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입사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엄마는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적부터 일을 하셨다. 아는분 횟집에서 일을 아셨는데.. 그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직 어렸을때부터였다. 동생이 어려서 엄마일터로 동생을 데리고 가면 초등학교 방과후에 동생을 데리러 갔다. 북한강 강변에 자리하고 있던 횟집은 장마가 올때면 물에 잠길만큼 '강'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한적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었지만 우리집과는 거리가 있어 방과후에 동생데리러 가는 길은 너무 귀찮고 심심했다. 그보다 동생을 데리고 와서 같이 놀아줘야 한다는 점이 더 싫었다. 엄마는 오전 10시쯤 출근을 하셨고 퇴근은 마지막 끝나는 손님이 가실때까지였다. 횟집에 붙박이 일하는 사람이 있어 때로는 손님이 있어도 퇴근을 하셨는데 아무리 일찍 오신다고 해도 저녁 9시나 10시쯤이었다. 한달에 쉬는 날은 하루 정도 있었는데 그날은 파마를 하시거나 김치를 담그셨다. 

한달에 한번 엄마가 쉬는날.. 학교 끝나고 집으로 들어올때 나는 음식냄새가 너무 좋았고 동생을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니 그것도 좋았다. 엄마가 있으니 저녁준비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좋았을거다. 허리가 아파서 서서 하는 일은 오래 못하셔서 그곳 말고는 엄마가 일하실 곳은 없었을거다. 횟집사장님과 가족같이 지냈는데 그 인연은 기회가 없어 물어보지 못해 알수 없었지만 자연스러운 풍경이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횟집이라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엄마는 꽤 오래 일을 하셨는데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해서는 가끔씩 용돈벌이로 일을 하셨다. 회도 뜰줄 아셨고 사장님이 워낙 괴팍하셔서 일반사람들은 그곳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장님이 일을 그만하고 싶었을때 우리가 인수하려고 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다른사람 손에 넘어갔고 그 일로 엄마와 사장님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나의 학창시절동안 그곳에서 일했던 엄마와는 오래 시간을 보낸적이 없으니 많은 얘기를 해본 기억이 없다. 운동회나 소풍때를 맞춰 엄마가 쉬면 너무 좋았다. 

엄마의 어린시절은 아주 시골에서 보내셔서 글도 잘 모르셨는데 그럼에도 매일 매일 뉴스를 보셔서 그런지 상식적인 면에서는 뒤처지지 않았고 반면에 아빠는 약간의 지식을 갖춘 분이었는데 너무 일찍 성공을 맛봐서 그런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일하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엄마가 갑자기 정신을 잃으시고 식물인간이 되었을때.. 3일만의 일이었다. 두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엄마를 응급실에 모셔갔을때 아무말도 없이 두통으로 고통스러운 엄마얼굴만을 볼수 있었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얼마나 아픈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럴만큼 고통이 컸던것 같다. 그냥 노환으로만 생각했다가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전화를 자주 했는데 엄마는 아무 말도 않았고 아빠는 엄마가 피곤해서 그런것 같다고만 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엄마를 챙겼어야 했는데 아빠라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너무 무심한 사람이었다. 엄마를 응급실에 데려가야겠다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엄마를 모시러 갔을때 엄마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고  이것저것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말도 없었다. 

아빠가 워낙 별거 아니라고 말했기에 나는 엄마의 상태에 대해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 "엄마 피곤해서 그런거야? 집에서 하루이틀 경과를 보다가 병원에 갈까?"하고 엄마에게 물었을때 엄마는 고통을 참는 얼굴로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를 부축하면서 차까지 걸어 오는데 엄마는 스스로 걷지 못할만큼 상태가 안 좋았고 그럼에도 아빠는 집안정리를 하고 병원에 가겠다며 우리를 먼저 보냈다. 서울까지 올라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고통스런 표정 말고는 아무말도 없었고 무슨 이유로 이렇게 아픈건지 걱정이 되었지만 평소에 아무 이상없던 엄마라 예상할수 있는 병명이 없었다. 시골집에서 토요일 저녁 늦게 출발해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꽤 늦은시간이었고 응급실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입원실을 배정받는 동안 나는 상당히 피곤했다. 입원실에 들어갔을때 엄마는 두통때문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간호사가 자주 와서 엄마의 이름을 물었다. 그때마다 난 피곤해서 졸다가 깨다를 반복했고 엄마 상태에 대해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채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은 아무것도 못드셔서 죽을 좀 떠 먹여 드리고 그게 엄마의 마지막 식사였던것 같다. 그리고 누운 엄마는 영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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