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관광객들이 드나들 만한 밝은 간판들이 켜져 있는 도로로 진입했다. 얼마간을 달리다 수해가 방을 빌린 모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두 사람은 온통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비를 써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거센 비였다. 거센 빗줄기 사이로 시선이 마주쳤다. 비에 젖고 흙이 튀어 둘 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싸구려 모텔 간판의 요란한 불빛이 얼굴 위로 반사되어 묘한 빛을 그려냈다. 먼저 몸을 돌려 걷는 정운의 옷깃을 수해가 잡았다. 자신에게 잡힌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부드럽게 멈춰서자, 수해가 잠시 머뭇거렸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정운을 바라보는 눈빛이 절박했다. 비에 젖은 건지, 다른 것에 젖어 든 건지. 큰 눈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수해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

   "화... 났어요?"

   "...아뇨."

   "...그럼."

   말을 마치고 수해가 입술을 깨물었다. 더는 시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자 물방울이 똑 떨어졌다. 정운의 옷깃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파와, 단번에 걸어가 수해를 온 몸으로 안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수해를 감싸고, 자신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게 토닥였다. 수해의 몸이 정운의 품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렇게 약하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닌데… 정운은 자꾸만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목이 메이는 것을 억지로 다듬으며, 정운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수해 씨 너무 못 믿어줬죠. 수해 씨 강한 거 아는데...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안고 있으면 나 사실, 수해 씨 하루도 그냥 못 두겠어요. 이제 안될 것 같아요..."

   쏟아지는 빗줄기를 막을 생각도 못 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빗방울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가득 울리는 데도, 정운은 수해가 약하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고개를 조금 떼어내고 정운은 두 손으로 수해의 뺨을 감쌌다. 엄지로 자꾸만 얼굴에 흐르는 물을 훔쳐내며 자꾸만 수해 씨, 하고 중얼거렸다. 불안한 듯 정운을 살피던 수해의 두 눈썹이 잔뜩 일그러지며, 토해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나 미워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안 미워한다고 했잖아요."

   "안 미워한다니까..."

   정운의 시선이 흔들리며 수해의 얼굴을 살폈다. 어디서부터 또 오해가 생긴 건지. 자신과 전혀 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해를 붙잡으려 자꾸만 수해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정운은 이마를 수해의 이마에 붙이고 수해의 흔들리던 시선을 잡았다. 서로를 마주 보며 조금씩 안정을 찾자, 정운이 수해를 안심시키려는 듯 차분히 말을 이으려고 애썼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미워할 일 없으니까..."

   정운의 눈을 보며 조금씩 숨을 몰아쉬던 수해의 호흡이 잠시 멈추었다. 다음 순간, 수해의 입술이 거칠게 정운의 입술을 삼켰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정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해의 젖은 손이 자꾸만 정운의 뺨에서 미끄러졌다. 하지만 절대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수해는 더욱 정운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숨결과 함께 거칠게 진입해오는 혀를 받아내느라 점차 정신이 아득해지고, 순식간에 옮겨간 열기는 금방 거친 호흡을 만들었다. 입술을 떼고 숨을 몰아쉬는 수해의 눈이 욕망의 빛으로 가득했다. 이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와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