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병 : 짝사랑으로 인하여 상대의 눈과 같은 색의 꽃을 토하게 되는 병.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상대를 잊는 것만이 병의 치료제이며, 꽃을 만지면 전염된다.






숨이 턱하고 막히며 익숙한 답답함이 치밀었다. 또. 작게 콜록거리자 입술 사이로 붉은 꽃잎이 비쳤다. 질린 얼굴로 꽃잎을 쓸어 바닥에 떨어뜨리고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버렸다. 이러는 것도 벌써 며칠짼지. 언제쯤 나아지려는 거야?

이게 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있을까, 당장 학교에서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꽃을 토하는 것만 봤나? 다른 사람이 뱉은 꽃의 색깔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추리하는 건 아이들 사이의 단골 소재였고, 서로 꽃을 토하며 고백하고 이어지는 웃긴 장면도 있었다. 꽃을 뱉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꽃의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다만 문제는……, 내 주변에서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이 몇 안 된다는 건데. 심지어 꽃이 나오려는 상황마다 옆에 있던, 혹은 생각하던 사람은 한 명뿐이고.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있던 시아가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침대를 팡팡 두드리기 시작했다. 좋아한다고? 내가? 차은혜를? 언제부터? 아니, 이건 꽃을 토하기 시작했을 때부터겠지. 처음 꽃을 토한 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생각들을 다시 반복하며 현실을 부정하던 시아가 이내 힘을 빼며 축 늘어졌다.

다행히 아직은 학교에서 꽃을 토한 적이 없지만 날이 갈수록 참기 힘들어졌다. 은혜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은혜가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두르고 넌 내 거라는 둥 장난을 칠 때마다 속에서 울컥하며 꽃이 올라왔다. 그럴 거면 확실히 알 수 있게 심장도 같이 뛰든가. 두근거리거나 설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널 좋아하는지 난 모르겠는데 이렇게 꽃만 가득하면 어떡해. 시아는 억울하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되겠지. 잠이나 자자.








망했다. 하얗게 질린 시아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괜찮았잖아.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토한 적이 없었는데, 왜 하필 지금! 바닥에 흩어진 붉은 꽃잎들과 수군거리는 반 아이들의 눈이, 특히 놀란 기색을 비치는 은혜의 눈이 시아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절대 들키지 않으려 했는데, 볼 뽀뽀는, 뽀뽀는……!


"야… 민시아. 뭐냐, 이거? 너 누구 좋아해?"


은혜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귓가에 울렸다. 어이없다는 말투. 누구 좋아하냐니, 딱 봐도 너잖아. 색깔도, 꽃을 토한 시점도.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웃기니까. 재밌어 보이니까. 시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이 와중에도 비집고 나오려는 장미를 억지로 삼켰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고백이라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고. 결국 입이 열리고 나온 말은 수습은커녕 악화만 시킬 것 같은 말이었다.


"너 아니야."

"……뭐?"

"너 아니니까 착각하지도 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라고."

"그럼 누군데? 혁이? 단산아? 아니면 제하? 근데 왜 지금 꽃이 나와?"


은혜가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뱉어버린 말을 되돌릴 수도, 애초에 고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시아는 표정을 굳히며 은혜의 눈을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정말 너를 좋아하는 게 맞다고 해도. 그 감정을 자각한다고 해도 어차피 너는 나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야.


"누구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차은혜. 나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 행동이 너를 좋아하는 사람 같아? 아니잖아.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무언가가 가슴 언저리를 찌르는 듯했다. 이상하게 욱신거리는 것을 무시하며 잠시 바닥을 향했던 시선을 올려 다시 은혜와 마주하자 시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은혜의 눈을 읽을 수가 없었으니까. 분노? 실망? 아니면 원망?

혼란스러운 감정에 멀거니 바라보자 은혜가 휙 고개를 돌리고 멀어졌다. 주변 학생들이 시아에게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표정에 흠칫거리며 길을 피했고, 자신도 모르게 멀어지는 은혜를 붙잡으려 한 시아는 제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내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은혜가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시아는 치미는 토기를 다시금 죽이며 아직도 바닥에 흩어져 있는 붉은 잔재들을 바라보았다. 짙은 장미 향이 지긋지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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