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만들어주신 '초록' 님 감사합니다.


 용해

 명사

 1 .녹거나 녹이는 일.

 2 .<화학> 물질이 액체 속에서 균일하게 녹아 용액이 만들어지는 일. 또는 용액을 만드는 일.


 짤랑, 투명한 유리잔 안에 담긴 얼음이 녹으면서 약하게 부딛히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 노크를 하거나, 꼭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 노리즈키 진은 잠에서 깼다. 유리잔 뒤로 보이는 시계는 새벽 5시 경을 가르키고 있었고,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난 그는 침대에서 몸을 몇 번 뒤척였다. 항상 밤 늦게 잠드는터라 시간보다 일찍 일어났다기 보다는 중간에 잠이 깼다고 말하는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 나쁜 꿈을 꿨어.


 진은 쯧, 하고 중얼거리며 말을 내뱉고는 옆에 걸려있던 수건을 신경질적으로 잡아채 욕실로 향했다.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기분 나쁜 꿈' 이란 사업에 실패한다던가 하는게 아니다. 대체로 쥬네가 저를 떠날때의 시점, 혹은 어린시절 노리즈키 가에서 지냈던 때의 일이다. 진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대충 털면서 그때의 일을 잠시 회상했다.


 그날은 차디찬 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였다.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얇은 얼음 위를 건너는 내 모습은 위태로웠다. '탁' 소리와 함께 내 동작은 멈춰졌다.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으로 숙여진 고개 뒤로 흐트러진 머리에서 비녀가 깨질 듯 떨어졌다.

 진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노리즈키 코우, 그의 아버지의 눈을 응시하자, 그의 분노한 눈이 진을 마주했다. 분노가 가시지 않는 듯 씩씩대는 몸을 따라 손을 보고, 방금 머리쪽으로 던져진 비녀는 노리즈키 코우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진은 벽에 부딫혀 깨진 비녀를 슬쩍 보다가, 또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분노케 했는지는 그닥 궁금하지 않았다. 저 비녀는 히지리가 생일 때 선물해줬던건데, 하필. 진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깨진 비녀 조각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린 후 노리즈키 코우를 지나쳐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실에 있는 편지들 중 성적 통지표를 찾아냈다. 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이번 학기 때 3점정도 떨어진 자신의 점수를 보고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 손으로 그 종이를 구기며 한숨을 내쉬자, 진은 자신의 뒤쪽에서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신경질적인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 뒤에는 히지리가 불안한 얼굴로 저가 깨져서 버린 비녀를 들고있었다.


 "형, 안다쳤어? 아버지가 많이 화나신 것 같던데.. 어, 그리고 이거...! 내가 다시 사줄게. 그러니까.."

 "같잖게 위로하지마, 히지리. 저리가. 짜증나니까."


 진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으로 가만히 머리를 짚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거지. 띵한 머리와 함께 주변의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적으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곳은 숨이 막혀왔다. 나는 가문을 위해 달려왔다. 총명 받던 어린 시절의 그 길에서 갈수록 얇아 깨질듯한 얼음을 걷는 나는 그저 가문만 바라보며 달렸다. 아버지의 꿈일까? 나의 꿈일까?

 의문이 가득 담겨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쫓아가고만 있다. 내 얼음이 바깥쪽부터 찬찬히 녹아간다. 어지럽고 미끄러운 기운. 프리즘 점프를 하고 착지할 때, 이 바닥이 날 집어삼키는 듯 한 이 기분. 축축하고 짜증나는, 제 주위로 들어차는 물이 숨을 조여온다.


  그 뒤로 어지러워서 쓰러졌다가, 히지리가 엄청 시끄러웠지. 진은 가만히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 뒤로 머리도 짧게 잘랐고,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진은 계속 출근을 위해 준비했다.

네 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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