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잠깐만 눈 감아줘.”

나츠메가 타누마의 눈가에 손을 뻗었다. 거품목욕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먼저 말했지만 눈앞에서 옷을 벗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는 허둥대는 목소리에 웃으며 타누마는 알겠다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타누마의 귓가에서 천과 살결이 스치며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옷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몸을 물속으로 담그는 소리가 났다. 물결 소리에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나츠메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거품 속에 웅크리고 앉은 후에야 나츠메가 이제 떠도 된다고 작게 말했다. 정말로 눈을 계속 감아준 타누마를 보며 웃음을 지으면서도 계속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비볐다.

눈을 뜨자마자 거품 가득한 욕조 안에서 부끄러운 듯 웅크리고 있는 나츠메가 보였다. 그 모습에 타누마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작 본인도 옷을 벗으려하니 괜히 몸 전체가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 몸을 돌리고 윗옷을 걷어 올렸다. 나츠메는 타누마를 볼 듯 말 듯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헤매고 있었다. 몸을 보여주는 것 말고도 보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귀엽단 생각이 들면서도 본인도 부끄러웠기 때문에 타누마는 내심 다행이란 마음이 들었다.


타누마가 욕조에 몸을 담글 때까지 나츠메는 계속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마주치고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욕실 안은 은은한 금빛 조명 때문에 밝은 듯 살짝 어두워 묘하게 느껴졌다.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물결이 찰랑이는 소리가 났고 새하얀 거품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어정쩡하게 서로 바라보며 거품을 조금씩만 만지고 있을 때 타누마가 손을 뻗어 나츠메의 뺨에 살짝 거품을 묻혀보았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얼굴을 나츠메에게 가까이 갖다댔다. 콧잔등이 살짝 겹치고 있을 때 나츠메가 먼저 타누마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서로 멈추어 입을 맞추는 동안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번 입을 맞춘 것 때문인지 아까보단 서로를 보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거품을 만지며 웃기도 했고 가볍게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맨 몸이 보일 때나 조금씩 닿을 때 잠깐씩 놀래긴 했지만 귀까지 붉어진 상태로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츠메가 물로 젖은 타누마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으며 조금씩 몸을 앞으로 뺐다. 타누마에게 먼저 입을 맞추려 할 때 욕조 바닥에 대고 있던 다른 쪽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타누마에게 몸이 쏠렸다. 거품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찰랑이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타누마는 나츠메를 껴안은 채로 욕조에 기대어 있었다. 맨몸이 그대로 닿은 촉감 때문에 둘 다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지만 움직이지 못한 채 계속 서로 껴안고 있었다. 타누마가 나츠메의 등을 살짝 만지며 입을 맞추었다. 나츠메의 뺨을 어루어만진 채로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며 입 안을 살짝 핥았다. 점점 깊게 입을 맞출수록 나츠메는 타누마의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살갗이 스치는 감각이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욕조 안에서 껴안은 채로 물속에서 손가락 끝이나 손등이 닿는 감각을 느끼며 둘은 살짝 웃었다.



*

욕조에 받아놓은 물이 조금씩 사라지는 소리가 났다. 욕조에서 등을 돌린 채 나츠메는 급하게 가운을 입고 있었다. 물기가 덜 마른 몸으로 가운을 걸치는 바람에 흰 옷에 물자국이 남았고 머리카락도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타누마는 나츠메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가운의 허리끈을 다 묶은 소리를 들은 후에야 나츠메를 부르며 그는 젖은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감기 걸리겠다고 말하며 타누마가 수건으로 나츠메의 머리카락을 닦아줬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 때문에 잠깐 놀랬다가도 나츠메는 작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손등으로 뺨을 문지르며 타누마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 모습이 귀엽단 생각에 타누마는 나츠메의 허리 사이로 손을 뻗어 끌어안았다. 입고 있는 가운이 생각보다 물기에 젖어 있는 게 느껴졌다. 젖은 가운을 만지며 다른 옷을 입는 게 낫지 않겠냐고 타누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차피 곧 벗으니까 상관없을 것 같아서...”

물 자국이 언뜻 보이는 가운을 보며 말하던 나츠메가 말끝을 흐리며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타누마를 보았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타누마도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 몰라 허둥댔다. 말이 잘못 나왔다고 이어 말하려다가 나츠메는 뜨거워진 얼굴만 손으로 문질렀다. 몇 걸음 나아가 닫혀 있던 욕실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대신 시원한 바람이 피부에 맞닿았다.

나츠메는 욕실에서 나가 침대에 편하게 앉았다. 발끝이나 머리카락 끝으로 다 닦이지 않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타누마는 옆에 앉아 나츠메의 발목에 손을 대고 수건으로 천천히 발목부터 발등을 쓸어내렸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나츠메가 당황해 말했지만 이내 조용히 자기 발을 닦아주는 타누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운 한 장뿐인 차림인 게 신경 쓰여 괜히 옷자락을 잡아 내리면서도 타누마 쪽으로 뻗은 다리를 바꾸진 않았다. 발목을 매만지고 있던 손가락이 조금씩 다리로 올라갔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나츠메는 놀란 목소리를 삼켰고 타누마 쪽으로 점점 몸을 기울였다. 타누마를 껴안은 채로 그가 다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타누마가 나츠메에게 입을 맞췄다.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면서 나츠메의 허벅지 안쪽을 손가락으로 스치고 갔다. 나츠메는 순간 다리를 떨었지만 신음소리는 키스 때문에 삼켜졌다.

 타누마는 나츠메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천천히 누웠다. 푹신한 이불과 함께 서로 끌어안고 있는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몇 번 콧잔등과 이마를 스치며 서로의 온도를 느꼈을 뿐인데도 어느새 다리까지 얽혀 있었다. 끌어안은 채로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의 다리가 스치는 촉감이 느껴졌다. 나츠메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옅은 숨소리 하나도 타누마의 귓가에 그대로 울려퍼졌다. 어두운 곳인데도 나츠메의 뺨이 점점 붉어지는 게 보였다. 숨소리와 함께 조금씩 몸이 뜨거워지는 것도 서로 느껴졌다.

타누마는 손으로 나츠메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뺨과 눈가를 조금씩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걷어지자 타누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나츠메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는 얼굴로 나츠메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긴 손에 깍지를 꼈다. 껴안으면서 가운의 허리띠가 반 정도 풀려 있었다. 벗겨질 듯한 가운을 정리하지 않고 조용히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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