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질수록 밖으로 떠도는 동물은 절박한 환경에 놓인다. 

집근처를 떠도는 고양이들도 그 중 하나가 되리라.

어느 해, 추운 겨울쯤 기억이 나는 장면이 있다. 

눈이 사이사이 무섭게 쌓이는 날들이 오가는 겨울날, 저녁무렵 집앞의 등이 켜지면 뒷마당에 가끔 고양이 밥을 내놓았다.  지나가는 몇몇 어설픈 고양이를 보고 난 뒤다.  

어느 날 밤, 사자처럼 연노랑빛의 얼굴이 제법 큰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집 창을 향해 오래 울고 갔다. 

아마 구애를 했던 모양이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양갓집 규수인 울집 고양이는 그 고양이에겐 넘사벽이 분명할진대, 집앞 차밑에서 장장 네시간은 버티다 갔다. 울집 고양이는 더구나 이미 중성화수술이 끝난터라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은 해프닝이다. 

처음엔 당연히 그 고양이가 배가 고픈줄 알았다. 그래서 제법 수북한 밥그릇을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 물그릇과 함께 두었다.  이웃은 나의 그런 행동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이미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를 그날 밤에 배웠다. 

정작 얼굴 큰 노란 고양이는 밥그릇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짙은 갈색의 태비고양이가 지나가다가 얌전하게 와서 살살 먹고갔는데 상당히 어린 고양이라 맘이 애잔했다.  그리고 노란 고양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무렵, 그릇을 치우려고 살펴보니 ,

' 깜짝이야! '  

정말 놀랐다 . 제법 덩치가 큰 너구리 한마리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퀴같은 손으로 그릇속의 먹이를 쥐어가며 열심히 먹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손을 이용하듯 그렇게 먹이를 집어서 먹다가 유리창 너머 나와 마주친 그 너구리, 내 응시에 흠칫하더니 옆으로 비껴서 가는 척 하다가 다시 와서 아주 당당하게 나를 흘깃거리며 그릇속 먹이를 다 먹어치운다.  유리문을 사이에 둔 나를 '쌩' 하고 무시하던 그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너구리가 무척 영리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덩치도 제법 큰 그 동물이 너구리라는 건 꼬리를 보고 알았다. 

어디서 왔을까? 주변이 대부분 잔디인데 도무지 너구리 살만한 곳을 모르겠더라. 

그러나 까맣게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그 사납고 날카로와 보이던 갈퀴같은 손을 단 한번 보았을지라도, 나는 분명히 겁에 질렸다.

너구리는 덩치도 크지만 고양이는 비교도 안되게 무서워보이는 손과 발을 지녔다.  

아마 이래서 이웃들이 고양이 먹이를 밖에 내놓지 말라고 부탁했나보다.

자고로 일부러 부탁하는 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릇을 싹싹 훑다가 들었다 놓기까지 하는 너구리를 살펴보고 있던 이는 나 뿐만이 아니라 뒷마당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무아래에 4시간 차 밑에서 울던 얼굴 큰 노랑고양이도 같이 그 너구리를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사실은 먹이를 더 달라고 무언으로 협박의 눈빛을 보내던 그 간 큰 너구리가 간 뒤에야 알았다.  아마 울고 난뒤 배가 고팠던게 분명한 그 고양이는 그날 저녁 운도 참 없었다.  너구리 있는동안 감히 옆에 올 생각도 못하던 그 고양이가 안쓰러워도 나도 그날 저녁은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너구리가 다시 꼭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하늘에선 눈까지 포슬포슬 내리기 시작했었다. 

다음날엔 눈이 소북히 쌓여 물은 얼고 밥그릇은 눈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그 뒤론 깊은 밤이면 고양이 밥그릇을 내놓지 않는다.  어차피 고양이가 못먹는다면 내놓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추운 밤 길고양이가 생각날 때, 그 너구리도 같이 생각난다.

울 집 고양이들도 그 너구리가 창가에 머무는 동안은 슬그머니 창가에 머물기를 피했는데,

그게 너구리가 무서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너구리가 싫어서 그런 건지 영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밤에 나는 누군가 간곡히 일부러 부탁하는 일은 잘 생각하고 대개는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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