.
"저도 에드워드 씨의 수업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들어서 뭐 하려고?"
"그냥 에드워드 씨가 어떻게 수업하실까.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니까요."
"반응은 뭐… 괜찮은 거 같더라고"
"놀리거나 하진 않던가요?"
"아니… 초반에도 지금도 많이 놀려 먹히고 있지…"
에드워드는 화가 났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키 작은 건 예삿일이고 어리다는 거에서 많이들 놀리더라고…"
"하하하;"
알폰스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물었다간 에드워드의 분노를 머리끝까지 채울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또…"
에드워드는 다시 이어나갔다. 알폰스는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 이제 가봐야 하겠네요."
"벌써…?"
"네. 곧 다음날이 오니까요."
"그렇…구나…"
에드워드는 아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알폰스는 그를 위로하고자 말했다.
"내년에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1년에 한 번씩이라니…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그게 뭔가요?"
"학생 중 한 명이 추천해준 책에 있더라고. 1년에 한 번 만나는 불우한 인연이라고…"
에드워드는 말하다 멈추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알폰스는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
"불우한 연인… 이요?"
에드워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알폰스의 등을 한 대 쳤다.
"아야야… 갑자기 뭐예요 아프잖아요!"
"아… 아까 건 잊어버려!"
연인이라는 거요? 우악 우와아악! 에드워드는 잊으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함을 질렀다.
마구 날뛰는 에드워드를 알폰스가 꼭 안아주며 말했다.
"그럼 가볼게요. 건강하세요. 에드워드 씨."
"아 저 알폰스…!"
그때 바람이 사락 불며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폰스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에드워드는 아무 말 없이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봤다.
"… 안녕 알폰스."
그는 이미 떠나고 없는 그에게 늦게 마나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날 강의실의 칠판 앞에 선 에드워드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고 즐거워 보였다.
학생들은 어젯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나 보다 추측만 할 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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