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보르 안 망했다고 가정하고


아직 소린이 어린 왕세손였을 시절에 가끔씩 들려서 스로르하고 스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훌쩍 떠나는 간달프가 젊은 왕세손을 불러서는 세상 이야기를 해 주는데, 샤이어라는 동네에 호빗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거야.

드워프처럼 작지만 수염이 나지 않고, 엘프마냥 귀가 뾰족한데 발이 크고 털이 나 있다는 호빗이 신기해서 간달프에게 더 이야기 해 달라고 채근함. 그렇게 어린 왕세손은 가끔씩 찾아오는 간달프에게서 호빗들에 이야기를 주로 들으며 청년으로 자라남.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 처럼 소린에게 호빗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던 간달프가 한숨을 내 쉬는거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사실은 샤이어에 자기가 아끼는 호빗아이가 있는데, 이번에 부도를 모두 잃고 욕심많은 친척들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함. 아직 어린 호빗이 처한 상황이 안타까워 소린은 그 호빗을 자기가 후원하겠다고 나서는거지.

어차피 에레보르에 썩어나는것이 황금이기도 했으니 그 길로 소린은 할아버지 스로르에게 허가를 받고는 간달프에게 유려한 필체로 문서 하나를 작성해서 줌. 거기에는 샤이어의 빌보 배긴스를 스라인의 아들 소린이 책임지고 후원하겠으며 그가 가진 재산은 소린이 관리하되 법적 성인이 되었을 때, 빌보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음.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있어도 된다는 말도 껴 있고 ㅇㅇ

소린에게 문서를 받은 간달프가 걱정하지 말라면서 소린에게 눈을 찡긋 하고는 샤이어로 떠남. 샤이어에는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 욕심많은 친척들 틈바구니에 끼어 불안불안하게 살고 있는 빌보가 있었음. 부모님의 재산을 가지고 감놔라 배추놔라 하는 친척들이 또 언제 집 안에 들이 닥칠지 몰라 집 안 구석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빌보는 누군가 찾아와 쿵쿵쿵 문을 두들기자 겁에 질려서는 쭈뼛거리면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 봄.

빌보가 밖을 내다보자 거기에는 가끔 와서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마법사 간달프가 서 있는게 아님? 얼른 문을 열은 빌보가 오랜만에 활짝 웃으면서 간달프 품에 폭 안기자 간달프도 허헛 하면서 마주 안아줌.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빌보를 데리고 벽난로 앞 소파에 앉힌 간달프가 빌보를 마주보면서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예상대로 표정이 별로 안 좋아지는거야. 쯧쯧 혀를 찬 간달프가 품 안에서 둘둘 말은 양피지 하나를 꺼내 주더니 이것이 너를 지켜줄꺼라 하고는 누가 찾아오면 이걸 보여주라고 말하고 떠남.

같이 좀 더 있어주길 바랬던 빌보는 떠나는 간달프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간달프가 주고 간 양피지를 슬쩍 펼쳐보는데, 아직 어린 빌보에게는 어려운 글자가 너무 많음..ㄸㄹㄹ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들이닥친 친척들은 집 안에 있는 가구들과 물건들을 보면서 이건 자기네 집으로 가져가겠다느니, 이건 내꺼라느니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함. 한 구석에서 쭈뼛거리던 빌보가 간달프에게 받은 양피지를 가까이 있던 친척에게 건네주자 이게 뭐냐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던 친척아저씨가 쭉 읽어보고는 비명을 지르는거야.

다들 비명을 지른 호빗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여기 드워프 왕세손이 빌보의 후견인이 되어 재산을 관리하겠다고 써 있다면서 양피지를 보여줌. 왕세손이라니!! 하고 다들 경악해서는 빌보를 노려보는데, 사실 빌보도 모르는 내용이라 찔끔하고는 어깨를 움츠림. 만약 빌보가 가진 유산을 건드리면 아주 재미없는 일이 벌어질거란 경고가 들어있는 양피지때문에 다들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빌보의 집을 나가버림.

모두가 나간 조용한 집안 거실에 떨어진 양피지를 얼른 주워들은 빌보가 찡한 콧잔등을 꼼질꼼질 거리면서 양피지를 꼭 껴안음. 빌보는 아직 어려 잘 읽지는 못 하지만 마지막에 들어간 서명에 쓰여진 소린이란 이름을 몇번이나 말하면서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함.

그렇게 빌보는 저 멀리 떨어져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소린의 보호를 받으면서 혼자 살아가기 시작함. 다행히 마을에는 욕심많은 빌보의 친척들만 사는게 아니라 친절한 호빗 이웃들도 있기 때문에 빌보 혼자 살아갈 수 있었음. 거기다 가끔씩 찾아오는 간달프가 소린이 빌보를 위해 준비한 거라면서 장난감이라던가 예쁜 세공품들을 가져다 줘서 빌보는 항상 간달프가 오기만을 기다림.

그러다가 매번 받기만 하는게 미안해진 빌보가 간달프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냐고 물어보는거야. 곰곰히 생각한 간달프가 그럼 편지를 써 보는게 어떠냐고, 자기가 소린에게 빌보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 하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이야기 하는거랑은 다를것이라며 추천을 해 줌. 그렇게 빌보는 고사리손으로 펜을 잡고는 한자한자 또박또박 소린에게 편지를 쓰겠지.

안녕하세요로 시작한 편지는 그동안의 감사함과 자기는 잘 있다, 그리고 소소한 빌보의 일상들이 적힘.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로 마무리 한 빌보는 편지를 잘 싸서 간달프에게 전해줌.

그리고 간달프를 통해 편지를 받은 소린은 감동하겠지. 아직 글을 다 배우지 못 했는지 삐뚤삐뚤하고 오타도 많이 난 편지지만 아이가 열심히 썼다는 티가 팍팍 나는 편지니까ㅇㅇ 빌보가 양피지에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을 거친 손으로 쓸어보던 소린은 옆에서 흐뭇한 얼굴로 웃고 있는 간달프를 발견하고는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편지를 화려하게 치장된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둠.

그 뒤로 간달프는 빌보에게 들렸다 올 때 마다 편지를 가지고 소린을 찾아옴. 빌보가 쓴 편지속의 내용과 점점 좋아지는 글쓰기에 소린은 성장해가는걸 느끼겠지. 그리고, 편지 속의 사랑스럽고 마치 민들레 홀씨마냥 보드라운 빌보에게 점점 빠져드는거임. 그런데 정작 소린 본인은 그 마음을 부성애라고 생각하고 있음.

그렇게 세월이 흘러흘러 빌보가 보낸 편지가 어느세 소린의 상자 안을 가득 채우게 되었을 때, 간달프가 이제 삼년 뒤면 빌보의 성인식이라는 말을 함.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빌보가 성인식을 할 정도로 크다니.. 하고 소린은 가만히 편지가 든 상자를 바라봄.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소린에게 간달프가 빌보도 성인이니 이제 혼인을 해야지 하는 말을 툭 던지는데, 소린이 그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는거임.

한번도 빌보의 혼인에 대해 생각해 본적 없는 소린이고 아직 마냥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애기인데 혼인이라니?! 거기다 간달프가 성인이 되면 자네의 후원도 끝이구만 하고 직격타를 날림.

간달프가 떠난 후, 소린은 이 찜찜하고 불쾌한 감정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다가 빌보를 직접 만나보자고 결심을 함. 샤이어에 갈 채비를 끝낸 소린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허가를 받고 적은 수의 전사들만을 이끌로 샤이어로 향함.


샤이어의 야트막한 언덕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만난 소린은 같이 온 전사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홀로 샤이어로 향함. 물론 중간에 길을 잃긴 했지만 주변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주변 호빗들에게 물어물어 빌보의 집을 찾아냄.

동그란 문 앞에 서서 잠시 복장을 다듬은 소린이 쿵쿵 하고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소린보다 한참 작은 자그만 호빗이 튀어나옴. 자기보다 훨씬 큰 소린을 올려다보면서 누구시냐고 물어보는 빌보에게 자기는 에레보르에서 소린의 대리로 왔다고 소개한 소린은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고 하는 빌보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감.

조그맣지만 아늑한 집 안을 둘러보는 소린은 어릴때 부터 혼자 살아서 집안일을 잘 하는군 하고 생각하며 빌보가 이끄는대로 의자에 앉아 눈 깜짝할 사이 빌보가 내온 차를 마시며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빌보를 찬찬히 바라봄.

실제로 빌보, 아니 호빗을 처음 본 소린은 정말 간달프 말처럼 뾰족한 귀와 몸집에 비해 큰 발, 그리고 뽀송뽀송한 얼굴을 보고 속으로 감탄을 함. 전체적인 호빗의 특징을 살펴본 소린은 찬찬히 빌보를 살펴보는데 아직 어린 티가 나긴 하지만 슬슬 청년의 모습이 다 되어가는 빌보를 애잔하게 바라봄.

찬잔에서 아끼는 쿠키를 하나 가득 꺼내 온 빌보가 소린 반대편에 앉으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소린에 대해서 물어보자 소린은 자칫 마시던 차를 뿜을뻔했음. 쿨럭쿨럭 거리며 기침을 한 소린이 빌보를 바라보면서 왜 그런게 궁금하냐고 물어보자 빌보가 베시시 웃으면서 사실 자기는 편지를 꽤 많이 보냈는데 한번도 답장이 온 적이 없다고 하면서 간달프도 알려 준 적이 없다고, 궁금하다고 말함.

자기 자신을 소개하려니 어쩐지 민망한 소린이 헛기침을 하면서 사냥을 좋아하시며 뛰어난 전사라고 대충 얼버무림. 더이상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소린을 보고 빌보가 좀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는 손가락을 꼼질꼼질 거리는데, 소린이 어디 불편한 곳은 없냐고 물어보는거야.

잠시 고민하던 빌보가 그럼 소린에게 비싼 물건은 더이상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달라 부탁함.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소린에게 빌보가 난감한 듯이 웃으면서 항상 비싼 물건들을 보내주시는데, 자기는 이런 물건들과 어울릴 만한 호빗도 아니고 무리하시는게 아닐지 걱정된다고 하는거임.

빌보가 에레보르에 쌓인 황금을 본다면 그런 생각을 못 하겠지만 선량하고 욕심없는 호빗 입장에서는 이건 너무 과분한 선물인거지. 알았다 대답한 소린은 천천히 전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면서 계속 빌보 생각을 함.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착하게 자랐다는 생각을 하면서 빌보가 굉장히 사랑스럽다고 생각을 함.

그렇게 돌아간 소린에게 빌보의 편지가 찾아오는데, 거기에는 집에 왔던 드워프 전사님이 굉장히 멋있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주절주절 써져 있었지. 자동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추스러며 소린은 항상 보내던 비싼 물건들 대신 자기가 직접 만든 소박한 물건들을 보내줌. 하지만 소박도 소린 기준이지. 빌보가 보기에는 재료 단가만 낮아졌을 뿐, 인건비는 더 들어갈 것 같은게 오는거야. 설마 소린이 직접 만들거라는 생각은 못 한 빌보가 작게 한숨을 쉬면서 소린이 전에 보내준 물건들과 같이 조심스럽게 보관함.

그리고, 결국 빌보의 성인식이 다가오고 하필 그 때 소린은 다른 드워프 왕국에 사절로 가게 되어 빌보의 성인식에 참석을 못 하겠지.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온 소린 앞으로 빌보의 편지가 와 있음. 여지것 돌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과 소린의 앞날을 축복한다는 내용과 함께 소린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음.

꼭 이제 더이상 연락하지 않을 것 같은 빌보의 편지에 소린은 가슴을 검으로 관통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빌보의 편지가 구겨지도록 꽉 움켜쥠.

빌보가 성인이 되었으니 처음 약조대로 이제 빌보는 소린에게서 독립됨. 아직 욕심많은 친척들이 있긴 하지만 어른이 된 빌보는 자기 것을 지킬줄 알게 됨. 햇살 좋은 날 집 앞에 나가 담배를 뻐끔거리는것이 취미가 된 빌보는 눈을 감고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자길 지켜준 소린에 대해 생각함. 그런데 소린에 대해 떠올렸는데 갑자기 저번에 찾아왔던 드워프가 뿅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거임.

갑자기 떠오른 얼굴에 빌보가 눈을 번쩍 뜨고는 고개를 도리도리하면서 왜 갑자기 그 드워프가 생각날까 하고 잠깐 생각을 한 빌보는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드워프라서 그런거 같다 하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배연기를 하늘을 향해 내뱉음.

그리고 몇 년이 지나가는 동안 빌보는 수 많은 동네 호빗처자들에게 구혼을 받음. 집안도 좋겠다, 재산도 많겠다, 거기다 어린시절 빌보가 드워프 왕자에게 후원을 받은건 이미 샤이어 호빗들 사이에서는 전설이나 다름이 없음. 이보다 더 조건이 좋은 호빗이 어디 있겠어. 볼을 발그랗게 붉히고 고백하는 호빗 아가씨들에게 빌보는 항상 자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거절을 함.

울먹울먹거리며 등을 돌리고 뛰어가는 아가씨 모습을 보며 빌보는 샤이어의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쉼. 자기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느낌에 연애도 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보고, 놀기도 실컷 해 봤지만 마음이 채워지지가 않음. 뒷 머리를 긁적거린 빌보가 터벌터벌 집으로 가는데, 집 앞이 뭔가 시끌시끌한거야.

설마 혹시 친척들이 몰려온건가 하고 허둥지둥 달려간 빌보는 호빗이 아닌 털이 부숭부숭한 드워프들이 집 앞에 장사진을 친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뒷 걸음질을 침. 그런데 그런 한 드워프가 발견하고는 드워프말로 뭐라뭐라 외치자 모든 드워프들이 다 빌보를 쫙 바라보는거야.

거친 전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빌보가 등 뒤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눈만 도르르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드워프들의 가운데가 쫙 갈라지더니 예전에 찾아왔던 그 드워프가 나타남.

저번에 봤던 그 드워프가 나타나자 빌보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는 어어 하는데, 갑자기 소린이 빌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거야. 깜짝 놀란 빌보가 이러지 마시라고, 일어나시라고 막 일으켜 세우려는데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 소린이 안에서 작은 반지를 꺼내서는 빌보 한쪽 손을 잡고 스라인의 아들 소린이 붕고 배긴스의 아들 빌보 배긴스에게 청혼을 한다고 하는거야.

깜짝 놀란 비롭가 어버버 거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동안 몰랐던 마음을 최근에서야 깨닳았다면서, 비록 한번밖에 만나본 적 없지만 그대에 대해서라면 그대의 부모님 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기의 청혼을 받아 달라고 말함.

한참을 소린과 반지를 바라보던 빌보가 반지가 들린 소린의 손을 꼭 잡자 환하게 웃으면서 벌떡 일어난 소린이 빌보를 품에 꽉 안아버림. 이러다 갈비뼈가 바스러질것 같은 느낌이 빌보가 소린의 등을 주먹으로 콩콩콩 치자 앗차 하고는 소린이 빌보를 놓아줌. 품 안에 안겨있는 동안 숨을 못 쉰 빌보가 발갛게 변한 얼굴로 숨을 고르더니 소린을 바라보면서 그럼 이제 누가 신부가 되는거죠 하고 물어봄.

그래도 남자라고 당돌하게 물어보는 빌보를 내려다보며 소린이 누가 신부고 누가 신랑이면 어떠냐고, 함께인게 중요한거라 하면서 그 길로 빌보와 함께 에레보르로 가 정식으로 약혼식을 올린 다음, 여기다가 엠프렉을 끼얹어서 빌보가 속도위반으로 임신하고 서둘러 결혼식까지 올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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