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는 미안하다는 말이 잦았다. 처음엔 당연히 할 말을 한다 싶었다. 그래,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러나 그 말이 반복됐을 땐 의문이 들었다. 원래 그렇게 쉽게 나오는 말인가? 토니로써는 거의 해 본 적 없는 말이라 정말 진심일 때 아니고선 입에 담은 적이 손에 꼽았다. 미안한 상황이어도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반면 이 꼬마는 미안하다는 말이 수시로 나왔다. 죄송해요, 미안해요, 아, 죄송해요. 툭하면 사과로 시작해서 사과로 끝나곤 했다. 딱히 분위기가 무겁지 않은데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 의미를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치 빠른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피터의 마음을 아주 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피터는 토니의 습관적인 핀잔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면서도 두려워했다. 속없이 웃는 얼굴이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신경 쓰지 않던 토니조차도 이제는 뒤돌아보게 됐다. 피터로써는 이제 습관이 된 사과가 일종의 표현인 셈이다. 저를 받아 주지 않는 토니에게 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의미를 숨긴 척 드러냈다. 피터의 '미안해요'는 횟수로 보면 한없이 가벼웠지만, 그 의미는 한없이 토니를 무겁게 했다. 뒤늦게 깨달았을 땐 말그대로 너무 늦은 뒤였다. 피터는 또 제 얼굴을 보자마자 말하고 있었다.

"토니! 늦었죠, 미안해요."
"그런 뜻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토니, 미안해요. 갈게요."

맑게 웃는 얼굴이 말하는 것 같다. 가끔은 풀죽은 얼굴로 말하는 것 같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토니의 심기를 건드려서? 아니, 피터의 '미안해요'는 오로지 이 뜻 하나였다.

"좋아해서 미안해요."

토니로써는 너무 늦게 알아 버린 탓에 알고 나서는 도통 어쩔 줄을 몰랐다. 왜 여태 몰랐을까. 어느 날을 기점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부쩍 늘었는데,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설마 싶었던 게 진짜였다. 나를 좋아해서 어쩌자는 거야. 너랑 나랑 나이차이가 얼만지 알기나 해? 생각할수록 곤란한 것 투성이라 피터를 밀어내기만 했고, 그럴수록 피터는 어색해진 사이를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저의 미안하다는 말 때문에 멀어진 줄도 모르고 미안하단 말을 속없이 해댔다.

좋아하는 것도 너고, 앞으로 거절당해 상처받을 것도 넌데, 대체 왜 미안하다는 말을 네가 하는 건지. 관계를 망쳐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 뭔지 좀처럼 그 말을 관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마나 순수하게 나를 좋아하는지 뻔히 보이긴 하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어떻게 말해 줘야 할까. 가차없이 밀어낼 수도, 그렇다고 받아 줄 수도 없는 저 꼬맹이를 어쩌면 좋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더 약자라고, 꼬맹이가 벌써 그 만고의 진리를 알아 버린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피터."
"네?'
"당분간 타워에 오지 마."
"네? 스타크 씨, 내일부터 바빠요?"
"아니."
"그러면 왜요? 제가 너무 떠들었어요?"
"좀, 오지 말라면 오지 마."
"제가 실수했어요? 화났어요? 죄송해요."
"그 말도 이제 그만해."

이제라도 끊어낼 수밖에. 우리가 만난 건 무척 짧았다. 네가 날 좋아한 건 더 짧겠지. 그러니 해매는 것도 금방일 거야.

토니는 제 할 말만 내뱉고 등을 돌렸다. 피터의 얼굴이 어떨지 훤하다. 타워에 멍하니 서서 눈만 깜빡이는 피터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다칠 게 뻔한데도 숨기는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부딪히는 것 같다. 좋아한다고, 저를 밀어내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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