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양심조차 없다. 이게 나의 존재의 크기다. 드디어 눈을 가리던 천을 풀어낸 것이다. 바로 앞의 현실을 가리기 위해 내 눈을 가린, 멍청함을. 인정한다. 자신의 주군에겐 더 이상 자신은 필요 없는 존재였다. 미세한 금이 모여 굵은 금을 만들어냈고 굵은 금이 모여 마음을 깨버렸다. 다시 붙일 수도 없게, 산산조각으로.

 

“저는, 저는….”


아이 하나가 죽은, 오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소와 똑같았다. 단지, 당신이 나에게 준 상처하나가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 것은 고작 아이 하나가 죽어서가 아니었다. 무고한 사람들 죽이고 죽여 받았던 고통과 밟아 무너진 자신, 그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그것들을 꾸역꾸역 가슴속으로 삼키고, 삼켰더니 드디어 병이 난 것이다.

아아, 결국에는, 곧았던 마음이 꺾이고야 말았다.

 

“제 탓입니다…….”

신룡의 그림자가 잠시 움직이다 사라졌다. 하난이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품 속에 있던 마른 난 꽃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피 냄새만 나는 아이의 몸을 옆에 두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쿵. 소리가 난초궁을 울렸다.

 

제 탓입니다.

품어야하지 말아야할 그를 품었고, 그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의 웃음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더러운 마음을 꺼내지 마라.’

제 마음은 더러운 마음이었던가요?

그렇게 더러웠던가요?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왜 제 마음이 당신에게 피해를 주고,

왜 제 마음이 저에게 아픔을 주나요.

 

다 제 잘못이니 이 마음을 죽이면 당신에게 주는 피해도, 저에게 주는 아픔도 없을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썩은 내가 나는 마음이었다. 곪고 곪아서 누구도 원치 않는 마음을 제 자신조차도 외면하려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도 죽였는데, 마음 하나 못 죽이겠습니까.”

 

한참을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멈췄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미처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턱 끝에 아슬아슬하게 맽혀 있던 물방울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을 때, 그때.

마음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둥근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그러진 모양으로 번진 물방울이 꼭 제 마음 같아서, 그것을 잠시 보다가 일어났다.

이제 마음은 죽었다.

 

 

-

 


세상이 무너지듯 쓰러진 하난을 신룡은 조금 복잡하게 보고 있었다. 버럭 화내거나, 벌벌 떨면서 복종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책하면서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네 존재를 알고, 명령에 복종하라는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지, 그저 울기만 하고 있으니 내가 오늘 조금 심했던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했던 일을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는데.


아이를 보며 눈물을 떨어트리는 하난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영 좋지 못했다.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고 살려둔 아이다. 어째서 저 아이를 위해 그렇게도 우는지 신룡이 인상을 쓰며 자리를 떴다. 제 탓을 인정하며 우는 눈이 아파서, 그렇게도 마음에 걸렸다.

 

“그 집에 아이를 맡기고 종종 찾아갔던 걸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늘 멀리서만 봤고, 가까이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겨우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죽의 보고에 대충 끄덕인 신룡이 추국을 불렀다. 소환되자마자 조금 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동죽과 신룡을 번갈아 보던 추국이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추국이 물어도 동죽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바로 신룡에게 물었다. 신룡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하난이에게 가보거라.”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고 싶은데도 생각나는 건 온통 자신을 바라보며 슬프게 우는 얼굴이었다. 자신에게 마지막 발악을 하듯, 오열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지, 계속 마음에 걸려 추국을 보냈다. 동죽을 보내기엔 너무 우직해서 위로하는 방법을 모를 테고, 자신이 가기엔 좀 그랬다. 가슴의 이상한 욱신거림을 떨쳐내려 애써 다른 생각을 꺼냈다.

 

 

-

 

 

“추국아.”

시선을 아이에게 떼지 않는 하난을  뒤에서 보고 있던 추국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괜찮아?”

그 말에 하난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괜찮을리가.

 

“저번에… 내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

“…….”

“네 말처럼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맞더라.”

“…….”

“네가 맞았어.”

내가 틀린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하난이 아이를 고쳐 안고 난초 궁을 빠져나갔다.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걸어가는 하난을 보며 추국은 생각했다.

 

꼭, 병든 난초의 모습이 저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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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래까지 넣어봤어요... 어떠실지... 불편하시면 끄고 보셔도 됩니다!


소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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