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새벽. 김민석은 상담실에서 센티넬&가이드 인권 보호팀 팀장 권미선과 마주 보았다. 그는 입을 열지 않는 김민석이 답답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민석은 자다가 황급히 나온 게 여실해 보이는 권미선팀장에게 미안한 마음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정말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쪽팔려서.



피곤함에 핏발이 선 눈을 천천히 깜빡인 미선은 조개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센티넬이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시 한번 가이드 보호에 대한 주의사항을 늘어놓는 것 뿐이다. “민석씨, 이건 정말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에요. 센티넬은 일반인 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히 높아요. 센티넬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 뼈 부러지는 건 예삿일이에요. 배웠잖아요.” 책망이 담긴 권팀장의 매서운 눈빛을 피하며 김민석은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감쌌다. 새벽에 불려나온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과 별개로 억울함이 솟았다. 월등한 힘?? 내가 월등하게 변백현을 찍어 눌렀나. 아닌데? 변백현에게 잡혔던 손목이 아직도 얼얼하다. 김민석은 억울했지만 입을 열진 못했다. 이 상황을 설명할 순 없으니깐. 너무 쪽팔리잖아!





그건 변백현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실 문을 열고 머리에 까치집을 한 채 센티넬 관리3팀 김준면 팀장이 들어섰다. 눈에는 졸음이 한가득하다. “이 시발 똥개새끼. 사고를 칠 거면 낮에! 낮에 치라고! 이 새벽에 회사로, 아니 너 머리가 왜 예뻐졌냐” 짜증을 내다말고 백현의 은발에 놀란 준면은 의자를 꺼내 앉으며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중요한 건 변백현의 머리 색깔이 아니다. 외롭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포근한 침대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니지, 아니야. 야 말해봐. 왜 싸웠어”

“몰라.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백현아. 어쩌다 보니 이 새벽에 벽이 날아갔다고 하면 시발 그게 그렇게 넘어가지냐?”




백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새벽2시 24분. 센티넬&가이드 기숙사가 공격당했다. 센가협 지구에 직접 공격을 가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협회엔 비상이 걸렸고 팀장급 이상이 긴급 소집됐다. 기숙사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센티넬과 가이드는 경보음 속에서 대피했다. 경호팀이 바빠졌다. 공격을 파악하기 위해 분석에 들어갔다. 타격을 받은 곳은 24층 2400호. CCTV를 돌려본 경호팀에선 이상을 감지했다. 폭발이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점. 사건 현장인 2400호에 도착한 센티넬 관리 1팀은 아연실색했다. 그 변백현과 그 김민석이 씩씩 거리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김민석과 변백현은 각각 상담실과 보호실로 격리되었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두 사람으로 인해 이 사건은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되었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싸움으로 인한, 그것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센티넬과 가이드의 유치한 싸움을 외부에 공개할 순 없으니깐.




새벽 2시 30분경 상담실로 불려간 민석은 오전 6시가 돼서야 돌아왔다. 2400호의 내벽 수리가 마무리 될 때 까지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재민의 안내로 임시 숙소 문 앞에 도착한 민석은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변백현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워 도어락 위에서 손이 배회했다. 재민을 먼저 돌려보내고도 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찬 기운.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민석을 반긴 건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었다. 허탈해진 민석은 헛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한숨도 자지 못해 피곤했지만 쉽사리 잠들진 못했다. 변백현이 곧 돌아오지 않을까. 가만히 누워있으니 여러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제가 되어버린 하루. 불과 몇시가 전 백현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게 꿈만 같다. 더 꿈만 같은 건,





호수공원에서 돌아와 2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김민석은 약간 골이 나 있었다. 너무. 너무너무 아쉬워서. 호수공원에서의 키스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이렇게 까지 좋을 일인가. 어떻게 해야 변백현이랑 매일 키스할 수 있지. 문 열고 들어가면 그냥 입술부터 들이밀까. 김민석의 머릿속이 방법을 찾기 위해 빠르게 회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2400호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맞물리는 입술의 말랑함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그 많던 상념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남은 건 그저 이 순간. 

숨과 숨이 섞이고 혀가 얽혔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 넘어가는 소리가 자극이 되어 더 깊숙이 입술을 맞댔다. 자신의 입천장을 핥는 변백현. 간지러움에 살풋 웃음이 터졌다. 시발.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입술이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이 아쉬워 더 안달 났다. 침대는 불가침 영역, 특히 외출복 입은 상태로 금지라던 김민석의 생활수칙은 머릿속에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서로의 혀를 쪽쪽 빨아대다 보니 허벅지가 침대 매트리스에 걸렸다. 백현이 부드럽게 민석을 침대에 눕혔다. 김민석은 제 위에 올라탄 백현의 목을 껴안아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둘 다 입술이 떨어지면 죽는 사람처럼 서로의 입술을 물고 빨았다. 입술을 붙인 채로 김민석이 중얼댔다.




“너무 좋다”

입술을 살짝 뗀 변백현이 김민석의 눈을 빤히 내려다본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 마주친 시선에 여러 감정이 스친다.

 

“...나도 좋아”

쿵.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숨소리와 흥분감이 섞인 목소리가 김민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당연히 늘 그랬듯 변백현이 당황할 줄 알았는데 저도 좋다니. 김민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당황한 민석의 뭐라는거야라는 물음은 다시금 입술을 머금는 백현으로 인해 입안에서 묻혔다. 그리고 어쨌더라. 서로 상의를 벗기고 몸을 쓰다듬고 깨물고,

 

그래. 딱 여기까지 좋았지. 떠올린 것만으로도 얼굴에 열이 오른 민석이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그다음은... 아까는 심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헛웃음이 터졌다.

본능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 본능. 김민석과 변백현은 본능적으로 박기를 원했다. 사회화 된 통념상 남성의 위치가 본인에게 자연스러운 위치였으니깐. 처음엔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찾아가려 했으나 서로를 아래로 눕히려는 행위를 두 번 반복하자 의식해버렸다. 어라? 이 새끼 봐라 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뭐 2400호 벽이 뚫렸고, 관리팀이 도착했고 김민석은 이렇게 임시 거처에 누워있다. 으으. 어이없음과 아쉬움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시계를 확인한 민석이 이불을 홱 뒤집어썼다. 시침이 7시 분침이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변백현이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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