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했던 봄햇살은 다시는 볼 수가 없어. 밖의 부드러운 땅, 상쾌하다고만 할 수 없는 공기,위로 쭉 뻗어있는 나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구름, 피어오르는 새싹들 모든게 다 그리웠다.

그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가고 싶다."

목이 기계적으로 내는 소리는 꺾인 날개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복수심에 타락한 천사가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크라피카. 아직도 그 타령이야.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텐데."

낮게 지하실을 울리는 그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내일 아침은 뭐가 좋을까?' 하는 말투로.

남자는 나에게 굴복하라 명했다. 하찮은 자존심 세워봐야 너에게 남는 건 시궁창 뿐이라는 듯이.






소녀는 그만큼 여렸다. 아무리 복수심에 불타더라도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온갖 고된 수련을 했다고 해도 소녀는 여렸다.

남자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끈적한 욕망과 집착을 눈 아래에 가라앉히고 조용히 타일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 가두었지만 소녀를 연모하는 마음이 처음이여서 어둡긴 하지만 시설은 5성급 호텔 정도로 갖추어 두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 소녀의 가족을 죽이는 것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였지만 소녀만은 예외였다.

"클로로. 클로로. 클로로......."

창백한 볼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수정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 처럼 순결했다.
계속 자신의 이름만을 되풀이 하며 부르는 소녀가 원래도 매력적이였지만 오늘 따라 더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흘렀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혀로 핥아 마셨다. 소녀의 눈물은 다른사람과 같게도 짰다.
짠 맛이 더욱 깊게 새겨졌다.

"하하- 크라피카, 나는 네가 울지 않았으면 해."

정신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건 동족의 원수인 내가 와도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였다.
자신은 그래도 소녀를 놓을 수가 없었다. 한 줄기 빛과 같았으므로.

"흐으-"

자신의 눈에 띄게 된 불쌍한 작은 소녀를 애도하며. 전혀 놓아줄 생각은 없지만.






고운 머릿결을 빗었다. 어두운 방에서 보는 햇살 찬연한 금빛머리카락은 조금 잿빛 같았다.

"사랑해."

묵묵히 앉아 있는 크라피카는 눈이 공허하게 비었다.

"크라피카?"

아무렇지 않게 허공을 응시한다.

"크라피카!!!!"

나 답지 않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래도 묵묵 부답이였다.

"크라피카? 괜찮은 거지? 밖에 내보내줄께, 제발!......제발....크라피카."

밖이라는 소리에 몸을 살짝 움찔 했지만 그 뿐이였다.

소녀를 안은 채로 집안을 박차고 나가 구비되어 있던 승용차를 타고 미친듯이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질주했다.


오랜 질주 끝에 들꽃과 구름, 햇빛과 어울리는 녹색 잔디까지 크라피카가 원했던 곳을 다 이루어 놓은 곳에 도착했다.

"크라피카!!! 네가 그토록 오고싶어 하던 밖으로 나왔다!!!! 제발 그렇게 있지마!!"

정말 소중한 그녀가 죽을 것 같았다. 햇살이 내리쬐고 신선한 공기를 들어마시자 공허한 눈동자가 차츰 원래의 사파이어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클...로로....? 읍-!"

눈이 원래 색을 찾고 황혼의 축복 같았던 황금색 머리카락이 제자리를 찾자 나는 자제하지 못하고 당장 입을 맞췄다. 지하실에 대한 스트레스로 튼 입술이 마음에 걸렸지만 머리카락의 색도 눈의 푸르름도 돌아왔다.

'역시 이런 장소가 크라피카에게 좋은 걸까나.'

입술을 살짝 벌리고 혀를 넣는데 크라피카는 잠잠했다.

"하읍-!?!!"

이내 정신을 차린 크라피카는 자신을 밀어내기 위해 팔로 계속 힘을 주어 밀었다.
하지만 나는 허리와 뒷목을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밀려나지는 않았다.


꽤나 긴 키스가 끝난 다음에 숨이 차 헐떡이는 크라피카를 보고 안심했다.

역시 혈색있는 크라피카가 더 좋았으니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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