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상큼하게 인사하는 경수를 본 백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어. 왜 니가 여기있냐는 표정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여기는.


"세훈이 보러 왔는데 세훈이 있어?"
"...오늘 세훈이 못 온다고..."
"뭐어어어?? 세훈이를 보러 왔는데 세훈이가 못 온단 말이야~~??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분명 알고 온 게 분명한데도 경수는 티나게 오버하면서 안타까운 척 했어. 여기는 세훈이와 백현이가 같이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빌린 작업장이었는데 경수가 여기를 어떻게 알았겠어 당연히 오세훈을 털었지. 근데 세훈이가 오늘 친척 결혼식이 있다고 빠졌단 말이야. 그럼 여기 주소 알려주면서 그 사실도 함께 전했을텐데 경수는 정말 몰랐다는 듯이 순수한 표정으로 초롱초롱 백현이를 바라봤어. 정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경수였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차를 대접해준다면 감사히 마실..."
"안 돼. 꺼져"


백현이가 문을 닫으려는 걸 보고, 경수가 급하게 문 사이로 제 가방을 밀어 넣었어. 서로 힘을 주면서 버티다가 결국 백현이는 다시 문을 열었지.


"쥬스도 괜찮...물도 괜찮은데..."
"....."
"밖에 비도 살짝 오고 추운데..멀리 돌아왔는데..."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어. 백현이는 못 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지. 결국 백현이가 들어오라고 고개짓을 하니까 경수는 히죽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매달릴 땐 언제고 그럼 그렇지, 내 애교가 안 먹힐리가 없지라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 경수를 보고 백현이는 고개를 저었어. 생각보다 넓은 작업장을 둘러보는데 안쪽에서 누군가 물품을 옮기다가 경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다가왔어. 아무래도 외부인이 멋대로 들어왔다 생각한 건지 상당히 당황한 얼굴로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경수를 막아섰어. 경수가 그 사람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으면 백현이가 따라 안으로 들어왔어. 외부인이었으면 백현이가 먼저 나서서 내쫓았을텐데 당황하지 않는 걸 보고 일행이라 생각했는지 설명해달라는 눈빛이 백현이에게로 향했어.


"뭐야? 백현아 니 친구야?"
"어...그러니까..."


백현이는 머뭇 거리면서 경수를 바라봤어. 친구는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경수를 어떻게 소개를 해야할지 몰라 망설였지. 우리 무슨 사이냐 도경수. 백현이와 그 사람을 번갈아 보던 경수는 당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어.


"썸"
"네?"
"썸타는 사이에요. 한 사귀기 3일전쯤?"


내꺼가 분명한데 아직 내꺼는 아니니까 사귀기 직전. 썸이지 뭐. 뻔뻔한 경수의 대답에 백현이는 어이없었지만 딱히 반박하진 않았어. 다른 말로 규정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딱히 긍정도 부정도 없었지. 어깨를 한번 으쓱이는 백현이의 반응에 아아 그렇구나하며 이해하는 눈치였어. 근데 조원이 또 있었나봐. 안쪽에서 또 누군가 튀어나왔어. 어쩐지 작업실 전체적 분위기도 어수선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머리가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옷을 입고 있었어.


"어? 누구?"
"백현이 썸남"
"엥?"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신경쓰든 말든 경수는 누가 앉으라고 권하기도 전에 먼저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백현이는 정말 차를 한잔 주고 보낼 생각인지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있었지. 근데 왠지 조원들이 경수의 주위에서 기웃 거리면서 뭔가를 소근거리다 쇼파에 가까이 다가와 앉았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수에게 슬쩍 물었지.


"저기...백현이랑 썸타는 사이면 혹시...오메가신가요?"
"네"
"역시!! 어쩐지 딱 보자마자 오메가 같은 느낌이 들더라니!!"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보자마자 정말 매력있는 얼굴이라고!!"


자신을 보며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에게 보통 사람들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거나 수줍어 했겠지만 경수는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본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 하지만 기본 예의는 있으니 싱긋 웃어주는 걸로 감사를 표하며 대답했지.


"네 저도 알아요"


경수가 의연하게 대처해도 저희들끼리는 호들갑을 떨며 어쩔줄 몰라했어. 뭔가 굉장히 기대하는 시선을 보내는데 경수는 알 턱이 없었지. 그저 어떻게든 여기에 더 남아서 백현이를 꼬시는 게 목적이라 어떤 이유로 빌붙을까 고민하는데 어느새 백현이가 따끈한 차를 가지고 테이블로 오고 있었어. 경수는 최대한 예쁘게 보일 각도를 계산하며 빙긋 웃었는데 정작 백현이는 경수를 보지 않고 옆에 앉은 조원들을 보고 급하게 고개를 저었어.


"아니야. 얜 그러려고 온 거 아니야"
"실례인줄은 알지만 좋은 기회잖아!"
"그래, 이런 조합이 흔치 않잖아! 아니 이럴게 아니라!!"


뒤늦게 자신들을 소개한 조원들은 김군과 민석이었어. 그리고 경수에게 간절한 얼굴로 부탁을 해왔어. 지금 작업하고 있는 촬영을 도와달라고. 경수는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흔쾌히 허락했어. 경수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설명하는 설득에 넘어간 건 아니고, 열심히 작업하는 걸 도와주면 백현이가 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나름 계산적인 행동이었지. 저희들끼리 이미 친해져서 말까지 놓는 걸 백현이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어렵겠지? 유독 시각적 아름다움에 예민한 두사람이라서 니가 좀 이해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너 그러면 이것 때문에 머리색 그런 거야?"
"응?"
"너 요즘 자꾸 머리색 바꿨잖아. 이것 때문이야?"


세훈이가 일주일동안 머리색이 3번이나 바뀐 건 신경도 쓰지 않아놓고 레드와 핑크 사이를 오가는 백현이의 머리색은 계속 신경을 썼던 모양이야. 백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페르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주제도 어려웠지만 제가 우성 알파인이상 팀에서 알파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었으니까.


"내 머리색 바뀐 건 용케도 알았다. 이번엔 별로 티 안나는데..."
"티가 안 나기는"
"니가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 있어 하는지 몰랐네"
"내가 원래 알파들에겐 관심이 많아 예비 자기야"


경수의 말에 백현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어.


"너 혹시 저 두사람이 알파인 줄 알고 도와주는 거야?"
"어?"


사실 그런식으로는 생각을 해본적 없는 경수였어. 생각해보니 그렇네. 주제도 심상치 않고 오메가인 자신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혹시 알파들인가 싶어 뒤늦게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살피는데 김군이랑 민석이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서 촬영준비를 하고 있었어. 갑자기 백현이가 경수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어. 경수는 눈을 치켜뜨고 노려봤지.


"아서라. 둘 다 알파 아니니까"
"아씨...."
"알파는 아니고"
"응?"
"오메가지"


이것 또한 생각해본적 없는 결과였어. 당연히 베타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메가라고? 사실 오메가라는 사실 자체도 그랬지만 오메가라고 알려주면서 싱긋 웃는 백현이가 신경쓰였어. 오메가인데 지가 왜 웃어. 저 둘이 오메가면 어쩔 건데. 경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어. 촬영소품을 놓는 걸 도와달라는 요청에 백현이가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머릿속에선 계속 두 사람이 오메가란 사실이 떠다녔어. 오메가 오메가 오메가가 세명이니까 오메가가 쓰리. 씨팔 뭐래. 그러니까 지금 정리를 해보면 우성 알파새끼가 나에게 와서 저 둘이 오메가라고 했지. 그걸 나한테 왜 얘기해. 그래서 뭐 어쨋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 둘이 오메가인데 딱 붙어서 다들 하하호호 좋다고 웃고!! 떠들고!! 씨발 철벽은 어디갔어!! 오메가한테는 철벽이 없는 거야?!!!


"씨발!!! 나도 오메가야!!!"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백현이에게로 달려갔지. 촬영준비를 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두 사람이 백현이 옆에 다가올까 싶어 경계했어.


"백현이가 이것 좀 잡아줘"
"내가 할 게!!"
"백현아 이거"
"내가 한다구!!"
"이거 배경 이렇게 그려도 될까?"
"누구한테 물어!!! 나한테 물어봐!!!"


이렇게 누군가 백현이와 붙으려고만 하면 냉큼 사이를 파고 들고 자신이 대신 하거나 하며 대화도 스킨십도 완전 차단이었어. 자기한테는 그렇게 철벽을 쳐놓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농담도 하고 웃어주는 백현이가 제일 미워서 팔 걷어붙이고 일을 하면서도 백현이를 노려봤어. 경수는 사진을 몇 장 찍고 또 다른 배경을 만드는 작업에도 열심히 참여해서 얼굴에 물감이 묻는 줄도 몰랐어. 정신없이 땀을 흘려가며 제 조별과제에도 보이지 않는 열정을 쏟았지.


"와 진짜 장난 아니야. 아우라가..."
"이거랑 이건 완전 컨셉이 다른데도 둘 다 잘 나왔어!"
"내가 원래 매력이 한정적이지 않거든. 이렇게 매력이 다채로워서 자기 취향을 모르는 사람들도 나한테 빠지는 건 시간 문젠데 말이야!"


경수가 백현이 들으라는 듯이 소리 높여 말했지만 백현이는 노트북으로 사진만 살펴보고 있었지. 저 알파새끼가 이제 내 말에 반응도 안 보여?! 다른 오메가들 있다고 난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저 오메가들보다 내가 훨씬 예뻐! 훨씬 귀엽고 훨씬 매력이 넘친다고!! 경수가 화가 나서 새로 끓인 커피에 설탕을 잔뜩 넣어서 훌훌 마셨어. 아오 승질나!!!


"진짜 핏이 좋네"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던 백현이가 감탄을 하면서 경수에게로 시선을 돌렸어. 경수는 고생해서 헝클어진 머리는 신경쓸 겨를도 없는지 각설탕을 제 앞에 가져다 놓고 신경질적으로 하나씩 까먹고 있었어. 뭐가 또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아주 얼굴 가득 심통이 가득해서 백현이는 경수에게로 다가갔어. 신경질적으로 각설탕을 씹어먹는 경수의 머리에 따뜻한 손이 내려앉았어. 경수가 고개를 들면 미소 지으면서 머리를 정리해주는 백현이가 보였지.


"너 진짜 잘한다. 사진들이 전부 잘 나왔어"
"누누히 말했지만 내가 매력이 너무 많아서 사진으로 다 담지도 못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멋있기까지 하기가 쉬운 줄 아냐?"
"그래그래 너 귀엽다"


평소처럼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경수였지만 백현이는 정말 작업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쓰다듬었어.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꽤나 따뜻해서 경수는 왠지 덜컥 말문이 막혔어. 너 귀엽다. 도경수 귀엽다. 우리 경수 귀엽다. 우리 경수 존나 귀엽다. 점점 머릿속에서 과장 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귀엽다고 했던 백현이를 계속 떠올렸단 거지.


"경수야 진짜 완전 고마워!! 백현이야 우성 알파라 별 걱정은 안 했어도 오메가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엄청 걱정이었는데 이런 느낌이구나!!"
"나도 오메가는 처음 봤어. 와 진짜 오메가는 외적으로 매력이 발산된다는 게 정말인가봐!!"
"뭐 그런 것 쯤이야 나한테는...잠깐 뭐라고?"
"오메가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다고!! 대학 오길 진짜 잘한 것 같아 알파랑 오메가를 실제로 보다니!!"
"자,자,잠깐 두 사람은 오메가가 아니야?"
"오메가는 무슨. 나랑 민석이 형은 베타야. 알파랑 오메가가 흔한 건 아니잖아"


두 사람 다 베타라는 말에 경수가 백현이를 노려보니까 백현이는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다가 아차 싶었어.


"저 두 사람 베타 맞아. 우리 주제 정할 때 조원들 성향 전부 털어놨거든"
"니가 오메가라며!!!"
"그거야 니가 알파로 오해하고 관심 있어 하는 것 같아서 관심 끄라고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거지"
"난 베타든 오메가든 관심 없...아니 씨발!!! 나혼자 오메가 쓰리 걱정하고!! 발정난 알파인줄 알고 불알하나 터트릴까 고민했잖아!!! 개새끼야!! "


왠지 경수는 무척 화가 나 보였는데 너무 화가 난 건지 당최 알아 들을 수 없는 단어가 많았어. 혼자서 어후. 와. 허.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다가 그래도 생각해보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어쩐지 자신이 제일 예쁘더라며 마음 달래는 경수였어. 그러고 이제와서 백현이에게 예쁜 척 내숭을 떨었지. 물론 백현이는 평소처럼 철벽치며 얼굴을 찌푸렸고. 경수는 소품까지 이용해서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어필하려고 했지만 백현이가 철벽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아득 갈면서 들고 있던 인형의 얼굴을 쥐어뜯었어. 아직도 오메가 쓰리만 생각하면 열받는데 저게 어디서 철벽이야. 처음보는 베타들도 인정한 매력의 소유자인데 속는 셈치고 넘어오면 얼마나 좋아!!


"경수가 저 인형 마음에 드나봐 품에서 안 내려놓네"
"그거 가져도 돼!! 여기 소품 중에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도 돼! 촬영 도와줬으니까 그정도는 괜찮지!!"
"정말?"


백현이도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 어차피 다시 만들거나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경수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백현이를 향해 입을 열었어.


"너의 정자..?"
"....."
"돼...?"
"나가. 꺼져. 되긴 뭐가 돼. 이 발정난 오메가야!!"
"아 왜!!! 그것도 작은 거니까 소품이잖아!!!"
"내 정자가!!! 하. 이게 소품이냐!!! 진짜 하루라도 얌전히 넘어가는 날이 없어!!!"
"니네가 준다고 했잖아!!! 니가 이렇게 쫓아낸다고 내가 못 가져갈 거 같냐!!!"


백현이에게 질질 끌려 작업실 밖으로 쫓겨난 경수였어. 이런 푸대접이 어디냤고 소리를 빽 질러봤지만 백현이는 단호하게 경수를 밖으로 밀어냈어. 경수가 백현이를 노려보면서 말했어.


"내가 가져갈 때까지 간수나 잘하고 있어!! 다른 오메가도 안 되고, 베타도 안 되고, 알파도 안 되고. 다 안 돼!! 누구한테도 줄 생각 마라!! 다 내꺼니까!!"
"이게 왜 니꺼야!! 내 정자한테 선전포고 하지마!!"
"이제 곧 만날 거니까 내 꺼지!!! 한 3일 정도 후면 사귈, 썸타는 사이잖아!!"
"썸은 씨발. 썸이 아니라 쌈이다 쌈!!! 좀 꺼져!!!"


경수 말대로 경수의 정자가 될지 계속 백현이 걸로 남아 있을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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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불판에서 연재한던 걸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전 연재속도가 빠른 편이 아닙니다. 예전에 연재했던 거라 세이브 원고가 있을 뿐이에요. 이제 세이브 원고도 많지 않은데 큰일이네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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