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토니입니다.

- 트위터의 토니 스타크 봇 (@Iron_for_boy) 분의 이야기를 보다가.



*



 너는 알까? 너를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더워진다는 걸.



 “뭐 해?”

 “그냥.”



 뭐야, 재미없네. 툭 던지는 말끝이 뾰족했지만 그저 좋았다. 아래로 살짝 내리깔리는 속눈썹을 바라보며 피터는 많은 말을 삼켰다. 기다란 속눈썹이 눈꺼풀의 움직임을 따라 팔랑거리는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걸 입 밖으로 낸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웃겠지만, 정말 그런걸.

 피터는 문득 저 속눈썹을 모두 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랗게 뻗어서, 위로 둥글게 휘어진 채로, 아래도 전부 촘촘하게 채워진... 그 사이마다 입 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토니가 알았더라면 분명히 너 정말 이상하다, 조금 징그러워, 따위의 말을 해댔겠지만 그게 뭐가 대수랴. 한 두 번 들었던 말도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피터.”

 “응?”

 “내가 그렇게 좋아?”



 슬쩍 시선을 맞춰오며 묻는 목소리에 짓궂음이 가득하다. 분명 다 알면서 물어보는 거다. 일부러 고개도 살짝 기울이고, 눈매도 한껏 휘어내는 모습에 추측이 확신으로 변했다. 피터는 입술을 가볍게 감쳐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면서도 매번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응, 하고 작은 목소리를 덧붙이자 꽤나 만족스러운지, 하하 웃는 웃음소리가 딸려왔다. 웃음소리를 따라 방싯 올라가는 입 꼬리며 봉긋하게 솟는 볼이 퍽이나 귀엽다. 툭 건드리면 또르르 굴러갈 만큼 가벼운 웃음소리를 따라 들썩이는 어깨.

 또다시 팔랑이는 속눈썹에 피터는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꼭 그 사이로 별가루가 툭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반짝반짝.



 “어떻게 하니, 피터 파커. 넌 정말 밀당은 죽어도 못하겠다.”



 그런 거 안 해도 되는데. 피터는 보기 좋게 호를 그리는 입매를 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미는 방법도 모르고, 몰라도 괜찮아. 네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좋아.



 “가끔은 너무 좋아도 좀 덜 좋은 척 할 줄 알아야지. 바보구나.”



 득의양양하게 덧붙이는 말에 피터는 달싹이던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가 매번 수많은 말들을 삼키는 걸 모르니까 저렇게 말하는 걸 테다.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내놓는다면, 떠오를 때마다 한마디도 남김없이 내보여준다면 너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할지.



 “그럼 너는, 가끔 덜 좋은 척 해?”

 “음.”



 갸웃거리는 고개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렸다. 결 좋은 고수머리 사이로 옅은 빛이 새었다.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새는 것처럼. 별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가끔은?”

 “왜?”

 “일관적인 게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 변화가 없다가는 질릴 수도 있다고?”



 검지를 세우며 고개를 가볍게 까딱인다. 뒤로 또 웃음이 따라붙는다. 하하, 하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웃음소리가 꼬리도 보이지 않을 때면 그제야 입술을 꼭 모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박수도 한 번 치고, 고개도 흔들고. 그러고 나서야 다시 책상 위로 몸을 기울여 턱을 괴는 모양새까지. 어쩜 저렇게 빠짐없이 영화 속 주인공 같을까?



 “물론 내가 질릴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 저런 놀라운 자신감까지 포함해서 전부 다. 피터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토니의 입매를 뜯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의도야 어쨌든 진담에 좀 더 가까운 말일 테다. 실제로도 그렇다. 누가 토니 스타크를 질려 할 수 있겠어? 당장 자신만 해도 그럴 일은 추호가 없을 텐데. 두 사람이 데면데면하게 말 한마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시간이 수년인데도 수년 동안의 토니는 매번 새로웠다. 놀랍게도 가까운 사이가 된 지금은 더욱 그렇고.

 토니 스타크는 새롭고, 또 어렵고... 그렇기에 더 파고들고 싶은, 미지와 가장 가까이 맞붙어있는 사람이니까. 미지의 존재에 질리려면 수십 년은 족히 파고들어야 할 테다. 아니, 평생 연구하고 탐구해도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 피터는 여전히 끝무리에 웃음을 걸고 있는 토니를 보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손잡아도 괜찮아?”

 “너 정말 뜬금없네.”

 “...안 돼?”

 “안 된다고는 안했어.”



 그리고 미지란 완전히 새로운 명제라는 의미에도 부합한다. 어렵다. 매번이 새로운 패턴이다. 방금 전 까지 웃음기가 진하게 남아있던 얼굴에 금방 새침한 기색이 가득하고, 그러면서도 바람대로 손은 내밀어준다. 마치 손등에 입 맞추길 기다리는 사교파티의 아가씨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생각보다 손이 크네.”

 “...넌 생각보다 작네.”

 “안 작아. 네가 큰 거지.”



 그런가. 네가 작은 것 같은데. 피터는 제 손안에 얌전히 자리한 손을 보며 말을 삼켰다. 전체적으로 하얗지만 군데군데 자리한 흉터와 굳은살이 박힌 손. 그래도 따뜻하고, 손바닥은 말랑말랑하고...

 조심스레 쥐어보자 손 안에 딱 감싸이는 크기가 만족스러웠다. 좀 더 힘주어 잡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랬다간 토니의 손이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약하지 않지만, 약한 손이었다.

 손등 위로 자잘한 흉터가 가득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미하게 눈길도 잡아끌기 어려울 테지만 피터에게는 선명하게 보였다. 천재, 토니 스타크.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제는 당연했지만 그 역시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는 확연한 증거다. 피터는 훈장과도 같은 흉터를 매만졌다. 감각이 집중된 손끝을 따라 느껴지는 감촉.



 “뭐 하는 거야?”

 “그냥.”

 “또 그냥?”



 네가 좋아서, 하는 대답 대신 손등 위로 입술을 눌렀다. 부러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오랫동안, 깊게. 아무도 없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너, 너,”



 그렇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잡힌 손이 파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깨가 가볍게 튀어 오르는 것도 보였다. 그렇잖아도 둥근 눈이 더욱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것도.



 “지금 뭐하는 거야? 누가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속삭임에 가까운 다그침은 그다지 무섭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피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까지 짓궂게 굴던 사람은 어디로 갔냐는 듯 온 얼굴에 당황이 가득했다. 원래도 큰 눈동자가 더 커질 수도 있구나. 피터는 한껏 부푼 눈동자를 바라보다 눈가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눈 아래를 가볍게 쓸어내리자 손끝에 온통 속눈썹이 닿았다.



 “괜찮아.”



 토니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걸 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파이더 센스가 영 조용한 걸 보니 오랫동안 이곳은 두 사람만이 있을 테다. 그렇지만 피터는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저를 향해 입을 벙긋거리는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다시 손등 위로 입을 맞추었다. 좀 전보다 얕고, 가볍게.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모아 쥐고, 흉터 하나하나마다 천천히 입을 맞추자 작게 물기어린 소리가 울렸다. 쪽, 쪽. 일부러 들릴 만큼 내는 소리에 토니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무도 안 와.”



 손등이며 손바닥에 가득한 상처 하나하나에 전부 입 맞추고 나서야 확답을 돌려주었다. 아래로 푹 숙여진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면 역시나 비슷한 상태겠지.



 “너...”

 “응?”

 “내가 그렇게 좋아...?”



 온통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면서, 더듬더듬 끊어져 나오는 목소리로 겨우 뱉어내는 말에 피터는 입가로 짧은 웃음을 흘렸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소리로 말하든 내용만큼은 언제나 토니 스타크다웠다. 매번 새로운 사람. 평생을 바쳐 탐구해도 질릴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명제.



 “당연하지.”



 피터는 끈적해진 손을 잠시 풀어내어 다시 제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어내었다. 움찔대면서도 얌전히 따라오는 손길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괜찮아, 여긴 우리뿐이야. 손톱에 입 맞추며 속삭이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확실해?”



 고개를 끄덕이며 비어있는 손마저 맞잡았다. 흉터며 굳은살이 가득한, 저보다 조금 작은 손.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천재의 손. 힘을 주면 금방 부서져버릴, 얼굴이 온통 붉어졌음에도 제게 얌전히 붙들려 있는, 토니 스타크의.

 한참 턱 아래쪽을 방황하던 시선이 느릿하게 위로 올라왔다. 턱을 타고, 뺨 부근을 한 바퀴 크게 돈다 싶더니 천천히 눈동자를 마주하는 시선. 어느 새 조금 젖어있는 속눈썹이 느릿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아, 저 위로 입 맞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저 뿐만 아니라...



 “키스해도 괜찮아?”

 “...괜찮아.”



 조용한 곳이었다. 옅은 먼지 냄새가 나고, 빛이 조금 드는 곳. 한동안 두 사람만 있을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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