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보스 07

W. 마음에 닿았네





   큰 형님이 쥐어준 프로젝트는 하다가 때려치우고 싶었다. 사람은 또 왜 그리 많이 만나고 요구하는 것은 왜 그리 많고 생각해야할 것은 또 왜 그리 넘쳐나는 것인지. 알아도 배워도 돌아서면 틀리고 다시 배워야 했다. 모든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밑의 사람들이랑 또는 관계자들이랑 자꾸 틀어지게 되고 스트레스만 쌓여 짜증만 높아졌다.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지성이 용쓴 것도 있고 자신의 팀에게 주어진 일이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쉽게 놓아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고생하십니다.”

“어쩐 일이야.”

“중간 점검이랄까.”

“몸 쓰던 놈한테 컴퓨터처럼 머리 쓰라고 하시는 거 아니가.”

“지성 형이 잘 가르쳐 줄 텐데요.”

“열심히 이긴 한데 내가 못 따라가겠다. 이렇게 머리 아픈 짓을 왜 하는 거지?”

“그게 사업인거죠.”


자기는 사업에 관여도 안하면서 베테랑인 척 구는 우진을 못 마땅한 듯 째려보았다.


“큰 형님이 그랬는데 그거 지성 형님이 예전부터 구상하던 거래요.”

“말의 저의가 뭐고.”


   우진은 그렇게 말하라고 전달받았기 때문에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게 용건이었는지 사업과 관련 없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다가 가버렸다. 도전과제처럼 남겨진 말에 다니엘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다가 다시 그만둘 결심을 했다. 성운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이건 정말 못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할 상상을 수십 번 하며 그 후에 성운이 할 말도 상상해보았다.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고등학교 땐 졸업하는 데 애썼지 공부에 힘 써 본 기억이 없었다. 한 번도 못하겠다고 해 본 적이 없어 잠을 설친 다니엘이 집 안을 배회할 때였다. 지성의 집무실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처음 왔던 때처럼 하루에 한 잔 밖에 안 마시는 커피를 마시며 밤새워가면서 틀어진 일을 바로 잡는 모습에 다니엘은 포기하려던 제 생각을 고쳐야 했다. 적극적으로 지성에게 배웠고 관계자들을 만났고 의견을 조율했으며 그리고 성공했다.


“이번에 KOEL에 맡긴 프로젝트 런칭 결과입니다.”


   성운이 친목회 때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지성에게서 받은 보고서를 보스에게 건네주었다. 지성은 꽤나 야윈 듯 했고 그것에 다니엘 네를 향해 널 혹사시켰다느니 제대로 끼니도 안 챙겨 주냐며 혀를 차니 두둔하며 감싸는 게 아닌가. 날 선 소리밖에 잘 안 하는 윤지성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성운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고 지성이 기분 나쁜 웃음에 따져 물었지만 그저 웃으며 가서 쉬라고만 했다. 그가 간 후, 보고서를 보던 보스도 만족스러운 결과에 꽤나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만하면 됐지 않나요, 보스.”

“알고 있었니.”

“보스 의중을 제가 모르면 누가 압니까.”

“이젠 내버려둬도 되겠지?”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강이가 든든한 울타리가 될 거 같아요.”

“이렇게 잘 따르고 성장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보낼 거 그랬나?”

“그만 걱정하시고 몸 챙기세요.”


   따뜻한 성운의 씀씀이에 짓는 미소는 조금 지쳐보였다. 그것이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나뭇잎 같아서 슬퍼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보스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이제 반 완성 되었을 뿐, 갈 길이 아직 남았다.




*     *     *



“....뭐라고?”


   성운은 어이가 없어 차가운 숨만 뱉어냈다. 손끝에서가 아니라 뇌에서부터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에 너무 맑아진 정신은 약속도 없이 다짜고짜 찾아와서 따져대는 강 다니엘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계산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장님과 다니엘의 실적에 대해 칭찬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대견해하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봐.”

“YK, 윤지성 회사였다면서요. 우리가 기업을 인수하고 운영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명분이 다 윤지성이 있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런데?”

“이용한 겁니까?”


   소문이 만들어지는 데에 이유가 없진 않다. 회사의 운영이, 조직의 구성이 윤지성 입김이라는 말은 다 여기서부터 시작인 셈이다. 자신이 들어오기 전이라 신경을 안 썼을 뿐, 누군가의 회사를 빼앗았다, 라는, 망해가는 회사를 빼앗았다, 는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으레 20%로의 진실이 거대하게 부풀려진 이야기였기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많이 컸다, 강 다니엘.”


   고작 그런 이유로, 서열이고 뭐고 맘만 먹으면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와서는 무서울 것 없다며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보고 있는 이제 병아리에서 벗어난 놈이 우스웠다. 그리고 하성운이 꽤나 우습게 보였구나 싶어서 실소가 계속해서 터졌다.


“큰 형님이 이 모든 일을 추진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친형제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이일지는 몰라도 구린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타이밍도 너무 좋았다. 음지에서 조직의 입지를 다지고 키웠지만 양지까지 뻗어나가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손을 뻗으려 했던 회장님에게 하성운이라는 충신이 있었고 그에겐 의형제 윤지성이 있었다. 그리고 윤지성에게는 대리 운영되고 있던 윤지성이 주인인 회사가 있었다.


“해명해주세요.”

“싫다면 한 대 칠 기세다?”


성운이 불끈 쥔 강 다니엘의 주먹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럴 겁니다. 성운이 해명, 변명, 핑계. 그 모든 의미를 담을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그럴 가치가, 다니엘에게 없었다.


“니가 뭐라고 내가 해명해야 되는지 네가 먼저 날 설득해야 할 테다.”


   다니엘은 멈춰 서 있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득한 윤지성이 홀로 남겨져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있었다. MOLLO의 의도치 않은 방패가 되어 모든 총알을 그냥 다 맞아주고 있었다. 누구하나 치유해주는 사람, 대신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턱 주변을 쓸어내리던 성운이 다니엘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 다니엘의 복부를 밀어 찼다. 사무실에서 벌어진 난투극은 누가 봐도 성운이 우세해 보였다. 밖에서는 관린과 우진이 고기를 다지는 소리와 가구가 넘어지고 도자기로 된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에 성운이 다니엘을 죽이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다니엘이 잠시 균형을 잃은 사이 성운이 주먹을 날렸다. 누가 들어도 아픈 소리가 났다. 하지만 다니엘은 아픈 곳이 없었다. 너무 맞아서 통증을 못 느끼게 되었구나, 하고 고개를 드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성운아, 여기까지 하자.”


   윤지성이었다. 순식간에 빨개진 볼이 매서운 추위가 이는 겨울, 밖을 장시간 돌아다닌 듯했고 터진 입술은 꽃물을 묻혀 놓은 듯 했다. 덤덤한 말투와 다르게 마음으로 간청하는 지성의 눈빛에 흔들리려던 성운의 동공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우진! 라이관린! 제대로 일 안 해?!!!!”

“죄송합니다.”

“당장 데리고 나가!!”

“하성운!!”


   지성을 막지 못했던 우진과 관린이 성운의 호통에 재빠르게 들어와 지성을 끌어냈다. 버둥거리며 놓으라고 협박하고 부탁하고 호소하는 지성을 무시하고 성운의 명령에 따랐다. 성운의 사무실 문이 닫히고 고깃덩어리를 두들기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것을 실컷 밟아 댄 성운이 숨을 몰아쉬었다. 쥐어 터진 다니엘은 숨만 붙어서 바닥에 붙어서 바르작댔다. 다 끝난 것 같아 우진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완전 쥐 잡듯이 팼네.”

“너도 이렇게 되고 싶은 거 아니면 입 다물어.”

“지성 형한테나 가 봐.”


성운이 치료고 뭐고 바로 집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접대실에서 지성은 엎드려 울고 있었다. 인기척에 지성이 빼꼼이 눈만 살짝 들어서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박고 훌쩍였다. 성운이 그 옆에 앉아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참 후에서야 지성이 상체를 팍 들고는 투덜댔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패?!!”

“너 상처받을까봐.”

“생략하지 말고 과정을 얘기해!”

“내가 거기서 멈췄으면 후일이 어떻게 되었을 거 같아?”


듣는 귀는 곳곳에 있었고 또 쓸데없는 소문이 부풀었을 게 분명했기에 애꿎은 입술만 물었다. 물린 입술을 보아하니 뻔히 짐작하고 있을 이야기라 굳이 해줄 필요는 없었지만 성운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말해주었다.


“윤지성 하나에 YK든 MOLLO든 좌지우지 된다는 말 나돌 게 분명한대. 그러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은 물론, 네 신변까지도 위험할 텐데 거기서 그만했었어야 해?”


지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너는 그런 걸로 울기나 하고.”

“그런 거 아니거든?!!”

“안 울었다고?”


성운이 지성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재차 물었다. 너무 울어서 빨갰고 너무 울어서 따가워 성운이 건드릴 때마다 눈살을 찡그렸다.


“.........씨... 아파서 울었다고! 아파서!!”


   그제야 성운이 자기한테 맞은 곳을 살펴보았다. 볼이 부었다. 안에 핏줄이라도 터졌는지 피멍이 들었다. 데려가 놓고 응급처치도 안 해준 우진을 욕하며 얼음주머니를 가져왔다. 그리고 연고를 가져와 그의 터진 입술에 발라주었다. 병 주고 약주냐며 잔뜩 이골이 난 표정으로 지성이 치료해주는 성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누가 막아서래. 싸움도 못하면서.”

“내 몸 하나는 지키거든?”

“잘도 지키십니다.”


   성운은 지성이 운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지성을 남 대하듯 행동할 때, 그리고 조직원으로서의 위치에 지성을 배제할 때라는 걸. 그럴 때 자신의 눈이 너무 차가워서 지성은 서러워지고 서운해진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퇴색 되어 신기루 같아지는 것 같다고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었다.


“내가 MOLLO의 하성운인 거 알지?"


지성은 그 말을 싫어했지만 상기해줘야 하기 때문에 성운은 지금 타이밍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해 질문했다. 조직의 일에 있어서는 지성의 부탁을 쉽게 들어줄 수 없었다.


“알아.”


지성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 윤지성의 하나 밖에 없는 형제잖아.”


그러니 자신을 그렇게 대하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말한다.  성운이 피식 웃어버렸다. 윤지성은 정말 못 이기겠다고 생각하면서.


“꼬마보스, 꼬마보스 하더니 맘에는 들었나봐.”

“치, 말 돌리기는.”

“이젠 병아리라 부르기도 뭣하던데?”

“닭 될 날이 머지않았어.”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는 확신의 표정에 괜히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지성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1차로 다니엘 때문에 패닉이었던 성우와 지훈이 돌아 온 그의 얼굴을 보고 2차로 호들갑을 떨었다.


“형은 또 그 꼴이 뭐예요?!”

“그래도 형은 치료가 되어 있네?”

“꼬마보스는.”

“방에. 치료도 못했어, 완전 얼굴이 망개떡이 되어서 왔다니까?!”

“후... 내가 들어갈게.”


성우와 지훈을 안심시키고 노크하고 들어갔다. 토라진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깊이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퉁명하게 들려왔다.


“내가 들어오지 말랬잖아.”

“나야.”


   등 돌아 누워 있는 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넓은 등이 쪼그라든 것 같았다. 침대 옆에 걸터앉아 얼굴을 먼저 살폈다. 오른쪽 눈 위엔 핏물이 찼고 입술은 터졌다. 슈렉이 따로 없었다. 옷 아래의 몸은 또 어떨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강다니엘이 강하다는 얘기와 함께 조직 내에서 힘으로 지지 않는 우진과 겨루면 승률이 반반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런 우진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하는 상대가 성운임을 알아서 걱정이 많이 앞섰다.


“눈은 떠져?”

“응.”


다니엘이 지성 쪽으로 돌아누우며 뺨을 어루만지는 그 손에 제 얼굴을 좀 더 묻었다. 차가워서 시원했다.


“그러게 성운이한테 덤비길 왜 덤벼.”

“화가 났어.”

“나한테 확인을 먼저 했었어야지.”


성우가 알아온 정보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MOLLO가 양지로 나올 수 있었던 명분은 당시 대주주였던 미성년자 윤지성이며, 그가 총대를 멨다. 그의 위치는 어중간했다. 조직원도 아니었으며 평범한 일반인이라 할 수도 없었다. 회사의 직원인데 최대 주주란 점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조직 내에서는 회장님의 편애와 이도 저도 아닌 위치에 조직원들의 이야기 소재로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회사 내에서는 임원들과 주주들이 살모사 같은 혀를 놀리며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 갉아 내리려 했기에 그에겐 무성한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상처 받는 사람이 아닌 척 차가운 어른인 척 행동해 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답지 않게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지성은 묻지 않았다.


“내가 그랬지, 지킬 게 있어서 아저씨 찾아갔다고.”

“그게 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들이 미성년자인 자신을 대신할 보호자가 되겠다며 눈에 불을 키며 자청했고 그 외의 유산과 재산은 그들의 입맛대로 처리되었다. 법적인 성년이 될 때까지 회사는 그들의 손에서 망가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전까지 회사를 지킬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공부하는 것만이, 회사의 일원이 되는 것만이 그 당시의 자신에겐 길이었다.


“그러니까 성운 형님이 해를 끼친 게 없다 이거가?”

“없어. 나, 하성운, 박우진 이렇게 우리 셋은 약속했으니까. 우리만의 의지와 약속을 담아서 퇴색될 과거를 붙잡아 잊지 않기로 약속했거든.”

“기억은 언제든 희미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믿어?”

“문신으로 새겼어. 언제든 상기할 수 있도록.”


   성운과 우진은 MOLLO의 조직원이 되었고 지성은 조직원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일반인이었다. 엄연히 다른 길이었고 헤어지는 건 자명한 일이었기에 지성은 그것을 깨달은 날 너무 슬펐다. 뭐라도 필요했다. 지워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영원히 남아 있을 어떤 것이. 우진이 문신을 제안했고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위치에 각자의 문구를 새겼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서로를 생각하는 감정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보여줘.”


   단순한 얼굴. 복잡한 생각을 싹 지운 다니엘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를 볼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빛나는 눈이었다. 가장 빛났고 이정표마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북극성 같았다. 길을 잃은 여행자의 길잡이. 변하지 않는 빛을 지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반짝임.


“보고 싶어.”


   지성이 등을 돌려 천천히 셔츠의 윗 단추를 풀었다. 그 몇 초의 순간과 그 정적이 가득한 공간이 파르르 지성의 손길 따라 흔들렸다. 셔츠의 윗부분만 살짝 걷어내 어깨를 드러냈다. 그의 어깨에서 등으로 넘어가는 부위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었다. You, I, We, And Now. 이탤릭체의 짧은 단어로 되어 있어 다니엘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너희, 나, 우리, 그리고 지금. 하얀 피부 위에 어깨 선 따라 새겨진 문신은 묘하게 야했다. 다니엘이 손을 뻗어 훑었다. 어깨가 예민하게 움찔거렸다. 그 부분을 중심으로 체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 같았다.


“모르는 척 하는 거가.”

“그렇게 눈치 없진 않아.”

“그런데?”


   자연스럽게 지쳐서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거가, 뭐고. 그런 투정어린 생각을 하며 다니엘이 문신 위로 입을 맞췄다. 다시 한 번 떨림이 느껴졌다. 입술로 보드라운 살결을 누를 때마다 바르작거리는 몸짓이 느껴졌고 귀부터 시작해 목선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말을 하려는 듯 턱 관절이 달싹거리는 게 보여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흘러서 속수무책이었다고 하면 믿을래?”


어깨에 묻은 그의 입술이 깊은 호선을 그리는 게 느껴졌다. 든든한 팔이 뒤에서 뻗어와 지성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거 기대해도 되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썸 타는 사이라 하자.”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말이 왜 이렇게나 기쁜지.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서 성우와 지훈이의 얼굴에 뽀뽀를 가득 해주고 싶었다. 윤지성은 사리분별을 잘 하는 사람이었고 끝맺음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다니엘이 쏟는 애정을 다니엘보다 먼저 알아차렸지만 무심하게 대하며 모른 척 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보통 좋아한다는 고백을 해 오며 어떤 답이라도 들으려 했다. 그런데 이 꼬마보스는 고백을 하며 제 마음을 알리기보다 보답 없는 애정을 계속해서 속삭였다. 싫다거나 힘들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애정을 받을 수 있는지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끈질기게 두드린 것이다.


“좋아하고 좋아한다, 내가 많이 좋아할게.”


대가 없이 받는 애정은 쑥스러웠고 나한테 안 넘어오고 언제까지 뻐기나 보자, 라는 심보도 조금 느껴져 웃으며 어깨에 턱을 괴고 있는 다니엘의 머리에 머리를 맞대었다.


방금 문신을 새긴 것처럼 그 부위가 화끈거렸다.

성운에게 맞은 뺨이 뒤늦게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달라진 것은 지성과 다니엘이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고 성우와 지훈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둘에 대해서 놀려댄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이 그게 뭐? 어때서? 맞는데? 등의 철면피같이 굴어 놀리다가 말수도 있었지만 지성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어떨 때는 촉새처럼 따라 붙어서 놀리기도 했다.

   하루는 다니엘이 토라진 일이 있었다. 그가 지성에게 툴툴대거나 쌀쌀맞게 대해서 처음엔 다들 왜 저러나 의아해했다가 질투심이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저 때문인걸 아는 지성이 어떻게 풀어줄까 하다가 손깍지를 끼며 그를 달랠 유치한 멘트를 하는데 그게 먹혔다. 씰룩대는 입 꼬리를 주체 못하는 게 귀여워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정말.... 애다’ 그러고는 사랑스러워져 해사하게 웃었다. 그걸 본 다니엘이 눈을 접어가며 활짝 웃고는 사랑스럽다, 하고 중얼거렸다. 제가 생각하는 감정과 똑같이 부딪혀와 당황하며 손깍지를 푸는데 다니엘이 지성의 얼굴을 감싸며 자기와 시선을 맞추며 계속 웃었다. 눈을 둘 곳을 몰라 도르륵, 굴리는데 그가 지성을 폭 안아버렸다.


"좋다. 이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인 줄 몰랐다."


   이 달달한 분위기는 지켜보고 있던 성우와 지훈에 의해 깨져버렸고 지성이 얼굴이 빨개져서 가버리자 홀로 남은 다니엘을 그들이 놀렸는데 그에 다니엘은 "예뻐서 안았는데 그게 왜? 잘못했어?" 라고 당당하게 말해 놀리려던 마음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타깃을 지성으로 바꿔 놀리곤 했다.





+ 후일담

“관린아, 꼬마보스 불러.”

“지훈 형님 부르면 안 돼요?”

“전달사항뿐이라서 꼬마보스 굳이 안 와도 되잖아요.”

“그 피떡 된 얼굴 또 보기 그럴 거 아냐.”


   강 다니엘의 명칭은 이제 ‘꼬마보스’로 통일되었다. 윤지성의 입김이 컸다.(지성이 회장님의 의도를 잘 파악했기에 부르게 된 명칭이었지만) 그리고 우진과 성운이 반발성 없이 받아들였기에 다들 암묵적으로 다음 차기 보스는 강 다니엘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저 하나씩의 불만을 품고는 있었다.

   머그컵 윗부분을 매만지는 성운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우진이 제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어떤 몰골이든 성운은 신경 안 쓸게 분명했다. “하 형! 그렇게 해도 되죠?” 해맑게 다시 요청하는 관린에 우진은 핀잔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


허락이 떨어지자 관린은 소풍가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며 잽싸게 데리러 갔다. 우진은 관대한 성운이 낯설어졌다.


“형은 관린이한테 유독 약하네.”

“저 놈이 나나 회장님 대신에 많이 다치잖아.”

“그게 다?”

“그거 제외하면 자기 멋대로 하는 일도 없잖아.”


   진영과 우진이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관린은 요구를 하기보다 따랐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봐도 관린은 실실 웃으며 없다고만 했다. 그런 관린이 고집 아닌 요청을 할 때면 성운은 크게 반대하지 못했다. 거기다 일 외의 부분에서 하는 요구였기에 굳이 제재를 가할 필요가 없었다.


“난 완전히 돈 줄 알았잖아요. 눈에 쌍심지 키고 와가지고는 성운 형님 앞에 서서 차갑게 말하는데 와.....”


MOLLO의 가장 큰 형님이자 언더보스인 그를 그렇게 내려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우진은 다시금 느껴지는 오한에 제 두 팔을 감쌌다.


“보스가 많이 기뻐하셨어요.”

“그러셨겠지.”


진영과 성운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는 우진이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우진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성운과 진영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제 뺨을 찰싹, 내려치며 조금 울상을 지었다. 


“.........지성 형 귀에 안 들어가게 해요. 나 뒷감당 못해. 난 모르쇠로 일관할 거야.”

“당연하죠. 저도 감당 못해요. 꼬마보스 때보다 더한 사단이 날 걸요, 그쵸?”

“그건 나도 공감이다.”





####

가장 쓰고 싶었던 장면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도 야할 리 없고 야할 틈도 없지만 야한 느낌 주고 싶은 장면이 있었는데... 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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