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2019년 11월 10일 > https://twitter.com/fived5d5/status/1193497005609254912?s=20 

달동안 쓰자고 만 생각했던걸 일단 하자....자리깝니다. 집주인 유중혁X지박령 김독자 




서울에 위치한 낡은 저층 ■아파트의 ■■동 ■호. 넓지 않은 이 집은 예상보다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김독자는 그 가운데 가만히 서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원래부터 김독자는 여기에 있었고, 앞으로도 여기에 있을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김독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들이 반짝이며 별처럼 빛났다가 떨어졌다. 

꺄우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 것은 순간이었다. 그것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반짝이로 만든 별 모형들이 달린 모빌이 있었다. 아기 침대를 장식하는 모빌. 칭얼거리는 조그만 소리가 다시 들려와 김독자는 그 아기침대 옆에 다가갔다. 조금 높은 탓에 까치발을 들어서야 그 안을 바라볼수 있었다. 

"아기다." 

모빌 아래에 놓여진 아기침대에는 작은 아이가 눈믈 말똥히 뜨고있었다. 눈을 끔벅이며 모빌을 향해 솟아오른 작은 손이 신기했다. 김독자는 그 아이가 모빌이 빙글빙글 돌며 반짝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김독자는 조심히 다가가 모빌을 톡 쳐줬다. 빙글빙글 돌며 햇빛을 반사한 빛들이 퍼져나갔다. 아이가 꺄우꺄우 거리며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기뻐했다. 그것이 못내 즐거워 김독자는 몇번이고 더 그것을 해주었다. 얼마나 집중해서 했는지 김독자는 그 방안에 아기 외에 다른 사람이 있고, 이 방으로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꺄악!!" 

그리고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아기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씨근덕 거리다. 이내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에 비명을 지른 여성은 후다달 달려와 아이을 안고는 집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열림 문틈사이로 빛이 보였다가 닫혔다.  

내가 또 잘못했음을 김독자는 한번에 알았다. 

김독자는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그날 저녁그녀는 자신의 남편처럼 보이는 이의 손을 꼭 붙잡고 느즈막히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일부러 보란듯이 집안을 이리저리 쿵쾅이며 걸어다녔다. 그것이 무서워 김독자는 가만히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구석에 있으면 세상은 부옇게 떠올라서 자신에게 멀어지고는 했으니까.  김독자는  아주 늦은 밤이나 조용한 낮에만 움직였다. 그 시간이 비교적 조용했기 때문었다. 자신은 움직이면 항상 잘못을 했음으로 되도록 눈에 안 띄게 있어야 했다.

사실 김독자는 이 가족이 싫지 않았다. 아기의 주변에는 반짝이는 물건들이 가득했고ㅡ 아이의 볼은 복숭아처럼 밝게 물들어 김독자를 볼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그 반작임이 부러웠을지도 몰랐다. 이 가족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김독자는 몇번이고 나타나서 그 부러운 반짝임을 건들여 보던것은.... 

그리고 그것은 역시 들통 난 모양이었다. 

마냥 평온하던 남편과 아내분의 다툼이 잦아졌다. 그럴때마다 김독자는 머리가 아파와 눈과 귀를 막고 그림자에 숨었다. 그들의 언성은 나날이 올라갔으며 그것이 며칠간 이어지더니 곧 해결이 된것 마냥 똑 끊겼다. 그러더니 곧 집안이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그것이 헤어짐의 전조임을 알았다. 

마지막, 아기가 떠나는 날에도 부부는 아기를 안고 뒤돌아 보는 법이 없었다. 다만 아기만은 제 집안으로 가누지 못한 고개를 돌렸다. 안녕. 김독자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비어진 집에 김독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서울의  ■아파트는 낡은 연식에 비해서는 집의 가격이나 위치, 학군이 나쁘지 않아 신혼부부나 새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동 ■호 그 집에 최근 들어 사는 사람이 없었다. 예쁘게 그 집을 잘 꾸미고 살던 신혼부부가 떠나간 뒤로, 주변보다 싼 집가격에 혹해 사람들이 구매를 원한다며 찾아오길 반복했지만 짧게 살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집을 싼가격에 내놓고 도망치기 일수였다. 

그 사람들 모두 집을 팔기 위해 쉬쉬했지만 줄줄이 집주인이 사라지니 소문이 안날수가 없었다. '귀신들린 집'. 그 별칭이 붙으며 다들 잊고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섬뜩했던 그날의 사건과 나타난다는 소년유령의 소문이 더해지니 집을 사려는 사람은 쉬이 나타나질 않았다.

 ─그렇게 ■■동 ■호 비어있는 채로 시간이 흘렀다.


 * 


김독자는 멍하니 부유하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숨을 죽이면 김독자는 부유하며 다닐수 있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다 지내고 있었다.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숨쉬는것만큼 쉬운 일이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떠다니는 먼지들만이 가끔 김독자를 통과하며 지나갔다. 그 먼지와 자신이 별로 다를 게 없다고 김독자는 멍한 정신으로 생각하곤 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이리저리 지나갔다. 김독자는 그러다 문득 처음들어보는 것 같은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새로 배달원이라도 온것인가 싶었는데 일정한 소리로 걷던 그 발소리는 문 앞에 멈췄다. 그리고 그 옆에서 누군가가 쫑알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집이 참 싸게 나오긴 했어요."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 예전에 봤을때도 이집을 팔러 왔던 중개사분이었다. 최근 꽤 오래 안왔던거 같은데 뭐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으니 김독자는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었다. 오랜만이라고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기에 김독자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삐비빅. 

익숙하게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들어가 보겠습니다." 

딱 한마디만 뱉었을 뿐인데도 거대한 벽이 느껴지게 만드는 딱딱한 말투였다. 하지만 놀랍도록 듣기 좋은 낮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김독자는 그 목소리에 묘하게 호기심이 돌아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다. 

만류하려는 중개인에게 됐다고 거절하고는 남자는 뒤로 문을 닫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묵직한 워커의 밑창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는 깨끗이 비워진 집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와 미친 잘생겼다.' 

김독자가 그 그림자 속에 슬쩍  몸을 숨기며 그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자신이 숨은 이 그림자보다 더욱 검은 것 같은 구불진 머리카락에 짙은 눈섭과 얼굴선 그 안에 높은 콧대와 깊고 시원한 눈매가 자리하고 있었다. 훔쳐보던 티비의 어떤 연예인들보다도 잘생긴 얼굴에 김독자는 신기함을 느꼈다. 괜히 튀어나가서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러다 남겨지는 것은 언제가 김독자이기에 다시 입술을 꾹 앙다물고 몸을 둥글게 말아 안보이게 숨으려고 했다. 아마 몇시간이면 또 금방 떠나갈 사람이겠지. 그렇게 등을 남자에게 향하려고 빙글 돌았을 때였다.

 "─김독자." 

응? 김독자는 저를 부르는 소리가 눈을 끔벅였다. 

뭐, 뭐야 저사람 지금 내 이름 부른거야? 김독자는 놀라서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끔벅거렸다.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몇번이고 더 '김독자'하고 말했다. 아니, 자신을 불렀다. 심장이 있을거 같진 않지만 심장이 콩콩 뛰는 듯한 느낌이 나서 김독자는 괜시리 가슴을 꼬옥 쥐었다. 

나를 알다니 저 사람도 귀신같은게 아닐까? 싶어졌다. 위아래로 검은 것도 꼭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김독자는 그 부름에 답해주고 싶다가도 괜히 망설였다.  

"─여기..없는건가?" 

한없이 무뚝뚝한 말투의 끝이 조금 흔들렸다.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김독자는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림자에서 나와 그 앞에 섰다. 물론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였다. 그냥 그의 표정이 궁금했다. 잔뜩 찌푸려진 눈썹과 하얗게 될 정도로 말아 문 입술. 어쩐지 고통스럽고 아파보이고 김독자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다만, 너무 익숙하기도 해서 자신마저 너무 아파지는 표정이었다. 욱씬거리며 없는 심장이 다시 아파오는거 같아 김독자는 얼굴을 살풋 구겼다. 왜 아픈건 이 사람인거 같은데 나도 아프냐? 정말 뭔가 있나?

 "김독자."

 그 사람은 다시 조용히 김독자를 불렀다. 김독자는 잠시 고민하듯 눈을 굴리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러니저러니해서 이 사람이 떠나가도 이전과 똑같을 뿐이니까. 누군가가 부르는 외침이 공허하게 끝나기만 하는건 너무 아픈일이었다. 김독자가 많이 겪은 일이기도 하고.

"날 불렀어요?" 

김독자는 천천히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고 바닥을 딛고 섰다. 오랜만에 세상을 똑바로 접하는 느낌이 신기했다. 괴리감 있지만 발바닥에 바닥이 닿는 느낌도 오랜만이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김독자는 고개를 들어 자신보다 한참 높은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 사람은 김독자와 눈이 마주하자 눈을 크게 뜨고는 숨을 멈췄다. 

김독자는 그 반응에 남들처럼 그가 놀라거나, 무서워 하거나...  아님 조금 기뻐할 줄 알았다. 그 사람은 대신에 김독자를 보고는 얼굴을 제 손으로 가렸다. 그 손이 얼마나 큰지 한 손에 그의 얼굴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크게 휘청이더니, 털썩하고 그의 무릎이 앞으로 꺽였다. 그 큰 움직임에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놀라  흠칫하며 몸을 뒤로 한발짝 움직였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얼굴을 덮은채 잠시 숨을 골랐다. 커다란 등이 크게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등의 움직임이 좀 작아졋을때, 그제야 그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김독자의 눈 높이가 비슷해져 바로 앞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얼굴은 더 잘생겼고 그리고.. 젖어있었다. 

처음 본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불렀고, 답해주니, 울었다. 



하얀 쌀밥, 뜨끈한 된장국, 계란프라이에 나물 반찬. 

가족들이 지내다 보면 간단하게 밥상차림일지도 몰랐다. 김독자는 언제나 따뜻함이 가득 차있는 그 밥상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쌀알도 반짝반짝하고 올라오는 김은 빛나는 실크천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사실 자신에게 준다고 해도 먹을 수 없을테지만. 

“먹어라.” 

그런 그림 같은 밥상이 제 앞으로 내밀어졌을 때 김독자는 쉬이 적응하지 못해 눈을 굴렸다. 자신의 몫이라며 내려놓은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과 따끈한 국물에 눈이 멀어 어..어어.. 하고 대답하면서 그가 미리 빼놓은 의자자리에 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익숙하게 자리에 반대편 자리에 앉아서 수저를 들었다. 자신의 밥상도 그리고 누가 반대편에 앉아서 식사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익숙하지 못한 김독자는 그대로 자신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말할 타이밍을 잊어버렸다. 

귀신 밥이라고 나름 밥 위에 수저도 꽂아주었는데 솔직히 김독자는 이걸로 밥을 배가 고픈 것은 아니라 수저 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양기를 먹는다? 그런것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냥 기분이 좋아서 밥 대신 김독자는 제 앞의 풍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일단 뭐든 좋았다. 


 * 


그 남자의 이름은 유중혁이라고 그랬다.  유중혁은 분명 첫 날 김독자의 앞에서 울었는데(김독자는 제가 무슨 잘못을 한건지 몰라 마냥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숨을 한번 고르고 벌떡 일어난 얼굴은 울었다는게 거짓말인 듯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가가 살짝 붉어진 것외에는

그에게서 격한 감정이 나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것 같은 목석같은 얼굴이었다. ‘어디가지 말고, 기다려라.’ 유중혁은 그렇게 말해놓고는 쌩하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어디를 나갈수도 나갈생각도 없는 김독자는 속으로 자기가 나가면서 뭐래라는 삐쭉한 생각을 했다. 

이대로 남자가 사라질 가능성을 지워두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집안에 들이닥쳤다. 김독자 기억에 아무리 급하게 집을 사도 이사하고 뭐하고 하다 보면 며칠있다가 돌아오던데, 유중혁은 그런 것도 없었다. 기사들이 들이닥치고 그 뒤로 유중혁이 따라들어오는 것을 그림자속에서 보며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곧 시끄러워지는 집안 소음에 머리가  그림자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낮 동안 집에는 몇 번이고 용달 트럭이 왔다갔다 하며 짐을 옮겼다. 유중혁은 다른 사람들의 비해 짐도 적었다. 무채색 일색이고, 딱 필요한 것만 있었다. 그 흔한 티비도 없다니 말을 다했다. 참 그 답기도 했다.

그래도 뭐, 그래도 아예 빈 것보다는 제법 채워진 집안은 그래도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온기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유중혁은 그렇게 채워넣은 집안에서 자신 혼자만이 남고 밤이 되자 가만히 거실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김독자. 

김독자. 

낯선 어른들이 왔다갔는 동안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림자 속에 있던 김독자는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비척이며 슬쩍 눈을 떴다. 나갈까말까 고민하던 차에, 유중혁은 김독자. 하며 독촉했다. 역시 난 저 목소리에 좀 약한가봐. 

김독자는 새삼 깨달은 제 취향을 머릿속에 입력하며 유중혁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짝 제 존재에 인식하고 자신을 집중하며 내려서자 그제야 허공을 멤돌던 유중혁의 눈이 원하던것을 찾아 초점을 맞췄다.

 “김독자.”

 “진짜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에요?” 

“내 이름은 유중혁이다." 

제 질문의 답은 그게 아니었지만, 치고들어온 말에 김독자는 순간 그 이름이 상대와 너무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음, 아니 근데 이게 아닌데. 자기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너도 이름으로 불러라. 이왕이면 중혁이가 좋겠군." 

"네?" 

한 없이 과묵해 보이는 인상의 유중혁은 김독자의 어안이 벙벙한 이야기들을 계속 내뱉었다. 김독자가 쉬이 대답하지 못해 어버버하고 있는 순간 그는 시계를 슬쩍보더니 혀를 찼다. 

"저녁이 늦었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 

끔벅끔벅. 김독자의 눈이 몇 번이고 눈꺼풀 사이로 들어갔다 사라졌다. 

“없다면 알아서 차리겠다. 얼른 말해라 있나?” 

"아니 저기...." 

하나. 둘. 셋. 없군. 나갔다 금방 돌아오겠다. 어디 가지 말고 있어라. 삼 초. 유중혁은 딱 그 정도 시간만큼 김독자에게 양보하더니 몸을 돌려서 쌩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뻐끔 김독자의 입이 작게 벌렸다가 다물어졌다.

물어봐야할 질문이 그대로 닫히는 문 사이로 들어온 찬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다.  



김독자는 괜시리 제 앞에 놓여진 수저 끝을 톡톡 쳐보다가 은근히 제 행동을 바라보는 유중혁과 눈을 슬쩍 맞춰보고는 아닌척 눈을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흩어진 질문들을 다시 주울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02.


아무도 없이 버려졌던 집에 누군가가 살기 시작한지 3개월이 채워져 가고 있었다. 김독자는 그동안 이 집에 들어온 사준 혁이에(이 호칭은 영 아닌거 같지만 불러주니 좋아해서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 ) 대해 자세히 관찰했다. 

유중혁은 김독자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생활패턴에서 차이가 있었다.  남들은 아침마다 출근을 한다는데 유중혁은 일을 집안에서만 했다. 게임 방송이랬나? 근데 그것도 일처럼 열심히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돈이 많은 건 제법 신기했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밖에 나가서 운동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지 집에 있는 방중 하나를 운동장처럼 꾸며놓았다. 그 돈으로 차라리 헬스장을 가는 게 낫지 않냐 그랬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놓고서는 식재료는 꼭 밖으론 나가서 장을 사 왔다. 인터넷 주문은 믿을게 못 된다나? 그렇게 정성들여 골라온 재료의 반은 꼭 버려졌다. 

“중혁아 나 이거 못 먹는다니까?” 

김독자는 제 앞에 오늘도 차려진 하얀 쌀밥 위에  수저를 톡 건들이면서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유중혁은 그 며칠을 반복되어온 칭얼거림에 큰 표정변화 없이 콧웃음만 쳤다.

“그래놓고 자리에는 앉지 않았나.” 

“그거야 자리를 빼주니까 앉는거지.”

 “네가 안 앉으면 나도 굳이 차리진 않았겠지. 앉고 싶었던게 아닌가.” 

“내가?” 

“좋아하지 않나. 누군가랑 밥상에 있는 거.” 

“…내가?”

 “그래.”

김독자는 유중혁의 말에 잠잠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그래. 유중혁은 이렇게 김독자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는 했다. 너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참아버리니까. 내가 알아야지. 유중혁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 사이로 깊은 골을 만들었다. 그럼 대게 짜증이 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이후에 슬쩍 보인 표정의 입가에는 작게 호선이, 눈에는 묘한 일렁임이 서렸던 것을 김독자는 보았다. 그게 싫어 하는 것을 보는 건 아닌거 같아서 김독자는 도대체 그 감정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지만 쉬이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니 김독자도 유중혁에 대해 알아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유중혁의 일하는 시간은 저녁이었는데 김독자는 유중혁이 하는 일에 처음에는 흥미를 보이다가 이내 그것을 잃어버렸다. 총을 싸고 적의 위치를 파악해 스킬을 쓰고, 화려한 이펙트가 왔다갔다하는 컴퓨터 화면에서 유중혁이 신통방통하게도 적을 쏙쏙 죽이는 것은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 뿐 김독자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유중혁은 김독자를 위해 언젠가 이북 앱이 깔린 타블렛 하나를 던져주었다. 아 물론 손이 없으니까 대신 하라고 터치펜도 같이 주는 섬세함을 잊지 않았다. 

“뭔데?”

“취향 맞춰 책 몇 권 사놨다. 읽어라.” 

“내가 무슨 어린 애야 책은 무슨….” 

하기에는 너무도 취향에 맞는 책들이었다. 

<sss급 회귀자 구원당하다>, <오징어 대마왕 도깨비 보따리로 꿀빨기> 뭔 제목이 이래?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상상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김독자는 자신의 취향이 이런 웹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에게 이것을 추천해준 유중혁은 이북을 읽는 것도 웹소를 읽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알았나 싶을 정도였다. 자기도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유중혁을 따라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중혁이 너도 귀신이야?”

“무슨 헛소리지?” 

"너 보통 사람이랑 너무 다른거 같아."

이것에 대해 유중혁에게 말하면 그는 픽 하고 웃으며 네가 알고 있는 일반적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냐고 묻겠지만, 김독자는 제가 습득한 지식에 꽤나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그런 말들은 흘려넘겼다. 

뭐 이렇듯 김독자는 유중혁이 귀신처럼 자기에 대해서 어디서든 자신을 관찰하고 있고 그거를 보고서로 써서 남기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냥 신기해 하기엔 중혁은 대다수의 시간을 집에서 김독자와 함께 있었음으로  김독자는 그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버렸다. 



검은색 옷을 좋아하는 유중혁은 평소에도 깔끔한 차림을 좋아하지만 유달리 깔끔한 검은 코트 차림을 정돈했다.

 “또 ‘그 사람’한테 가?” 

“그래. 다녀오겠다.” 

“잘 다녀와.” 

김독자는 가볍게 공중에 둥둥 뜬 상태로 다가와서 무성의하게 손은 흔들었다. 낮 시간 이었지만 유중혁이 들어오면서 눈에 안보이는게 사생활 적으로도 싫으니 얼굴을 보이고 다니라고 해서 김독자는 이제 그림자의 숨는 일이 일주일 중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김독자의 얼굴에 점차 또렷해져서 이제는 그 표정이 다 섬세하게 보이고 있었다. 

유중혁은 자신에게 관심없는 척을 하는 김독자를 보고는 피식 웃고는 구두를 신었다.  

“돌아올 때 선물이라도 사오지.” 

“됐어. 그 사람 소중한 사람이라며.” 

유중혁은 매일 꼬박 1시간에서 2시간씩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왔다. 집에서 나가는 게 장보기와 그 사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김독자의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 사람이랑 좀 오래 놀다 오고. 나도 혼자만의 시간 좀 보내게.” 

철컥. 

유중혁이 손잡이를 돌리자 오래된 쇠지렛대가 큰 소음을 내었다. 열린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유중혁의 얼굴을 덮어 김독자는 순간 유중혁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건…나도 하고 싶군.” 

다녀오겠다. 작은 목소리로 돌아올 인사를 남기고 유중혁의 뒤로 문이 닫혔다. 김독자는 그 문 앞에서 닫혀하는 하얀 빛의 틈을 보면서 눈을 끔벅였다. 왠지 모르게 저 문틈을 벌리고 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은 충동이 살짝 들었다.

욱씬하고 심장이 크게 아파왔다. 거기는 비어있는 공간이라고 인식하던 곳인데 꼭 어느날 한번씩 없는 심장을 누군가가 잠시 올려놓는 것처럼 그곳에 무언가 펄떡이는 감각이 들었다. 작은 물고기의 것과 같은 연약한 펄떡임을 김독자는 죽이려고 노력했다. 

김독자는 그 문 틈의 빛이 끝까지 사라지는 것을 보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이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니까. 김독자는 오랜만에 그림자 속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았다. 


잡덕. 내가 보고싶은걸 연성함. 제 취향이지만 같이 좋아해주신다면 그걸로 좋아요.

오디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