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향, 익숙하지 않은 이불. 익숙하지 않은 방에서 잠이 깼다. 노란 빛이 간간하게 들어오는 방은 아주 깜깜하지 않아 내 눈에 주변 것들을 차오르게 했다. 비몽사몽. 눈을 비볐다. 잠이 더 쏟아졌지만 간간히 밀려오는 갈증에 물이나 마실까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우시지마 선배는 어디계시지.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네. 나는 침대 위에 있던 발을 차갑고도 미적지근한 바닥으로 내렸다. 그리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상의를 주워 주섬주섬 입었다. 일어서니 느껴져 오는 두통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내 중심을 잡아 닫혀있던 하얀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이내 거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던 늑대를 보았다. 무슨, 왜 집에 늑대가 있지.





 약속

우시지마 X 히나타 

수인 AU

2. 흔들리는 동공





아무리 불이 꺼져 있는 집이어도 거실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짐승이 늑대라는 것은 확실했다. 언뜻 보면 개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저기 있는 짐승은 늑대가 확실해 보였다. 선배 늑대 키우셨나. 도심 속의 아파트에서? 나는 놀라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제 내가 취해서 보지 못했던 건가. 선배는 어디계시지. 휴대폰을 찾으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휴대폰이 식탁 위에 있다. 색색거리며 자고 있는 늑대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발을 옮겼다. 하지만 동물의 귀는 그마저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간과했다. 나는 겨우겨우 손을 뻗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지만 바닥에 부딪히는 늑대의 발톱소리에 그 자리에 멈췄다. 안돼, 빨리 방으로 들어가자. 톡, 톡,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소리에 눈을 질끔 감았다. 어쩌지. 나 어떡해야 하지. 손에 있는 휴대폰이 부서질 마냥 꼬옥 쥐었다. 갑자기 멈춘 발톱소리에 다시 돌아갔나 싶어 뒤를 돌아보았지만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다만 늑대가 아닌 우시지마 선배가.


“서, 선배.”

“...봤어?”

“네?”

“늑대.”

“아...네.”

“...좀 더 자자.”


공주님 안듯 나를 들어서 침대에 같이 누웠다. 이미 잠은 다 깨버렸는데. 그 늑대는 어디간거지. 선배 품에 안겨서 이것 저것 생각해보다 내 볼에 와닿는 맨살 느낌에 정신을 차렸다. 맨살 느낌? 감고 있던 눈을 떠서 정면을 응시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이 살이 맨살인 것은 확실했다. 설마, 아래까지? 천천히 고개를 내려 확인하고 재빨리 고개를 들어 우시지마 선배를 바라보았다. 내가 벗은 게 아닌데 왠지 온 몸이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서..선배.”

“응?”

“옷...입어요...”

“아, 나 안 입고 있었구나.”

“네...”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는 선배를 보고 옷을 입으시려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이불을 걷어내고 내 위로 올라왔다. 이후엔 역시 내 입에 선배의 입을 맞추었다. 읍, 새벽부터. 선배의 부드럽고도 강직한 키스에 빠져들 때 쯤 선배가 입을 떼고 내가 입고 있던 상의 안으로 파고 들어가 구석구석에 키스마크를 새기려는지 쪽쪽 댔다. 하지만 어제 많이 했는데. 우시지마 선배의 어깨를 밀어내며 말했다. 너도 바지 안입었네. 귀여워. 돌아오는 답변은 동문서답. 선배의 입장에서는 우문현답이었으려나. 나는 간지러운 느낌에 깔깔댔다. 이거이거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니냐구.


“한 번만이에요.”




__
아 속 아파. 아직도 다 내려가지 않았는지 숙취가 남아있다. 새벽에 선배와 한차례 소동을 끝내고 나는 아마 다시 쓰러지듯 잠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소름끼치게 닿아오는 공기에 이번에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입었다. 바지까지 철저하게. 토를 해야하나. 아픈 속을 잡고 방을 나가니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잘 잤어? 선배가 건네오는 달콤한 아침 인사에 녹을 뻔 했지만 심술 좀 부려볼까. 네, 선배두요? 가 아닌 선배 때문에 아파요. 로 대신해서 대답했다. 그러자 하하 웃는 선배. 뭐가 그렇게 재미지는지. 내 볼을 한 번 만지고 다시 아침을 준비하는 선배였다.


“선배, 늑대 키워요?”

“...음, 어제 얘기하는 건가?"

“네. 늑대는 길들여질 수가 없다던데 진짜예요?"

“...봤으니 얘기하는 거지만..."

"예? 늑대 키우는 거 불법이에요?? 아, 아파트인 게 문젠가"

"그게 아니라...."


혹시 산에서 만난 야생늑대라도 데려와서 키우는 걸까. 왜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그거 나야.”

“.......예?”

“늑대..나라고.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너한테 거짓말 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선배의 말에 놀라 벙쪄 있었다. 근데 애초에 동물이 사람이 될수 있는건가. 아니 사람이 동물이 되는 건? 머릿속에서 순서가 마음대로 엉켜 뭐가 뭔지 모르게 돼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선배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는 내 눈 앞에서 모습을 바꾸었다. 하얀 털, 까만 털에 선배가 방금 입고 있던 옷까지. 바지가 늑대의 엉덩이를 따라 흘러 내려갔다. 어제 본 늑대가 확실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그냥 이해하지 말아야지. 나는 선배를 향해 손을 뻗지도 못했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늑대의 눈빛은 강렬하고 멋졌다. 순간 빠져들 뻔 했지만 들고 있던 숟가락을 괜히 한두 번 휘저었다. 내가 늑대에게서 아니, 선배에게서 눈을 뗄 때 쯤에 선배는 원래 내가 알던 모습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거 좀 위험해.


“선배...바지...”

“...아...”


선배는 발목에 떨어진 바지를 손으로 움켜 잡아 다시 입었다. 그래서 어제도 다 벗고 계셨구나. 내 눈 앞에서 보니 납득이 갔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게 정말 되는일인가 싶어 눈을 도륵도륵 굴렸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내가 이상하면 도망쳐도 좋아. 그런데 이 사실이 퍼지면 우리 종족이 위험하니까 퍼뜨리지만 말아줘.”


내가 선배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아니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매끄럽지 않고 윤리적이지 못한 이 상황이 정말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인가 싶어 잠시 정신줄을 놨을 뿐이다. 내가 알던 생명과학의 이론은 다 어디로? 사실 사람의 마음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기에 이상하고 무서운 걸 떠나 이미 내 마음은 선배의 세상으로 가있는데 어떡하겠는가. 결론은 선배가 어떤 모습이든 나는 선배가 좋은 걸. 아직은 사랑의 감정이 나를 덮쳐온 건지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치 않는 느낌이었다.


“나 차이는 거예요?”

“어?”

“우리 어제 사귀기로 했는데 벌써 헤어지는 게 어딨어요.”


난 그냥 선배가 좋은 거니까. 


“그래도 선배는 선배잖아요.”



———



“오늘 1교시 있어?”

“음...아뇨..”

“더 자. 이따 전화로 깨워줄게. 몇 시에 일어나야 돼?”

“12시요..”

“그래, 이따봐.”

“이리로 와봐요.”

‘쪽’

“잘다녀와요.”


토요일, 선배가 선배만의 비밀을 알려준 날. 그 날 이후로 6일이 지난 금요일, 오늘까지 고작 6일 같이 지냈으면서 엄청나게 친해진 느낌이 든다. 가끔 선배가 늑대가 된 모습을 보기도 했고 쓰다듬기도 했다. 아, 이렇게 선배 품에서만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가끔가다 좀 고단한 하루임을 자각해도 선배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이런 게 사랑이고 행복? 행복하다는 게 이런거구나. 역시 사람은 행복해야해. 


‘띠링, 띠링’

“여보세요.”

-쇼요, 오늘 과 애들끼리 술마신다는데 갈거야?

“오늘도요?”

-저번 주엔 많이 안 왔었나봐.

“아, 선배는요?”

-너 가면 가고.

“근데 저 지금 알바 하는 중이에요."

-그럼 일단 이따 데리러 갈 때 전화할게.

“넹."


쇼요, 연인의 증거. 나는 지금 알바 중이라는 사실도 까먹고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덕분에 점장님께 한 마디 들었지만. 그나저나 저번 주에도 마셨는데 또 마신다니. 이게 대학생..? 갑자기 저번 주에 나의 고백 아닌 고백을 장난스레 넘겨버린 선배들을 생각하니 괜히 골려주고 싶단 마음이 들어버렸다. 다들 집쭝! 내 남친이 우시지마라는 사실을 당신들은 아냐며 너스레를 떨고 싶었다. 

확실히 사랑은 중증이다.


“여- 우시지마 왔냐.”

“선배~ 여기 앉으세요.”


역시 오자마자 여러 사람들에게 캐스팅을 받는 구나. 저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옆에 앉을 자신이 없어 선배에게 눈짓을 보내고 잠시 따로 앉아있기로 했다. 나는 카게야마의 옆에 앉아 주위에 있는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왜 저 선배랑 같이 들어와?”

“어?”

“언제 친해진거야?”

“그게...”


고등학교 때 부터 같이 지낸 카게야마인데. 카게야마에겐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카게야마에게 잠시 귓속말로 우리 사겨. 라고 전했다. 그러자 카게야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고 내 손을 이끌어 시끌벅적한 식당을 빠져나왔다. 인적드문 골목길로 들어와 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카게야마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뭐야, 언제부터 사귄거야?”

“그.. 금요일 부터.”

“그날은... 너 엄청 취한 날이잖아.”

“응. 그 날에 선배 집 가버려서 여차저차..이러쿵...저러쿵..그게...”


카게야마는 상당히 놀라보였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쿵 저러쿵까지 했냐며 크게 한 소리를 들어버렸다. 치, 지도 그랬으면서.

카게야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 오이카와 선배랑 카게야마가 사귀는 것도 재빠르게 눈치 챌 수 있었지. 그러는 자기는 나한테 말 안 했었으면서. 아직도 리얼 트루 러브를 실천하시고 계신 두 분은 오이카와 선배를 따라 대학을 들어온 카게야마의 노력이 한 몫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같은 날이면 둘은 항상 옆자리에 앉는다. 부럽다...


“너..”

“토비오. 왜 이리 안들어와.”

“아, 선배.”


그래, 그럼 그렇지. 저 선배, 나랑 카게야마랑 둘이 있으면 항상 질투했어. 나도 애인 있다고 한 바탕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냥 하하 웃는 정도로 넘겼다. 그렇게 오이카와 선배가 카게야마를 데리고 들어가니 살짝 부러움에 찼다. 나도 저렇게 티내고 싶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괜히 발치에 있는 돌멩이를 벽으로 찼다. 


“쇼요. 여기서 뭐해?”

“선배? 왜 나오셨어요?”

“카게야마랑 둘이 나가길래.”

“아 머야~ 질투해요?”

“...내가?”


선배가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키스. 정말 스릴 넘치는 행동이었다. 점점 농염해지고 깊어져가는 키스는 위험했다. 내 정신도, 몸도. 이대로 눈을 감으면 못 멈출 것 같아서 나는 선배를 밀어내 선배와 눈을 마주쳤다.


“....누가 보면 어쩌려 그래요.”

“귀여워.”

“아 뭐야, 맨날 귀엽대.”

“오늘 술 많이 마시지마.”

“선배두요.”


내가 먼저 들어가고 잠시 뒤에 선배가 들어왔다. 아무도 나와 선배가 밖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걸 모를거야. 하지만 선배만 보면 붉어지는 볼이 야단이었다. 그게 애써 불판 때문이라고 어필하며 집게를 잡았다. 한 명,두 명 취해가며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이때쯤이면 나가도 될 것 같은데. 선배와 눈을 마주쳤다.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선배는 외투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빨리 선배를 따라가야지. 나는 내 가방을 들고 허겁지겁 선배의 뒤를 따랐다. 조금 알딸딸해진 건지 선배의 너른 등판을 보고 다시 혼자 감탄을 했다. 나 등판 때문에 반했다고 해도 무죄다.


“선배!”

“많이 안마셨지?”

“네.”

“가자, 데려다 줄게.”

“아뇨, 저 선배집 갈래요.”


궁금한 게 너무도 많은 깜깜한 밤이었다.



---

에필로그


"그래도 선배는 선배잖아요."


....


"...설마 저랑 한 번 자보려고.."

"아니다! 그런 거 절대 아니다! 나도 너 좋아해왔었어! 아주 많이! 귀엽고 이쁘고 밝고 나랑은 다르고,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매력을 느끼고 그러니까.."

"...아..알겠어요. 그렇게까지... 변명 안 해도 돼요.."

"아... 그냥...그렇다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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