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 모드]



아이를 임신한 후 다니엘이 기운이 없어 보여서 좋아할만한 걸 찾아주기로 했다. 다니엘이 좋아할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릴만한 것을 곰곰 생각하던 성우가 반짝, 눈을 빛내면서 공중을 향해 크게 원을 그렸다. 성우의 손가락 끝을 따라 원 모양으로 허공이 찢어지면서 우웅- 소리와 함께 드래곤 레어가 보였다. 레어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블랙 드래곤을 향해 성우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면서 말을 걸었다. 



"어이, 우진. 일어나 봐"

"...? 뭐야, 옹성우"




성우의 목소리에 굳게 닫혀있던 드래곤의 눈꺼풀이 들어올려지면서 그 안에 자리하고 있던 황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을 뜨자마자 급격하게 좁혀지는 파충류의 눈동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성우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성우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드래곤이 다시 한번 눈을 깜빡, 하더니 한순간에 긴 흑발의 미남자로 변해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색 장발, 황금색 눈동자, 짖궂은 인상을 만드는 덧니를 가진 골격이 단단한 남자가 손목의 팔찌를 돌리면서 삐딱한 태도로 서서 성우를 바라보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난데없이. 잠을 방해받아 불퉁한 우진의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건지 성우가 빙글거리며 말을 붙였다. 




"우진, 화이트드래곤의 레어에 침투하자"

"뭐? 무슨 소리야. 이 미친 악마새끼"

"레어에 침투하자니까. 갖고 싶은 게 생겼어"

"그게 뭔데? 화이트드래곤만 가지고 있는거야? 왠만한 건 나도 갖고 있어."

"화이트드래곤의 눈물. 그게 갖고 싶어"

"미친.."




전혀 예상치 못한 응답이 나오는 것에 우진이 욕설을 씹어 삼키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성우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이 눈물 흘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해츨링이 태어났다고 눈물 한 방울, 계약을 맺었던 인간이 죽었다고 눈물 한 방울 흘린 걸로 악명 높은, 전 세계에 딱 두 방울 있는 화이트 드래곤의 눈물을 뺏으러 레어에 침투한다고? 드래곤은 본체 상태로 레어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해지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우진이 매정하게 몸을 홱 돌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드래곤이랑 계약했다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줄 줄 알아? 우진이 다시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서서히 마법을 풀 때, 성우가 답지 않게 말끝을 늘이며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박우진~ 한번만~ 응?"

"뭐....뭐야? 끔찍하게... "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성우의 콧소리에 경악의 눈빛을 보냈지만 성우는 그런 우진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는 실실 웃고 있었다. 왜... 왜 이래 답지 않게. 우진이 몸을 뒤로 빼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성우는 그런 우진의 태도에 꿈쩍 않고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타고난 마력으로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해본 적 없는 악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우진이 실눈을 뜨고는 성우를 찬찬히 바라봤다. 본디 성우는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드래곤만큼 반짝이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았고, 콕 집어서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뭐야? 누구 주려는 건데"

"아닌데? 누구 주려는 거 아닌데?"

"그래? 그럼 꺼져"

"아, 아니! 누구.. 그래, 누구 줄거야. 누군지까지 말해야 같이 움직여줄거야?"




우진이 대답 않고 성우를 빤히 쳐다보자 검지손가락으로 목선을 긁으며 잠시 맹한 표정을 하던 성우가 시선을 빗기더니 대답을 던졌다. 내 새끼를 밴 상대가 있어. 선물로 주려고 그래.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게 누구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더이상은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우진이 흐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그럼 나 태양의 검 줘. 그거 가지고 있는 거 다 알아. 뭐?! 야 그 검을 내가 어떻게 구한건데!!! ...아, 알았어.  콜! 이전부터 탐내던 성우의 검을 갈취한 우진이 활짝 웃으며 레어 밖으로 몸을 던지며 날개를 폈다. 화이트드래곤의 레어 밖에서 만나. 우진이 날갯짓을 시작하는 걸 바라보며 활짝 웃은 성우가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






"저어.. 민현님"

"음?"

"실례지만.. 성우님이 왜 안 오시는지 아시나요?"

"옹성우가 너 보러 안 와?"

"네... 안 오신지 일주일 넘었어요. 이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러 오고는 하셨는데.."

"음? 이상하다. 옹성우 서재에 멀쩡히 있던데. 여기 오기 전에도 만나고 왔는걸?"

"네...?"




조심스럽게 질문했다가 민현의 대답에 딱딱히 굳어지는 다니엘의 얼굴을 보며 민현은 자신이 뭘 잘못 말했나 한참 생각해보았다. 아닌데. 분명 옹성우 다니엘이랑 같은 성 안에 있고. 방금도 서재에서 아주 멀쩡하게 팔꿈치를 핥고 있던데. 어? 그러고보니까 팔꿈치를 왜 핥고 있었지? 어디 다쳤나? 악마는 본래 천사였다가 잘못을 저질러 악마가 되어버린 경우이기 때문에 천사의 타액과 동일하게 악마의 침은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핥고 있었던 듯 싶은데. 어디 크게 다쳤나? 하긴, 짐승같은 치유력으로 하루면 왠만한 상처가 다 나아 날아다니는 성우를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았다. 흠.. 모르겠네. 어디 아픈 모양이던데. 어라, 다니엘. 이거 뭐야? 너 이거 먹고 있어? 




"아, 네. 성우님이 이거 먹으라고 주고 가세요"

"헤에.. 너 이거 뭔지는 알아?"

"음료 같은 거 아닌가요?"




순진무구한 다니엘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민현이 다니엘의 손에 들린 컵 안의 액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건 분명 주신만 먹을 수 있다는 넥타르 같은데. 킁킁 향을 맡아보니 미약한 단내가 나는 것이 꿀이 섞여있는 듯도 싶었다. 이걸 다니엘이 어떻게 먹고 있지? 아니지. 다니엘은 이 성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까 성우가 어디서 공수해온 것일테다. 성우가 어떻게 가져온거지? 한 모금 마시기만 하면 몸의 원기가 회복되고 성스럽고 온전한 육체를 만들 수 있다는 신들의 음료를 물처럼 마시고 있는 다니엘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라, 이건 뭐야? 




"아.. 이건 석류에요. 복숭아랑.. "




석류는 제가 먹는 게 아니라 성우님이 주실 때만 먹어요. 미친 새끼. 이 새끼 진짜 미쳤나봐. 돌아버린 게 분명해. 천사가 관장하는 천국의 복숭아 과수원에 숨어들어가 복숭아를 훔쳐오고, 가이아가 지키는 귀한 악마의 과실 석류를 빼냈을 생각을 하니 성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안 봐도 뻔했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렇게 다니는거야? 안 그래도 요즘 과수원이 들쑤셔졌다는 데 옹성우 이 자식 작품이로군. 하나만 훔쳐도 당장 소멸하거나 봉인될텐데, 넥타르에 꿀이며 천국의 과일이며 악마의 보석까지. 과연. 민현의 날카로운 눈빛이 다니엘의 얼굴이며 몸을 샅샅이 훑었다. 얼굴에서는 반짝반짝 광채가 나고, 피부는 맑고 투명해서 햇빛을 받은 뱀파이어처럼 차르르 빛이 흐르는 듯 했다. 악마를 배고 있는지 배는 약간 불룩하게 올라있었지만, 몸에서는 정기가 흘러넘치고 달큰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마 지옥은 말할 것도 없고 천국과 지옥, 인간계를 통틀어 이렇게 귀히 대접받는 존재는 다니엘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민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의 피를 거름으로 주어 검붉은 땅에서 자라나는 과일인 석류는 하급 악마가 지키고 있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악마의 과일이었다. 우연히 지옥에 들어선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지옥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경우는 이 악마의 과실 석류를 먹을 때였다.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의 곁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지옥의 신 하데스가 손님들의 발을 묶어놓을 때 사용하는 금단의 과일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지옥의 음식물이 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치명적이지만 이 석류알을 먹으면 피 속에서 독약으로 변해 지옥의 경계를 넘어가려는 순간 독극물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심장을 부여잡으며 경계의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통으로 신음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험한 과일을 뭣도 모르고 방 한 켠에 두고 있는 다니엘을 보며 민현이 혀를 쯧쯧 찼다. 그것도 다니엘 혼자 먹으라고 두면 안 먹을까봐 성우 자신이 직접 먹여준다니.. 그 놈의 독점욕이란. 더 생각할 것도 없다고 느낀 민현이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나 간다."

"아, 민현님...! 성우님은요?"

"올 때 되면 오겠지. 간다."




진짜로 가려는 생각이었는지 미련 없이 날개를 펴고 창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리는 민현의 뒷모습을 보며 다니엘이 입술을 짓씹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침이면 아침이라고, 밤이면 밤이라고 찾아오던 성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초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 넓은 성에,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이 너른 방 하나 밖에 없는데. 주위에는 시중 드는 마물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 자기 혼자 남겨져 있다는 -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은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제 새끼까지 뱄는데- 입술에 피가 배어나올 듯이 강하게 짓씹고 있던 다니엘의 입술이, 아랫 입술을 부드럽게 잡고 이 사이에서 빼내는 손길에 의해서 열렸다. 




"아..?"

"깨물면 안 되지. 상처나잖아."




자기가 애타게 기다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의 그 태연한 얼굴로 싱글거리며 입술을 지분거리는 성우가 눈 앞에 나타나자 다니엘이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일주일 째 코끝 하나 비치지 않더니 무슨 소리에요 ! 씹어뱉듯이 내던지는 날카로운 말투에 잠시 당황한 성우가 페이스를 잃고 허둥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니엘, 나 봐봐. 날 보라니까? 성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다니엘이 반응하지 않자 한숨을 짧게 후, 내쉰 성우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다니엘의 목에 무언가를 둘렀다. 찰칵, 고리가 채워지는 소리가 들려와 흠칫하며 성우를 쳐다본 다니엘이 이내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목에 걸린 초커를 매만졌다. 한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큼직한 화이트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정가운데 박혀서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에 어안이 벙벙해진 다니엘의 손 끝이 잠시 방황했다. 크흠, 흠. 오다 주웠어. 




"뭐에요?"

"보면 몰라? 목걸이잖아. 그렇게 목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은 초커라고 부른다고는 하더군"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광채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멍하니 손 끝으로 초커 장식을 더듬는 모습을 곁눈질로 흘끗 본 성우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등 뒤로 숨겼던 손을 내밀어 어른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하나 더 쥐어줬다. 원래는 두 개였어. 둘 다 원석으로 줄까 하다가 그러면 자주 안 꺼내볼 것 같아서.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쳐다보지 않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다니엘이 초커를 두른 모습을 흘끗대며 바라보는 성우의 입꼬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씰룩대며 미소짓는 것이 빤히 보였다. 얼떨결에 손에 쥐게 된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던 다니엘이 손을 들어 다이아몬드를 성우의 가슴팍에 냅다 던졌다. 뭐, 뭐야! 이거 깨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이거 구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너 지금 내 고생은 알..다, 다니엘? 




엄청난 순발력으로 다이아몬드를 잡아챈 성우가 순간 발끈하며 다니엘에게 달려들자, 고개를 푹 숙이고 귀 끝이 빨개진 다니엘의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잠깐. 다니엘, 울어? 기뻐서 우는거야? 근데 이건 왜 던져. 어깨를 감싸안을까 말까 허공을 배회하는 성우의 손이 다니엘의 중얼거림에 움직임을 뚝 멈췄다. 뭐라고? 안 들려. 




"흣...흐윽.. 누가 이딴 다이아몬드 갖다달라 그랬어요?"

"뭐?"

"누가 보석 갖고 싶냐고 했냐구요. 으흑, 이딴 거 찾으러 다닌다고 그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거에요?"

"이딴 거라니."

"여기서 내가 무슨 생각하면서 매 시간을 보냈는줄 알아요? 아픈 줄 알았다구요. 이딴, 이딴 보석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울면서 성우의 가슴팍에 파고드는 다니엘을 어안이 벙벙해진 채 껴안던 성우가 활짝 웃으며 다니엘을 꼬옥 껴안았다. 다니엘, 나 보고 싶었던 거야? 그랬던거야? 몰라요! 여전히 울먹이면서 품을 파고드는 다니엘의 귓가에 가벼운 버드키스를 쪽쪽 내리며 성우가 싱글벙글 입이 찢어져라 미소지었다. 어느새 이 천사가 자신이 없으면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정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몸의 복종보다 마음의 종속을 얻어내는 데 한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하면서, 성우가 다니엘을 껴안은 등 뒤로 옷깃을 슬쩍 내려 아직 피가 맺혀있는 왼쪽 팔뚝의 자상을 가렸다. 이거 걸리면 또 잔소리 하겠지. 하면서 




*




으흣… 아아악..




짙은 어둠을 뚫고 나지막하게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질펀한 정사를 끝낸 후 다니엘을 끌어안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성우가 낯선 소리에 귀를 세우며 품에 안겨 있을 다니엘의 허리춤을 더듬었다. 눈물 콧물 쏙 빼놓을 정도로 격렬한 정사를 치르고는 세상 모르게 천사처럼 자고 있을 다니엘이 없어 감겨 있던 눈을 날카롭게 뜨며 침대 위를 더듬은 성우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몸을 새우처럼 말고는 웅크린 자세를 취한 채 배를 움켜잡고 있는 다니엘을 발견했다. 다니엘? 손가락 하나를 휘저어 침실의 불을 밝히며 성우가 낮은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지만, 다니엘은 성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배를 움켜쥐고는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방안의 불을 조금 더 밝히고 다니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쳐다본 성우는 다니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식은땀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이불을 걷으며 민현을 호출했다. 악마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다니엘, 괜찮아? 내 말 들려?”




성우가 다니엘의 어깨를 가볍게 쥐고 흔들었지만 다니엘은 반 기절상태인지 흐으..하는 신음소리만 낼 뿐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초조해진 성우가 다니엘의 양 어깨를 쥐고 마구 흔들려고 하는 순간 민현이 도착해서 성우를 저지했다. 깨우지 말고, 반듯이 눕혀. 뭘 알고 있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하는 민현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서 가시지 않은 성우가 떨리는 손을 들어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다니엘의 몸을 펴고 반듯이 누울 수 있게 해주었다. 옷 벗겨. 민현의 지시에 이 상황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성우가 다니엘의 흰 색 천사복을 찌지직- 찢어 다니엘의 흰 나신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쳐다보지마 이 새끼야. 나지막하게 짓씹어 뱉듯이 위협하는 성우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한 민현이 성우를 잡아 당겨 다니엘에게서 떨어지게 했다. 다니엘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가고, 쉽사리 고통이 가시지 않는 듯 잔뜩 찌푸려진 미간 위에 식은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죽음과도 같은 침묵을 깨친 것은 찢어질 듯한 다니엘의 비명소리였다.




“아악.. 아아아악!”




가슴 한가운데 새겨져 있는 검은 십자가를 제외하고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다니엘의 몸 한가운데 가슴 바로 밑에서부터 배꼽까지 피부 안에서부터 붉은 색의 선이 하나 곧게 그어졌다. 다니엘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지만, 고개의 위치를 바꾸는 정도의 미미한 움직임만 있을 뿐 신체를 뒤척이지는 못한 채 몸을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던 붉은 선이 피를 머금는 듯 점차 짙어지더니, 선명한 붉은 선이 생겼을 때 다니엘의 배가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솟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성우가 당장에라도 뛰어갈 듯이 몸을 움찔거렸지만, 민현의 손이 성우의 팔을 강하게 잡아 제지했다. 성우의 눈에 비친 다니엘의 피 색은 처음 그가 날개를 찢어낼 때의 투명한 붉은 빛과는 다르게 혼탁해져 있었다. 저걸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우의 몸은 다니엘의 몸을 가르고 태어나는 악마의 탄생을 지켜보느라 그 자리에 못박혀있었다.




가슴 바로 밑에서부터 배꼽까지 일자로 갈라진 틈새에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검은 악마의 모습이 천천히 떠올랐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처럼,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리고 두 다리는 모아진 자세를 취한 악마가 느리게 부상했다. 피에 젖어 접혀있던 악마의 검은 박쥐 날개가 얇은 피막을 찢으며 천천히 펴지고, 온 몸에서 핏방울이 뚝뚝 흘러나오며 침대를 온통 피로 적신 악마가 성우와 민현의 가슴 정도의 높이에서 부상을 멈췄다. 피에 젖어 색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핏방울이 아래로 흐르면서 드러낸 머리카락은 성우의 칠흑처럼 검은 머리와 다니엘의 황금빛 머리 색의 중간인 갈색이었고, 목이 찢어질 듯 고통의 비명을 지르던 다니엘의 비명소리가 뚝 끊기는 것과 동시에 핏방울이 엉겨붙은 속눈썹이  천천히 들어올려지며 자수정 같은 투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성우와 민현의 눈을 맞췄다.




천사와 악마의 끔찍한 혼종, 악마의 지배자 지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첨언]


다니엘이 먹는 과일, 석류. 페르세포네 신화.

고대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딸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반한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가 그녀를 강제로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 이에 어머니 데메테르는 제우스에게 찾아가 딸을 구해줄 것을 탄원하였다.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명부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면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지상에 오르기 전 페르세포네는 하데스가 준 석류를 받고 그 씨에 붙은 맛있는 과육을 먹고 말았다. 이것으로 완전히 지하 세계를 벗어날 수 없게 된 페르세포네는 매년 넉 달 동안을 하데스의 신부로 지하에 머물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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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 등장. :D 이런저런 이미지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넣어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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