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평균 4개씩의 업무를 끝내야 무사히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있는 나날을 3개월째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해치워야 하는 업무는 대개 비슷한 내용의 비슷한 형식이다. 3개월 째 하루도 맘편히 쉰것도 아니고 리터럴리 휴식을 취한 적이 없는 나는 벌건 토끼눈을 갖고 매일매일 나의 불쌍함에 취해, 신세한탄이나 토로한다. 누군가 '그래그래 우쭈쭈 힘들겠다 적당히 되는대로 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편법을 합리화시키는 데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손쉽게 돌려막기의 유혹, 궁여지책의 늪에 빠진다. 
    7장짜리 개똥철학 써내기 과제가 있다. 자유 주제 자유 형식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 나는 예전에 써놨던 별 개똥싸는 소설이나마 긁어넣고 붙인 다음에 '방황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보았습니다'라고 그럴듯한 브리핑을 해버리고 싶다. 진심이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안타깝게도 교수님이 빡빡한 사람이라면, 그는 과제 제출페이지에 표절검사 프로그램을 심어둘 것이다. 거기에 글을 한번 돌렸다가 제출하지 않으면 심사가 안되고, 내가 복붙하려는 소설은 한 번 프로그램에 입력된 전적이 있는 것같다)플랜b로 포타에 썼던 34번째 글, 예술관에 대한 글에 두 배로 살 붙여서 써먹고 싶다. 전자가 훨씬 편리하긴 하겠지...근데 너무 심하게 끼워맞추면 제아무리 허허실실 교수님이라도 알 것 같다. 하 이새끼가... 어디서 갖다낸 글을 여기다 또 써먹고 지랄이야 동작그만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볼때 이런 식으로 돌려막기를 하면 의외로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격의 효과가 나왔다. 당장 다음주까지 완성해야 하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완성본을 내기 전 시놉시스를 먼저 제출해야 한다. 졸작만 준비하기도 버거운데 시나리오를 어디서 뚝딱 만들어내란 말인가. 나는 그냥 졸업작품으로 준비했던 <스핑크스의 아버지>의 기획의도 복붙+그럴싸한 로그라인으로 주제가 대충 다 들어간 함축적인 대사 한줄 복붙해서 이름 써넣고 30분만에 제출해부렀다. 그런데 오늘 합평시간에 미친 호평을 받아서 지금 어리둥절하다못해 제트기 타고 제트별 날아가고있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게 세상이지만 자꾸만 적당히 기대고 싶다. 게다가 요행으로 이룬 것은 설사 잃게된다 하더라도 별로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않기 때문에 밑지는 것 없는 장사인 셈이다. 나는 열심히 자위한다. 내가 궁여지책으로 갖다 쓴 것들은 단순히 손쉽게 해결하려는 요행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토해놓은 회심의 노력이라고. 내 오롯한 노력을 좀 몇번 우려먹으면 안 되나? 앙? 그러는 법이라도 있냐고! 교수님 듣고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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