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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며,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던 추위가 누그러들었다.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시마다 가문 저택의 나무들은 덮였던 눈이 녹으며 은은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시마다 가문 저택의 정원은 사시사철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비록 겨울이라 생동감있는 잎사귀나 꽃이 없을지언정 여전히 곧게 자란 가지만으로 빼어난 자태를 뽐내는 온갖 나무들이 정원을 채웠다. 이 정원의 가장 오래된 벚나무 역시 고고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마다 가문이 생길무렵부터 함께했다는 이 나무의 가지는 한조의 방 창문께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데, 한조 뿐만아니라 겐지도 역시 이 나무를 좋아하여 자주 한조의 방에 눌러붙곤 했다. 한조도 이 이유에서라면 순순히 겐지를 자신의 방에 머물게 했다. 겐지는 나무를 보겠다며 매일같이 한조의 방에 드나들었다. 하지만 오늘 겐지의 목적은 벚나무가 아니었다. 한조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겐지를 무시한 채 책장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형.

-...


 겐지가 한조를 나지막히 불렀지만 한조는 아랑곳않고 책을 들여다봤다. 적막한 방에 한조의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흘렀다. 겐지는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한조를 불렀다. 


-혀-엉.

-...

-형아! 


 한조가 묵묵부답이자 겐지는 답답해졌는지 한조가 들고있는 책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를 방해했다.


-겐지-.


 겐지는 한조의 타이르는듯한 짧막한 소리에 입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한조를 부르며 떼를 썼다.


-형 나 검술 알려줘, 다음주가 벌써 대련이란말야.

-겐지, 오늘따라 왜그러는거야. 그건 며칠 전에 얘기 끝났잖아. 넌 나가지않고 내가 나가기로.


 한조는 잠시나마 겐지로 돌렸던 시선을 다시 책 속에 고정했다. 


-하지만...

-그때는 기존의 검술 대련과는 달라. 다른 가문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지. 검술이나 대련에 아직 미숙한 네가 나가면 실수가 생길 수도 있고 ,그건 곧 시마다 가문의 수치가 될거야. 

-그러니까 형이 알려주면되잖아!


 한조는 순간 책을 놓아버릴 뻔 했다. 동생만큼은  검술에 능숙해선 안됐다. 한조는 잠시 혼자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숨을 한번 내쉬곤 겐지쪽으로 돌아앉았다. 겐지는 설렘에 가득 찬 눈동자로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하지만 한조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겐지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겐지, 넌 검술에 재능이 없어. 물론 내가 어느정도까지 알려줄 순 있겠지만 일주일 만에 네가 대련에 나갈 실력을 갖추는 건 절대 안될 거야. 불가능해. 그러니-


 그러니 이제 그만 떼쓰고 네 방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꺼낼 차례였는데 한조는 당황해 말을 잇지 못했다. 


- 너무해 형...난 정말 검술이, 흑...


겐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갑자기 쉴 새 없이 꺼이꺼이 울어대는 동생때문에 한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얘를 어떻게 달래야하지. 이렇게 큰 소리를 내다간 가문사람들이 몰려올지도 몰랐다. 그들은 한조와 겐지가 붙어있는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한조는 이를 알고있었다. 한조는 서둘러 겐지의 등을 어설프게 토닥였다.


- 겐지야, 미안해. 아 그러니까 내말은...

- 형 말은...?


겐지는 잔뜩 빨개진 눈으로 한조를 쳐다봤다. 한조는 그런 동생의 눈빛에 못이겨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사실상 항복선언이었다.


-그래도 검술은 나랑 같이 천천히 해보면 늘 것 같다고, 그말이었어. 그러니까 울지마, 응? 


 겐지의 울음이 그치고 잰걸음으로 한조의 방으로 향하던 시종도 멈춰섰다. 잔잔하지만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시마다가문의 정원을 차분히 훑고 지나갔다. 겨울이 가려면 아직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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