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神狼


02. 화과자


샤오랑 사쿠라







1.

"화과자라고 아십니까?" 

"..."

"녹차랑 같이 먹는 예쁜 과자입니다. 보기에도 얼마나 예쁜데요."

"..."

"저는 나마가시가 제일 좋습니다."

"..."


여동이 며칠째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 모르겠느냐. 화과자라 함은, 본디 신에게 바치는 진과인 것을 아느냐.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를 몇번을 속으로만 삼킨 신은 다시 한 번 못들은 채 했어. 사쿠라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지 두 해 가 훌쩍 지나, 보기보다 씩씩하고 힘든 내색 없이. 분명 또래보다 의젓한 소녀로 커가고 있었어. 물론 잘 우는 건 여전했지만.

험준한 협곡의 반대편에 위치한 작은 마을, 늑대신에게 제를 올릴 때가 됐거든. 신이 인세를 살피러 산 밑으로 내려갈 즈음이 됐음을 귀신같이 알아챈거야. 해동이 언제 이렇게 영악해졌는가, 신의 식기에 밥을 먹어서 그리 된 것인가, 신의 손을 탄 비단으로 옷을 입어서 그리 된 것인가.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신겁니까?"


어느샌가 마루 아래로 쪼르르 내려와 신의 도포자락 끝을 당기는 아이를 무시하지 못한 신은 아이를 안아들었어. 양지질은 잘 하는 것이냐. 나중에 상했을 때는 후회해도 늦었느니라. 어차피 신의 손으로 전해준 음식을 먹고 탈이 날 리 없는데도 인간의 예를 가르쳤어.

듣고 계셨으면서 왜 못들은 채 하십니까. 입이 댓발은 나왔는데 발음은 똑똑하니 흐트러진 데가 없어서 신이 웃었어. 


"화과자 색이 얼마나 고운 줄 아십니까? 세상에 있는 온갖 것의 빛깔을 담고있습니다. 안에 들어간 소는 또 어찌도 그리 달콤한지, 분명 신께서도 좋아하실 거예요." 


다시 좋아하는 과자 이야기를 할 때에는 두 눈이 반짝거리면서 작은 손이 허공을 조물조물, 신까지 좋아하리라는 이야기를 할 쯤에는 얼굴에 환한 웃음만 가득해서 신도 소리내어 웃을 수밖엔 없었어. 


"과자가 그리도 좋느냐?"


예.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은 일시도 지체되지 않았어. 다시한번 웃음 소리를 낸 신을 사쿠라는 의아하게 처다보다가 두 손을 뻗으면, 으레 숙여지는 신의 고개. 전에는 팔을 목을 감는다기 보다는 걸치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끌어 당기는 느낌이 분명해졌어. 아이는 신의 시간에 비해 너무 빠르게 크고 있었지.


"글피면 마을에 장이 서는 마지막 날이니, 너도 같이 가자꾸나." 


나즈막히 이야기하면, 사쿠라는 에, 하고 놀란 소리를 내다가, 이윽고 신이나서 팔다리를 팔랑거리면서 신의 뺨에 제 보드러운 얼굴을 이리저리 부볐어. 맡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풍겨오는 내음은, 꽃의 이름을 한 사쿠라의 것이었지. 


"정말이지요? 소녀도 데리고 가주시는 거지요? 신은 거짓말같은 거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화과자도 사주시는 것입니까?" 


신이나서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에 간간히 그렇다고 대답해주면, 사쿠라는 더 신이나서 발을 더 세게 흔들었어. 흔들거리는 아이를 고쳐안고 후원을 지나, 안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향했어. 재차 화과자를 묻길래, 끈질기다고 엄한 소리는 못하고, 그저 살펴는 보겠다고 대답했지. 화과자같이 귀한 걸 작은 시장에 누가 내다 팔지는 모르겠지만. 


2.

장을 보러 내려온 건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사쿠라가 좋아하는 비단으로 옷을 해주고 싶어서. 아무리 신의 손이 탄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도, 아이가 크는 만큼 늘어나진 않는지라. 둘째는 제례의식에 앞서 인간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자연의 신은 인간이 해를 범한 일에는 관여치 않지만, 인간이 한 이로운 일에는 그에 맞는 축복을 내리곤 했어. 오래 전 이 마을에서 입은 은혜를 보답하는 의미였지. 이 작은 마을에 무슨 은혜를 입은 건지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신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추운 계절을 앞두고도 웃음이 끊이질 않으니 마을의 기운이 선한 것은 확실했지. 

그래도 어디 어두운 곳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는데, 이 작은 아이는 장이라고 하는 것이 익숙한데 낯설고 새로웠어. 안그래도 늦어지는 신의 발걸음 다섯 자국에 한번씩, 옷자락을 놓치며 자꾸 한눈을 파는거야. 


"아해야," 


재차 부르면 사쿠라가 잰걸음으로 따라와 베시시 웃었지. 그렇게 아해를 너댓번쯤 부르는 일이 반복됐을까, 신은 결국 사쿠라 손을 어정쩡하게 잡고 골목으로 끌고들어왔어. 여전히 바깥이 궁금한 사쿠라 손을 잡은 채, 신이 아이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하면, 또 말대로 눈을 감았어. 

늑대의 모습으로 변할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는 작은 바람이 일었다 잦아들면, 사쿠라가 천천히 눈을 뜨고, 아이의 앞에서 손을 잡고 있는건 사쿠라 또래만한 남자아이. 


"손을 놓으면 안되느니라." 


말씨는 여전히 위엄있는데 앳된 목소리가 낯설어, 사쿠라는 작은 손으로 눈을 부비면서 여쭈었지.  


"신랑, 님이십니까?" 

"신명을 부르면 인간들이 놀라 쳐다보지 않겠느냐." 

"정말, 정말 신랑님이신거예요?"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조금 엄한 표정인대도, 그저 어린 모습이 신기해서 사쿠라는 손을 뻗어 신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어.

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이번에눈 신이 눈을 감았다가, 뜨니 사쿠라는 어린 외모의 신과 눈을 마주하게 됐어. 늑대의 눈처럼 달빛의 색으로 변해, 사납지만 어른 남자의 모습이었을 때 가졌던 호박빛의 눈동자의 맑음을 간직한, 위기감이 없는 눈. 

그제서야 사쿠라는 아, 하는 작고 기쁜 탄식을 흘렸고, 신은 다시 눈울 감았다 뜨며 본래의 눈으로 돌아왔어. 가자구나, 하고 아이의 손을 이끄는데, 사쿠라가 말했어. 


"그럼 신랑님 말고 소랑(小狼)님 입니까?"


맹랑한 물음에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가, 뜻을 곰곰히 뜯어보니, 틀린 말은 아닌지라, 글을 깨친 아이가 기특한 마음에 신은 그리 부르고 싶다면, 그리 부르라고 허했어. 


3.

골목을 빠져나오면,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도 시선이 이리저리 바쁜 신과, 그 뒤를 따르며 여전히 신기한 게 많아 신만큼이나 눈이 바쁜 사쿠라. 아무래도 아이의 몸이면 걸음은 늦지만 구석 구석 둘러보기엔 좋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사쿠라가 갑자기 잡은 손에 힘을 꾹 주고 멈춰섰어. 신은 무슨 일이냐며 돌아봤는데, 사쿠라는 신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만 꼭 잡고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거야. 그 시선을 따라가보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예쁜 화과자가 진열되어 있었어. 낮은 매대 위로 가지런한 알록달록 빛깔 고운 과자.

귀한 것을 이렇게 흔하게 팔 리가 없는데, 상인이 누군지 살피면 마을 신관네 아낙일거야. 사쿠라는 눈만 반짝인 채로 발걸음을 뗄 생각이 없고, 결국 신은 그 앞에 서겠지. 


"소랑님 이것 좀 보십시요, 화과자입니다!"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이것은 열매 모양에 색이 붉은 게 사과를 본 뜬 것이 아니겠느냐는 둥, 예쁘게 꽃모양을 낸 것은 먹기도 아깝겠다는 둥, 그렇지만 꼭 먹고 싶다는 말은 잊지 않았어. 그러나 신은 아낙에게 물었어. 무슨 연유인고. 


"장이 열리는 마지막 날, 어린 아이 모습을 한 귀한 손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화과자를 제례에 올릴 것보다 많이 만들어, 낮은 매대에 놓고 기다리면, 맞을 수 있다 하셨나이다." 

"누가 그리 이르더냐," 

"다이도우지 토모요 신관님이십니다."


신은 눈까지 접어보이며 웃었어. 그걸 말똥히 올려다보던 사쿠라에게 말했지. 아해야, 마음에 드는 과자를 세 개만 골라보거라. 


"다섯 개, 아니 열 개는 아니 되옵니까?"

"대가 없이 혜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세 개 뿐이니라." 


사쿠라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빨간 열매모양 하나, 제 이름을 닮은 벚꽃 모양 두개를 골랐어. 

아낙은 옅은 색 종이에 모양이 흐트러지지않게 과자를 쌓아, 사쿠라 손에 쥐어줬어. 감사하다고 활짝 웃는 사쿠라를, 아낙도 따라 웃어보였지. 신은 아낙에게, 내일 제례가 끝나면 고운 비단 한 필이 닿을 것이니, 당장 쓰지 말고 윤달이 차기 전까지 중히 간직해 두라고 전했어. 아낙은 그리 전하겠다며 매대를 정리했고, 사쿠라는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았어. 

신은 여전히 잡고있던 아이의 손을 당겼지. 가자구나. 그치만 사쿠라는 여전히 발을 떼지 않고 아낙을 불러 세웠어. 사쿠라는 얼굴을 아낙 귓가 가까이 대고 속삭였어. 


"남은 과자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집으로 돌아가 제례를 준비합니다." 

"그럼 아낙은 드시지 않습니까?" 

"신의 음식은 아무나 상미할 수 없습니다." 


사쿠라는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제 과자의 포장을 뜯어 벚꽃 모양의 것을 그에게 하나 건냈어. 그리고 다시 속삭였어. 소녀 이름은 사쿠라, 벚꽃입니다. 

시선이 작은 아이의 손 위를 가득 채운 과자에서, 신으로 옮겨온 아낙에게, 신은 받으라는 눈치를 줬어. 아낙은 벚꽃 과자를 두 손 위로 옮겨들었다가, 사쿠라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어. 사쿠라는 아낙을 올려다보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어. 꼭 오늘 드셔야 해요.


4.

사쿠라는 아낙이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발걸음을 옮겼고, 신은 다시 앞장섰어. 장의 끝에 다다를 쯤이면 온갖게 신기하다고 늦어졌던 활기찬 처음과 전혀 다른 이유로 사쿠라 걸음이 늘어지겠지. 그래도 힘들다고 나자빠지지 않은 이유는 아해가 의젓해서일까, 화과자때문일까. 신이 의문을 품은 중에, 사쿠라 머리가 신의 등에 닿았어. 


"소랑님, 소녀 못걷겠어요. 다리가 천근 발바닥이 만근이에요." 


신이 돌아서서 아이를 품에 안고, 또 바람이 한번 일면 신의 본모습으로 돌아가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겠지. 사쿠라가 또 팔을 뻗으면, 신은 다시 고개를 숙일거야. 안정적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안고 등을 토닥였어. 


"오늘 무엇을 보았느냐." 

"예쁜 비단이랑, 먹음직한 과일이랑,"


하나 하나 짚어보는 목소리와 산들산들 부는 바람, 살랑이는 사쿠라 머리카락, 자연스레 느껴지는 아이의 온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끝에 나른한 아이 목소리가 보드랍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화과자. 아!"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를 의아해서 품에서 떨어뜨리면, 진지한 얼굴로 물었어. 아까 아낙은 화과자를 드셨겠지요? 신이 가만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낙이 먹었다고 대답했어. 사쿠라는 안심의 숨을 크게 내쉬고 신의 품에서 꼼지락꼼지락, 과자의 포장을 풀렀어. 그리고 아이 나름 크게 한 입, 열매 모양의 과자를 입에 물었어. 행복한 표정으로 오물오물. 


"맛이 있느냐?" 


끄덕끄덕. 품에 받친 아이가 먹는 데 불편하지 않게 걸음을 잠시 멈추어 사쿠라를 고쳐안았어. 


"아해가 좋아하는 나마가시는 왜 고르지 않았느냐?" 

"가장 예쁜 것이 이 열매 모양이고, 사쿠라는 사쿠라니까, 벚꽃모양을 두 개 고르고 나니, 나마가시는 고를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쿠라가 화과자 마지막 한 입을 오물거리면서 대답했어. 신은 사쿠라 입가에 묻은 과자 조각을 털어주면서 물었어. 남은 하나도 먹고 가겠느냐? 

사쿠라는 신을 말똥히 올려다봤어. 아까 아낙을 볼 때처럼. 사쿠라는 포장을 마저 뜯더니, 과자를 신의 입으로 들이밀었어. 신이 물었지. 이게 무슨 맹랑함인고. 


"소녀는 하나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아낙 앞에서는 열개도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지만.."  


말 끝을 흐리면서도 과자는 더욱 밀어서, 결국 신의 입에 닿았지. 신의 앞에서 거짓을 고하느냐고 꾸짖지 못하고, 그냥 베어물었어. 

사쿠라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어. 


"맛이 있습니까?" 

"달구나." 

"역시 맛있구나..." 


아이에게는 단 것과 맛있는 것이 같은지라, 구분할 필요가 없어보였어. 소에 유자가 들어가서 향도 좋았지. 신의 입에 먹으라고 전한 것은 아이 자신이면서도 아쉽다는 듯이 신이 먹는 과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사쿠라는 아무 것도 없는 입을 달싹거리면서 입맛을 다셨고, 결국 신은 소리내어 웃었어. 


"아해는 정말로 하나만 먹어도 괜찮느냐?" 

"소녀는, 벚꽃모양도... 먹고 싶습니다." 

"그럼 방금은 거짓을 고한 것이냐?" 

"아닙니다! 소녀는 정말, 하나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구나." 

"그것이 아니오라," 


사쿠라가 도포자락을 꼭, 쥐었어. 뜸을 들이더니, 숨을 들이켰어. 


"소녀는, 좋아하는 것을 신랑님께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두개뿐이 없으니까, 소녀는 하나만 먹어도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도포자락을 쥔 손을 어찌할 줄을 모르고 쥐었다 피는 걸 반복하면서, 그렇지만 또박하게 말을 이었어.

그리고는 다시 팔을 뻗길래,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아이의 손바닥 위에 신의 손을 올려두고 말했지. 


"고운 마음씨를 상미하는 상이니라." 


아이 손에는, 아까 신이 받은 것과 같은 벚꽃모양 과자.

반색하며 사쿠라가 밝은 웃음으로 다시 팔을 뻗으면, 신은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그제서야 고개를 숙였어. 아까처럼 아이 등을 토닥였지. 신의 품에 다시 온기가 가득찼어.  


"이 과자는 내일 먹을거예요." 

"양지질을 잊지 말거라." 


머지않아 해가 완전히 지고 아이가 잠든 숨소리가 도롱도롱, 신은 아이 손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과자포장을 제 도포 속에 감추고, 아이를 뒤로 업어서 등에 기대게 했어. 돌아갈 때에는 네 발로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지. 










* 사쿠라는 다음날 일어나서 신랑님이 아낙의 것을 몰래 뺏어온건 아니냐는 질책을 들었다(?)

* 결국 신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를 더 만들어보였고, 사쿠라는 그럼 이제 화과자를 매일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 어제 남겨준 벚꽃모양 화과자는 녹차랑 같이 먹었다(!) 









미친파친솔친 지난 11월에 쓰고 여지껏 백업도 안한것도 모자라 다음내용도 없다니 나가죽어됴링님 ^^


좋아하는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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