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하고 뺨을 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때렸다고 표현하기엔 간지러울 정도로 약한 무언가가 분명 뺨을 치대고 지나갔다. 또 한 번 찰싹. 잠결에 스치는 촉각과 청각에 눈썹을 움찔거리면서도 정작 일어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감은 눈 위가 새까만 것을 보면 아마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임이 분명했다. 재차 뺨을 톡톡 두들기는 느낌에 에미야 시로는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서늘한 감촉이 닿은 탓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뺨을 문질렀다. 축축한 것이 묻어난다. 곧이어 그것이 물기였음을 깨닫고 슬며시 눈을 떴다. 어둑하지만 완전한 어둠은 아닌 방안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본 창밖의 하늘이 어두웠다. 잠에 취한 나른한 머리로 지난 밤 자기 전 보았던 날씨 예보를 떠올렸다.

 

‘비라도 새려는 건가.’

 

그러고 보면 이 저택도 오래된 집이긴 했다. 튼튼하게 잘 지어진 집이었지만 한 사람이 지내기에 지나치게 넓은 탓에,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 중 한두 군데 물방울이 떨어질 수 있을 법할 정도로는. 그러나 올려다 본 천장엔 오래되어 빛이 바랜 흔적은 있어도 물기에 얼룩진 자국은 없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여전히 축축함이 가시지 않은 제 뺨을 문질렀다. 비가 오진 않는 것 같은데 그저 꿈속에서 비라도 맞았나 싶었다. 얼마나 생생했는지 잠에서 깰 정도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지만 시로는 몸을 일으켰다. 괜한 잠을 애매하게 더해봐야 피곤해질 뿐이었다.

버릇처럼 기지개를 펴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제 머리맡을 돌아보았다. 곧이어 습관적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또?”

 

머리 맡 벽에 붙은 얕은 장식장 아래가 물로 흥건했다.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마른 수건으로 축축한 다다미 위를 덮으며 시로는 다시 한 번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비가 올 것 같다.

시로 외에는 아무도 없는 방안이었으나 그의 혼잣말은 흡사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과도 같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치우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 줘. 매번 이러다간 곰팡이라도 나겠다고.”

 

대충 바닥의 물기를 정리한 뒤 자리에 바로 앉은 시로의 이마에 다시 물이 튀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엔 작은 어항이 있다. 시로는 아까부터 이 어항에 대고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어항에 말이라도 담아두듯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들어줄 리도 없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아침마다 때 아닌 작은 청소와 함께 어항을 살펴보는 것이 누군가와의 대화처럼 여겨지곤 했다.

시로는 말을 하다 멈추고 고작 30cm가 될까 말까한 작은 어항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조명을 켜두지 않은 수조 안엔 야무지게 채워 넣은 것들이 있었다. 잎사귀가 넓고 튼튼한 작은 수초, 긁혀서 다치지 않을 둥글고 완만하지만 제법 예쁘게 생긴 돌 같은 것들이었다. 작은 어항이 허전하지 않을 정도로만 채워둔 그 장식품들 사이를 시로는 열심히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 거야?” 또 다시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그때, 돌부리 뒤쪽에서 스치듯 일렁이는 노란 것이 보였다. 새순처럼 삐죽 튀어나와 물결에 살랑거리는 꽃잎 같기도 하다. 아지랑이처럼 슬며시 보이던 꽃잎이 돌 뒤로 숨었다. 시로는 잠자코 기다릴 뿐이었다. 곧이어 녹색의 커다란 잎사귀 뒤를 돌아 작은 금빛이 튀어나온다. 엄지손가락 정도가 겨우 될까 말까한 크기 뒤로 물에 풀어진 드레스자락처럼 커다란 지느러미를 나풀거리는 작은 물고기였다. 아주 잠시간 고개를 내민 그 물고기는 시로의 두 눈동자를 발견하자마자 뒤로 홱 돌아 돌 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 결 같이 야멸찬 모습이다.

 

“음……. 좋은 아침?”

 

그래도 꿋꿋하게 인사했다. 말을 들어줄 리 없을 물고기에게 아침마다 인사를 건넨다는 사실은 물론이요, 이 물고기를 건네준 장본인이 알게 된다면 상당히 어이없어 할 모습이었으나.

쉽게 말하면, 이 작은 객식구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늦봄의 어느 날 얼떨결에 받아 든 물고기를 물리지도 못하고 손바닥만 한 컵 안에 넣어두었을 그 때는 그저 황망하기만 할 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눅눅한 바람이 이어지고 하늘이 잿빛으로 뒤덮여 있다.

장마예보가 아침마다 이어지는 요즈음, 뜻하지 않은 아침 일과가 이어져온 일상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




“미안! 수업 시간에 실습으로 준비한 건데 그냥 두고 오기 뭐했어.”

“어째서?!”

 

떠넘기듯 물봉다리를 냅다 건넨 린에게 단 한마디 반박도 던지지 못하고 받아버린 것이 이 작은 금빛의 물고기였다.

온통 노란 금빛의 물고기. 이렇게 작을 수 있나 싶다가도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 보이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물 안에서 헤엄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아주 얇고 불투명한 꽃잎들이 한 장 한 장 솜씨 좋게 덧붙여진 느낌으로, 물속에서 흔들리는 그 지느러미들은 황당한 마음에 단말마 거절을 내밀기도 전 눈길부터 가게 했다. 솔직한 감상으론, 예쁘긴 했다. 요리할 때 쓰는 생선을 본 적은 많아도 같은 물에 사는 물고기를 길러본 적은 없다는, 예쁜 물고기를 두고 말하기엔 다소 무신경한 감상을 해버리긴 했어도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손에 들린 물 봉지를 눈높이로 들어 올렸을 때 거짓말같이 물고기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예쁜 것에 이어서 단추처럼 콕콕 박힌 눈이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다. 빨간 눈을 가진 물고기도 있구나. 어쩐지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되게……작구나.”

 

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빤히 바라보는 시로의 눈앞에 물고기가 마주했다. 그리고,

 

“이거 왜이래?”

 

삽시간에 쫘악 펼쳐진 화려한 지느러미를 본 시로가 물고기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러는 중에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더더욱 크게 펼쳐졌다. 손가락을 보자마자 더해진 행동이었다.

 

“베타라는 물고기들이 원래 그렇대. 화내는 거야. 개체마다 다르지만. 아 그거, 수컷이야.”

 

단순히 수중 생물의 생태를 알려주는 말치고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나 성질이 엄청 더러운 것 같아.”

 

과연. 다시 바라본 물고기가 여전히도 시로를 쳐다보며 파르르륵 지느러미를 힘 있게 펼치는 모습에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처음엔 작은 물그릇이었다. 물만 가득 채워둔 봉지 안에 계속 두고 있을 수도 없으니 급한 김에 집에 오자마자 임시 거처를 준비했다. 손바닥을 덮을까 말까한 컵과 다를 바 없는 물그릇이었다. 들어보니 작은 공간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물고기라 했기에 어찌 준비했다지만, 이런 공간은 너무 답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다음날 방과 후 들린 곳은 겨우 찾은 상점가의 수족관이었다. 정사각의 유리어항 하나만을 달랑 사서 들고 오는 동안에도 제 자신이 그 물고기를 진짜 키우게 되는 건가 싶은 얼떨떨한 생각이 들었다. 책상 한 구석에 놓아두어도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어항이었으나 그 안을 차지한 작은 물고기에겐 넓디넓은 공간처럼 보였다. 좁은 컵 안에 있는 것 보다는 훨씬 괜찮아 보이는 모양새에 저도 모르게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즈음 되니 그냥 포기하고 키워보는 게 맞겠지 싶었다. 뭐든 제 손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면 버리지 못하는 시로였기에,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물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이라 하더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학교에 그냥 두었으면 솔직히 어땠을지 모르지…….”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워낙 많은 손이 오고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솔직히 예쁜 물고기였다. 작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물속에 핀 꽃처럼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는 생소한 생물에게 누구든 눈길 한번은 던졌을 것이다. 그것이 순수한 호기심이든, 고약한 장난이든 간에. 린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다짜고짜 접수해서 자신에게 넘겨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나야. 잠깐 불평했지만 그 불평이 소용없을 지경으로 어항까지 사다 바쳤다.

 

“뭐 이렇게 된 거, 나름 돌보긴 하겠지만.”

 

책상 옆의 어항을 바라보던 시로가 중얼거렸다. 부유하듯 유유히 떠 있기만 하던 물고기가 돌연 홱 몸을 돌려 시로를 향한다. 마치 목소리를 듣고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대로 시로를 바라보더니 또다시 부채처럼 지느러미를 펼쳤다.

 

“아니, 왜 화내는 거야?”

 

어쨌든 저 모습이 화내는 몸짓이라는 것을 이미 듣고 익혔으니, 돌봐주는 입장에선 조금 억울해질 일이었다.

 

 

 

그리하여 시로의 일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아침마다 책상 조명을 켜고 물과 물고기만이 담긴 어항을 바라보았다. 첫날 아침 바닥에 누워버린 물고기를 보고 하루 만에 죽어버린 것인가 하고 절망하던 것은 그저 짧은 에피소드였다. 누운 물고기는 그저 자고 있을 뿐이었다. 믿기지 않는 황당함이었지만 여럿의 경험자들의 말로는 아픈 것도 아니고 그저 누워서 자는 물고기라고 한다. 수초들 틈에 끼인 채 자는 물고기, 바닥에 옆으로 누워버린 물고기, 잎사귀 위에 배를 깔고 누운 물고기……. 형형색색 모습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자고 있다.’는 코멘트와 함께 게시된 물고기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시로는 그날 아침 등교를 하며 휴대폰으로 어항 물품을 검색했다. 텅 빈 방안에선 사람도 그냥 자긴 불편하겠지. 큰 잎사귀의 수초들을 검색하고 고민하며 시로는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물고기가 아니라 물 밖에 사는 동물 같기도 하다. 그날 오후 작은 어항엔 물과 물고기, 그리고 초록빛 큰 잎사귀가 서넛이 달린 수초가 들어찼다. 작은 물고기는 새로 제 공간에 자리 잡은 수초를 휘 둘러보고는 시로를 바라보았다. 어김없이 커다랗게 지느러미가 펼쳐졌다.

 

“화 내지 말아줄래…….”

 

라고 말을 한들, 역시 들어줄 리는 없을 억울함이었다.

 

어항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30cm의 조금 더 큰 공간으로 바뀌었다. 물고기가 매일 같이 화를 낸다는 시로의 말에 배를 잡고 웃던 린이 지나가는 말투로 던진 한마디가 계기였다.

— 글쎄, 욕심 많은 물고기인 거 아냐? 좁아서 성질났을지도.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제 자신이 우습다고도 생각했음에도, 결국 그날 밤 방과 후 시로의 양손엔 두텁고 튼튼한 유리어항이 힘겹게 들린 채 셀프 배달이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이 이사를 한 물고기의 공간은 작은 몸엔 터무니없이 넓다 못해 휑하기까지 했다. 수초를 더 사다 넣어놔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닥도 깔아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시로의 앞에 물고기가 멈추어 섰다. 유리벽을 사이에 둔 물고기가 천천히 배회하며 시로를 바라본다.

 

“말해두지만, 이게 최선이야.”

 

놀랍게도 그날은 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도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치솟듯 펼쳐지지 않은 날이었다.

커져버린 어항이 녹색으로 채워졌다. 오직 금빛의 신경질 적인 물고기를 위해서였다. 간격을 두고 물을 갈아주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침저녁으로 등하교길 휴대폰엔 물고기에 대한 검색정보가 줄줄이 나열되고 있었다. 고작 잘 살아봐야 2년 남짓한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이 물고기가 제 손에 들어온 것에 운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되어버린 거, 제대로 돌봐 주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순식간에 지나간 며칠이 결국 본인의 납득 하에 하루 일과이자 의무로 정해져버렸다. 사람이 아닌 것에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건, 사실 어느 정도는 저도 모를 버릇이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은 “어째서 또 화를 내는 거야……?!” 같은 다소 기운 빠진 인사였다.

그래도 밤마다 잠들기 전, 이제는 책상이 아닌 선반 위에 놓인 어항을 바라보는 것은 적막한 밤 중 시간가는 줄 모를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저 노란 빛이라기엔 반짝이는 비늘과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태어난 금빛의 물고기는 마치 제 모습을 구경하는 시로의 눈길을 알기라도 하는 지, 잘도 유려하게 수초 사이사이를 여유롭게 거닐다 이파리 위에 멈추어 누운 채 잠을 자곤 했다. 그 잠자는 모습을 휴대폰 사진으로라도 담아보고 싶은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서면 부리나케 저쪽으로 헤엄쳐선 지느러미를 펼치는 적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물고기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는 것 같다. 다 알면서 모른 척, 절대 이쪽의 말은 들어줄 생각이 없는 그러한 것들이. 그렇게 되면 시로는 또 별 수 없이 제 자리에 도로 누우며 말을 건네곤 했던 것이다. “잘 자.” 그 말을 듣긴 하는 지 알 수는 없어도, 물고기는 시로가 잠들 때 즈음 그 움직임을 멈추곤 했다.

그렇게 맞이하는 아침과 함께 어김없이 지느러미를 펼치는 물고기를 마주한 지 몇 달, 계절이 지나 비가 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하루아침 지나가는 비가 아닌 지긋지긋하게 이어질 여름 장마의 시작이었다. 어쩐지 아침마다 톡톡 튀는 물방울을 맞이하게 된 것도 그 여름의 시작과 함께였다.

 

사실, 이렇게까지만 회상하더라도 매년 되풀이 될 장마철 한 때의 일상으로만 기록될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

 

 

 

연이은 장대비와 무더위, 습기가 가득 찬 날씨는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 한들 늘어지게 만들기 십상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한 뒤임에도 조금만 움직이면 온 몸을 겉도는 찝찝함에 시로는 식욕도 잊은 채로 제 방에 대자로 누워 빗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아직 정리해 두지 않은 마른 빨래더미들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거의 본능과 다름없을 청소 욕구를 생각의 뒷전으로 보내고서라도 가만히 누워 눅눅함을 피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온 사방에 마당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가 가득한 중에도 귓가엔 찰방거리는 작은 물소리가 들렸다. 뺨에 물이 튄다. 시로는 눈을 감은 채로 그 물방울의 출처를 가늠했다. 비는 새지 않았지. 보나마나 어항 바닥 아래에 또 물이 튀었겠지……. 이제는 당연히 알 법도 한 사실이었기에 애써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저 눈만 힐끔 뜬 채로 조명을 켜둔 어항을 눈짓으로만 바라보았다. 황금색의 물고기가 어항 정면의 유리벽에 바싹 다가온 채 무엇 하나 제 눈앞에 둔 것도 없이 온 지느러미를 활짝 편 채 멈추어 서 있었다. 어째 내려다보는 것도 같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물고기가 데구르르 눈동자를 굴리는 것이 보였다. 장마가 시작된 후 사람 하나는 더위와 습기에 지쳐 늘어져있음에도 이 까다로운 물고기의 성질은 죽는 법이 없었다.

 

“물속은 시원하려나, 꼬리를 부풀린 고양이 같기도 하고…….”

 

작은 물고기의 신경질은 이제 와서 하루 이틀 보는 것이 아니었기에 시로의 감상은 영 태평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밥을 주긴 했던가? 하루정도 지나가도 상관은 없다지만 어쩐지 하루라도 안 챙기면 큰 화를 입을 것 같은 생각도 드는 게 이 물고기를 돌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시로는 그저 누워만 있었다. 조금만 자고 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루라도 신경 쓰지 않았던 적은 없으니, 아무리 성질을 낸다 하더라도 누워있는 인간 하나를 물고기가 어찌하지는 못할 것 아닌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조금은 웃음이 났다. 고작 물고기 한 마리일 뿐인데 결국 온갖 것을 신경써주게 되었다.

저녁엔 시원한 걸 먹어야겠다. 냉 우동이라던가, 소바라던가. 입맛이 없더라도 먹을 건 챙겨먹어야 하루가 서운하지 않게 되는 법이었다. 시로는 도로 눈을 감고 냉장고 속에 정리되어 있을 각종 식재료들을 떠올렸다. 파는 있을 테고, 무도 있고, 육수가 있던가? 만들면 또 더워지겠네. 몸을 움직이는 건 귀찮더라도 요리 할 준비를 생각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어져 가는 와중에도 이미 시로의 머릿속엔 주방에 서서 도마를 굴릴 칼질 소리로 메워지고 있었다. 통통통통, 통통통. 찰박찰박.

좀 이상한 소리가 난 것도 같은데. 어쨌건 시로의 머릿속엔 이미 요리의 과정이 연이어지고 있었다. 무를 갈고, 파를 썰고, 국물을 끓이고,

— 철퍽.

하며 물이 튀고……?

오늘따라 참 묵직하게도 느껴진다. 시로는 손을 들어 익숙하게 제 뺨에 끼얹어진 물방울을 닦았다. 평소보다 참 많이 튀는 것도 같다. 아니, 조금은 흥건한 기분도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까진 멀쩡하던 천장에서 정말로 구멍이라도 뚫려 비가 새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바깥의 빗줄기가 매서웠기에 없지는 않을 일이었다. 한번 맞은 물방울이 곧이어 연달아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로 새는 거야?

황급히 눈을 뜨며 몸을 일으키려던 시로의 코앞에 축축한 무언가가 있었다. 물에 잔뜩 젖은, 새하얀 발이었다.

 

“……발?”

 

누구의 것인지 알기도 전에 그 하얀 발이 시로의 얼굴을 밟아버렸다. 낯설고도 신경질 적인 일갈과 함께였다.

 

“네 이놈! 어항 바닥에 물지렁이가 거슬린단 말이다!”

“어, 억! 잠깐! 뭐야!”

 

일으키려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채 허우적거려도 그 축축한 발은 좀처럼 시로의 얼굴 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짜증 가득한 외침과 함께 더욱 굳세게 내리 누르기까지 한다. 아예 뒤통수가 다다미 바닥에 박혀버리기나 하란 듯이. 공중을 열심히 휘젓던 시로의 손이 곧이어 낯선 이의 발목을 잡았다. 물기 젓은 다리가 조금은 서늘하게도 느껴진다. 발목을 잡고 억지로 밀어내며 시로는 겨우겨우 누운 채 제 머리 위를 보았다. 가장 처음 마주한 것은 새빨간 눈동자였다. 치솟은 눈 꼬리에 이 세상 모든 짜증을 담아낸 듯한, 젖어 있음에도 반짝이는 것인가 싶은 밝은 금발과 하얀 얼굴의 누군가가 앞 머리칼에 맺힌 물방을 똑똑 떨어뜨리고 있었다.

본인 왜에 아무도 없었을 저택의 침입자에 대한 놀라움보다도 더 급한 게 있었다. 제 얼굴을 누르던 무게도 잊은 채 시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홑이불을 그물 펼치듯 본능적으로 내던졌다.

 

“으아아아아아! 이게 무슨 짓이야!”

 

비가 내리는 저녁, 낯선 남자가 흠뻑 젖은 알몸으로 당당히 선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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