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속마저 피가 나도록 긁어내는 듯한 울음소리를 계속해서 들려왔다. 칼..., 아니 맥코이는 제 몸을 바스러져라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위로해줘야 하는데... 뭘 위로해 줘야 하나? 손만 주억거리던 크리스는 애처롭게 떨리고 있는 그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맥코이 때문에 저도 눈물이 차올랐다.  크리스는 떨리는 입가를 내리누르고 최대한 기운차게 말하려 했지만 제 목소리도 떨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본즈.. 나 다쳤는데 치료 안 해주고 계속 울기만 할 거야?"

"지미...지미..."


"본즈, 그만 울어...."



 맥코이는 한참을 헐떡이다가 조금씩 숨을 골라갔다. 하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붉은색으로 축축한 제 소매를 몇 번 만지더니 눈물을 후두둑 떨구어내었다.  


"왜.."

"으응..."

"왜..이렇게...다쳤어....."



 크리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저도 훌쩍이느라 목이 멨기 때문이다.  


"내가..어? 그렇게 몸 챙기라고..흐으으... 수없이.....말했잖아."

미안.

"살짝 까진 것도...아프다고...으으으. 그렇게 아프다고, 칭얼거렸으면서...그땐, 그땐..."

미안해.

"아프면...제깍제깍 나에게 와서...나에게....와서, 나에게..."

"...이제 왔잖아? 치료....해줄거지?"

그가 아니라서 정말 미안해.








-[스팍이 함교에 알립니다. 함선 내 침입자를 확인했습니다. 코드 알파 5-0 상황.]


 맥코이와 크리스 그리고 몇 명의 울음소리만 들리던 함교의 분위기를 깨뜨리며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눈물을 훔치며 소리가 들려오는 함장석로 시선을 돌리자 저를 보며 멍하니 있던 술루가 꿈에서 깨어난 듯  더듬더듬 손잡에 있는 장치를 눌렀다.  


-[침입자는 터보리프트를 타고 함교로 향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확인.. 했습니다. 그는.... 현재 이곳에 있습니다.]

-[그를 즉각 1 구금실로 옮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침입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 장교를 그곳으로 호출해 주십시오. 스팍 아웃.]


 퀸토, 그러니까 스팍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사라지자 천천히 숨을 가다듬던 맥코이가 떨리는 다리를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있던 우후라가 그를 부축해주자 맥코이는 얼굴을 손으로 한번 훑고는 아직 바닥에 있는 크리스를 쳐다 보았다.


"가자."

"응..."


 크리스가 일어나자 이제 막 의료가방을 챙기던 맥코이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가방에서 기기를 꺼내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이제 숨쉬기 편하지?"


 순식간에 바싹 말라버리는 코 안이 불편한 듯 코를 비비는 크리스에 맥코이는 다른 기계를 꺼냈다. 이윽고 편안해진 상태에 크리스는 작은 미소를 보냈다. 그러나 맥코이는 그의 시선과 마주하지 못햇다.










 양 옆의 붉은 옷의 대원이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그를 억류한 상태로 복도를 걸어갔다. 크리스는 앞 뒤로 제 몸을 막고 있는 그들 때문에 걷는 게 불편했지만, 칸의 장면을 일순 떠올리고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물론 손을 채우고 있는 구속구는 너무나도 무거워서 그대로 손과 함께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떠한 불만을 토로할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몸이 거의 앞으로 쏟아진 채 걷는 그에게 힐끗 거리는 다른 대원들의 시선이 따라 붙었는 것도 무시하고 발걸음만 옮길 수밖에 없었다.








 세트장보다 훨씬 실감나는 구금실 유리창 너머로 구금실을 지키고 있던 이가 입을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노랑색 지휘부의 옷을 입고 있는 스팍이 술루와 맥코이를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크리스는 스팍과 어울리지 않은 복장이 꽤 웃겨 비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물론 그 소리를 귀신같이 잡아챈 스팍이 유리창에 부딪힐 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우습나 보지?"

"아하하....아.... 아,아닙니다."


 크리스가 눈을 바닥에 두고 얼굴에 붙어있는 피 부스럼을 긁어내면서 우물쭈물 말하자 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크리스가 다시금 힐끗 시선을 올려보았을 때 변화없는 얼굴을 가장한 무시무시한 시선이 아직도 자신에게 꽂혀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다시 시선을 깔고야 말았다.


진짜 벌칸은 눈빛 만으로도 장난 아니구나.


 크리스는 벌칸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곳이 진짜 스타트렉 세계라면 스팍이 진짜 외계인이라는 것에 생각이 닿아 호기심이 일순 폭발하고 말았다. 진짜 외계인을 보는 건 상상으로 밖에 그리지 못했던 일이니까. 덕분해 저절로 발뒤꿈치가 들썩거릴 정도로 흥분했었지데, 냉랭한 그의 눈초리에 거세게 찔린 크리스는 제 알량한 궁금증은 빠르게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유리벽은 소리를 원천 차단하는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가 있는 곳은 퍽 적막하기 그지 없어 피로가 앃인 크리스는 잠시 앉을까 싶어 무릎을 굽혀보였다. 그런데 에구구하며 조금 앓는 소리를 내자마자 맥코이가 허둥지둥 뛰듯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크리스는 제 상태를 걱정하는 바로 달려와주는 맥코이가 조금 사랑스러워서 그에게 걱정말라고 살짝 웃어주었다.

"아까 넘어지면서 무릎도 부딪쳤었나 봐.. 갑자기 좀 아프네."

"지금 네 상처를 그냥 '넘어졌다' 라고 넘길 참이야?"

"아 그게 아니라.."

"너 자꾸!"


 감정을 잔뜩 삼킨 채 말을 끝맺지도 못하는 맥코이에 크리스는 잔뜩 당황해서 더욱더 괜찮은 척을 해야만 했다.


"아, 진짜야! 내가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물을 맞고 넘어져서 바닥에 좀 찍었어."

"샤워?"

"응. 일어나서 씻으려,"

"닥터. 사담은 그만 두시길 바랍니다."


 냉랭한 목소리에 크리스는 혀가 확 말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맥코이도 입을 다물고는 구석에 있는 어떤 쇠로 만들어 진 어떤 장치를 옮기더니 그대로 펼쳐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칸의 혈액을 채취할 때 쓰였던 것이었다.


"팔."


 크리스가 젖어서 피부에 착 달라붙은 옷 때문에 버벅거리자 맥코이가 한숨을 푹 쉬더니 그냥 팔을 내밀라고 한 뒤 본인이 두 손으로 재빠르게 옷을 말아올렸다.  












 크리스는 맥코이가 제 혈액을 정확히 검사하기 위해 구금실을 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제가 아무리 제임스 커크를 제 얼굴로 연기했을지라도 그 본인이 아니니 아마도 둘의 유전자는 불일치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는 저를 붙잡고 숨도 못 쉬고 울던 그를 떠올렸다. 안쓰러움에 저절로 시큰해지는 눈가에 눈을 비비고 있으니 스팍이 고저 없는 톤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엔터프라이즈 호에 어떻게 침입했지?"


 크리스는 질문을 던지는 남자의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을 보곤 조금 기가 죽어 웅얼거렸다.


"난 그냥 침대에서 일어났어, 스팍."

"...다시 질문하겠다. 어떻게 침입했지?"

"네가 아무리 계속 물어보아도 대답은 같아."


 크리스는 스팍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뾰족한 눈썹이 잠깐이나마 움찔했다.


"1005 시간 때 제임스 커크의 쿼터에서 상처를 입고 나온 이유가 뭐지?"

"말하려고 했는데 아까 네가 말을 끊었잖아. 난 일어난 다음에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샤워실에 있는 어떤 버튼을  잘못 만져서 홀딱 젖고 말았어. 마침 미끄러져 우당탕탕 넘어져서 이꼴이 되고 말았지만."



 크리스가 제법 산뜻하게 말하자 이제는 스팍의 입가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엔터프라이즈 호에 침입한 이유는?"

"글세...침입한 게 아니라니깐."


 크리스는 저 답답한 외계인에 피곤해져 한숨을 푹 쉬면서 물에 젖어 처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리고 제 손 끝을 쫓는 둘의 모습에 조금 어색하게 머리를 마저 정리했다. 침묵이 그들 사이를 흐르는 동안 헛기침을 한 술루가 스팍을 이어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런 상처를 입은 채로 함교로 온 이유는?"

"그야.... 너희들이 거기에 있을 것을 알았으니까?"

"......"

"......"


 스팍과 술루는 입을 다물고는 크리스를 알지 못할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어색한 기분에 거의 틈도없이 짧은 손톱에 끼어있을 지 모를 피 딱지를 없애고자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세 사람 사이의 정적은 스팍이 들고있는 패드 알림음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스팍은 그것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술루를 이끌고 구금실에서 나가버렸다. 또다시 방음벽이 작동한 것인지 밖에서 움찔거리며 제 시선을 피하려고 애를 쓰는 선원의 옷자락이 스치는 사소한 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그건 확실하게 그가 이곳에 완벽히 갇혀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고 크리스는 순간 답답해진 공기에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던 옷의 지퍼를 내리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제 맞은 편의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크리스는 이 상황이 차라리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치하는군요."

"그래."


 목소리가 콱 막힌 맥코이의 대답에 술루는 그를 살짝 보고는 눈이 마주칠 세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닥터 맥코이는 죽을 것 같은, 혹은 죽고 싶어하는 얼굴이어서 그의 생각이 훤히 보였지만 그날 이후로 기계처럼 한 가지 표정만을 고수하는 스팍 함장은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술루는 두 눈을 꿈뻑이다가 생각했다. 그렇나면 나는 지금 무슨 상태인 걸까.



 우선 그는 저 퍼센테이지를 가르키는 숫자가 나타날 경우를 부정하고 있었다. 크기를 측정하기도 버거운 이 우주라는 곳은 인간이라는 개체가 너무나도 사소해 연합에 포함된 곳보다 지구인이 뭔지도 모르는  문명이 더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서 제가 알고 지내왔던 이의 똑같은 유전자 정보를 가진 사람이 그 본인의 그의 방에서 그날과 거의 유사한 모습으로 저희들 앞에 나타날 확률은 얼마나 될것인가 말이다.

 그래도 제가 알아차리지도 못할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진 우주에서는 어떤 현상을 단 한 차례만이라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한 확률은 아닌지라 저절로 그의 시선은 옆에서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벌칸을 쫓고 말았다.


"프라임 스팍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부함장. 근처에 블랙홀의 특이점은 발견된 바 없습니다. ....차라리 클링온과 같은 무리에서 제임스 커크의 유전자 정보를 발견하고 그를 복제한 다음 엔터프라이즈 호의 실드 고유 주파수를 알아내여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그를 이곳으로 순간이동 시켰다는 것이....더 확률적으로 높겠군요."


 제 의견을 깔끔하게 반박하는 스팍 함장의 말이 참으로 논리적이었다. 다른 세계의 자신이 블랙홀을 타고 사지가 찢어지거나 뭉게지거나 늘어지거나 영원의 시간 뒤 그 모습 그대로 적외선으로 사라지지 않은 채 과거로 온 것보다 제 유전자 정보를 얻어내 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주아주 간단한 일이 될 것이다.


빌어먹을 확률.  



그래도....


 술루는 스팍의 말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경험을 또다시 겪는 것은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CMO의 집무실 밖으로 히스테리로 가득 찬 어느 남녀 크루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막 체콥이 기절해서 실려오는 통해 잔뜩 소란스란워진 곳의 소음을 들으며 술루는 이 상황이 차라리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드넓은 우주 한 가운데,

떠다니는 조그마한 우주선 안에서  

각기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두 명의 인간,

한 명의 혼혈 인간-외계인,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온 한 인간이  

동일한 순간에 

이 상황이 차라리 꿈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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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손을 못대겠다... 너무 막쓴거 아니냐 과거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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