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할머니는 자기가 자료실에서 발견한걸 주미에게 보여줘야 할지 망설였다. 거기다 이라가... 이미 저세상 사람이란 것과, 지금의 이라가 누구인지에 대해 주미에게 말하는게 굉장히 고민됐다.


'제이가 겪었던 것도 가슴아파 죽겠는데, 이라 일 까지 주미에게 말해야 할까? 난 이라하고 영재가 너무 안타까워 죽겠는데?'


특히 영재에게 이라에 대해 얘기한다는것 자체가 너무 큰일이라 생각되었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딸이 실은... 정체불명이다 라고 설명하기가 너무 난감했으니까.

그래서 백합할머니는 결심했다.


'그래, 덮자. 덮고 내가 무덤 속에까지 갖고 가면 돼.'


그렇게 생각하고서 이라에 대한 부분은 묻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백합할머니는 주미에게 자신이 발견한걸 보고하게 되었다. 우선 제이에 관한것만.

주미가 한참동안 성애의 보고서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다가 급기야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왜냐면 너무나도 잔혹한, 이게 인간인가 싶을정도로 비인간적인 행태를 어린 아이에게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세, 세상에! 복제한 어린이들을... 철창에 가둬놓고 약물을 주입하고 심지어는 밥도 굶겨가면서 비위생적으로 데리고 있었다는 건가요?"

"이런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그들은 이 아이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오빠가 못된건 이미 알고 있었다지만, 이렇게 까지 비인간적이었다니!"


주미가 흐느끼자, 성애는 옆에서 티슈곽을 갖다 준다. 그러자 두어장 뽑아서 눈가를 닦는 주미였다. 그 모습을 보며, 성애는 더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제이의 일도 그렇지만, 이라에 대한 일도 가슴아팠으니까.

그럴때 주미가 얘기했다.


"우리 오빠, 가만둬선 안되겠어요. 저 이거 터트릴래요."

"아니오. 회장님, 오히려 역풍을 맞을수 있습니다. 지금 시기에 터트리면 위험합니다. 현재 회장님의 자리가 위험합니다. 오히려 1년 버티실걸 하루만에 물러나실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러한게, 현재 주미의 나이가 곧 일흔이다. 게다가 어찌저찌 주도권만 잡고 있을 뿐이라서 오빠인 주태하고 동생 주인이가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사람들의 동력마저도 거의 사라진 상태라 주미가 터트린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다.

그래서 성애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회장님, 우선 때를 기다리시는게 좋겠습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겠죠. 그때 한꺼번에 조금씩 크게 흘리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스캔들 같은거 있잖습니까? 보통 정재계 사람들에겐 하나둘 씩 스캔들이 있기 마련이죠. 어느 대상에 대해 크고 작은 사건이 있겠죠. 그때 같이 터트리는 겁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주미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있었다. 그건 바로...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 알겠어요, 성애씨 지금은 그 말을 듣도록 하죠."


주미가 잔뜩 실망한 상태로 말했다.

그렇게 한참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둘다 끔찍한 사진들만 본 터라 입맛이 싹 없어진 상태라서 밥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늘... 입맛이 없어요. 성애언니..."

"가서 죽이나 샐러드라도 사올까? 우리 나이대는 입맛 없어도 먹어야 해."

"우리는... 운이 좋아 죽이라도 먹고 샐러드라도 먹지만, 그 아이들은... 복제당한 것도 서러운데, 그래요. 아무리 복제되었다 그래도 겉모습은 인간이잖아요. 안그래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 아이들이 인간 취급을 못받고 죽어갔다는걸 보니... 밥이 안넘어 갈것 같네요."


하지만 그 말과는 다르게, 주미의 뱃속에선 밥달라고 울어대고 있었다.


"역시 저도 똑같은 속물인가 봐요. 그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다고 울어대니."

"그러니까 내가 죽 사올께. 흰 죽 사올까?"

"아뇨, 트러플 소고기 야채버섯죽이요. 성애언니도 먹고 싶은거 사와요."

"그래, 알았어."


그 모습에서도 성애는 역시나 주미의 근성이 부자 근성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흰죽은 꺼려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죽집으로 갔는데, 때마침 회사근처 죽집에 희주가 와있었다. 희주가 할머니를 보자 얼른 아는체를 한다.


"어머, 할머니!"

"어, 그래. 너도 점심 먹으러 왔냐?"

"네, 저는 여기서 비빔밥 먹게요. 할머니는요?"

"어, 나는 포장해가게. 심부름 왔거든."

"그렇구나, 할머니 여기 회사 다닌다고 그랬죠?"


희주의 물음에 성애가 끄덕였다. 그러자 희주가 말했다.


"저 아마 보직 변경될것 같아요. 왜냐면...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너..."

"제가 옮겨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어디로 옮길진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요."


희주의 말을 성애는 대충 흘려들었다. 그것이 깜짝놀랄 일로 다가오는건 나중일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죽 두개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날은 그렇게 입맛없는 상태에서 죽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밥을 먹게 되었다.


.

.

.


그날 저녁이었다. 희주가 지 소장에게 연락을 한다. 그러자 바로 연결되는 화상통화.


"여보세요? 소장님. 저 희주입니다."

[그래요 주희주 대원, 상황은 어떤가요?]

"보직변경 신청은 마무리 되었고, 다음주에 정해질 것입니다. 아마 운 좋으면 '그 분' 곁에 있게 될겁니다."

[그 분이 눈치채지 않게 밀착해서 지켜보세요. 그리고 제가 지시할때 까진 그 분에게 제 존재를 얘기해선 안됩니다.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소장님."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하고 희주가 연락을 끊었다. 희주는 안경을 벗으며 중얼 거렸다.


"그냥 그 할머니 한테 자기가 김혜은 전남편이라고 얘기해도 될것을... 바보같아."


그리고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처음에 그 할머니한테 접근하라는게 내심 내키지 않았다. 뭐하러 다 늙은 할머니한테 접근하라 하는건지 알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할머니를 직접 대해보니 그렇게 재미없는 할머니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할머니에 대한 흥미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나 원래 할머니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 할머니가 듬직하게 생겨서 좋은거지 다른 뜻은 없으니까."


희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HN 건강과학에서 희주에게 보직 변경되었다는걸 알려줬다.


"주희주 씨, 저번에 보직 변경 신청한거 수리됐어요. 내일 희주씨는 HN 전자 비서실에서 일하게 될거예요. 거기 비서실장님 보조하는 일이예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주는 속으로 싱긋 웃었다.


'할머니 기대하시라고요. 저 할머니 곁에 꼭 다가갈테니까요.'


그런줄은 성애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주미가 성애에게 말했다.

성애가 혼자 일하는게 안됐어서 인지, 같이 수발드는 인원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다 때마침 HN건강과학 쪽에서 보직변경 신청이 들어오자 옳다꾸나 생각하고 인원을 받아들이게 된게 지금 상황이었다.


"성애씨, 혼자 일하는거 힘들죠?"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보니..."

"그래서 제가 성애씨 보조할 직원을 두려고요."


그 말에 성애는 이대로도 좋은데 굳이 왜 들이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 괜찮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저번에 너무 느리게 일처리가 되다보니... 그래서 어쩔수 없을것 같아요."


그리고 누가 오나 해서 기다려 봤더니!


"자, 인사하세요. 주희주 씨. 오늘부터 비서실장님 보조하는일을 맡게 됐어요."


순간 성애는 희주의 이름을 듣고 혹시나 싶었다. 그러자 눈앞에서 희주가 주미하고 성애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비서실장님을 보조할 주희주라고 합니다."


성애는 희주의 눈빛에서 이 아이가 나에 대해 어떤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다음시간에...



*: 다음주는 개인사정이 있어 한차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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