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vierno85 



귤처럼 동글납작한 도시는 항상 해질녘에 젖어 있다. 둘레에 두른 종이보다 얇고도 하얀 철조망이 촘촘하다. 경계선을 긁어내면 바깥의 껍질동네랑 안쪽의 과육동네가 서로 마주본다.


하얀 철조망을 바닥으로 두고 저녁놀 껍질을 하늘로 두는 동네가 있다. 석양 아래 저물어가는 동그란 주택가가 있다. 껍질동네 외곽에 다닥다닥 붙은 달팽이집이 움츠린 채 이웃집과 소근댄다. 오밀조밀한 집 몇 채를 들어내 노란물이 든 손끝에 올려본다. 미끄러운 집들을 손톱과 손톱 사이에 두고 툭 터뜨린다. 찌익 흘러나온 고단한 사체가 쓰디쓰다.

하얀 철조망 안쪽에는 귤락으로 문양을 놓은 과육동네들이 나온다. 반달 모양의 부자동마다 물방울 마크를 닮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노을빛 과즙을 꼭꼭 간직한 채 뭉쳐 있다. 부자동 하나를 입에 넣자 꿍쳐둔 단물이 터진다. 투두둑 투득. 혀끝에서 감돌던 달팽이집의 쓴맛은 호화롭고 새콤한 저녁에 묻혀버린다.

나는 아직 모른다. 같은 저녁 아래 살아가면서 다른 맛을 가진 동네들의 사정을. 다만 달팽이집을 혓바닥 구석에 두고 굴려볼 뿐이다. 데굴데굴 쓴맛을 남겨두고 싶다. 오래도록 쓴맛을 기억하고 싶다.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해질녘 오렌지빛에 안겨서 붉고 노란 시간이 갈빛으로 타들어갈 순간을 찾는다. 귤을 먹으면서 달고 신 과육을 즐긴 뒤 껍질을 깨문다. 인파에 떠밀리며 호화롭고 번화한 도심을 지나 달동네로 걸어간다.

-2018.10.18. ~ 2020.11.14.

어둠을 헤매는 자에게 글로써 작은 빛줄기라도 비추어 그들이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돕고 싶다. 세간의 병든 운석이 나를 상처 입히려 해도 나만은 이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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