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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 명의 남학생 무리가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무리를 본 학생들은 휴식을 취하다 말고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옥상으로 올라오던 이들은 무리를 보자마자 다른 곳으로 재빨리 발길을 돌렸다. 옥상 모퉁이에서 가림막을 등지고 앉은 서희와 진혁만 이 상황을 몰랐다.


사내 녀석들 중 가장 연배 높은 A가 담배를 물자, 후배 B가 담뱃불을 붙였다. A는 빨갛게 달궈진 담배를 빨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요즘 김서희가 이진혁 꽁무니 졸졸 따라다닌다며.”


B는 물고 있던 담배를 급하게 빼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오늘 김서희가 이진혁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수업 시간 내내 턱 괴고 보더랍니다. 이진혁은 눈길도 안 주는데 김서희 혼자 따라다니고 윙크하고 난리가 났답니다.”


옆에서 히죽거리며 듣던 C가 대화에 꼈다.


“형, 김서희 걔 신입생 때도 MT 한번을 안 따라온 거 알죠? 수업 듣는 거 말고는 학교생활을 안 하던 그런 애가 지금 레전드 껌딱지를 하고 있다니까요!”


A는 질펀하게 침을 뱉었다.


“칵- 퉤! 이진혁이가 레전드는 레전드네. 우리가 작업 좀 하려 하면 맨날 아르바이트 간다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던 김서희를 저리 환장하게 만들다니.”


A는 옆에서 받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안에 남은 잔여물을 바닥에 뱉었다.


“아 씨, 그러니까 김서희가 뭣 모르는 신입생이었을 때 해치웠어야 했는데. 지금은 대가리가 너무 커버렸어.”


C는 콧구멍을 벌렁대며 웃었다.


“형, 그때는 임지훈이가 오지게 쉴드치고 있었잖아요. 서희랑 윤이랑 둘 다.”

“쯧쯧... 그러니까 너는 임지훈이 그 새끼를 먼저 쳤어야지.”

“아, 형! 임지훈이 저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어요.”

“자랑이다, 병신아.”


A는 웃으면서 C의 아랫배를 발로 찼다. C가 배를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자, 다들 캑캑 거리며 웃어댔다. 그 틈에 A는 담배 꽂은 손을 공중에 흔들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런데 임지훈 그 새끼도 희한해. 어떻게 윤이랑 서희 같은 애들을 옆에 끼고도 딴맘을 안 먹지? 혹시 고잔가?”


다들 맞장구 지차, A는 휙- 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비열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면 2 대 1?”


무리는 또다시 캑캑 거리며 한바탕 큰소리로 웃었다.


서희는 앉은 채로 주먹을 꼭 쥐었다. 걸어가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지만, 그러면 옆에 있는 진혁까지 저들이 깔아둔 진흙탕 속에서 뒹굴게 뻔했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가만히 앉아 저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바라야 했다.


“선배님, 김서희 말이에요. 혹시 레전드 돈 냄새 맡고 붙은 거 아닐까요?”

“에? 김서희가 돈 냄새를? 왜?”

“걔 부모님 돌아가시고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잖아요.”

“그런 거였어? 하도 콧대 높게 하고 다녀서 난 뭐나 되는 줄 알았더니 소녀 가장이었어?”


C가 귀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형, 걔 알바 하는 거 봐요. 거의 노가다 수준으로 하잖아요.”

“근데 걔 장학금 따박따박 받잖아. 아니, 도대체 돈이 얼마나 궁한 거야? 가만가만... 그럼 혹시 레전드를 스폰서로?”


A는 담배를 꼴아 문 채로 주먹과 손바닥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짓을 했다.


“휙- 김서희 억 소리 나는 차에서 졸라 뒹굴겠네.”


사내들의 대화는 저들이 바닥에 뱉은 침만큼 더러웠다. 꼭 쥔 서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대화에 자신이 언급된 일보다 진혁과 이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는 게 수치스러웠다. 아니, 속상했다.


무리가 옥상을 내려가자, 서희는 질끈 눈을 감으며 숨을 나눠 내쉬었다.


「 그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죠. 소문이란 건 누군가는 계속 만들고 누군가는 계속 살을 붙이고 또 누군가는 계속 왜곡을 하니까. 그런 의미로... 부탁 하나만 하죠. 내가 소문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


진혁의 부탁이 떠올라서 머리가 들어지지 않았다. 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

“앞으로 오해 생기지 않도록 조심... 하겠습니다.”


진혁은 앉은 자리에서 서희를 한번 올려다볼 뿐 말이 없었다.


“그럼... 저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서희 말에 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의 모습과 함께 발걸음 소리가 옅어져 갔다. 옥상 문이 닫힌 후에는 더 이상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혁은 담배 하나를 빼서 입에 물고 그것을 깊게 빨아들였다. 속까지 들어갔던 연기가 그의 무거운 숨에 섞여 나왔다.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에 두 팔을 기대고 섰다. 조금 전 두 손 꼭 쥐고 앉아서 숨만 쉬던 서희의 모습이 진혁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혔다. 진혁은 타들어 가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꽂아 두고, 학과 건물을 빠져나가는 서희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건, 어린 시절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서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 이후 처음이었다. 진혁은 아직 다 태우지 않은 담배 끝을 손가락으로 털어내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계단을 내려가는 진혁의 걸음이 점점 뛰는 것으로 바뀌었다.


“김서희”


진혁은 서희의 팔목을 잡아 돌려세웠다. 서희는 훌쩍이던 숨을 거두고 재빨리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진혁의 입에서 선뜻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해 본 적도 받아 본 적도 없는 위로가 어색하기만 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고개 돌리고 서희와 진혁을 보았다. 정확히는 ‘우는 서희’와 ‘레전드 진혁’을 보았다. 이때다 싶은 호사가들은 아예 자리를 지키고 서서 두 사람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잡은 서희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가... 울기 적당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진혁은 서희를 차에 태우고 말없이 시동을 켰다. 엔진 소리에 서희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진혁은 기어를 D에 놓고 무심히 핸들을 돌렸다. 괜찮을 리 없으니 괜찮은지 묻지 않았다.


학교 정문을 지날 때쯤 진혁의 눈에 조금 전 그 사내 무리가 보였다. 지나치자 생각하면서도 목구멍까지 화가 끓어올랐다. 진혁은 갑작스레 핸들을 돌려 사내 무리 앞에서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서희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진혁은 나오지 말란 말만 하고서 운전석 문을 닫았다.


“야, 이진혁! XX! 운전 X 같이 할래!”


갑작스레 튀어나온 차 때문에 식겁한 이들은 놀란 만큼 욕설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주위 시선이 모두 이들에게 모였다. 언제고 한 번은 터질 줄 알았는데 그날이 오늘이구나, 하는 얼굴들이었다.


무리에게 걸어가는 진혁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조금 전 목구멍까지 치솟았던 화는 단단하고 차갑게 굳어 진혁의 눈빛 결까지 바꿔놓았다. 진혁은 무리 앞에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더니 선배 A를 향해 웃음을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가 웃어? 운전 X 같이 해 놓고 웃어?”


A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눈살을 찌푸리자, 진혁은 같잖다는 듯 숨을 뱉으며 A에게 한발 다가갔다. A 앞에 선 진혁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싸늘했다.


“선배님... 제가 진짜 X 같은 소리 하나 해드릴까요.”


격앙되지 않은 진혁의 중저음 목소리에 A의 얼굴이 움찔했다.


“찌질하게 학교 옥상에서 골목대장 놀이하면서 주둥이 놀리지 말고 가서 취업 준비나 하세요. 어차피 저같이 금수저 문 놈 밑에서 일하겠지만.”


A가 욕설을 퍼부으며 진혁의 어깨를 밀쳤다.


“뭐! 이 XX 새끼가 미쳤나!”


진혁은 표정 변화 없이 A의 손이 닿은 어깨를 털어내면서 A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미쳤다고 하면 어쩔 건데. 감히 너 따위가.”


흥분한 A가 진혁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이 새끼야! 다시 지껄여봐.”


탁- 진혁은 A의 손을 세차게 쳐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미쳤다고 하면 어쩔 건데. 감히 너 따위가... 라고 했습니다. 선배님.”

“이런 XX!”


A가 이성을 잃고 주먹을 들어 올리자 같은 무리의 누군가가 A를 말렸다. 폭행으로 이어지면, 그땐 상대가 동문 ‘이진혁’이 아니라 ‘민진 건설’이 될 수 있었다. 진혁은 주먹을 쥔 채 주저하는 A의 손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뱉었다.


“선배님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테니까 귓구멍을 열고 잘 들으세요.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릴 때는 진짜 ‘고소’라는 게 뭔지, 법정에 서는 게 뭔지, 끝까지 합의를 안 해주는 게 뭔지 뼛속까지 알게 될 겁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 잘 새겨들어요. 특히 너, A 선배님.”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제대로 괄시당한 무리는 너도나도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등 돌리고 가는 진혁에게 주먹 날릴 만큼 용기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서희는 눈물범벅 된 얼굴로 운전석에 앉는 진혁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지 않았어요?”


진혁은 핸들을 잡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안도감이 밀려든 서희는 잔뜩 울상 지으며 연거푸 숨을 내쉬었다.


“아니, 선배님, 그렇게 갑자기 혼자 나가시면 어떡해요. 저 사람들 정말 악질인데 몰매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그거보다 저 사람들이랑 이렇게 얽혀서 어떻게 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목이 멘 서희는 하려는 말을 적절한 동사로 끝맺음 하지 못하고 훌쩍였다. 진혁은 사람이 많지 않은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서희야.”


서희는 속눈썹 끝에 눈물이 맺힌 채로 진혁을 보았다. 조금 전 진혁이 거칠게 차를 세울 때도 이만큼 긴장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딸꾹질하듯이 숨이 끊어졌다. 단지 이름이 불린 것뿐인데, 심장이 비상 깜빡이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댔다.


진혁은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고개 돌려 서희를 보았다.


“저기...”


서희와 눈을 마주한 진혁은 몇 번이고 속으로 연습했던 말을 나지막이 꺼냈다.


“나랑... 영화 보러 갈래?”


서희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잠시 주저하던 진혁은 조심스레 서희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서희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슬퍼서 맺힌 눈물은 아니었다.



평범한 습작생. 더디고 어설픕니다. 빠른 전개를 원하는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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