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단편]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기억나는 건 회사 파티 연례행사뿐이었다.
삼삼오오 그룹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인사치레하면서 얼굴도장을 찍는 일에 연연할 때 지루함에 견디지 못해 바깥으로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가 춥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뚫리는 기분이 기분 좋아 테라스에 기대선 야경을 바라봤다. 어른들의 파티에서 제 역할은 없었으니 사라진다고 해서 찾을 사람도 없었다. 한참을 기대어서 바람을 쐬는데 제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시선을 아래로 뒀다. 하얀 얼굴에 통통한 볼에 눈도 동글 입도 동글 저번에 민현이 데려왔던 강아지와 제법 닮았다.



" 형아 나도 "
" 누가 네 형인데. 부모님은? "
" 엄마 아빠가 놀고 있으라 했어 형이랑 "



무슨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는데 창가 너머로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 모습에 성우는 한숨 내쉬었다.
가기 싫다는 거 볼일 있다며 억지로 끌고 오더니 그게 결국 애 돌보기 위함이라니. 와중에도 여전히 옷깃을 잡은 채로 동그랗게 눈뜬 채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거니 싶어 뭘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다시 옷을 잡아당겼다.



" 나도 볼래 "
" 뭐? 야경? "
" 야경이 모야? "



어린애한테 뭘 바랐던 건지. 춥지도 않은지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를 두 팔로 안아들어선 품에 안고서 보고 있던 풍경을 보여주니 제 시선에 펼쳐진 풍경에 크리스마스 전구야 반짝여 예뻐 네리는 예쁜 거 좋아 몇 안 되는 단어를 띄엄띄엄 말하면서도 눈꼬리를 휜 채 웃는데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야경을 크리스마스 전구라고 하다니 아이들 시선으로 보는 건 남다르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싶어 보는데 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는 게 제법 근사했다.



" 이름이 내리? "
" 강다니이엘!  "
" 아.. "



아버지 회사처럼 자수성가해서 올라온 중견기업이라고 뉴스에 다 오던데 그 강 씨 집안 아이였구나.
아버지를 통해서 간간이 이야기를 들었다. 동창이자 소꿉친구라며 아이가 하나 있는데 무뚝뚝한 자신과는 비교도 안되게 귀엽다며 자랑을 하더니 그 꼴이 맞아들었다. 오랫동안 보면 지겹기도 할 텐데 입에서 캐럴까지 부르는 통에 팔이 떨어질 것 같음에도 쉽사리 아이를 내려두지 못했다. 노래 끝에 코를 훌쩍이는 통에 겨우 내려놓는데 아이 체온이 높다 하지만 목도리와 장갑하나 없이 입에서 김을 내뿜는 모습에 성우는 제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선 아이에게 둘러줬다.



" 안 춥냐 "
" 아까는 추웠는데 지금은 따뜻해 형아가 해줘서 좋아 "
" 말끝마다 형아라고 하네 진짜 "
" 그럼 뭐라고 해 삼초니? 아저씨? "



나이 차이가 좀 있다 하지만 중학생인 제게 아저씨는 너무 하다 싶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프다고 짜증 날 만도 한데 오히려 헤실헤실 웃는 게 속도 좋다 싶다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려는데 손을 잡아끄는 통에 뭔가 싶어 보니 화단에 크리스마스 장식해놓은 꽃을 떼어다가 성우를 향해 건넸다.



" 형 선물! "
" 야 꽃을 꺾으면 어떻게 "
" 이거 가짜라고 했는데 .. "



금세 시무룩해져선 꽃을 든 손을 내려놓는 다니엘을 보다 성우는 몸을 숙여서 아무튼 고마워 말하고선 아이의 손에 있는 꽃을 받아다가 제 슈트 앞주머니에 꽂았고 그 모습에 세상 행복하다는 듯 웃는 다니엘을 보다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선 같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검은색 슈트를 입길 잘했다고 생각해야 하나 빨간색 포인세티아가 어울린다며 입바른 칭찬을 들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뛰어와선 성우의 다리를 붙잡고선 달라붙어선 귀엽다는 여자들의 말에도 입술을 내민 채 토라졌다.



" 야 좀 "
" 형은 녜리꺼야! 만지지 마! "
" 아.. 진짜 "



점점 울상 짓는 아이를 보고선 여자들은 저마다 자리를 피했다. 여전히 다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올려보고선 형 또 올 거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데 차마 거짓말할 수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부모와 함께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자꾸만 지어졌다.





*




대학교 진학이며 아버지 회사 일이며 바쁜 일상 속에 아이와 약속은 잊혀갔다.
학생회실에서 마무리하고 있는데 급한 일이라며 전화해선 재촉하는 걸 보곤 집에 들어왔더니 사람 없는 빈집에 뭔가 싶어 전화 걸려다가 문을 열고 짐과 아이와 함께 들어오는 아버지 모습에 성우는 혀를 찼다.



" 뭐예요? "



해맑게 웃음이 많던 아이는 제법 커진 키와 핼쑥해진 얼굴 그리고 서글픈 웃음을 지은 채 마주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성우의 목소리에 아버지 뒤로 서선 차마 나서지 못한 채 손만 꼼지락거리면서 고개 숙였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제 딴에 눈치를 보는 건지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 건지 그런 다니엘을 앞에다 끌어내곤 올라가라며 말을 했다.



" 니엘아 올라가서 왼쪽방이 네 방이야. 들어가 있을래? 성우랑 얘기 좀 할게 "
" 네. 저 짐은 "
" 성우가 올려줄 거니까 걱정 말고 올라가 "



눈치 보다가 계단까지 다니엘의 몸을 밀어서 올라가라는 아버지의 손길에 고개 숙여 인사하곤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같이 방으로 따라들어갔다. 몇 년 전 뉴스에서 화재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친척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서재 의자에 앉아서는 담배를 무는 걸 보아하니 제법 골치 아픈 이야기 인가 보다.



" 집안에 삼촌이 하나 있는데 질이 아주 나빠. 미성년자인 거 알고 집안 유산 빼돌리려고 아이를 데려가선 학대하는 거 겨우 빼돌려왔어 "
" 그렇다고 저한텐 말도 없이 "
" 말을 하려고 했지 근데 누가 사춘기 인지 도통 말을 안 들어서 말이야 "



사춘기는 스물이 넘었는데 그리고 애초에 허락을 구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미성년자인 아들 앞에 두고 배려는커녕 한숨처럼 뿜어내는 담배연기에 창문을 열었다. 끄나 싶었더니 담배 한 개비를 물고선 불을 붙이는 걸 보곤 고개 젓고 나가려는데 성우의 팔을 잡았다.



" 왜요? "
" 당분간만 다니엘 등학교좀 네가 챙겨줘 "
" 아버지! "
" 성우야 네 용돈 아직 내가 주는 거 알지? 덕분에 우리 성우 편하게 다니지 학교도 차도? "



악마다 악마가 따로 없다. 다니엘을 보며 다정하게 말하던 말투는 어디로 가고 협박하는 말에 이를 악물고선 손에 달랑거리는 차 키를 뺏고 방을 나섰다. 남아있는 담배연기에 기침을 하곤 방으로 올라가려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끝에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는 한숨 쉬곤 다가갔다.



" 왜 뭐 ? "
" 죄송해요. 물 마시고 싶어서 "



물 마시는 게 무슨 죄송할 일인 건지.
잔뜩 기죽은 채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손을 꼼지락거리는데 불안한 건지 손톱 끝에 살이 벗겨져선 피가 나는지도 모르곤 눈치만 보는 다니엘의 팔을 잡아끌었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성우의 발걸음에 맞춰선 내려와선 부엌에 들어왔다. 바 의자에 자신을 앉히고선 찬장부터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려주고선 물 잔을 건네주는 성우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여전히 겉은 무뚝뚝해도 속은 다정했다. 그럼에도 민폐를 끼치는 제 처지가 미안해선 하염없이 고개가 숙여졌다.



"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있어? "
" 네? 아.. 니요 "
" 그런데 왜 자꾸 손톱을 뜯어 "



성우의 말에 아차 싶어 손을 보는데 무의식에 뜯고 있었던 건지 피가 흐르는 거에 놀라선 바라보기만 했다.
혀를 차는 소리를 내고선 다가와선 성우는 다니엘의 손끝에 제 입을 가져다 가선 흡혈귀라도 된 듯 손가락을 빨았고 느낌이 이상해선 하지 말라는 다니엘의 말도 무시한 채 손을 잡고선 어느 정도 피가 멈추자 서랍장에선 연고와 밴드를 꺼냈다.



" 이렇게 된 거 그냥 편히 있어. 안 그럼 너만 힘들어 "
" 네 "



대답은 꼬박꼬박 잘하는 다니엘을 보며 밴드를 붙이고선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이 오르는 건지 빨개진 얼굴과 귀에 어디 아프냐는 제 말에 괜찮다며 손사래 치고선 잔다는 말과 함께 인사는 잊지 않고 선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에 성우는 괜스레 멋쩍었다.



" 하.. 미치겠네 "



맞은편방에 들리는 신음소리와 울음소리에 침대에 누워서 눈은 감은 채 자자며 마음속으로 다독였지만 신경 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째인지.. 집에 들어와선 규칙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아이는 혼자서 모든 걸 착실하게 하는듯했지만 나이에 비해 철이든 모습이 어색했다. 어리광도 부리고 원하는 것도 있을 테지만 민폐라고 생각하는 건지 말만 하면 다 괜찮다며 좋다며 말을 하는 통해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성우는 한숨 쉰 채 눈을 뜨고선 제 방을 나섰다.



" 다니엘 "



방의 불이 켜지고 침대 위에 동그랗게 쌓여있는 이불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데 가관이다.
눈물 콧물 범벅 되어선 쳐다보다 제 이름에 놀란 눈으로 손으로 눈가를 닦고 쳐다보는데 안 그래도 동그란 얼굴이 울어서 부운 호빵처럼 보였다.



" 그.. 악몽 꿔서 그래요 저 진짜 괜찮아요 "



방금까지 울어놓곤 입가에 미소 지었다가 다시 이불을 덮는 모습에 성우는 불을 끄고선 나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웃는 모습이 예뻤던 아이였는데 서글프게 짓는 미소가 머릿속에 맴돌아선 입술을 깨문채 발걸음을 돌려 다니엘의 옆에 누웠다.



" 저 진짜 괜찮은 "
" 빨리 자 "



괜찮을 리가 없지. 아이는 어른인 것처럼 괜찮은 척을 했다.
몇 년 사이에 부모의 부고, 학대에 사는 환경도 바뀌고 심지어 학교까지 바뀌었으니 친구하나 없을 거고 등교나 하교할 때 데리러 갈 때도 차에는 아무런 말없이 정적만 가득했다.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쯤은 말을 먼저 걸어주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언제까지 눈치 보려는 건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다니엘의 이불을 내려 끌어선 등을 토닥였다.



" ...고맙습니다 "
" 별 소릴 다하네 "



위로를 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토닥인 것뿐인데 칭찬 들은 거 마냥 간지러운 말에 성우는 발까지 이불을 덮어주곤 제품에 끌어안은 듯 다시 토닥였다. 그때보다 덩치나 키는 모두 컸지만 속은 어렸다. 자나 싶어 얼굴을 보려는데 순간 제 쪽으로 몸을 돌려선 눈을 감은 채 뒤척이다 다시 숨소리를 내뱉고 잠을 자는 모습에 토닥이던 손으로 다니엘의 머리를 쓸어넘겨줬다.



" 어린애네 아직 "



고른 숨소리와 오르락 내리는 몸이 귀여워선 입꼬리를 올렸다.
몰랐는데 눈 옆에 눈물자국처럼 있는 점을 보다 제 볼 옆에 있는 별자리 점처럼 특이해선 만졌다. 눈썹을 찡 끄렸다가 뭐가 좋은지 손으로 얼굴을 비비다가 히죽거리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등교를 도와주고 데리러 가는 것까지 한 번쯤은 이렇게 웃어주길 바랐는데 웃으니 제법 어릴 적 얼굴이 기억났다.

곁에 누우니 부드러운 향도 나는 게 나른하고 어두운 방에 끔벅이던 눈이 감겼다.




*




시간이 약이라는 소리가 맞았다.
다니엘은 집에 적응했고 두사람 뿐이던 식탁에 한사람이 늘었을 뿐인데 따뜻함은 배가 되었다.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나오는 다니엘의 모습에 차에 시동 거는데 차에 타진 않고 머뭇거리는데 옆에 저번에 말했던 그 친구인 건지 저와 닮은 둥그런 얼굴을 보다 창문을 내렸다.



" 저 재환이 집에 놀러 갔다 와도 돼요? "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는 까먹고 내리자마자 친구 손을 꼭 잡고 선 웃으면서 말하는데 18살이 돼선 친구 손을 잡고 하교한다는 건 아니다 싶었다. 다니엘의 말도 신경 쓰였지만 마주 잡고 있는 손이 더 신경 쓰여선 고개 젓고 차 문을 열었다.



" 안돼. 빨리 타 "
" 그.. "



평소 같았으면 알았다며 탔을 건데 머뭇거리는 모습에 성우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 나 일 있어서 너 데려다주고 빨리 가봐야 해  "



재촉하는 성우의 말에 친구를 보며 다음에 꼭 가자며 약속까지 하곤 다니엘은 차에 올라탔다. 창문을 내려선 연신 손을 흔들다가 멀어져 가고 나선 고개 돌린 채 창밖만 보는 게 안쓰럽다가도 팔에 지워지지 않은 흉터와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삼촌에게 끌려가선 학대받으면서 죽을뻔했다는 이야기와 아이를 데리고 가는데 죽여버린다는 협박과 함께 겨우 빼낸 아이의 몸에 짙은 흉터로 남았던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 이후 혹시라도 다니엘이 다치게 되면 어쩌냐는 걱정에 감싸 돈 다는 아버지의 짓궂은 소리에도 자발적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한편으론 저 나이 되도록 친구와 지낸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안쓰러워 쳐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행동에 놀라선 쓰다듬는 손을 멈췄고 다니엘은 그런 성우를 보며 웃었다.



" 저 잘한 일 있어요? "
" 아니 왜 "
" 형이 머리 쓰다듬어줘서요 "
" 그냥 "



성우는 다정함보다는 무뚝뚝함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속은 다정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니엘은 무뚝뚝한 단답에도 그저 웃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두다가 힐끔거리며 성우를 쳐다봤다. 짙은 이목구비에 흑발이 어울리는 얼굴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보는데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성우를 보는 다니엘의 감정은 형제의 감정 그 이상이었다.



" 저녁 먹고 갈까 "
" 형 일 있다고 "
" 방금 취소됐어 "



휴대폰에 울리는 벨 소리나 문자도 없었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다고 생각하곤 멈춘 신호에 다니엘을 보았다. 목부터 귀까지 빨개진 모습에 어디 아픈 건가 싶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데 놀란 눈으로 마주하다 눈꼬리 휘게 웃었다.



" 조.. 좋아요 "
" 싱겁기는 "



애써 무덤덤하게 말을 하고선 벅차게 뛰는 심장소리를 숨기고 다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바뀐 신호에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에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밥상을 다 차려주니 외식을 하지 않았다. 뭐가 좋냐는 물음에도 그저 다 좋다는 통에 집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갔고 나오는 음식마다 탄성을 지르며 다니엘은 웃으면서 음식을 제 입에 가져갔다.



" 맛있어요 "
" 그래 많이 먹어 "



가족끼리 외식하고 온 일상적인 친구들의 이야기에 다니엘은 쉽사리 낄 수 없었다.
외식은 해본 적이 없고 하고 싶어도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입가에서 맴돌기만 했었다. 제 앞에 놓인 예쁘게 장식된 음식과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다정하게 말을 하는 성우까지 가족끼리의 외식보단 둘만의 데이트 같아 설렜다. 열이 오르는 감정을 삭히고선 이 순간이 오래오래 가길 바랐다.




오래가길 바랐던 바램은 금세 사그라졌다.
멋진 외식과 달달한 후식까지 기분 좋아서 웃은 채 집에 들어왔다. 할 말이 있다는 아저씨의 말에 영문을 모른 채 앉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성우까지 잡아끌어선 소파에 앉혔다.



" 양자로 들이는 게 어떨까. 다니엘 너만 좋 "
" 싫어요 "



다니엘에게 묻는 질문에 끝은 성우가 맺었다. 큰 목소리에 소파에 앉아있던 다니엘의 몸이 움찔거렸다. 명백한 거절의 말과 함께 듣기 싫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선 큰소리로 문이 닫혔다. 성우의 행동에 영문 모른 채 아버지는 다니엘을 쳐다봤고 다니엘은 그저 고개 숙였다.



" 니엘아 그게 "
" 괜찮아요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



애써 입가에 미소 짓곤 인사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시 잠깐 꿈을 꾸었구나. 달콤함에 취해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큰소리로 외침과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성우의 속마음을 들은 거 같아 마음이 쓰렸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것도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서였고 그저 동정이었을 뿐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달랐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선 습관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씌우고선 울음을 참은 채 잠들려 눈을 감았다.



" 다니엘 "



방문을 열어 이름에도 움직임이 없는 인영에 성우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이가 제법 찬 이후부터는 악몽에도 익숙해진 것 같아서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습관은 여전했다. 이불 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내리니 감은 눈 옆 볼을 따라 흐른 눈물자국에 입술을 깨물고선 눈가를 닦았다. 상처 주려고 한말은 아니었다. 그러지 못한 제 사정이 있어서 차마 맺지 못한 말에 이불을 덮어주곤 수면 등을 끈 채 방을 나섰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거실에서 담배를 연신 피워대는 아버지의 모습에 성우는 한숨 쉰 채 다가가 소파에 앉았다.
암 환자가 담배를 피우면 어쩌냐는 성우의 말에도 웃으면서 무시한 채 연신 줄담배를 내 피웠다. 다니엘에겐 말 못 한 채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자신이 죽는 날만 기다린다는 아버지의 소리를 들은 채 하지 않고선 무시했더니 그 결과가 이렇게 다가올 줄 몰랐다. 머뭇거리다가 담배를 끄는 아버지를 향해 다니엘을 보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화를 내기는커녕 헛웃음 짓는 모습에 성우는 고개 숙였다.



" 못된 놈 상처 주니 좋으냐 "
" 제 말 안 들으신 건 아버지잖아요 "
" 미리 말을 했으면 오죽 좋을까. 그럼 니엘이가 마음 상할 일도 없지 "



헛웃음에 이어서 마음 알았으니 됐다며 성우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만 알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누군가 제 감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조그마한 아이는 어느새 커서 제법 어른스러웠고 그럼에도 얼굴은 여전히 옛되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니엘을 보는 제 감정은 어린아이가 아닌 호감 그 이상 좋아하는 감정이었다. 처음엔 회피도 해보고 무시도 해봤지만 이미 스며든 감정을 어찌할 순 없었다.



잠에서 깨선 수면 등을 켜고 베개를 꽉 쥐었다.
잦아들던 악몽은 다시 찾아왔다. 두 사람의 다정함에 물들여선 자신도 이 집안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던 건 성우의 말을 끝으로 무너져내렸다.



" 흐... 으.."



불에 휩싸였던 제집 그리고 자신과 마주했던 무서운 눈과 목을 조르던 손길 악몽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악몽을 꾸고 나선 성우의 방을 찾아가서 자는 게 습관이었는데 그날 이후부턴 찾아가지 못했다. 싫다고 외치던 성우의 모습이 생각나서 속으로만 참았지만 깊은 악몽에는 어쩔 수 없었다. 차마 문은 두드리지 못한 채 불빛 하나 없는 성우의 방 문 앞에 주저앉아서는 베개를 꼭 잡고 입술 깨문 채 울음을 참았다.



" 여기서 뭐 해 너 "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열린 문에 고개 들었다.
눈물범벅인 얼굴로 성우를 보자 방금까지 마음속으로 삭혔던 생각은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품에 안겨선 눈물만 흘렸다. 말도 없이 계속 우는 탓에 성우는 그저 다니엘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예전에 덩치라고 작았지 점점 커선 180이 넘는 키에 덩치도 제법 있었지만 언제나 제 앞에선 어린애였다. 그럼에도 다니엘을 불순하게 느끼는 탓에 피해 다녔는데 제 가슴에 젖는 다니엘의 눈물에 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토닥였다.



" 밀치지 마요.."
" 응 "



대답이 좋았던 건지 눈물 흘리는 와중에도 입꼬리는 올라가선 금세 잠이 들었다.
몇 번의 토닥임에 고른 숨소리와 어릴 적 습관처럼 제 손을 잡고서 놓지 않은 채 깊게 잠든 다니엘을 바라봤다. 손으로 몇 번 얼굴 앞에서 흔들며 손을 놓는 다니엘의 모습에 웃으며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가 뗐다.



" 언제 크냐 너 "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다가오려는 다니엘의 모습에 부담감보다는 빨리 커서 성년이 되어서 제 고백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검은색 정장을 입고 차 시트에 기대어 멍하게 밖을 쳐다보는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는 옆자리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니엘이 성년이 되자마자 준비라도 한 듯 급성으로 찾아온 심정지에 이별은 빨리 찾아왔다. 성우와는 다르게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던 다니엘은 소식을 들은 뒤 그간 모아둔 눈물을 다 쏟아낼 듯 눈물을 흘렀다.



" 다니엘 "
" 네 "



성우의 말에도 초점 없이 시선을 바라보다 쉬고 싶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집에 와선 밥을 먹거나 학교를 갔다 오는 것 외엔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통통해서 귀여웠던 모습은 어디 가고 볼은 핼쑥해지고 팔목은 가늘어져선 말라가는 모습에 성우의 걱정은 깊어졌다.



" 밥 먹어 "
" 괜찮은 "



식탁에 음식이 차려져 있음에도 무시하고 올라가려던 다니엘의 팔을 잡아끌어다가 앉혔다.
비척대면서 따라오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가기라도 할 건지 힘없이 앉아서는 수저를 쥐여주곤 맞은편에 앉는데 몇 번 밥을 입으로 넘기더니 느려지는 손과 다니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흘러내고서도 아직 흐를 눈물이 남아있는 건지



" 그만 울어 그 정도면 돼 "
" 흐흡..읍.."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다니엘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남은 감정을 쏟아낼 듯 울고 난 뒤 어느새 소파에 기대어서 잠든 다니엘을 업고 침대에 눕혔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다 큰 성인 남성이라고 할 건지. 울어서 빨개진 눈가와 열이 올라서 뜨거운 이마 위로 물수건을 얹어주고선 방을 나섰다.




시간이 흘러선 감정은 무뎌졌다. 더 이상 자신은 울지 않았고 말랐던 몸은 예전처럼 정상으로 회복했다. 죽다 살아난 거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재환을 보며 다니엘은 그저 웃었다.  



" 이제 그럼 독립해야겠네 "
" 어?.. 아 그렇지 "



재환의 말에 다니엘은 시선을 아래에 둔 채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뒤로 성우의 집에 신세를 계속 질수 없다는 거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년이 된 지금에 계속 그 집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양자가 된 것도 아니고 집을 나오게 되면 자신과 성우는 정말 남이었다.



" 그래야지 그 형도 결혼하지 "
" 그러네.."



욕심이 생겨서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다니엘은 속마음을 삼키고선 커피만 연신 들이켰다.



" 할 말 있어서요.."
[ 알았어 집에서 보자 ]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인지
회사를 물려받은 뒤 성우와 마주할 시간은 적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인사 정도가 다였다. 끊어진 통화 화면을 보다 다니엘은 짐을 쌓은 캐리어를 들고 거실로 내려왔다. 제 욕심이 성우의 발목은 잡았다. 맞선자리가 있었는데 죄다 거절했다면서 동생분을 아끼시나 보다는 비서의 말이 맴돌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로 들어서선 인사하는 다니엘을 한번, 그 옆에 놓인 캐리어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다니엘의 전화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과 기쁨에 좋아하는 단 거까지 사들고 왔더니 망설이는 눈빛과 고개 숙인 다니엘의 모습에 성우는 캐리어를 손으로 가리켰다.



" 뭐야 "
" 저 그게.. 이제 저도 성년이고 따로 살아도 "



눈치 보며 내뱉는 다니엘의 말에 성우는 기가 찼다.
부족한 것도 없고 자신이 눈치 준 것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 경영 수업 덕에 집에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고 다니엘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도 없었다. 회사 경영 수업이 끝나면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백을 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 나랑 있는 게 불편해? "
" 그게.. 저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라서 "
" ..알아서 해 "



방으로 들어간 성우의 모습을 뒤로 정적만 남은 거실에서 다니엘은 입술 깨문 채 눈물을 참았다.
어린 시절 폐 끼치면서 살고 형제는 죽어도 되기 싫다는 성우를 보며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정하게 대해주는 손길에 어느새 형제보다는 좋아하는 사랑하는 감정으로 어느새 성우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이후 마주하는 성우에게 자꾸만 그 이상의 감정이 넘실거리고 속앓이만 하는 덕에 괜한 말로 신경 쓰일까 봐 돌려 말했다.



" 잘 있어요 "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다니엘은 인사하곤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섰다.
자신의 집으로 오라던 재환의 말이 떠올라 집을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비라도 오는 건지 마른 아스팔트 바닥 위로 짙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제 머리 위로 흐르는 비 덕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걸어가는데 몇 걸음 안 가선 멈췄다. 조금의 기대심 잡아 줄 거라는 미련.


모진 말로 자신이 먼저 나섰음에도 성우와 영원히 남이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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